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공유하기

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리뷰 총점 9.2 (19건)
분야
사회 정치 > 사회학이해
파일정보
EPUB(DRM) 28.07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6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복종에 반대한다』 by 아르노 그륀 평점8점 | d******7 | 2018.04.30 리뷰제목
『복종에 반대한다』 .. 제목부터 강력한 맹세와 포스가 느껴지는 심리에세이다. 국가와 종교, 이념 등이 형성한 복종이라는 얍삽한 시스템이 우리 삶을 교묘히 지배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복종이란 자기보다 힘이 강한 타인의 의지에 항상 굴복하는 것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과거, 우리의 학창시절은 교사의 폭력을 당연시
리뷰제목

『복종에 반대한다』 .. 제목부터 강력한 맹세와 포스가 느껴지는 심리에세이다. 국가와 종교, 이념 등이 형성한 복종이라는 얍삽한 시스템이 우리 삶을 교묘히 지배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복종이란 자기보다 힘이 강한 타인의 의지에 항상 굴복하는 것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를 동일시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과거, 우리의 학창시절은 교사의 폭력을 당연시했고, 단체기합이나 체벌은 공개되어도 문제시되지 않았으며 은폐할 이유도 없던 시대였다. 소위 맞으면 맞을 만한 짓을 했구나, 집에 있는 부모나 매를 맞는 나조차도 그런 죄책감을 느꼈을 정도였으니, 알고 보면 나 자신을 폭력과 동일시한 비극적인 세대였다. 돌이켜 보면, 사이코 교사들의 이유 없는 분풀이 대상이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주류였던 시대였음에도 말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폭력이 일상화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유신 독재가 막을 내리자마자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쿠데타가 일어났고, 신군부독재가 국민들을 발 아래 밟고 올라섰다.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렸고, 국민들의 권리가 끝간 데 없이 추락했으며, 급기야 민중봉기로 촛불을 들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초유의 사태를 딛고서,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렇듯, 복종이 초래한 정치적 결과는 병든 사회를 담아낼 수 밖에 없었고, 우리 문화는 그런 병적 측면을 촉진하는 순환 체계로 돌아가는 것을 필연으로 하는 구조였다.

내 안에 있는 복종, 내가 내 아이에게 저지른 복종에 대해서도 고찰해 본다. 아이는 유아기 때부터 자신을 억압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미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억압한 부모를 자신과 동일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어른이라 하더라도, 감금이나 고문에 처한 상황이라면 억압받은 아이의 상태와 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릴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귄위에 억눌려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하고 그의 폭력을 사랑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가해자에게 굴복하게 된다.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는 시대에 극우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치자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아르노 그륀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나치 독재하에 망명생활을 해왔던 때문인지 그의 삶은 인간성을 억압하는 독재와 폭력을 평생에 걸쳐 연구해온 지식인이었다. 저자의 유작이기도 한 이 책은, 다소 나약한 결론같지만 개인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의 순수한 혁명으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복종을 촉진하는 우리 문화의 구조부터 변화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이다. 복종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함께 관여하고 느끼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며, 다수의 열린 마음과 용기, 관심만이 절대강자의 복종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라고 말이다.

1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5 댓글 10
종이책 [2017 결산]개인의 정체성과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복종에 반대한다' 평점9점 | a*******5 | 2018.01.10 리뷰제목
작년에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라 보에시는 민중이 독재자나 폭군에게 복종하는 이유로 개인의 습관과 관습, 그리고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용기의 부족을 들었다. 프랑스 혁명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자발적 복종>은 그 후 정치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는 <
리뷰제목

  작년에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라 보에시는 민중이 독재자나 폭군에게 복종하는 이유로 개인의 습관과 관습, 그리고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용기의 부족을 들었다. 프랑스 혁명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자발적 복종>은 그 후 정치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는 <자발적 복종> 이후 학계에서 연구돼 온 복종의 근원을 파고든 결과물이라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다소 충격적이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바라는 "표준화된 인물이 합리적 문명의 결과물로, 사회가 원하는 순종 혹은 복종에 대한 관념적 사고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 결과 문화의 틀 안에서 개인은 단순히 하나의 역할이나 지위로 격하될 위험에 늘 처해있다."는 거다. 흔히 말하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나 타성에 젖은 관계, 맹목적인 충성심이 빚은 비극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니체가 "이상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세계야말로 거짓이라고 외친 이유다.

 

 두 번째는, 우리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가 '복종'에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려는 이들에게 순응한다." 한발 더 나아가 "두려움은 이 억압자와 결속해 그들의 위력과 멸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버린다."고 한다. 극우주의 성향의 통치자들은 사람들에게 복종을 기대하고 복종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지금까지 인류 사회가 민주주의로 확고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걸림돌이 바로 복종이다. 

