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섣부른 금서 조치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은 아니다. 언젠가는
국방부가 일군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하자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서’라는 단어가 주는 비밀스러움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
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역시 중국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바람에 온라인에서 중화권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증폭시켰다고 한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소설을 소설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과 결부시키는 것은 그만큼 숨겨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 일 게다.
소설의 서사는 조금 비틀어 놓고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폐쇄된 군부내에서의 성폭력과 고위급 장교 부인의 갑질이 섞인다면
바로 소설 속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작가의 집필 의도나 문학성은 별개로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통속성이 혁명이라는 이름아래 갇혔던 사랑과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작가의 바램과 만나 뜨겁게 달아
올랐는지 도 모르겠다.
소설은 문화대혁명 당시 어느 부대 사단장의
저택에 파견된 취사 담당 공무분대장인 우다왕과 사단장의 젊은 부인 류롄이 벌이는 사랑이야기이다. 딱히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 시작이 류롄의 일방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성과 애정의
봉사를 요구하는 류롄에게 우다왕은 맞서 보지만 사단장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 요구에 응하게 된다. 사단장이
베이징으로 출장간 두 달 동안 우다왕과 류롄은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저택에서 혁명기에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애정행각을 벌인다. 그러면서 우다왕은 자신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욕망에 눈뜨게 되고 둘 사이의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딱 거기까지였다. 류롄은 사단장의 부인이라는 위치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사단장은 그들의 애정행각을 알게 되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단 해체라는 극약처방으로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떠나 보냄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지워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당국은 왜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했을까? 사단장 부인과 취사병의 애정행각 이라는 소재가 불편했기 때문일까? 그것보다는 이 소설의 제목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관련이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였다. 작가는 이런 혁명의 언어를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켰다. 사단장 저택의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팻말, 류롄은
우다왕에게 이 팻말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언제든 2층으로 올라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팻말은 집안 곳곳 아무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지점이 중국당국은 불편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혁명 언어의 경전 이자 혁명 정신의 상징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욕망의 발산 기제가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아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지고의 명제 아래 갇혀있던
사랑을, 인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바로 그 언어를 통해 해체했기에 이 소설은 중국 문단 최고의 문제작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다왕이 전역을 하는 날. 우다왕은 기차역으로 가면서 사단장 저택 앞을 지날 때 타고 가던 차를 잠깐 멈추게 한 후 저택으로 들어가 류롄을
만난다. 류롄은 마지막으로 우다왕에게 선물을 준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팻말이 보자기 안에 들어 있다. 15년
후, 사단장은 성군구 사령관이 되었고, 류롄은 사령관 부인이
되었다. 우다왕이 류롄을 찾아간다. 류롄은 우다왕을 만나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편지로 하라는 쪽지를 경비병에게 들려 보낸다. 우다왕은 말없이 보자기를 건네며
전해주라고 한다. 보자기 안에는 15년전 류롄에게서 받았던
그 팻말이 들어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작품이 시사하는 문제점이나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다왕이 정말로 류롄을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류롄으로 인해 욕망의 눈을 뜨게 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우다왕은 아내에게 냉정했다. 류롄은 우다왕이 전역하는 날 욕망의 발산 기제가 되었던 팻말을 줌으로써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갔다면, 우다왕은 오히려 그 팻말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해서 오랜 시간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15년후 그 팻말을 돌려주면서 비로소 자신을 되찾은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 ‘금서’, ‘문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 한 편을 읽었다는 느낌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 말은 중국공산당에서 투철한 희생정신을 보이며 활동하다가 탄광이 매몰될 때 압사되어 사망한 장사덕의 기리는 모택동의 연설에서 제목으로 사용된 말이다. 이 말은 연설 후 혁명언어의 경전이 되었고, 무소불위의 금언이 되었으며 혁명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관통하는 이 말은 욕망의 발산기제로 작용한다. 이념과 혁명을 위한 투철한 정신에 반하는 의미를 포함된 말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이 이야기는 사상이, 정치가, 도덕이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적 과도기에 혁신적인 이야기로 사고의 틀을 깨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사상과 성의 절묘한 배합이 만들어낸 엽기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다. 윤리적 개연성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보이는 소설이지만, 욕망이란 측면에서 보면 또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이야기리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인간이기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인다. 특히 동물적인 삶을 살기를 작정하고 보내는 시간들은 금수의 그것을 너머 선 모습도 보인다. 아마 욕망의 끝자락에서 잡은 환상이 아닌가 여겨진다.
