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사춘기를 구렁이 담 넘듯이 지나갔고, 작은 아이는 여전히 치열하게 전쟁 중이다. 나와는 늘 전쟁을 치르지만, 아이들은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어릴 때도 왕따 비슷한 것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대 놓고 따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적당히 말을 걸고, 웃어주고, 무리에도 끼워주곤 했었는데 요즈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기묘하게 친구를 따돌리는 행동은 때론 악질적이기도 하니까. 그러지 말라고 강하게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런 일이 사라졌을까? 우린 관심 없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그 상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당히 무시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관자가 되곤 한다.
뭐든 적당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중학생 나 아다치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밤만 되면 괴물로 변한다. 괴물로 변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인 아다치는 어느 날 밤의 학교에서 야노를 만난다. 야노는 독특한 말투에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만 끈질기게 말을 건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수시로 넘어지고, 서툴기에 나쁜 쪽으로 눈에 띄는 존재다. 이런 야노를 반 아이들은 따돌리고 괴롭힌다. 마치 벌레 인양 기피하고 무시하고 다양한 형태로 괴롭힌다. 누군가 실수로 야노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그 아이도 자연스럽게 야노 된다. 그런 야노와 얽히지 않으려 했던 아다치. 그러나 아다치는 매일 밤 학교에서 야노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 대해 알아간다. 야노에 대해 알아갈수록 아다치는 친구들이 야노에게 하는 행동이 조금씩 거슬리고 마음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감정들이 싸움을 시작하는데...
만약 내가 아다치라면, 야노를 괴롭히는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린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그 상황을 동의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니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난 자신 있게 야노의 편에 서지 못할 것이다. 뭔가 공기가 달라지는 기운을 내 스스로 짊어지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사람에게는 이렇게 양면의 감정이 있는 것 같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 한 켠과, 나는 아니니까 그냥 놔두자는 마음. ‘안녕’이라는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말이었던가?
마음 아프면서도 슬프면서도, 내가 그라면 혹은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어떤 감정일지 만감이 교차한다. 우린 크고 작은 나만의 괴물들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 괴물을 커다랗게 키우며 살고, 누군가는 괴물의 존재가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가능하면 괴물을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감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 적어도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상처 입게 하는 일은 줄어들겠지?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오는 거겠지만, 이렇게 악질적인, 친구를 왕따 시키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모든 행동들이 부메랑 되어 나에게 화살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사춘기 아이들과 읽으면 좋은 책이다.
요즘도 가끔 뉴스에서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옛날 내가 학교를 다닐 때가 떠오른다.
꼭 어떤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조금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것이 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현상, 조금은 변형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소개에서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 있어서 더 관심이 가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밤이면 나는 괴물이 된다.'
조금은 무서운 한 문장으로 시작된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기도 하고 독특했다.
여기 나오는 앗차라는 남학생은 평범해 보이지만 밤이 되면 마치 괴물처럼 모습이 변하는 능력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시작된 이 현상이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마치 액체괴물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며 크기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루는 숙제를 놓고와서 학교에 괴물의 모습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같은 반 여학생인 야노를 만나게 된다.
야노는 조금 묘한 말투를 가지고 있는데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야노를 무시하고 이상한 아이로 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괴물의 모습을 처음으로 들킨 사람이 야노인데 희한하게도 크게 겁을 먹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앗차라는걸 알고 있었다는 듯 대하는 것이었다.
마치 서로에게 비밀을 하나씩 들킨 것처럼 둘은 밤마다 낮에서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낮과 밤.
같은 인물이지만 서로 다른 모습과 환경 때문인지 그들의 대화는 뭔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연장선이라 보기에도 어려운 다른 모습들이지만 그런 모습들 또한 그들의 일부 모습이기도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혼란을 느끼는 내용을 보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참 어렵고 묘하다.
마치 생물처럼 매일 변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에 따라 누구냐에 따라 다 달라지기도 하고 한 명앞에서의 모습, 여러명에서의 모습들은 또 다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이런 혼란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소설 속 인물들처럼 10대 시절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혼란과 실패, 상처들을 알기에 어른이 되어서는 적당히라는 말로 거리를 두기도 하고 모른척 아닌척 덮어버리고 넘기는 일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속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밤만 되면 괴물로 변하는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이 변하는 것을 기겁해하며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미나 한다. 괴물이 되어 버린 상태로 여기저기 다니던 아이는 학교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다. 같은 반 친구를. 늘 따돌림 당하고 무시 당하는 그 아이를 말이다. 그 아이는 밤의 쉬는 시간이라면서 학교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린다. 괴물로 변해버린 이 아이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아이를 알아본다. 괴물로 변해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눈이 여러개 다리도 여러개인 이 괴물을 말이다. 그리고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밤의 시간에는 낮의 이야기는 금물,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구박을 당하는 것도 이 시간에는 모두 잊을수 있다. 그 아이만의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솔직히 이 아이가 왜 그리 당해야 하는지 자세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그 아이의 물건을 주워주는 것도 이 규칙에 위배된다. 아무 생각없이 그 아이가 떨어뜨린 지우개를 주워주었던 친구는 또 다시 다른 따돌림의 근원이 된다. 그러니 밤에는 괴물로 친하게 지냈지만 낮에는 다른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그 아이를 괴롭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발 밑에 떨어진 봉투도 밟은 것이다. 그 아이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기에, 그것을 손으로 주워주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밟은 것이다. 나중에 그것이 양호선생님에게 줄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미안했던지 밤이 되어 괴물이 된 아이는 다시 사과를 하지만 그것까지고 속좁게 받아들일 그런 아이는 아니다.
대체 왜 괴물로 변했는지 언제쯤 변하지 않게 될 것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아이가 말하면 괴물은 행하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둘다 놀란다. 그렇게 편하게 재미나게 지낸다. 낮과 밤, 사뭇 다른 공기만큼이나 그들의 모습도 다르고 그들의 행동도 다르다. 낮에 이 아이를 괴롭히는 무리들은 밤의 이 아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한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언어적인 모욕을 가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함에도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이 인간의 본선이려나.
얼마나 묵혀두었는지 개정판이 나온 것도 몰랐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로 대히트친 스미노 요루 작가의 신작 소설 <밤의 괴물>. 왕따를 주제로 한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면 식상한 느낌부터 올 수 있지만, 역시 스미노 요루! 데쓰노트가 생각날 만큼 현실과 판타지를 흥미진진하게 주물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