 

 세 번째는,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굴복하는 복종의 문제가 유아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아이는 부모의 권위가 지닌 위협적인 냉혹함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나약하고 무가치하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부모로부터 자기 고유의 감정, 자신의 본질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배우고, '죄책감'을 가지며 그 결과 '자존감'을 상실한 인격체로 자라난다. 자존감 상실은 부모의 명령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시키는 (복종의) 원동력이 된다."고 한다.  

 

 저자는 복종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감 능력은 맹목적 복종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힘을 줄 뿐만 아니라, 깊이 묻혀있는 자신의 감정이입 능력을 끌어내 준다. 자각이 생겨나는 과정은 공감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은 유토피아의 환상이 아니라 권력자에 대한 복종이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공감으로 바뀔 때 눈앞에 나타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아울러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는 부모로서의 압력과 권위주의가 아니라 이해와 사랑으로 보살펴야한다는 걸 마음 아프게 깨달았다. 이 책을 부모와 교육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댓글 8
종이책 타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사랑이 복종을 물리칠 수 있다 평점8점 | r*********s | 2018.01.09 리뷰제목
“복종의 원인은 소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타자로 만드는 폭력이 소외를 불러오고 소외는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폭력의 정도가 그 사람이 어느 정도로 권위에 예속되는지를 결정한다.” (37쪽)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를 다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
리뷰제목

 “복종의 원인은 소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타자로 만드는 폭력이 소외를 불러오고 소외는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폭력의 정도가 그 사람이 어느 정도로 권위에 예속되는지를 결정한다.” (37쪽)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르노 그륀의 『복종에 반대한다』를 다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다. 어쩌면 자신이 처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내 의지와 생각은 상관없이 상대에게 무조건 따르는 행동인 복종에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종교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복종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 보더라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나를 사라지고 상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에세이에서 우리가 얼마나 복종에 익숙해져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가장 쉽고 친숙한 사례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아이들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아에게 부모는 절대적 존재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부모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이를 자신의 뜻대로 이끌려 한다. 긍정적인 측면이 아닌 나쁜 면을 강조하자면 아이는 부모에게 복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도 부모의 뜻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우등생이 될 수는 있지만 성공지향만 목표로 두고 있기에 자율성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종하도록 교육을 받을 때 희생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나를 내 안의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은 복종으로 인해 왜곡되고, 맹목적 복종은 우리를 둘러싼 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즉, 복종은 억압자에게 순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은폐시키기도 한다.” (88쪽)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히틀러가 독재하던 시절 수용소를 살펴볼 수 있다.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은 처음엔 복종에 저항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잘못해서 그곳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종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거기다 히틀러 시대의 교육 방식은 교감이 전혀 없는 강압과 폭력에 의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인용한 나치 무장 친위대 사단장을 아버지로 둔 아들의 이야기는 섬뜩할 정도다. 모든 면에 있어 엄격했고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한 아버지에 대해 아들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권력이나 힘에 복종하는 건 소외되기 싫고 그 힘의 도움을 받고자 해서다. 그러다 그런 자신을 증오하게 되면 타자를 향한 분노가 커질 수 있고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건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그렇다면 복종에 반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공감이라고 말하며 이탈리아의 난민정책에 반대하고 불법 이주자들을 받아준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의 ‘리아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이다. 복종에 반대했지만 마을의 질서는 붕괴되지도 않았고 정체성도 상실되지 않은 채 회생했다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사랑이 복종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공감 능력은 맹목적 복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힘을 줄 뿐만 아니라, 깊이 묻혀 있는 자신의 감정이입 능력을 끌어내준다. 자각이 생겨나는 과정은 공감에 토대를 두고 있다. 반면 인지적 사고는 태어난 이후부터 바로 발달하기 시작하며, 복종이 뿌리를 내리는 데 주요한 수단이다.” (121~122쪽) 

 130쪽의 짧은 책이지만 쉽고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 이미 부모이거나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이 꼭 읽었으면 좋을 책이다. 자율성과 주체성의 중요성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감 능력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을 안겨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2
종이책 복종이라는 무의식과 마주하는 공감의 힘- 아르노 그륀, 『복종에 반대한다』 평점10점 | o*****s | 2018.01.08 리뷰제목
복종이라는 무의식과 마주하는 공감의 힘- 아르노 그륀, 『복종에 반대한다』       아르노 그륀은 『복종에 반대한다』(더숲, 2018)에서 복종을 권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낀다.”(10쪽)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복종의 문화에 빠져든다. 복종은 무엇보다 권위를 향한 숭배에서 뻗어 나온다. 권위에 대한 두려
리뷰제목