병사 출신의 우다왕이 사단장의 사택에 개인 집사로 들어간다. 사단장은 그곳에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우다왕은 사단장의 사택에서 채소도 가꾸고, 음식 및 청소 등 집안의 사소한 일까지 한다. 사단장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기에 사단장의 말에는 죽는 시늉까지 하게 되고, 그 부인의 말에도 최선을 다해 섬긴다. 사단장의 부인인 류롄은 기거하고 있는 집에서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고, 타인들과 접촉도 없다. 사단장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32살의 미모를 가진 부인이다. 사단장은 많은 시간, 일 때문에 사택을 비운다. 인적 물자가 부족한 전쟁 통에 군인들의 수급이 자유롭지 못한 그곳은 사람들의 수가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사단장의 사택은 다른 사람들의 보강 없이 우다왕에게 거의 맡겨지다시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단장 사택의 사적인 근무에 우다왕은 모든 일을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자세를 취하며 최선을 다 한다.
젊고 예쁜 사단장의 부인 류롄은 사택(1호 원자) 곳곳을 우다왕의 존재에 대해 의식을 하기 시작한다. 우다왕은 시골에 부인과 아이들이 있다. 또한 사택은 그가 일을 하는 곳이기에 모든 일에 경건하다. 류롄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그에겐 하나의 숭배해야 할 존재로 인식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류롄이 우다왕에게 말을 걸어온다. 상당히 자극적인 말이었지만 우다왕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류롄이 상관의 입장에서 명령으로 우다왕이 자신에게 다가오게 만든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라는 팻말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으면 자신이 기거하는 이층 건물에 올라와 자신의 일을 도와라는 명령을 하는 것이다. 우다왕은 처음 그녀의 명령으로 이층에 올라갔을 때, 상당히 당황한다. 명목은 전선을 돌보는 것이었지만 류롄의 유혹에 온몸이 경직되는 상황까지 된다. 그래서 도망치듯 자신의 윤리관을 떠올린다.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도망간 우다왕에 대해 류롄은 분노를 일으키고, 당의 지도원, 중대장에게 연락하여 우다왕은 해고시키는 지경까지 이른다.
우다왕은 자신의 입장에서 이곳에서 해고당하면 아내와 자식을 볼 면목이 없다. 그리고 또한 류롄의 몸과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라고 사택에 가서 류롄에게 빌게 되고, 류롄은 그의 사과를 받아주면서 자신의 애욕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다. 자신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한다. 둘의 정욕은 시간이 갈수록 밀착되고, 드디어 우다왕이 사택에 기거하면서 부인의 시중을 들게 된다. 그런 관계가 도를 넘게 되고, 사단장이 올 즈음엔 극한의 상황가지 치닫는다. 둘은 이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까지 비약한다. 심지어 류롄은 임신한 것 같다는 말까지 한다. 하지만 류롄은 사단장 부인이라는 위치를 내던지지는 못하고 결국 우다왕을 휴가라는 명목으로 시골로 보낸다. 우다왕이 시골에 가서 있을 때 부대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군 정예화에 따른 조직 개편이 일어나고 우다왕이 소속된 부대가 해체될 상황이 된다. 중대장, 지도원 등도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여 혼란 속에 빠지고 벽촌의 농민 아내와 아이를 둔 우다왕에게 마음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 우다왕은 시골에 있으면서 장교가 되어 아내를 도시로 옮겨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달한다. 아니 류롄 부인이 어찌되었는지 궁금해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복귀하라는 소리도 없는데 부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류롄을 만나길 간구한다. 하지만 만날 수는 없고 전역하여 트랙트 공장 공장장을 하라는 류옌의 전언을 받는다. 식구들은 도시로 올라올 수 있게 조처를 했다는 말도 듣는다. 부대에서 우다왕의 환송회를 열어준다. 그리고 우다왕은 떠나야 하게 된다. 떠나는 와중에 지도원 등에게 사정을 해 류롄을 한 번 만나고 가고 싶다고 한다. 그들도 우다왕이란 존재의 위치를 아니까 허락하고 류롄에게 자신들의 얘기를 잘 해달라고 한다. 우다왕은 류롄을 만나고 그녀에게 선물을 받으면서 떠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전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있던 곳엔 ’인민의 군대가 없어지면 인민의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우다왕은 떠나고 그 사단은 3일 후 해체된다.
