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상훈 작가의 '교과서가 쉬워지는 통 한국사 세계사' 1권을 읽고 생애 첫 리뷰를 쓴 적이 있다. 2권과 3권을 읽고 나서 다시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생각없이 즉석에서 만든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쓰지 못했다. 그 책을 읽고 난 뒤에 김상훈 작가의 팬이 된 탓인지 그가 쓴 새 책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알고 나면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 잡학 사전 B급 세계사'. 전에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제목이 길다. 제목이 긴데도 입에 꼭 붙어서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직업 탓인지 나는 항상 역사의 효용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과연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닐까? 꼭 역사를 공부해야 하나? 늘 이런 고민을 안고 사는 나에게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라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역사가 소통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줄곧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가르치려고만 했지, 소통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역사는 절대로 연표의 나열이 아니고, 지배자의 궤적을 따라가는 학문이 아닌데도 나는 지금껏 너무 큰 것만 가르쳐 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학교에서는 진도를 따라가느라 역사의 세세한,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지나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게 역사 선생의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는 제대로 역사를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하면서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그런데 띠지 안쪽에 숨겨져 있는 카피, "무릎을 치면서 읽는 역사책!" 마치 남몰래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꾸미다가 들킨 것마냥 유쾌하다. 그것을 계기로 책의 표지 곳곳에 박혀 있는 글들에도 눈길이 갔다. 매력적인 책을 더 매력적으로 잘 꾸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처럼 즐겁게 읽은 책에 흠이 될까 봐, 혹시 이 리뷰를 읽고 책을 구매하려던 독자께서 고민할까 봐 여기에는 적지 않으련다.
이 책은 모두 55가지의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이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낯설다.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모른다고 하기에는 뭔가 억울하고 안다고 하기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이라는 문구가 참으로 기막히다고 할 만큼 딱 그 위치에 있는 상식들을 들려준다. 단편적인 상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위로, 아래로 훑어 주면서 상식과 지식의 진폭을 넓혀준다. 사소해 보이는 것,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이 이 작가의 장기다. 그래서 쉽게 읽히면서도 남는 게 많다. 시간 많이 안 들이고 이 정도 상식을 쌓았으니, 꽤 남는 장사다.
나로서는 또 하나 다행인 것이 수업 시간에 애들한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요즘 애들 책 잘 안 읽으니까, 이 책에서 발견한 '역사'들을 들려주어도 아주 새로워하겠지. 재미있어 하겠지. 왠지 2편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고서 글을 마칠까 한다.
회사에서는 격 달로 우수 부서를 선정해 상여금을 준다. 이번 상여금은 우리가 받았다. 모두가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였다. 높으신 분들의 관심사와 매우 떨어진 변방부서다 보니, 그 누구도 예측을 못했다. 사실 공적조서를 쓸 때만 해도, 칸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 칸만 채우면 되는 공적 조서를 3번 쓴 것 같지만. 꼬박 하루를 날렸다.
받은 상여금으로 수박을 사서 우리 부에 속한 과에 각각 한 통씩 돌리고, 우리도 먹었다. 요즘 수박 비싸고 맛없다더니. 25000원 수박이 뭐 이렇게 암울해. 피눈물 흘리며 먹었다.
어찌 되었든 근무 중 소중한 휴식 시간. 무슨 이야기 했을까? 저자의 말마따나 즐거운 역사 상식 이야기? 그럴 리가 없잖아. 회사 사람 이야기만 즐겁게 했다. 매일 보는 사람들인데도 화젯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신기하다.
사람들의 제일 큰 관심사는 타인이다. 절대 역사가 아니다. 고로 인기인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일단 진정해라. 이 책은 소소한 역사 상식을 알고 싶을 때 유용하지, 잡담 시간에 인기인이 되기 위해 읽는 책 아니다.
B급 세계사. 굵직굵직한 큰 줄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소소한,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사에 대해 아는 척 하고 싶어. 하지만 머리 아픈 건 질색이야. 이런 사람을 위한 책.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책 내용은 가볍다. 책에서 다루는 소재도 가볍고. 일본에서 돈까스가 유행하게 된 이유. 샌드위치 백작의 비밀 등. 이런 것도 있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 뭐, 모든 책이 프랑스 혁명이라든지 이런 머리 아픈 주제만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 않나.
각 화제가 끝나면 미니툰으로 한번 정리를 하는데, 이 미니툰도 역시 가볍다. 피식 웃고 넘어가면 된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으면 충분한 책.
다만. 정치색이 있다. 진하진 않아도 책 곳곳에 반복해서 나온다. 반대 성향의 사람에게는 거북할 수 있다. 이 책을 사기 전에 한 번 책 내용을 훑은 뒤, 이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자신이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성향이 다르면 내키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 터라.
사실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색 강한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정치색은 정치이야기 할 때만 드러내면 좋겠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가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나라에서는 특히. 싸움 나기 딱 좋은 주제다.
가벼운 마음으로 과거에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책. 소소한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이 일과 관련된 다른 일이 궁금해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찾아보다 보면 언젠가 세계사가 재미있어질지도, 있으려나.
진지한 역사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지식욕을 가볍게 채우고 싶은 사람. 역사는 알고 싶지만 무거운 이야기는 싫은 사람. 가볍게 책을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