복종이라는 무의식과 마주하는 공감의 힘

- 아르노 그륀, 『복종에 반대한다』

 

 

 

아르노 그륀은 『복종에 반대한다』(더숲, 2018)에서 복종을 권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낀다.”(10)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복종의 문화에 빠져든다. 복종은 무엇보다 권위를 향한 숭배에서 뻗어 나온다.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 복종하는 마음을 불러낸다. 우리는 왜 권위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권위는 폭력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린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권위에 복종하는 경우가 많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복종은 다른 사람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13)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굴복하는 사람은 제 의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제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들은 일부러 그것을 은폐한다. 인내한다. 권위를 지닌 사람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복종하는 사람들일수록 인내심이 강한 이유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내심을 그들은 권위가 없는 사람들을 향한 폭력으로 해소한다는 데 있다.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상당히 순종적으로 보인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이 사람들은 정작 자기보다 약한사람들을 대할 때 의외로 가혹한 본성을 드러낸다. 윗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이 아랫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상황을 우리는 적지 않게 본다. 윗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 이들은 한결같이 긍정적인 의사를 표현한다. 윗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아랫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랫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기 의견을 내보이면 이들은 참지 못한다. 아랫사람이 자기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아이는 복종을 요구하는 자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혼란을 경험하며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복종은 자기보다 힘이 더 강한 타인의 의지에 항상 굴복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제압당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로 달아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이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아이에게 엄습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서 손을 떼면 아이는 살아갈 수 없다. 다시 말해 아이가 지각하고 반응한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받아들임으로써 부모와의 결속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의 자발적인 인지력과 대처능력 속에 있을 정신적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21~2)

 

아이는 부모의 전폭적인 돌봄을 받아야 한다. 아이에게 부모는 권위 그 자체라는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권위적으로 대하면 아이는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성장이란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아니던가.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는 부모의 눈 밖에 나는 상황을 엄청 두려워한다. 우리는 이미 유아기 때부터 불안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해왔다.”(29)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비정상적인 행동은 아이가 자신을 권위자=공격자와 동일화하는 데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부모가 정한 규칙을 어긴 아이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자존감이 떨어진 아이는 내면의 분노를 참고 권위에 순종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성장의 길을 걷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자기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성인이 된 사람들일수록 타인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파괴하는 성향을 내보인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나치의 비밀경찰로 프랑스 저항운동가 장 물랭을 죽음으로 몰고 간 클라우스 바비를 예시로 들고 있다. 부모에게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자이자 적으로 만들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투영시켰다.”(51) 클라우스 바비는 자신이 억압한 무의식(부모에 대한 저항)을 장 물랭에게서 발견하고 그것을 적대시했다는 해석이다. 장 물랭을 고문하는 일이 자기 내면에 자리한 무의식=저항을 다스리는 처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마음(실제로는 무의식)에 새겨진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를 부정하면 살 수 없다는 걸 생래적으로 깨닫는다. 복종해야 살 수 있다는 두려움은 부모의 권위를 사랑으로 해석하는 단초로 작용한다. 두려운 존재가 어떻게 사랑하는 존재로 뒤바뀌는 것일까? 거듭 말하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복종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권력이라는 말로 바꿔도 된다. 권력의 편이 되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일 리는 없다. 그는 오로지 권력이 원하는 일을 하고, 권력이 원하는 말을 한다.

 

지은이는 모든 극우주의 움직임 뒤에는 열등감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74)고 주장한다. 열등감은 권위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무엇보다 권력을 맹신한다. 권력이 있는 이들과 같은 편이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이라고 오인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을 미화함으로써 이들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복종을 미화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이를테면 탄핵으로 쫓겨난 전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전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한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증거들은 이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전임 대통령이 지니고 있던 권력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을 구속하는 건 바로 자신들을 구속하는 것이다. 자발적인 복종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되는 셈이다.

 

복종을 권하는 사회는 병든 사람과 병들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병들지 않은 사람은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 소유하고 정복하는 통치자들이다.”(95) 지은이는 이들을 순응자로 명명한다. 이들이 기준이 되어 병든 사람이 나온다. 이들이 아픈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기 영혼이 소외되지 않도록 마음속에서 무의식적인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94) 간단히 말하면 병든 사람은 복종을 권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복종을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경쟁에서 지면 사회적으로 도태된다. 복종하는 사람일수록 왜 자꾸만 권위=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에 매진하겠는가? 복종을 미화해야 경쟁에서 이긴 자신 또한 미화된다. 물론 이러한 심리는 저 깊은 무의식 속에 은폐되어 있다.