그 후 에필로그로 15년 후가 설정되어 있다. 사단장은 사령관이 되고 류롄은 사령관 부인이 되어 잘 살고 있다. 우다왕이 그녀가 보고 싶어 찾아갔을 땐 만나진 못하고 15살 정도의 아이가 뛰어놀고 있는 것을 본다.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류롄과 함께했던 날들과 그녀의 수많은 장점과 자신에게 베풀어준 어머니 같기도 하고 누나 같기고 하며, 상급자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한, 뭐라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방금 전까지 온통 마음을 뒤덮었던 자신의 존엄이 모욕당한 듯한 느낌은 차례로 사라지고, 또다시 달콤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류롄의 몸매와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한 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고혹적인 얼굴이 눈에 선했다.(p268) 우다왕이 류롄에 대해 그리워하면서 다시 찾아갔을 때 마음을 기록하고 있는 글이다. 배반감을 느끼면서도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 진하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 이 소설에서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을 것인가를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상은 엿 사먹고, 정욕에 모든 것을 맡기는 그들의 삶이 또 한 시대를 표상해 주는 일이 되는 것이리라 작가를 통해 느껴볼 따름이다.
소설가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허구를 통해 역사가들이 꿈꾸는 진실에 도달하고, 탁월한 독자들은 이것을 통해 역사의 진상을 유추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문명의 시기가 지나가고 충동적인 감정이 시대가 도래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덕성을 함몰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직도 관방의 지원을 큰 동력으로 삼고 있는 중국 문단에서 혁명과 공화국의 역사를 희화화하기도 하는 이야기는 욕망과 대비시킴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인가를 넌지시 제시함으로 제도와 이념 등을 무력화해 나가는 일단의 모습도 보인다. 혁신적인 사고와 성애의 표현에서 엽기적인 행위를 드러내 보인다. 읽기가 힘들기도 했던 글이다.
군영의 대원 안 작은 원자들에 미스테리한 일들이 깊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런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수장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에게 복무하는 것이라는 대명제뿐이었다. (p. 5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1944년 중국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이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이다.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중국군의 책무를 담은 국민적 구호이기도 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나?”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업 가운데 매일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빛과 열정을 봉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지요. 자신의 효심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야. 게다가 깊은 깨달음과 이상까지 담겨 있어.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결합한 점이 가장 훌륭하네. 단지 어휘 선택에서 남을 섬기는 것과 효도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p. 97)
사단장 집에서 취사를 담당하는 고참 공무분대장 우다왕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묻지 말아야 할 말은 묻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군대의 규칙에 따라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단장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한다. 하지만 사단장이 두 달간 집을 비우게 되면서 복무의 방향이 바뀌는데..
원래 사단장 집의 식당, 식탁 위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붉고 큰 글씨가 새겨진 나무 팻말이 놓여 있었다. 사단장이 집을 떠난 다음 날 저녁, 사단장의 아내 류롄은 그 나무 팻말을 다른 곳에 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샤오우, 앞으로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있던 자리에 없거든 내가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해.” (p. 24)
우다왕은 류롄의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래서 사단장도 두렵고, 당 조직도 두렵다며 거절한다.
“그럼 나는 두렵지 않다는 얘기로군, 그렇지?” (p. 72)
어찌 보면 우다왕이 ‘미투 운동’을 해야 할 상황이다. 마치 작가가 그런 점을 염두해 두었다는 듯 우다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협력자이자 공모자였다”, 라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p. 59) 게다가 이 소설의 주제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팻말처럼 형태에 불과하다. 형태를 너머 그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다왕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섬기는 것을 꼽는다. 실상은 다르다. 류롄은 우다왕에게 가장 큰 이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죽을 때까지 분투하는 것입니다.” (p. 45)
류롄은 사실대로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며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 그러자 우다왕은 다르게 답한다.
