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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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리뷰 총점 9.1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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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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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푸거의 일생, 자본가의 탄생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n*****m | 2019.01.21 리뷰제목
『자본가의 탄생』(원제,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은 야코프 푸거라는 15세기, 16세기에 걸쳐 금융과 광산, 그리고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군 인물의 삶에 대한 평전이다. 야코프 푸거라는 이름은 다른 책을 읽으며 슬쩍슬쩍 접했다(어떤 책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지만). 어떤 책에서는 금융의 귀재로, 어떤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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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원제,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은 야코프 푸거라는 15세기, 16세기에 걸쳐 금융과 광산, 그리고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군 인물의 삶에 대한 평전이다.


야코프 푸거라는 이름은 다른 책을 읽으며 슬쩍슬쩍 접했다(어떤 책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지만). 어떤 책에서는 금융의 귀재로, 어떤 책에서는 광산업자로서, 또 어떤 책에서는 루터와 대결하고, 독일 농민 전쟁에서 반동의 편에 섰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 책들에서 푸거는 조연이었다.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그를 주연으로 등장시킨 책은 없었다. 드디어 그가 주연을 맡은 책이 등장한 것이다.


푸거라는 인물에 대해서 평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부()를 어떻게 일구었는지, 그의 삶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말 제목 그대로, 자본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에 등장한 자본가로서, 유럽이 어떻게 근대의 길목에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야코프 푸거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직물업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대담한 사업 수완으로 대부업과 광산업, 무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또한 그는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이는 이전의 부자와 다른 점이었다. 이전의 부자들이 돈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자 했다면, 푸거의 시대에는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그가 돈을 빌려주어 유럽의 B급 왕실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최고의 황가가 되도록 한 것도, 한자동맹을 와해시킨 것도, 독일농민전쟁(이 전쟁을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한 전쟁이라고 한 것은 엥겔스였고, 이 책에서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에서 중심에 서서 농민들을 격퇴시킨 것도, 모두 돈을 지키고, 부를 일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 자본가의 태동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본가로서 그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었고, 그 흐름 속 중심에 있었다(심지어 종교 개혁도 간접적으로 그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냉전 시기, 서독은 우표에 푸거의 얼굴을 넣었고, 동독은 독일농민전쟁의 지도자였던 토마스 뮌처의 초상화를 지폐에 새겼다. 그만큼 푸거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저자는 주로 그의 공()을 더 많이 사고는 있지만(정확히는 자본주의의 승리에 대한 승인이라고 할 수 있다), 푸거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자본가의 어두운 측면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읽는 사람마다 그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아주 다양할 것이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를 위해 맹렬히 살다간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한 가지가 그의 역사에서, 그리고 그 후의 역사에서 너무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우리는 한 사람을 읽음으로써 역사를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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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본가의 탄생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s | 2023.09.04 리뷰제목
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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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중앙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푸거는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교황을 설득해 상업을 중세의 미몽에서 흔들어 깨웠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첫 대규모 충돌인 독일 농민 전쟁에서는 전쟁 자금을 지원해 자기 기업 체제의 조기 붕괴를 막기도 했다. 푸거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상업 조직이던 한자 동맹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그가 은밀하게 꾸민 금융 계략은 뜻하지 않게 루터를 격분시켜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게 했다. 이로써 촉발된 종교 개혁은 유럽 기독교 세계를 양분하는 지각 변동으로 이어졌다. 또한 푸거는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후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좀 더 평범한 업적을 들자면 푸거는 알프스 산맥 이북에서 처음으로 복식부기를 도입했으며, 세계 최초로 여러 영업 결과를 하나의 재무제표로 통합하기도 했다(이 혁신 덕분에 푸거는 자신의 금융 제국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으며, 자금이 어디에 있는지 늘 알 수 있었다). 감사관을 파견해 지점을 감독하게 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또한 푸거는 뉴스 서비스를 창시해 경쟁자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보다 먼저 파악함으로써 언론의 역사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푸거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서구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중세 후기, 근대 초기, 즉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유럽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아래와 같은 표현만으로 종교 전체가 타락했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교황청을 매춘 소굴로 만들고 성대한 난교 파티를 연 호색한, 알렉산데로나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지휘한 호전가 율리우스 (134쪽)