 

지은이는 겉으로는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과 권위를 동일시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내세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을 애써 외면한다는 얘기다. 이리 보면 오로지 이성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복종과 싸우기란 매우 어렵다.”(118)는 지은이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유아기에 새겨진 복종의 무의식과 대면하지 않는 한 우리는 복종이 불러오는 내면의 소외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이 복종의 무의식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지은이는 이성과는 다른 감정, 곧 공감 능력을 복종에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함께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우리 주변 세계에 공감적으로 관여하는 능력이다.”(121)

 

권위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권위를 기준으로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판단한다. 당연히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원래부터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밀그램의 실험을 참고하여 지은이는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다만 공감 능력을 억압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공감 능력은 열린 마음과 이어져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타인들을 향해 나아가는 공생에서 지은이는 복종에 반대하는 길을 엿본다. 돌려 말하면 공감 능력은 복종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애써 숨겨놓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노 그륀은 어찌 보면 이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복종을 넘어서는 자유의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라고나 할까? 지은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복종의 무의식을 깨뜨림으로써 자유라는 또 다른 무의식을 해방하려는 기획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2017 결산] 복종에 반대한다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s***h | 2018.01.04 리뷰제목
복종에 반대한다   이 책은    저자 아르노 그린은 평생을 인간성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와 폭력에 대해 연구한 사람으로, 독재의 잔재와 마주했던 경험을 했던 독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유대인으로 베르린에서 태어났으나 나치의 치하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고, 심리학을 공부, 심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런 그가 사람이 태어나 겪게되는 복종의 강요 상황을 살펴보면서
리뷰제목

복종에 반대한다

 

이 책은 

 

저자 아르노 그린은 평생을 인간성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와 폭력에 대해 연구한 사람으로, 독재의 잔재와 마주했던 경험을 했던 독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유대인으로 베르린에서 태어났으나 나치의 치하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고, 심리학을 공부, 심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런 그가 사람이 태어나 겪게되는 복종의 강요 상황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한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를 연구하여,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하여 판형이 적고, 쪽수 또한 적다. 해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울림은 결코 적지 않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무언가에 복종하며 살아온 인생 전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를 갖게 해준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 : 복종을 권하는 사회

우리는 끊임없이 복종하고 있다.

복종은 어떻게 우리 안에 자리 잡는가

한 개인이 마주하는 소외와 폭력의 역사

타인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사람들

왜곡된 사랑, 미화하는 권위

복종에서 벗어나는 길

복종의 권력구조와 국가론

나를 억압하는 복종과 마주하기

복종에 반대한다.

 

먼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사람은 결코 스스로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없으며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복종하며 살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중에서 타인에의 복종관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복종이란 타성에 젖어 있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유아기 시기에부터 인간은 복종을 시작한다고 본다. 그 시기에는 아직 언어와 사고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복종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처럼 복종은 우리 의식 속에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복종을 배우고, 복종하며 살아온 결과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개인적으로는 복종하는 대상의 권위에 휘둘리면서 그 앞에서 무력화되는 모습으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분석도 새겨 볼 만하다.

생애 초기의 몇 달 동안 감정적 인지와 욕구를 인정받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자기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버지나 어머니의 기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45)

 

복종의 원인은 소외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리 자신을 타자로 만드는 폭력이 소외를 불러오고 소외는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37)

 

결국 그렇게 복종을 하게 되고, 그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체성이 혼란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그 복종은 다시 정체성의 상실로, 또한 그것은 복종의 심화로 악순환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권위에 스스로 복종하여, 그 권위에 매달려 살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이런 분석이 가능해진다.

역사는 지배자와 정복자, 막강한 리더에 초점을 맞춰서 기술된다. 그리고 사회학적, 역사적 측면에서는 대개 이들의 권력이 내면의 위대함, 앞을 내다보는 현명함, 강한 통치권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분석에 회의적이다. 그렇게 역사의 리더라 불리는 사람들은 순응자들에게 복종심을 심고 확대 재생산함으로서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이런 발언은 새겨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독재자를 참고 견디는 만큼, 독재자는 그들에게 동일한 정도의 횡포를 저지른다. 따라서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더라도, 단지 견뎌내기를 멈추기만 해도, 독재자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105)

 

다시, 이 책은 

 

복종이란 다른 사람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힘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13)

 

저자는 그러한 복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공감능력을 강조한다.

공감능력이란 타인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함께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우리 주변 세계에 공감적으로 관여하는 능력이다.(121) 따라서 공감능력은 단지 공감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여까지 하는 실제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세계는 현혹된 복종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감으로 바뀔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복종이라는 문제점을 직시하게 하고, 그것의 문제점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까지고 살펴보게 만드는 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한줄평 (3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10.0점 10.0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