“승진입니다. 부대를 따라 아내와 아이의 호구를 도시로 옮겼으면 합니다.” (p. 45)
결국 우다왕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는 얘기다. 인민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위해 복무한다. 그게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슬로건 뒤에 숨은 진실이다. 재밌는 점은 우다왕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 그렇다. 아마 소설 밖에서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 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진실은 불편한 법이니까 말이다. 작가 옌롄커는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영원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p. 11 한국어판 서문) 마오쩌둥이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과거는 미래가 되고 미래는 다시 과거가 된다.(p. 85) 마오쩌둥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소설인 것 같다.
1.
문학은 영원히 우리의 삶 속 햇빛이자 달빛이고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자 장마 끝에 비치는 햇살입니다. 우리는 문학의 존재를 위해 노래합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자 노래입니다. 문학의 유일한 적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문학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장수하게도 하고 단명하게도 합니다. 따라서 문학의 호흡을 멈추게 하려는 모든 행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궤도를 바꾸고 물 항아리나 우물 안에 달빛을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P.9~10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중국에서는 버림받은 소설인 것 같다. 변화되고 있는 중국사회, 그 사회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목과 달리, 군대에서의 치열한 생활상을 전하는 소설은 아니다. 공무분대장 우다왕이 그의 상사인 사단장의 아내인 류렌과의 볼륜같지 않은 볼륜을 벌이는 내용이다. 도대체, 이 내용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것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한참 동안 생각해 보지만,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2.
"자네의 가장 큰 이상이 뭐지?"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죽을 때가지 분투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미지근한 표정으로 웃었다. 마치 석탄불 위에 옅게 올려진 얼음과도 같았다. 류렌이 정색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이 그의 누나이고 누나가 무엇을 묻든지 간에 사실대로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하자 우다왕이 알겠다고 말했다.
- p.45
어쩌면, 그녀는 중국의 보통의 인민들이 복종해야 하는 권력의 주체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철저히 복종해야 하며,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도 따라야 한다. 우다왕은 그녀와의 관계를 맺는 것에 처음에는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화를 냈을 뿐, 성적인 관계를 우다왕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 우다왕은 그녀에게 복종하며 그녀의 말에 충성을 다한다.
마침내 지도원은 우다왕을 불러 그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나?"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업 가운데 매일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빛과 열정을 봉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지요. 자신의 효심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야. 게다가 깊은 깨달음과 이상까지 담겨 있어.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결합한 점이 가장 훌륭하네. 단지 어휘 선택에서 남을 섬기는 것과 효도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 pp.96~97
사실, 처음엔 우다왕과 류렌의 관계를 사단장에게 들키는 뻔한 스토리를 예상했다. 그 후에 과연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가는데 왠걸,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뻔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류렌이 권력의 주체로서의 상징성이 될 수는 없겠지. 대신, 류렌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원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우다왕은 그러므로 중국 인민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3.
우다왕은 신병처럼 목에 잔뜩 힘주어 피 터져라 소리쳤다.
"사단장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입니다."
그의 고함은 힘이 넘치면서도 절도 있었다. 사병들이 연병장에서 훈련할 때 일제히 외치는 구호나 구령의 복창 소리 같았다. 그가 중대장을 바라보자 중대장을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럭저럭 비슷한 것 같군. 어서 출근하게. 난 숙소로 돌아가봐야겠네."
- PP.104~105
문득, 류렌과 우다왕의 볼륜엔 사단장의 암묵적인 재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권력을 좌지우지자하는 주석과, 권력을 쟁취해 그것을 유지하려는 간부들. 그리고, 그 권력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인민들.
"어서 벗어. 인민을 위해 복무할 마음이 없는 거야?"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군복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사병 특유의 단단한 근육이 드러났다. 온몸의 건장한 근육 하나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제저녁에 펼쳐졌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었다. 갑자기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폭염을 쏟아내는 하늘의 짙은 구름이 한바탕 뜨거운 비를 뿌리듯, 원한과 열정의 폭풍이 그들의 모든 것을 휘감아버렸다. 두 사람은 초조함과 애정의 목마름, 원한의 욕념을 품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마른 땔나무 한 무더기가 불붙고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잠시 힘겨워졌다. 거대한 불길에 사방이 온통 짙은 연기로 뒤덮인 것 같았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불꽃이 명멸하면서 짙은 연기가 하늘을 덮을 기세로 피어올랐다. 그때 류렌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군. 잘했어. 아주 잘했어."
