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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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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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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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글쓰기의 목적...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20.09.19 리뷰제목
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리뷰제목

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양차대전 기간 중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전체주의 풍토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다시 읽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통해서였다.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이 작성한 기사와 칼럼, 기고문 등을 묶어 엮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였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산문 7편을 묶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 인도에서 경험한 경찰간부생활을 토대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버마시절]을 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멈추어야 했지 싶다.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살았던 오웰이 쓴 수많은 글 중에서 29편의 산문을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특히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었던 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외의 산문들 또한 오웰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오웰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이 산문집을 먼저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멈추어야 좋았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에 나온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읽어서이지 싶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9편의 산문 중 5편이 그 책에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산문들을 읽어가면서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은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을 다시금 읽는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밋밋하게 이 책을 읽었다.

 

오웰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허영심과 같은 순전한 이기심,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미학적 열정, 후대를 위해 현재를 기록한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며, 그래서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치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예비학교에서 맛보았던 상류층아이들과의 차별, 이튼스쿨에서 실감한 계급차이,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을 통해 갖게 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오웰로 하여금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글쓰기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294쪽)라고 말하는 그는,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300쪽)라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저널리스트였을 때 기사나 기고문을 쓰는 이유가 ‘어딘가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읽힌다. 오웰은 자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적으로 좌파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믿었기에, 당시 지식인 계급이 지지했던 러시아식 공산주의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흔히 비평가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그의 사상을 찾으려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강박관념이 되어 책읽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평가들의 말은 어떤 작품을 읽고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오웰이 살아온 시대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오웰의 자전적인 산문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오웰읽기를 멈추어야겠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 싶다는 말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알려하다가 흥미 자체를 잃을 것 같아서이다.

 

같은 산문을 두고서 역자들마다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비교하며 읽어가는 것은, 역자를 달리해서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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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글과 실천 - 오웰의 삶.. 평점9점 | YES마니아 : 로얄 p*******t | 2010.12.07 리뷰제목
오웰이 영국의 3대 에세이스트라니, 그가 소설가, 사상가라는 선입관이 강한 것인지.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에세이 묶음인 이 책은 그가 펼쳐 놓은 글들의 향연이며, 조지 오웰의 사상을 크게 가난과 문학, 정치,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자연 같은 주제에 대한 묶음 선물 같다.   시작은 1931년에서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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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이 영국의 3대 에세이스트라니, 그가 소설가, 사상가라는 선입관이 강한 것인지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에세이 묶음인 이 책은 그가 펼쳐 놓은 글들의 향연이며, 조지 오웰의 사상을 크게 가난과 문학, 정치,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자연 같은 주제에 대한 묶음 선물 같다.

 

시작은 1931년에서 스파이크”, 끝은 1948간디에 대한 소견으로, 그의 17년간의 글 모음이고, 그의 생이다. 어린 시절의 사립학교에서의 모순에서부터 인도의 간디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29편의 에세이는 그의 성숙의 과정 또한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젊었을 때 파시스트 맞서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빈민 생활은 그의 삶이었다. 어떻게 보면 좀 감추고 싶은 그의 이력을 그는 당당히 더러 낸다. 거의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돈의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글을 써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가 “1984”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의 감회, 정말, 정말 좋았지. 매질이 아프지 않았다는 건 일종의 승리였고, 오줌을 지렸다는 수치를 어느 정도 씻어 주었다.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했고, 나는 생각보다 못된 아이였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에, 지난 일들은 새로운 사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잊혀져야만 한다. 빈부에 따른 이중적 교육, 항상 당하는 건 가난하지만 재주는 있는 아이들, ‘네 부모는 그럴 형편이 못 될 것이라는 비꼼으로 좌절한다. 최상층이 정말 부러운 것은 젊을 때 부유하다는 점이었다. 두려워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아버지는 언제나 하지마란 소리부터 하는 목소리 걸걸한 노인일 뿐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기록한 것이지만,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 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일부가 된 스파이크, 노숙시절 당시의 그의 상황은 당신은 젠틀맨인가? 팔자 한번 무섭게 사납소, 나리.”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환자가 인간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는듯한 태도로 일 배우는 데만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묘했던 것이다. 사람은 물론 살고 싶어 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계속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버마에서의 삶과 고뇌를 보여주는 교수형코끼리를 쏘다. 죽으러 가는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그가 느낀 것은 무얼까? 군중의 광기와 백인의 동양지배의 허위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사상을 밝히는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하다스페인 내전을 돌이켜 보다,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 했는가 이다. 언론의 자유를 감히 허용할 체재는 사회주의 체제밖에 없다. 정서의 돌변은 신문과 라디오의 최면 탓이다. 잔학행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적이 말하는 순간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제국주의적인 영국을 싫어했다. 하지만 그의 조국이었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영국, 당신의 영국에서 그의 조국 사랑과 번민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전쟁은 나에겐 여러 해 동안 악몽이었고, 저항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의 선택에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중산층에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민족이란 것이 정말 있기는 한가? 제국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 식민지 지배는 지속하는 모순이다. 영국은 부자와 빈자라는 두 민족으로 나누어나 애국주의는 대체로 계급간 반목보다 강하며, 어떤 유의 국제주의보다 언제나 강하다. 민족주의 비망록. 민족이라는 것 단일한 인종, 지리적 영역에만 속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탈골. 민족주의라는 자기편이 저지른 잔악행위를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 아예 귀를 닫아버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 잡혀 있다. 좌파지식인 대체로 부정적이고 불만 가득한 태도와 언제나 건설적인 제안이라곤 없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자기 나라의 공통문화와 단절되며, 그들의 입은 파리식을 즐기고, 의견은 모스크바식을 즐긴다.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세계를 실제로 형성해가는 에너지는 민족적 자존심, 지도자에 대한 숭배, 종교적 신앙심, 전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에서 솟아 나는 법이다. 웰스는 현대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온건하다. 간디에 대한 소견. 평가는 본능적으로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모든 유럽문명을 가능한 한 철저히 흡수하려는 생각했고, 좀 비인간적, 금욕과 자기의 선을 그음이 그의 실수였다. 우리는 하느님 아니면 인간을 택해야 한다.

