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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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퇴행적 진화론과 간소한 삶이 주는 행복

리뷰 총점 10.0 (4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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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연계의 원리 원칙은 '공존'으로 성립된다 평점10점 | y****a | 2022.02.16 리뷰제목
자연계의 원리 원칙은 '공존'으로 성립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수집이 수집하는 자를 소유한다. 소유에 대한 욕망을 떨구지 못하면서 수집을 하게 된다. 집착은 물건을 소유하려고 들고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물건들은 소유욕으로 인해 점점 더 쌓여간다. 뻐꾸기는 콩 심어 새이다. 뻐꾸기가 울었으니 콩을 심으라는 뜻이다. 자연에 의재해 조화로운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리뷰제목

자연계의 원리 원칙은 '공존'으로 성립된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수집이 수집하는 자를 소유한다. 소유에 대한 욕망을 떨구지 못하면서 수집을 하게 된다. 집착은 물건을 소유하려고 들고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물건들은 소유욕으로 인해 점점 더 쌓여간다. 뻐꾸기는 콩 심어 새이다. 뻐꾸기가 울었으니 콩을 심으라는 뜻이다. 자연에 의재해 조화로운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곳에서 느끼는 행복감에 취해 오늘을 살아간다. 10년쯤 전 마당에 세 평짜리 오두막을 지었다. 전기가 없는 생활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굽이쳐 흐른다'라고 말했다. 사람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앞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P112

꿀벌은 작다. 꿀벌은 귀엽다. 꿀벌은 날아다니는 애완동물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꿀벌 집단은 만 마리 단위로 존재한다. 양봉 책을 되풀이해서 읽고, 매일 꿀벌을 관찰하고, 조금씩 배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꿀벌을 키우는 일은 고도의 사회성을 지닌 곤충이 걸어가는 길을 양봉가도 똑같이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극한에 다다른 꿀벌의 사회성은 우리에게 특별한 철학적 가르침을 전해준다.

'장수한다고 알려진 유럽의 산촌에서는 한결같이 양봉이 활발하다.'라는 보고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이상향인 아르카디아에서도, 동양의 도원경에서도 꿀벌을 길렀다. 필시 그럴 것이다! 약과 먹을 것은 근원이 같다. 꿀은 장수 식품이다. 나아가 꿀벌이 잘 자라는 환경은 사람에게도 이상적인 땅이다. 들판과 목화 꽃이 피는 숲 가까이에서 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맛있는 꿀을 먹으면서 사는 사람은 온순하고 말다툼을 싫어한다.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은 양극화하려 한다. 길을 두 갈래로 나뉘었다. 포장된 고속도로와 긴 풀이 자라는 시골길. 대부분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하지만 시프트다운 shiftdown 해서 좁을 길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고속도로를 아무리 돌진해도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대가 아무리 첨단화되어도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그 지점의 자연을 분자로 놓으면 분모로서의 사람 수가 적을수록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과실을 크고 달다. 군중이 시선이 닿지 않는 토지에서 살자. 산과 숲과 강과 바다, 바람과 구름에서 신선한 에너지를 얻다. 그 에너지가 인생의 주술로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다.

 

 

몇 그램의 채소 씨는 한 계절에 수십, 수백 킬로그램이 작물로 자라난다. 흙과 광합성이 이룩하는 기적이다. 우리는 자기 발밑에 있는 우주를 먼저 탐사해야 한다. 우리 집의 채마밭은 우리의 퇴행적 진화다. 마당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건강상 그곳에 있다. 30년 동안 화학비료 없이, 농약 없이 기르는 채소를 계속 먹는 바탕에는 '흙에 대한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항이자 자기 발밑에 숨어 있는 우주에 대한 찬가이다.

채소는 값이 싸다. 그러나 자기 채마밭에서 기른 채소는 맛있다. ', 맛있어!'하고 느끼며 먹는 순간 그 음식은 자양분이 된다. 채마밭은 물질적인 동시에 철학적이다. 시대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점치는 곳이다. 또 채마밭은 특히 경제적이기도 하다. 우리 집 마당은 최고급 채소의 자급자족 슈퍼마켓이기 때문이다. 샌들을 신고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마당이 가르쳐준다.

