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하라리라는 사람 대단하다는 생각 다시 하게 한다.
자료가 많고 학술적인 내용인데 이런 걸 이런 식으로 들여다봤다는게 놀랍다.
저자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15세기부터 21세기까지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써놓은 전쟁회고록을 분석해보니,
전쟁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하고 나서 인생을 바꿀만한 생각의 전환이나 깨달음(저자는 계시라고 표현한다)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15세기부터 모든 회고록에 다 나오는 게 아니라 인본주의 혁명 이후에 나온 회고록이 그렇더라.
그렇다면 그 전에 회고록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나 살펴보니
관념론이 중시되던 시기(1450~1740년)와 유물론이 바탕이 된 시기(1740~1865년)의 회고록 서술이 달랐다.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신이 설계한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 '내가 설계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저자는 관념론 시기에는 성경과 논리를 통해 뭔가를 얻었다면
유물론 시기에는 '경험'과 감정이 뭔가를 터득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말하며 공식까지 도출한다.
어려웠지만 이런 걸 이런 시각에서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극이 된 책이다.
나름 하라리 다운 책이었다.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워낙 좋았기에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구입해 놓고 보니 이 책은 신작이 아니라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가 출간되기 7년 전인 2008년에 나온 구작이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 학자인 줄은 알았지만 역사 중에서도 중세 역사, 그중에서도 군사 문화 전공인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이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 비해 주제가 좁고 내용이 깊은 것은 이때만 해도 저자가 전공 분야에서 자리 잡기 바쁜 '초보' 학자이자 작가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험'이다. 저자는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 고증한다. 중세만 해도 전쟁은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신의 뜻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전쟁 또한 신의 섭리이며 전쟁에 나가는 것은 신의 섭리에 따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에 나가 생사를 넘나들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그뿐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이러한 풍조가 바뀐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사이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인문주의가 자리 잡고,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감성 문화가 유행했다. 근대인들 사이에서 전쟁에 나가면 개인적 성숙을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쟁 체험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에 나가려고 했다. 이들에게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계시(revelation)'로 여겨졌다.
이렇게 된 것은 전쟁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전쟁을 특별한 경험으로 해석하면서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몇십 년에 걸쳐 군대 이야기를 우려먹거나,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틈만 나면 "전쟁을 못 겪어봐서 배부른 소리 한다." 같은 말을 꺼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특별한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그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특별하고 누구나 할 수 없는 강렬하고 숭고한 경험으로 가치를 높였을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을 긍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뿐 아니라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체험담도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환멸이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체험담 역시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안다 한들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겪은 것을 남이 그대로 겪을 순 없다. 내가 겪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한들 그대로 알 순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체험하거나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이해받고 있을까. 내게 이 책은 전쟁 그 자체를 다룬 책이라기보다, 전쟁을 통해 소통과 공감의 암울한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다.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
물론 다루는 주제 자체가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에 비해 굉장히 애매모호하기도 하고 협소하기도 하고 책 처음부터 말하듯이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집중하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굳이 끼워맞추거나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서 나름 긴장하고 독서를 시작했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을 때까지 머릿 속에 아니 노아형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아 유쾌하지 못했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저서들의 끝내주는 스토리텔링과 지식을 넘어선 강제로 지혜 주입하기의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이 책도 지른 것인데.. 탑티어 번역가와 김영사빨이었냐 사피엔스는.. 왜 이렇게 산만하고 복잡할까.. 내가 멍청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