 

더 나아가 종교가 뒤로 물러나고 세속적 세계가 성직자의 사회를 지배했다고 믿으면 큰 오산이다. 타락하고 부패한 성직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주위의 시선 때문이라도 성실하게 미사를 집전했으며 신앙과 교회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도리어 종교의 권위를 지키면서 세속의 권력을 종교 아래 어떻게 둘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이미 교황은 타락했다고 여겼으며, 도리어 자신이 교황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야고프 푸거의 일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하나 하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해서 서양 역사, 특히 근세 초기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도리어 근대라는 시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도리어 야고프 푸거는 그냥 지금 옆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금융 기업가의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우리 문명의 기본적인 틀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다. 하지만 금융이 중심이 된 현대 자본주의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유력 가문만을 떠올릴 테지만, 실은 야고프 푸거만큼 후대에 영향을 끼친 이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세계적인 격변기, 비잔틴제국이 몰락하고 오스만 제국이 세워지던 그 시기, 서유럽의 종교 지도자들은 동방의 오스만 제국에게 밀릴 수 없었다. 적어도 로마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처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여야 했으며, 그 중앙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자본이 문제다.  

 

종교개혁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교황청의 부패, 성직가의 탐욕, 교회의 세속 개입 등이 카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에 일조했다. 하지만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람은 푸거였다. 그는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의 산파노릇을 했다. (175쪽)

 

결정권은 대금업의 이자부과를 승인한 교황 레오 10세에게 있었다. 그는 부패한 시대의 부패한 교황이었다.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인 레오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176쪽)

 

푸거는 교황의 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일이 성사되자 알브레히트(마인츠의 대주교)는 푸거에게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아랫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들의 안은 면죄부라는 모금수단이었다. (…) 레오는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아이디어를 대번에 좋아했다. (178쪽 ~ 179쪽)

 

교황과 카톨릭 성직자들은 푸거에게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종교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음을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 체제를 반대하는 흐름이 최초로 나타난 것이 종교개혁이며 더 나아가 독일 농민 전쟁이었던 셈이다(이런 측면에서 카톨릭이 아닌 현대 기독교가 더 자본주의화되어 있음은 상당히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칼뱅의 예정론에 기인한 것일 테지만). 

 

1450년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처음 제작했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52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여기에는 루터가 큰 몫을 했다. (247쪽)

 

기술은 그 기술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그 쓰임새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시대적 흐름이나 요구가 어떤 기술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고 이 점에서 루터의 여러 글들은 너무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루터의 글들을 인쇄하기 위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농민지도자 중 푸거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토마스 뮌처였다. 총을 가장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포퓰리즘적 주장이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뮌처는 튀링겐 출신의 사제로, 신비주의자를 자처했으며 공동 소유를 옹호하고 사적 소유의 철폐만이 은총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 푸거와 뮌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대大 자본주의자였고 한 사람은 대大공산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냉전 시기 두 경쟁 체제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서독은 푸거 우표를 발행했고, 동독은 5마르크 지폐에 뮌처의 얼굴을 새겼다. (283쪽)

 

독일 농민 전쟁은 후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 의해서도 언급된다. 이미 근세 초 자본주의가 시작될 무렵 이미 그 갈등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루터는 뮌처를 적으로 여겼다. 