- PP.118~11
류렌에게 자신의 남은 육체를 모두 바치는 우다왕. 그녀의 명령이라면 옷도 벗어던지는 충성심. 그리고 결국은 맺어지는 관계들. 그리고, 이 명령의 뒤안길에는 우다왕의 아내가 우다왕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중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점은 누구도 중국의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중국의 권력은 그 저항하지 않는 인민들에게 먹고 살 길은 열어주지만, 그들의 감정, 그들의 생활만족도까지 다독여 주지는 않는다.
4.
"탈혁명, 탈사회주의 시대에 그는 의식적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와 혁명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거대한 상처와 고통의 소재를 확인하고 점검한다. 그 상처와 고통의 근원이 시공의 단절에 있든 육체적 고통에 있든, 아니면 죽음의 영원한 회귀에 있든 간에 이 모든 것을 작품 속에서 일종의 원초적 욕망의 에너지로 환원시킨다." - 옭긴이 후기 중.
원초적 욕망의 에너지. 그러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우다왕의 육체의 탄원. 그 원망 어린 욕망의 근원을 보면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중국인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소망은 우리를, 많은 사람을, 끝내 성취하지 못한 "창백한 원망(p.299)"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슬픈 현실, 아픈 현실을 극복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인지도 모르겠다. 그 열망을 향한 작은 소망이 더 나은 중국이 되는 발판이 되고, 나아가서 더 나은 한국, 더 나은 우리의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 리뷰는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서평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군대는 남편의 계급 따라서, 부인들의 서열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위 여부는 확인해 본 적이 없어서 늘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통해서 나의 그런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백전노장의 혁명가이자 영웅이며 고급 간부인 사단장(p.76)”의 ‘배우자’인 ‘류렌’ 역시 “이 사택의 공무원 겸 취사원(p.70)”인 ‘우다왕’을 마치 자신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일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부려먹었다. 즉 우다왕은 “사단장과 사단장의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인민을 위해 복무(p.70)"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다왕 자네는 사단장이 집에 없다고 류렌을 제대로 모시지 않은 모양이군. 류렌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사단장께서는 베이징에서 회의와 학습을 진행하시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고, 사단장께서 마음을 놓지 못하시면 사단 전체의 업무와 학습, 전투준비와 훈련에 영향을 미치게 될걸세(p.79).” 우다왕은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지만, 오랫동안 사택을 비워야하는 사단장을 대신해서 류렌의 외로움까지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 ‘지도원’의 경고성에 가까운 발언은 모두 류렌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고 다의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고를 요구한다고 해야 할까? “그날 밤 두 사람은 신성한 난장판 위에서 잠을 잤다. 전에 없이 질펀하고 짜릿한 사랑의 행위도 난장판인 바다 위에서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두 사람은 이런 어지러운 상태가 자신들에게 무궁한 힘을 가져다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p.207).” 사단장 부인인 류렌과 사단장의 사택을 관리하고 있는 우다왕이라는 부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달달한 로맨스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분명 불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 속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비이성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일방적인 류렌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솔직히 류렌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편의 부하, 우다왕을 욕정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군대 내의 수많은 모순점을 고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다왕 역시 맨 처음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려 다니게 된다.
“자네 중대장과 지도원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줘. 그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로서도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어. 이미 상부에서 사단장의 최후 보고를 비준했고 부대를 전부 해산시키는 데 동의했단 말이야. 한 명도 남지 않고 모두 군복을 벗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p.291)” 절대 권력 앞에서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우다왕은 물론, 그의 중대장과 지도원들까지도 모두 씁쓸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사단장이라는 남편의 계급을 마치 자신의 특권처럼 이용했던 류렌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임에도, 누구 한 사람 류렌을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녀가 저지른 모든 비밀을 끝까지 함구한다. 이를 과연 인민을 위해 복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제목과는 다르게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문장도 술술 읽힌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씩 논란이 되곤 하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소설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