 

 

P186~187

자연계의 원리 원칙은 '공존'으로 성립한다. 이 추운 산에서 30년 이상 자연생활을 해보면 절실하게 그렇게 느낀다. "자연의 구성요소, 자연의 경제학에 등을 돌리는 사람의 경제 활동은 어리석다." 자본주의 종언이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면 포스트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일까?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이런 말은 임 화석이나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에 이데올로기를 맞부딪혀본들 결과는 아무짝에도 쓸데없을 뿐이다. 나의 비전은 '퇴행적 진화론'이다. 퇴화를 퇴행적 진화라고 파악하는 상상력이 지금 의문시되고 있다. 사람은 '진화'에만 마음을 빼앗겨왔다. 그러나 진화의 상대어인 '퇴화'에는 둔감했다. 퇴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는 월든에 이렇게 썼다.

"간소하게 살라. 오직 간소하게. 필요하다면 하루 세 끼를 한 끼로 줄여라. 진수성찬 대신 다섯 접시로 줄여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적게 줄여라."

퇴화란 단순함 Simplicity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욱 단순하게, 더욱 변경으로, 더욱 자급자족으로, 더욱 고립무원으로, 더 적은 수입으로. 그러나 더욱 풍요롭게.

지금 우리가 진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행적 퇴화다. 퇴화는 싫을 것이다. 어쩐지 볼품없고 인류의 자존심을 깎아내린다. 따라서 포스트 자본주의의 비전은 퇴행적 진화다. 자연 주의다. 퇴행적으로 진화하자. 철학적이고 멋있지 않는가. 우리는 새가 되자.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놓으려고 하지 마라. 낭만적이 되어라. 시대나 사람이 어떠하든 낭만적인 것은 자기답게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된다.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다부치 요시오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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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평점10점 | y****a | 2021.05.11 리뷰제목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저자 다부치 요시오/출판 에이지21/발매 2018.12.13.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 감염당해 일본에서 표고가 제일 높은 나가노 현 가와카미 마을의 숲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의 전원생활을 실천한 지 36년. 이 자연주의 작가는 전원생활의 달인이 되어 삶의 고독과 즐거움을 전하며, 미래 삶의 제안으로 '퇴행적 진화론'을 말한다.
리뷰제목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저자 다부치 요시오/출판 에이지21/발매 2018.12.13.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에 감염당해 일본에서 표고가 제일 높은 나가노 현 가와카미 마을의 숲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의 전원생활을 실천한 지 36. 이 자연주의 작가는 전원생활의 달인이 되어 삶의 고독과 즐거움을 전하며, 미래 삶의 제안으로 '퇴행적 진화론'을 말한다.

 

 

P129

 

장작으로 덥힌 목욕물은 온천물과 비슷하다.

 

물이 부드럽다. 몸속까지 뜨끈하게 덥혀준다. 목욕 후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장작 가마는 잉걸불의 화력이 지속한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뜨거운 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수돗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면서 물을 다시 쓰지 않고 흘려보내는 식으로 즐길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따로 온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충전식 14.4 볼트, 43.2 와트, 리튬이온 전지의 손전등을 갖고 있다. 이 하이테크 랜턴은 현장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용이다. 밤에 마당으로 나갈 때는 콜맨의 가솔린 랜턴을 밝힌다. 사람들은 '편리한 손전등을 갖고 가면 좋을 텐데 참!"하고 혀를 찰지도 로믄다. 그러난 나는 콜맨의 등불이 좋다. 왜냐하면 전기로 켜는 등불보다 가솔린 등불이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사람이 되어라. 인생에서 낭만을 빼면 도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이냐. 전깃불과 불을 피운 등불은 전혀 다르다. 불 피운 등불을 켜는 것과 장작에 불을 지펴 물을 데우는 것. 여기에 공통점은 '불 피우기'라는 의식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편리함이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이어야 할 준비 시간을 생략해 버린다. 빨리, 더 빨리!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살아간다. 그렇게 서둘러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 책에서 지은이는 산속 생활의 고독과 즐거움을 전하며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로 '퇴행적 진화론'을 논한다. 사람들은 진화에만 마음이 뺏겨 퇴화에는 둔감했다는 것이다. 그는 퇴화를 '단순화'로 보았다. 그 옛날 공룡이 새가 되었듯이. 더욱 고립무원으로, 더욱 변경으로, 더욱 단순하게, 더욱 자급자족으로, 그래서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조언했다.

 

농촌의 한계집락 문제를 꿰뚫고 1평에 10만 원 이하의 땅이 있다면 얼른 구입해서 한 살이라도 늦기 전에 집을 짓고 장작 스토브를 설치하고 기름 램프를 켜는 삶을 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다부치 요시오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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