 

성경 말씀을 철저히 지켜 교회를 개혁하려던 루터는 뮌처를 적으로 여겼다. (284쪽)

 

아직도 푸거 가문은 독일에서도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부동산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재력을 가진 가문으로 푸거를 능가한 곳은 아직도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세계, 중세에서 어떻게 세속적 세계, 근대로 넘어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다양한 자본주의적 관행과 체계를 쌓아 금융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가를 야고프 푸거는 보여주었다. 이 책은 그 야고프 푸거의 자세한 기록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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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16세기, 유럽 최고의 자본가 야코프 푸거의 생애... 평점10점 | l****1 | 2019.01.08 리뷰제목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이 도시는 15~6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덕분에 바이에른 티켓이 있다면 뮌헨에서 43분 정도의 거리라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과 함께 여행 일정에 넣어볼만한 도시다. 거기서 유독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소가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푸거라이'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년전인,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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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바이에른 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이 도시는 15~6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덕분에 바이에른 티켓이 있다면 뮌헨에서 43분 정도의 거리라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과 함께 여행 일정에 넣어볼만한 도시다. 거기서 유독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소가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푸거라이'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년전인, 1521년에 만들어진 이 공동 주택 단지는 가난한 자들이 아주 싼 임대료로 주거 걱정 없이 살게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유럽 역사 최초의 사회 복지 시설이라 평가받는다. 놀랍게도 이 '푸거라이'의 전통은 오늘에도 이어져 현재도 0.88 유로의 한 달 임대료로 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2년 동안 아우크스부르크에 거주했어야 하고 카톨릭 신자여야 하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복지란 개념이 전무했던 당시에 그런 시설이 만들어졌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곳을 만든 사람이 당시 유럽 최고의 부호였던 야코프 푸거였다. 지금의 재력가로 치면 빌 게이츠 정도랄까. 푸거는 돈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았지만, 출신은 그리 보잘 것 없었다. 그의 신분은 평민이었다. 그러나 부모를 잘 만났다. 이재에 눈이 밝은 할아버지 덕분에 어마어마한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지만, 푸거만은 예외였다. 그는 할아버지 못지 않은 사업 수완으로 재산을 까먹기는커녕 더 많이 불렸던 것이다. 그의 재력은 당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전쟁 준비 같은 것으로 돈이 아쉬울 때마다 손을 벌릴 정도였다. 그 때는 왕이 하늘 아래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때로 감히 귀족도 아니고 평민이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시기다. 하지만 푸거는 그런 미천한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 왕이 대출을 원할 때면 상응한 대가를 요구하는 거래를 했으며 빚을 제 때 갚지 않으면 채무 상환을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일들을 야코프 푸거는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콧대를 세운 것은 정치 권력만이 아니었다. 카노사의 굴욕이란 사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어떤 때는 왕권 보다 더 강한 종교 권력조차도 그는 꿀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막시밀리안이 이탈리아의 왕이 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베네치아를 지나가야 했을 때, 교황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 베네치아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병사를 모으고 먹일 수 있는 군자금이 필요했는데, 그만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야코프 푸거밖엔 없었다. 교황은 막시밀리안이 베네치아에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은밀히 푸거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왕에게서 이권을 얻어야했던 푸거는 교황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무시해 버리면 당시 교황의 허락을 받아 면죄부 판매를 독점하고 있던 그의 사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절충을 했다. 막시밀리안이 베네치아에 입성하지 못할 정도의 돈만 대출해 준 것이다. 막시밀리안이 자신이 원했던 베네치아가 아니라 거기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황제 대관식을 치뤄야했다. 이런 식으로 푸거는 그 때 가장 강했던 두 가지 권력인 정치 와 종교를 자신의 돈으로 압도한 사람이었다.




 현재 뉴욕에서 증권 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그레그 스타인페츠가 쓴 '자본가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인 당시 그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지녔던 자본가, 야코프 푸거에 대해 소상히 밝히는 책이다. 그가 어떻게 권력과 종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수완을 발휘했는가를 그 때의 역사적 상황과 유기적으로 엮어 알려준다. 그것이 너무도 쉽고 재밌어서, 난 처음에 역사학자가 쓴 책인줄로만 알았다. 이 정도의 정보량은 역사학자만이 쓸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책 날개에서 직업이 증권분석가란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로썬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가 있다. 야코프 푸거가 중요성에 비해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막대한 돈을 가진 자본가가 어느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지, 미천한 신분(그는 돈으로 결국 막시밀리안에게서 아우크스부르크 인근의 영지를 얻어 귀족만이 될 수 있는 영주의 자리에까지 오른다.)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하는 것도.


