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성공한 영화 제작자로 화려한 삶을 살던 29세 비비안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힐즈에서 하이킹을 하던 중 15세 소년 조니와 마주친다
"밖에서 하는 섹스 좋아해?"
조니는 비비안을 거칠게 성폭행한다 비비안은 매일 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하고 자살을 생각한다
도주하려던 조니가 경찰에 붙잡히고 비비안은 법정에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생생히 진술하며 조니에게 맞선다
하지만 조니는 비비안이 원했다며 상상할 수 있는 체위로 해줬다는 진술을 하고 비비안은 살기 위해서 조니가 원하는대로 해줄 수 밖에 없었다며 맞선다
비비안은 억울하다 이 외로움도 끝없는 두려움도 단 한번이라도 고통과 고립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느끼고 싶다
이 책은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그녀의 용감한 고백과 치유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내 주위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비비안의 고통이 느껴진다 억울하고 분하고 본인은 살기 위해서 가해자가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조니는 거짓말로 그녀가 원했기 때문에 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비비안은 조니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 읽으면서 내 자신이 분노가 생긴다 비비안의 잘못이 아니다 조니의 잘못으로 인해 비비안이 상처받고 고통받았다
성폭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며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여성의 삶을 바꿔놓았다. 소설에서는 늦은 시각 혼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폭력적인 태도와 생각이 드러난다. 마치 여성은 밤늦게 길거리를 돌아다녀서는 안 되고 술에 취해서도 안 되는 존재처럼 보인다. 이런 부분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은 성폭력의 타깃이 된다’는 남성의 논리를 떠올리게 하며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다크 챕터>는 성폭행 피해 생존자인 작가 위니 리의 자전적 소설로, 아시안계 미국여성인 그가 아일랜드에서 겪은 성폭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북아일랜드의 중요한 정부 행사에 참석차 방문한 비비안은 홀로 떠난 바이킹을 떠난다. 그는 18살 때부터 여행 가이드북 아르바이트를 할만큼 여행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성폭행을 당한다. 단 3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그는 <앞으로는 예전과 똑같은 내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 왜 그런 외진 곳에 혼자 갔니
- 왜 필사적으로 도망치지 않았니
- 왜 더 크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니
이러한 질문들은 비슷한 강간 사건 보도에 집안 어른이 볼멘소리로 던졌을 한마디, 늦은 시각 돌아다닐 때 들었던 잔소리들에서 비롯되어 여성의 뇌속에 깊숙이 박힌 것들이다.
그는 단지 성폭행 피해 경험만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앞서 번잡한 기호(+)를 통해 묘사했듯,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잡다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타자이다. 여성인데, 게다가 아시안인데, 게다가 하버드까지 나온 사람인 것이다. 비비안은 이와 같은 단어들을 재구성해 언론이 그를 재현하는 방식과, “정의를 구하는 모든 발걸음마다 그녀는 한 겹 또 한 겹 벗겨진다.”(469p) 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듯 피해자의 권리 보호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사법제도, 어떤 타인도 이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외로움에 또다시 상처받는다.
“어딘가의 평행우주에서는 그녀는 강간당한 적이 없다. 그녀는 그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 (...)
평행우주들이 셀 수 없는 가능성으로, 일어날 수도 있었을 일들로 쪼개지는 가운데 그녀는 잠을 잔다.”
수많은 If를 떠올리며 또다른 결과값을 예측하던 비비안은, 결국 평행우주 너머의 자신에게 희망을 건다. 그쪽의 너는 안전하게, 예전과 같이 일을 하고 사랑을 하며 살고 있겠지. 그러나 이 우주의 비비안은 틀림없는 강간 피해자다. 부정할 수 없고, 오직 그만이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를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비비안은 주변의 지인과 가족 일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기에 절망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많은 법적 절차에 동행했다. 먹을 것을 사다주었고 곤란한 일을 대신 처리해주었다. 그 속에서 가장 놀라운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여자친구들이 비슷한 기억을 지니고 있고, 그 순간을 철저히 외면하거나 숨긴 채 살아온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소설이 묘사하는 비비안의 감정 중 눈에 띄는 점은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분노’, ‘비어버린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 훨씬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응당 느껴야 할 수치심이란 없다.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이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수치심, 즉 부끄러움도 어딘가 존재할 수 있겠으나 차라리 분노와 무력감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적 수치심’ 용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검찰은 이를 ‘불쾌감’으로 변경하고 있다.
소설은 피해자인 비비안과 가해자인 조니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용한다. 조니의 서술에서는 잘못된 성의식과 여성혐오, 자기합리화 기제 등이 돋보이는데, <성적 수치심>은 마치 그런 조니의 시점에서나 자연스럽다.