 

문학에서 톨스토이의 세익스피어의 비판과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어 버린 서점의 추억시와 마이크에서 서정적이거나 수사적인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짐으로, 일반인 시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시 되고 말았다. 시 작품은 종이 위에 패턴보다는 소리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문학 예방에서는 지적인 자유 문제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알릴 자유를, 아울러 강요에 의해 사실과 감정을 꾸며내지 않은 자유를 뜻한다. 우리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우리가 누려온 자유주의적 문화가 사실상 끝난 경우, 문예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휠씬 높다.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 대 문학. 대조효과를 보여 주는 것이 걸리버의 주된 역할이다. 스위프트는 행복의 가능성을 불신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과 나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궁극적으로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톨스토이의 세이스피어 비판, 그는 왜 그런 공격을 했는가? 정치와 영어. 문장이 고약한 것은 비유가 상투적,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유의 유일한 목적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상투적인 비유나 숙어를 쓰면 정신노동이 크게 줄어들긴 하지만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문장의 깊은 뜻을 분명히 알 수 없게 된다. 정치적인 글에 특히 문제가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과학에 대한 글로는 당신과 원자탄과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 약자에게 갈고리 발톱이 된다. 군사기술의 발전이 국가에는 유리하고, 개인에게 불리. 산업화된 나라에 유리, 후진국에는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과학은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이다. 과학자의 양면성,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분야에 대하여 더 현명한 접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서고, 권력지향적(친정부적)이다.

 

나 좋을대로. 장미에 대한 칭찬, 행락지. 등에서는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두꺼비 단상에서 어떻게 보면 오웰의 글이라 믿기 어려운 글, 자연의 찬미와 소소한 즐거움을 이야기 한다. 봄에 깨어나는 두꺼비를 보며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중요한 건 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으며 공짜라는 점이다.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생활의 모든 즐거움을 다 죽여버린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준비해야 할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어느 서평자의 고백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작가와 리바이어던.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짜증스럽고 피곤한 노릇이다. 글쓰기는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동기는 순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에 있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장하고 싶었던 것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 이었다.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세계전체라는 차원에서 보면 자신들도 착취자가 되는 야만스러운 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피착취자라는 말에 넘어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작가 정치인들이 보았으면,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그래서는 안 된다. ‘어떤정치 이념을 받아들이면 문화적 성실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에 바탕을 둔 글로써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문제와 비전을 던져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이 글들이 쓰여진 것은 과거이고, 제법 시간이 지나가 버렸지만, 아직도 이런 이론의 함정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보면서, 역시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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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한 권으로 요약한 조지 오웰 평점9점 | a*****7 | 2017.03.26 리뷰제목
언어가 타락한 시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477쪽) 오웰의 [1984]를 떠올리며 논평을 붙인 역자 후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 주군은 천사이기에 무결점 무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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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타락한 시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477쪽)