 그런 저자의 의도는 양쪽 다 성공하고 있어, 새삼 자본의 힘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나 푸거는 결코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는 오직 독점만이 거대한 부를 약속했기 때문에 경쟁 상대를 어떻게 하면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거기서도 푸거는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방해가 되는 은행가들은 이이제이이 전법으로 쓸어버리기도 했으며 교묘한 수를 써서 막시밀리안이 자신이 아니면 돈을 대출 받을 수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푸거라이' 같은 사회 복지 시설을 지었을까? 당연히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압력이 그에게 그것을 짖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는 교회의 허락으로 면죄부를 독점 판매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종교 혁명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의 도시이기도 하다. 마틴 루터는 면죄부를 파는 야코프 푸거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계몽주의 세례는 푸거만이 받은 게 아니었다. 푸거와 똑같은 신분인 농부, 노동자 역시 받았다. 그들 모두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신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루터의 선도에 의해 농민 반란이 일어났고 그가 독점해서 채굴하고 있었던 헝가리의 광산에서도 광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푸거와 같은 자본가의 출현에 의해 상업과 산업에 사람들의 눈이 점점 뜨여지자, 독점이 나쁘다는 인식도 광범위하게 퍼져갔다. 푸거는 사면초가였다.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사방의 창끝에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자 한다면 나눠주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많은 부자들이 자신의 위신과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기부 활동을 하듯이.


 그렇게 태어난 '푸거라이'였으나 어쨌든 지금은 유럽 최초의 복지 시설이자 아직도 그 전통이 지켜지고 있는 곳으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물론 그걸 만든 야코프 푸거의 존재는 저자가 말했듯, 거의 잊혀졌지만.

 '자본가의 탄생'은 그처럼 사라졌던 야코프 푸거를 아주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거기다 야코프 푸거는 유럽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다 크고 작게 영향을 미쳤는데 작가는 그걸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아주 재밌게 서술하고 있어 꼭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아'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자아내게 만든다. 여하튼, 자본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배경에 서 있는 존재였다. 주역은 언제나 왕이나 교황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자본이 결코 뒷방에 앉아 손놓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걸 '자본가의 탄생'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자본의 역사가 궁금했다면, '자본가의 탄생'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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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본가의 탄생 평점10점 | j*******0 | 2019.01.08 리뷰제목
자본가의 탄생부키, 그레그 스타인메츠 저, 노승영(옮긴이)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스타인메츠의 ‘푸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며 자본주의 초기에 국가와 기업의 관계(시대상)를 잘 보여 준다.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는 메디치도, 로스차일드도, 록펠러도 아닌 바로 야코프 푸거다!”(뉴욕 리뷰 오브 북스)-콜롬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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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부키, 그레그 스타인메츠 저, 노승영(옮긴이)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스타인메츠의 ‘푸거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며 자본주의 초기에 국가와 기업의 관계(시대상)를 잘 보여 준다.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가는 메디치도, 로스차일드도, 록펠러도 아닌 바로 야코프 푸거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콜롬버스가 바다를 넘고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던 바로 그 시대

-모든 방면에서 유럽은 바뀌고 있었다. 

-유럽의 수십 개 왕가 중 군소 가문에 불과했던 합스브르크 가문은 

-스페인에서 헝가리까지를 아우르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을 건설, 유럽의 패자로 등급.

-교황 레오 10세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높은 이자를 받는 대금업을 합법화, 

-면죄부를 팔기 시작.

-마르틴 루터(종교신학자)가 분노하여 종교개혁이 촉발.

-베네치아에서 개발된 복식 부기는 발전을 거쳐 본격적으로 대규모 사업 운용에 활용.

-금융가들은 항해와 전쟁에 투자했으며, 적절한 투자를 위해 뉴스레터를 만듦.

-오랫동안 유럽의 상업을 지배한 한자동맹이 무너지기 시작.

-자본가와 영주의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독일 전역을 휩씀.

