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리주의 전통을 이은 철학자 밀의 이 자서전은 연대기순으로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성인기까지를 썼습니다. 가장 먼저 서술하는 부분은 교육이었습니다. 성직자,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에게 아동기부터 받은 교육은 과연 엘리트적이더군요. 3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당대 지식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받은 교육이나 영향의 부분들이 제겐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크레마클럽 구독 중에 요즘 ‘예일대 지성사 강의’에서 할애한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챕터에서 밀의 소개를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덧붙여 이 책이 밀의 자서전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벤담이 창시했다고 여겨지는 영국 공리주의british utilitarianism는 혹독하게 비난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해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공리주의를 으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지하는 이론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곤 한다. 벤담은 현실에 참여하면서 《정부론 단편The Fragment on Government》(1776)을 시작으로 영국의 법률 개혁에 앞장섰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법과 입법 절차가 일차로 법률가들과 부유한 의뢰인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법이 더욱 많은 일반 대중에게 알맞게 개혁되기를 바랐다. 벤담은 최대 다수에게 최대 선을 부여하는 원리를 사용함으로써 이미 확립된 모든 일에 의문을 제기한 위대한 질문자로 우뚝 섰다. 하지만 벤담이 입각한 공리 원리 자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목표와 저촉될 수 있었다. 제임스 밀은 공리주의 전통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벤담의 사상을 신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에 맞춰 개조했다. 벤담이 자주 서툴고 어색하게 쓴 사상을 대중이 훨씬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옮겨 썼다. 제임스 밀은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심리와 경제, 정부에 관해 연구하고 얻은 성과를, 벤담이 씨앗을 뿌린 공리주의 전통에 덧붙여 풍성하게 가꾸었다. 또한 공리주의와 고전 경제학을 떼려야 뗄 수 없게 결합한 것도 벤담과 그의 동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