 

오웰의 [1984]를 떠올리며 논평을 붙인 역자 후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 주군은 천사이기에 무결점 무오류인데 하찮은 것들이 공연히 덤터기 씌워 단죄하려는 것이라며 범죄자를 극구 옹호하는 모 인사의 언동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전제군주정 시대, 아니 신권정치 시대를 살아가는 신민의 의식에 머물고 있는 그들은 오히려 확신에 차 있다. 헌재 법정에서 국가의 상징물을 펼쳐보이는 퍼포먼스는 젠체하는 것이 아닌 천박한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근대적 의식과 최소한의 교양도 못 갖춘 이들이 내뱉는 언어는 언어이되 말도 안되는 언어이다.

 

여기 실린 오웰의 글 중 몇 편은 100년도 넘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고민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득해진다. 향후 100년 이내에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던 오웰의 예언은 틀린 셈이다. [동물농장]과 [1984]을 통해 탁월한 예지력을 보여주었던 오웰이 이 부분에선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오웰은 대여섯 살 때부터 작가가 되리란 것을 운명적으로 알았다 한다. 낱말을 다루는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 났고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글쓰기 인생에 일대 격변을 가져올 사태에 직면한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글을 쓰려는 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의 발로로 글을 쓰려는 시도이다. 허영심과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쩨는 미학적 열정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픈 욕구에서 글이 나온 것이라 보았다. 셋째로는 역사적 충동을 꼽았다. 후세를 위해 글로써 남기려는 의도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고 타인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수단적 글쓰기인 것이다. 그 가운데 오웰은 넷째 동기, 곧 정치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는 스페인 내전 참가 이후 확고하게 굳어진 패턴이라 한다. 물론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하되 앞의 세 가지 동기를 아우른 포괄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사악한 시절에 태어나 성직자와 인민위원 사이에서 방황하다 비록 팜플렛 저자가 되고 말았지만 자신이 쓰려 했던 이야기는 결말이 불행하고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이었음을 고백한다.

 

언어가 타락한, 아니 온 세상이 미쳐 날뛰는 시대이기에 언어는 부득이 정치적 수단, 계몽의 도구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며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가 오히려 자신의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믿는다.

 

맥없는 책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그러니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에 매달리는 사실에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그런 인생 역정에 여한이 없는 듯하다. 글쓰기라는 재능을 통해 자신을 오롯이 의식의 근대화와 인간화의 제단에 바친 셈이다. 제물을 받아든 신은 인류에게 상당한 분량의 선물을 내렸다. 그런데 오늘 여기 한반도까진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은 그런 오웰의 삶과 글쓰기의 정수를 담은, 한 권으로 요약한 조지 오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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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평점10점 | t******e | 2020.02.04 리뷰제목
『동물농장』,『1984』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저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 조지 오웰의 연보는 위의 책을 읽을 때마다 빠트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작가의 일생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조지 오웰이 쓴 많은 에세이 중에서 29편을 가려 뽑아 출간 순서로 정리하고, 글을 발표했을 때의 상황을 짧게 정리해 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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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1984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저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 조지 오웰의 연보는 위의 책을 읽을 때마다 빠트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작가의 일생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조지 오웰이 쓴 많은 에세이 중에서 29편을 가려 뽑아 출간 순서로 정리하고, 글을 발표했을 때의 상황을 짧게 정리해 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은 잘 알려진 위의 책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글을 남겼다. 출간 된 책은 11권이지만 서평과 칼럼 등 많은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 된 나는 왜 쓰는가는 워낙 유명한 에세이지만 나머지 28편의 글도 작가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조지 오웰은  평생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한 용감한 작가였다.

 

조지 오웰은 공무원인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가기 힘든 사립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6년을 공부한 뒤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의 장학생으로 선발 된다. 8~13살 동안 집을 떠나 기숙생활을 한 이때의 경험은 정말, 정말 좋았지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귀족과 부자들이 많은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 곳에서 무상교육을 받았던 어린 에릭(조지 오웰의 본명)은 학교장 부부의 차별과 학교생활의 불만을 '두려움'으로 표현했다.