소설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통해 회복되어가는 비비안을 그린다. 물론, 마법같은 변화는 없다. “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사랑으로 강간 피해를 극복하고, 이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답니다!” ...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고통스럽고 지난한 수사 과정과 무력한 사법제도를 별다른 수 없이 견디고, PTSD, 불안장애, 불면을 안고, 더는 일 할 수 없어 퇴사하여 해지한 적금으로 사는, 그런 인생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고, 복구 불가능해보였던 피해 이후의 삶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과정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날 때 까지도 비비안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새로운 만남을 덜 두려워하기 위해 훈련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이력서를 쓴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성범죄는 분명 피해자에게 큰 트라우마가 된다. 인권과 존엄을 극도로 훼손하는 행위니 당연하다. 하지만 사건 외부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둥, “이제 쟤(피해자)는 어떻게 사니”라는 둥, 안타까움을 빙자해 내뱉는 독선 또한 2차 가해와 다름없다. 다행히 죽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삶은 이어질 것이고, 사건 전과 똑같은 일상을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가능성을 깎아내릴 수 없다.
비비안이 강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현명하고, 올바른 대처를 하는 법을 안다. 모든 피해자가 그처럼 행동하고 이겨낼 순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믿을만한 보호자가 부재하여 더욱 절망스러운 피해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솔직하고 당당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 작가가 세페이지를 할애해 작성한 “감사의 말” 파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가 연대와 지지 속에서 ‘다크 챕터’를 넘기고 ‘또 다른 챕터’로 나아갈 수 있었음을암시한다.
위니 리는 떠올리기조차 힘들었던 사건을 글로 풀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슷한 피해자와 생존자들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그 외로움을 공유할 누군가가, 당신을 기꺼이 도와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끝끝내 <다크 챕터>를 완성한 것이다.
그의 상상처럼 어떤 우주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겪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그런 확률에 기대기에 어떤 곳에서든 비슷하게 고통받는 여성이 너무 많다. <다크 챕터>는 더 많은 사람이 피해자의 삶에 공감할 수 있기를, 또 피해 이후 삶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함께 지지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책이다.
*스포일러 포함
“저자, 위니 리의 말대로 성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도 문화권도 없다. 모든 집단 내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서, 아는 사람에게서,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 성폭력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크 챕터>의 출간을 통해서건, SNS를 뒤덮은 해시태그의 형식으로건, 삶에 함부로 끼어드는 이런 폭력의 경험은 언젠가는 결국 드러날 운명이다.
성폭력 이후의, 그리고 고백과 고발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점이다. 성폭력 경험을 용기내서 발설한 이들은 이후의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여러 가지 공격적인 편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서 보복성 고소 위협이 뒤따랐다. 삶을 다시 재건하기 위한 의료조치를 포함한 여러 차례 치료세션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모두 피해자의 몫이었다. 용기를 내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었다. 피해를 감당하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라는 사실이 가장 이상하고 슬펐다.” - 옮긴이
그저 어린 10대 소년에게 길을 알려주느라 말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건 호감의 표현-“나를 알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었냐는 그저 어이없기만 한 가해자의 판단에 성폭행을 당한 주인공이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하기 위해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은지 모르겠다.
<낯선 도시에서 일어난 중국계 미국인에 대한 범죄>라는 타이틀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흥미로운, 안타까운 이야기 거리가 됐을 뿐이다. 이 속에서 모든 걸 감당하는 건 주인공 혼자였다. 자신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추측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해자를 법정에 불러내기 위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곁에 친구가 있다고 한들, 나를 응원해주고 걱정해주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고 한들, 온몸이 뻣뻣해 머리 위로 옷을 벗기기가 힘든 상황도, 표정 없는, 피곤한 얼굴로 여기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으로 앞만 보며 증거 사진을 찍는 상황도, 아픈 기억을 수차례 끄집어 내어 스스로의 입으로 몇 번이고 그 날의 일들을 뱉어내야 하는 상황도 모두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결혼한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기쁨 밑으로 더욱 아래로 침잠하는-‘둘의 존재는 행복의 비행기에 실려 앞으로 나아가고 그녀의 존재는 저 아래 흙무더기와 절망 속에서 좌초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기분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가해자를 심판하고 벌을 내리기 위한 재판 상황에서까지, 변호사와 가해자는 그녀에 대한 모욕을 멈추지 않으며 검사도 은연 중에 피해자다운 태도를 요청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다. 피해 사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순식간에 그를 이상한 사람 등의 원색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 이유는 ‘피해자다움’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다면 피해자 기억을 의심하고, 맨정신이었다면 피해자의 선택을 의심한다. 이 생각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충격과 공포감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해결을 가로막는다. 성폭력피해자의 담담하고 침착한 모습에 ‘성폭력 피해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또는 ‘성폭력피해자라면 ~ 할 것’ 이라는 생각은 성폭력에 충분한 이해가 아닌 그저 그들의 왠지 그럴 것만 같은, 그저 “느낌”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 상황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성폭력피해자들도 한가지 행동만을 일관적으로 택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 상황에 처했을 때, 강하게 저항을 하기도 하고, 가해자의 지위 또는 목숨에 위협을 느껴 얼어붙기도 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판단 때문에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 가해자에게 “괜찮아,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 라고 말하며 돌려보낸 뒤, 몇 십분을 기다려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제서야 눈물을 마구 흘리던 것처럼.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이것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공포와 불안감으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이전과는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다행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다시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자신이 항상 좋아하던 하이킹을 다시 시작하고, 낯선 이성과의 만남에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범죄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일테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가혹한 낮은 형벌, 피해자를 도와주는 여러 제도 등 가시적인 여러 시스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에 깔려있는 여러 고정관념의 변화, 피해자에 대한 깊은 이해 또한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중요한 가치임을 말하고 싶다.
