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는 건 현실을 잊으려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건 아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큰일은 아니지만 좀 일이 있어서 책 볼 때 집중이 잘 안 됐다. 큰일 아니라면서 그랬구나. 본래 난 큰일이 아닌 작은 일에 더 마음 쓴다. 사람은 늘 하던대로 안 되면 기분이 안 좋다. 그게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 해도. 이건 나만 그럴지도. 다른 사람은 다르게 해도 괜찮으면 안 된 건 생각하지 않을지도. 난 언제쯤 작은 일을 그런가 보다 받아들일지. 책 보는 데도 영향을 미치다니. 그러고 보니 일이 하나가 아니고 두가지였구나. 그래서 이틀이나 잘 못 잤던 거다. 하나는 어떤 물건을 사고는 내가 쓰는 게 아니어도 값이 싼 건 안 되겠다고 여겼다. 왜 그렇게 싼 걸 사려고 했는지 그걸로 기분이 안 좋았다. 다른 걸 또 사야 해서 그때는 좀 더 생각하고 샀다. 그런데 인터넷 뱅킹이 안 됐다. 인증을 한번 더 하라나. 그건 휴대전화로만 할 수 있는 거였다. 날이 밝고 은행에 가서 계좌이체했다. 그런 건 처음 해 봤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행이다 생각해야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 앞으로도 죽 이래야 하나 싶어서.
내가 가진 안 좋은 점은 한번 일어난 일이 자꾸 일어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거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계좌이체 하는 돈이 많아서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새벽에 인터넷 뱅킹 하는 곳에 글을 남겨뒀더니 저녁때쯤 전화가 왔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말을 들었다. 어쩌면 다음에는 한번 더 인증하라는 말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할 텐데. 그런 걸 이용해서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휴대전화 없는 사람 생각하지 않는 건 아쉽다. 이 책하고 별로 상관없는 말을 했구나. 우울한 일 때문에 책을 잘 못 봐서 그렇다. 아주 상관없지 않기도 한가. 물건이 싸고 좋은 것도 있지만, 아주 싸면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한다. 돈보다 그걸 쓸 사람을 생각했다면 좀 더 나은 걸 골랐을 텐데 싶다. 내가 물건 같은 건 잘 안 사서. 그나마 많이 사 본 건 책뿐이구나. 이 책은 산 건 아니지만. (다음에도 인터넷 뱅킹이 안 됐다. 어떻게든 해결은 했지만 기분은 안 좋았다.)
우스이 소마는 한달 동안 하야마곶 병원에서 수련의로 일한다. 본래는 히로시마 중앙종합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했는데, 잠을 잘 안 자고 일하고 공부해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 우스이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우스이를 잠시 하야마곶 병원에 가게 했다. 그곳은 요양병원이다. 부자가 들어가는 곳으로 하야마곶 병원은 아픈 사람이 바라는 건 다 들어주려 했다. 정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게 뭔지 알아도 그저 누워 있기만 하는 사람은 어떡하나. 그런 사람은 식구가 바라는대로 해주겠다. 돈이 있어야 요양병원에도 들어가겠다. 우스이는 어릴 때 아버지가 빚을 지고 애인과 집을 떠나서 아버지를 원망했다. 우스이는 미국에서 뇌외과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려고 했다. 그런 우스이는 하야마곶 병원에서 유가리 타마키를 만난다. 유가리 타마키는 자신을 유카리라 하라 한다. 악성뇌종양으로 언제 죽을지 몰랐다. 의사와 아픈 사람,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 바로 들지도. 나도 그랬다.
난 돈이 있으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우스이는 어머니가 고생해서 돈을 더 벌어야겠다 생각했구나. 둘 다 그리 좋은 건 아니겠지. 우스이는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아버지가 집을 떠나던 날 자신한테 한 말을 잊어버려서 괴롭게 여겼다. 유카리는 우스이가 그걸 떠올리게 돕는다. 어떤 일은 잘 봐야 참된 걸 알기도 한다. 그런 거 없는 일도 있겠지만. 우스이 아버지한테는 있었다. 우스이 아버지는 애인과 다른 나라에도 갔는데 한해가 지난 뒤에 일본에서 죽었다.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 우스이는 그런 생각 못했나 보다.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다. 우스이는 유카리가 바깥에 나가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알고 함께 밖에 나가기도 한다. 우스이가 연수를 마치는 날 유카리는 자신은 환상이니 잊으라 말한다. 얼마 뒤 우스이는 유카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앞부분은 우스이가 어릴 때 입은 상처를 낫게 하는 거구나. 그것뿐 아니라 우스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그건 바로 유카리다. 자기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유카리한테 전하려 했는데. 우스이는 유카리가 이상하게 죽은 것 같아서 그 일을 알아본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건 어떤 일일까. 그건 말할 수 없구나. 마지막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동안 돈만 생각하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한 우스이가 달라졌다. 그건 참 다행이다. 의사는 돈보다 아픈 사람을 생각해야 할 거 아닌가. 의사는 병보다 사람을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의사한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중요한 걸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잘 잊는다. 죽음을 생각하고 두려워하기보다 그날이 오기까지 즐겁게 사는 게 좋겠다. 난 다른 것보다 즐겁게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구나. 내가 작은 일에 마음 많이 안 쓰고 하나가 안 된다고 우울하게 여기기보다 다른 걸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는 게 더 낫게지.