 

명문 이튼에 진학한 에릭은 이튼 졸업생으로는 유일무이하게 대학 진학 대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로 가서 제국 경찰 일을 한다. 5년 동안 식민지에서 압제자 편에 서 있던 오웰은 자신의 삶에 괴로움을 느낀 뒤 경찰에서 나와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의 첫 책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출간하기까지 노숙자 생활을 비롯한 밑바닥 삶을 경험하며 작가적 소양을 키웠다작가로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질 때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이념인 '전체주의에 맞서'는 것을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동물농장,1984의 대성공으로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경제적 안정을 얻었지만 건강은 악화되었다. 195047세의 나이로 조지 오웰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70년이 지난 현재도 세계인들이 읽고 있으니 그가 쓴 아래의 글은 자신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긍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를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조지 오웰의 생애가 그려지는 것은 물론 그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억압받는 이들이 없기를 바랐다. 한 번뿐인 삶을 훼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 조지 오웰은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려했고, 글로써 호소했다.

 

조지 오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정치와 언어가 좌우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정치는 선한 쪽으로, 글은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간결함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를 4가지로 정리한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이 중에서 자신은 앞의 세 가지보다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고 말한다. 시대적 상황이 (식민지, 세계대전, 히틀러 등장, 스페인 내전 등)자신을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고 하며 자신의 글은 어떤 것이든 이 정치적인 것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와 글은 분리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정치적 노골성을 글에 드러내는 것은 작가로서 가장 경계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 <나는 왜 쓰는가

 

아래의 글은 <정치와 영어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당시 발표된 글쓰기의 잘못된 사례를 열거 한 뒤 적어도 이런 사항을 고려해 글을 쓴다면 나쁜 문장을 쓴다는 평은 듣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쑬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조지 오웰이 말한 대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온몸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정직한 모습이 좋았고, 거대한 물살의 반대편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감성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동물농장,1984이 좋았지만 앞으로는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1984이 좋다고 할 것이다.

 

나는 시절이 아무리 좋을 때라도 문학평론은 사기라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왜냐하면 공인되다시피 한 기준 같은 게 없는 한 모든 문학적 판단은 본능적인 선호를 정당화하기 위한 규칙을 꾸며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주로 '나는 이 책이 좋다' 거나 '나는 이 책이 싫다'는 것이며 , 그 뒤에  따라붙는 것은 합리화일 뿐이다. 438 <작가와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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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그는 알았을까? 왜 글을 쓰는지!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y*****2 | 2018.10.25 리뷰제목
그리스 여행길에 산토리니섬을 배로 왕복하는 총 14시간을 들여 읽고 또 독후감까지 써 냈습니다. 조지 오웰하면 <동물농장> 그리고 <1984>의 두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탈로니아 찬가>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더 저널리스트 조지오웰>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됐습니
리뷰제목

그리스 여행길에 산토리니섬을 배로 왕복하는 총 14시간을 들여 읽고 또 독후감까지 써 냈습니다. 조지 오웰하면 <동물농장> 그리고 <1984>의 두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탈로니아 찬가>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더 저널리스트 조지오웰>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나 사상 등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는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처럼 그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들 가운데 골라 뽑은 29편을 묶어낸 것입니다. 유년기로부터 청년기,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생의 다양한 시기의 삶에 대하여 진솔하게 고백한 내용들입니다. 유년기에 야뇨증으로 사립학교에서 고통 받던 이야기는 물론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피부로 느낀 제국주의의 민낯, 젊은 시절 추종하던 좌파이념에 따라 스페인내전에 공화파군으로 지원하여 참전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쓴 에세이들이 뒷날 소설 작품의 토대가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의 참전기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그가 추구한 좌파적 사상의 근저에는 애국심이 깔린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에 관련된 두 꼭지의 에세이에서는 얻은 바가 많습니다. 먼저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는 전문서평가의 말 그대로 형식적인 서평쓰기의 실체를 고백합니다. 서평을 의뢰받은 책을 모두 읽지 않고도 그럴 듯한 서평을 써내는 신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읽지 않고 쓴 독후감은 없지만 독후감이 점점 틀에 박혀가는 느낌이 들고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 할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즉 중용하다고 생각되는 소수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계 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합니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풍, 3. 여가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등입니다. 개정판을 하나로 간주한다면 모두 4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저의 경우는 문학분야의 책은 없으니 2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2번에 관한 책도 세상에 내놓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조지 오웰의 글에서 보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들이 이미 일어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진실한 내용만을 글로 써두라는 것입니다.

오웰의 에세이들을 읽고 난 소감은 저도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진실한 내용만을 중심으로 해야겠지요.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먼저 공부를 충분하게 한 다음에는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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