-엘겔스는 이 독일 농민 전쟁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전초전이라 평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야코프 푸거가 있었다. 푸거는 오직 부를 쌓겠다는 일념으로 황제와 교황에게 빚을 지웠고, 전쟁에 개입했다. 또 사업을 합리화했고 정보 체계를 구축했다. 그 선택은 푸거를 세계 최고의 거부로 만들었고, 그 파장은 독일과 전 유럽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상 모든 사업가 중에서 푸거의 영향력과 가장 유사한 사람은 나탄 로트실트다. 그의 삶과 인생 역정은 푸거를 연상시킨다… 로트실트를 비롯한 위대한 금융업자들이 푸거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들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푸거는 한 사람이 엄청난 업적을 이룰수 있는 독특한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정부는 여전히 수입을 초과해 지출한다. 따라서 어느때보다 융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에게서 자금을 마련하지 않고 보험회사나 연금기금 등에서 차입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이 자기 재산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의 위험을 대출 기관이 납세자와 공유하게 된다. 세상이 더는 푸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의 가입자로서 모두 어떤 의미에서 푸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탄생, 본문 후기 p.334~335)>


야코프 푸거는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다 ‘어떠한지’를 보았다고 말 할에 가까운 삶이다. 

야코프 푸거의 이야기에는 자본주의와 시대의 산업과 정경계와 종교, 사회사의 구현과 국가 형성이 담겨있다. 역사와 부를 쌓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이 책은 간단 명료하지만 실제적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역학관계까지도 실존한 자본가에 의해 탄생한 대담한 여정을 볼 수 있다.




유럽의 역사를 바꾸고,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한 시대를 보았다. 그리고 대담한 자본가를 보았다. 그는 한 사람이었다. 그 시대는 ‘어떠한지’ 먼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지’. 에 따른 시대는 자본가의 탄생이 되었고, 또 다른 역사가 되었다. 자본가로 성공한 그는 국가의 모습을 알고, 그 중심의 리스크를 재고 파산을 위험을 극복해가며, 때론 냉혈한 사업가의 전형이 되어서 영리한 사업가, 야코프 푸거로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로 보면 비즈니스 맨으로 유능한이며, 시대를 살았다. 황제와 교황을 지배한 자본가의 삶과 시대 그로 인해 읽을 만한 가치가, 부유한 기업가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이 속 다양한 가지의 이야기(야금학, 중상주의, 르네상스, 유럽사와 산업) 외에 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종교와 역사적으로도 재미를 더한다. 시대와 인물과 사건과 역량과 역사와 관계와 환경, 현상 그리고 도래이며, 배경이며 기록이다. 탄생의 기록이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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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본가의 탄생] 야코프 푸거를 아시나요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m****3 | 2022.07.31 리뷰제목
자본가란 무엇인가? 요즘 세상은 모두들 자본가를 꿈꾼다 초등생부터 직딩들까지 전 국민 최고의 장래희망은 아마도 (자본가의 현대식 표현인) "건물주" 란 것이다 (꼭은 아니어도 마다하지는 않을 듯하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꿈꾸는 것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 처럼 대놓고 이를 추구한 개방적(?) 시대는 과거 드물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곧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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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란 무엇인가? 요즘 세상은 모두들 자본가를 꿈꾼다 초등생부터 직딩들까지 전 국민 최고의 장래희망은 아마도 (자본가의 현대식 표현인) "건물주" 란 것이다 (꼭은 아니어도 마다하지는 않을 듯하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꿈꾸는 것이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요즘 처럼 대놓고 이를 추구한 개방적(?) 시대는 과거 드물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곧 꿈꾸기도 힘들다 편히 살고프다 시대상의 한 모습 같다 어찌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완전 베스트한 시대는 없다 찐 부자들인 메디치의 시대에도 (피렌체의 격렬한 당쟁) 푸거의 시대에도 (합스부르크가의 왕조전쟁) 로스차일드 시대에도 (유대인 탄압과 나폴레옹 전쟁 등) 모두 도전과 응전의 시대였고 부자가 바늘구멍 지나가기 힘들고 돈 많은들 그리 행복지 못한 부자도 많았다 요즘 부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오히려 부 자체보다는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이 원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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