희선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지금 나는 틀림없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존재해. ....., 이런 말을 하면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영혼' 같은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껴.하지만 죽으면 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몸을 떠나 어딘가로 갈까. 아니면 ...... 비눗방울 터지듯 사라질까.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시간만이 내내 흘러간다. 그런 상상을 하면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P,110)
'가면 병동'으로 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치넨 미키토의 새로운 작품,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를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은 눈길을 확 끄는 제목을 참 잘 짓네요. 저번에 나온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고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런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러하니까요. 물론 이 책을 만나게 하는 덴, 예쁜 표지 또한 단단히 한 몫을 했습니다. 작가에 대한 신뢰도, 제목 그리고 표지 때문에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소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는 의사 출신 답게 의사와 환자가 주역으로 나오는 소설입니다.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는 26세의 남자, 우스이 소마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무척이나 눈에 들고 싶은 담당 교수의 강권으로 동료들은 잘 가지 않는, 바다 근처에 있는 '하야마 곶'이란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시작합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다 광경은 아무래도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오키나와의 풍경을 따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하야마 곶'이란 병원은 보통 병원과 조금은 다른 곳입니다.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그렇게 죽음만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그들이 가급적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거기가 바로 '하야마 곶' 병원입니다.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죠. 그래서 '환자가 바라는 건 뭐든 최대한 들어준다'가 병원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한 여성 환자를 담당하게 됩니다. 도저히 병실이라고 보이지 않는, 그대로 호텔 스위트룸이라고 여겨도 좋을 넓고 화려한 곳에서 홀로 지내는 그 환자의 이름은 유가리 타마키.
그녀는 최악의 뇌종양이라 불리는, 글리오블라스토마를 앓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그녀는 병원에서 공부를 할 곳이 없어 곤란해 하고 있는 우스이 소마에게 자기 병실에서 공부하라고 배려해 줍니다. 그 배려로 하루 중 몇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우스이 소마와 유카리 타마키는 차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엄청난 재산의 유일한 상속녀인 유카리 타마키는 소마에게 사실 자기는 '다이아몬드 새장'에 갇혀있다고 말합니다. 조금도 병원을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었죠. 그건 물론 몸 상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죽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먼 친척 하나가 자신의 상속 재산을 노리고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벌써 몇 번이나 사고로 위장하려는 살해 시도를 겪은 그녀는 살기 위해 이 병원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악의에 의해 그녀는 '갇힌 존재'였습니다. 그건 소마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어릴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 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로 인해,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요. 돈 때문에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한 그는 어떻게든 성공한 의사가 되어 돈을 벌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의 근본엔 보란듯이 돈을 벌어 복수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복수죠. 그렇게 소마 또한 갇힌 존재였습니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는 이렇게 갇힌 존재들이 서로로 인해 열린 존재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말랑말랑 로맨스 같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앞서 재산을 노리는 정체 불명의 친척 얘기를 했었죠. 그 존재 때문에 미스터리 장르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반전까지 여러 번 구비되어 있어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지가 거침없이 넘어가는 작품입니다. 한 마디로 꽤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만나보시길...
툭.
책을 놓았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한번 잡으면 끝까지 내쳐 읽는 내게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 더이상 눈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책의 딱 중반부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처음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제목을 본 순간 알고 있었다.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도 확신할수 있었다. 그녀가 죽으리라는 것은. 그래도 이런 식으로 갑자기 훅 하고 다가올 줄은 몰랐다. 절반을 읽어오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더 크게 다가왔다. 더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할만큼.
아팠다.
잘 쌓여진 팬케익과도 같은 이야기. 뇌에 종양이 있는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하는 불치병의 아니 시한부 환자를 가장 베이스로 해서 한장을 깔아 놓고 그 위에 연하의 그러면서 가슴 한 켠에 풀지 못한 숙제를 가진 의사 캐릭터를 한장 더 잘 쌓아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로맨스라는 맛나는 잼을 살짝 발라주고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를 살포시 뿌려줌으로 코팅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반전에 반전이라는 시럽까지 좌악 뿌려주면 그야말로 침이 도는 한상이 완성된다. 절대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능숙한 작가는 재미위에 감동을 쌓았고 거기에 사랑을 추가했고 호스피스라는 사회적인 면도 살짝 곁들였으며 추리와 미스터리를 사이드로 내 놓아서 맛을 더해준다. 환상적이다. 제목만으로는 그저 로맨스를 다루고 있을 가벼운 라이트 노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선입견과 편견에 녹아내린 셈이다.
더이상 병을 고칠수 없는 환자들이 모여있는 고급 호스피스 병동. 이곳에 한달동안 파견근무를 나온 소마. 그는 주어진 일과대로 회진을 하면서 그녀 유카리를 만나게 된다. 병원 중에서도 가장 크고 넓은 일인용 병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방. 의료용 침대만 아니라면 호텔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곳에 입원해서 그림을 그리는 그녀. 소마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소음을 자아내는 대기실 대신 그녀의 방을 제공해 주어서 하루에 몇시간씩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기는데 공부를 끝내고 나면 그녀와 함께 마시는 홍차는 그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슴속에만 품고 있었던 그런 이야기도 그래서 그녀에게는 술술 털어 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회사가 망하고 큰 빚을 지고 다른 여자와 외국으로 가버린 아버지. 가족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다 싶으면서도 아버지가 보낸 편지는 버리지 않았다. 1년 후 시신으로 발견된 아버지. 대체 15년 전에 아버지는 집을 떠나면서 소마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빗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던 아버지의 말.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 소마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소마의 이야기를 들은 유카리는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생각지 못한 반전이 주어져 읽는 재미를 톡톡히 더하는 한권의 책. 이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