너무나도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적혀있어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어느순간 비비안이 되어있었고 몰입되어있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전세계에서 성폭행 성추행 강간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하루빨리 구출해주고 다시 그들의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것인지 따지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이 세상을 바꾸기에는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비비안, 위니리가 말한 것처럼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범죄자는 무수히 많이 이 세상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 범죄자가 마땅히 죗값을 치룰 수 있게 이 사회는, 각국의 사법제도는 더욱더 엄격해져야한다. 더불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구축해내야한다.
이 책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책이 되었다. 모두가 다크챕터를 읽어보길!
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한길사 20148
성폭력 피해자의 진솔하고 울림 있는 자전소설
" 그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다크 챕터]는 저자인 위니 리가 겪은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자전 소설이다. 소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면 진행되는 서술 방식으로 피해자의 솔직한 심리묘사나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가해자의 시선은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경험을 재현해 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일까 저자만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집중할 수 밖에 없을뿐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이후 사회가 폭력의 희생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낱낱이 만나볼 수 있다보니 드려나지 않은 사회적 이면도 만나볼 수 있다.
[다크 챕터]의 저자 위니 리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해 영화 제작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자신을 비비안이라는 책속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여 어느 날 자신에게 닥친 상처와 고통을 과감없이 이야기로 풀어 내었다. 저자는 29년을 기점으로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나뉘다고 한다.
홀로 여행하는 것, 하이킹을 좋아하는 비비안안 바쁜 일상과 고단한 업무를 뒤로 하고 벨파스트의 등산로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마주친 소년 조니가 불행의 씨앗이 될것라고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어 보이는것이 횡설수설하는것은 물론 자꾸만 들러붙는 소년이 귀찮아 그를 피하고 따돌리기 위해 인적인 드문 곳으로 이동했던 비비안은 벨파스트 힐즈에 다다랐을 무렵 비탈 아래에 있는 그 소년을 보게 되고, 본능적으로 위허믈 감지한 그녀는 뛰어야 한다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소년의 우악스러운 손에 질질 끌려가게 된다.
그 순간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속으로 외칠 수 밖에 없는 그녀, 힘겹게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황은 정말 끔찍할뿐 아니라 공포와 함께 수치심으로 얼룩진 그 순간을 어떻게 버티었을지 책을 통해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뿐 아니라 같은 여자로서 차라리 죽는것이 더 나은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 큰 상처와 고통스러움에도 피해의 진실을 드려내고자 하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렇게 임의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일이 무작위로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10분 전이었다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p228
그 이후 그녀가 한 소년으로 부터 당한 일로 인해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와 공황장애와 같은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의 삶이 어떠식으로 갉아먹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지만 공감하는데 있어서는 반에 반도 못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척 살아가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경우 과거속에 갇혀 앞으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마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 아니라 그 사건 전의 비비안은 사라지고 또다른 비비안과 마주해야 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마주해야 극복해 나갈 수 있음을 알지만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안다. 그리하여 사회적 시스템을 요청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용의자로 붙잡힌 소년과의 법정투쟁 역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소설속에서나 현실적으로나 피해자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고 가해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 사회에 문을 두드리는것에서 부터 대응해 나가는데에 있어서 체계적인 못함은 물론 사고 당시의 정황을 밝히기 위해 또다시 그때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반복적으로 상기해야 하는 시스템은 피해자에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것이 우리네의 현실을 정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한다.
[다크 챕터]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당시 15세 밖에 되지 않았던 소년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그 소년은 가정폭력과 사회로 부터 차별적인 폭력에 얼룩져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이며,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뿐 아니라 아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여러분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금방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훗날 언젠가 여러분의 삶은 더 나아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피해자의 경험을 제대로 다루는 소설을 쓰려 했습니다. 과거가 존재했고, 반드시 미래가 존재하는 우리 이웃의 삶을 그려내려 했습니다. 성폭행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저도 해냈고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도 해냈습니다. -p13 '한국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中'
전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더이상 피해자라 하여 숨길이유도 숨을 필요도 없다라고 자신있게 말해주는 그녀의 용기 있는 메세지는 모두에게 위안이 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과 동시에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단,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혼자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