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삶은 끝없이 계속된다.
한순간에 가족,직장 할 것 없이 모든걸 다 잃어버린다면 그 현실에서 오는 막막함은 어느 정도일까? 단순히 백수 날건달로 잠시잠깐 머무는게 아니라 사회에 다시 발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신뢰가 바닥까지 곤두박질 쳤다면 그 삶의 우여곡절을 어떻게 건뎌내려고 발버둥칠 수 있을까 싶다. 여기 한순간에 인생이 끝난거나 마찬가지인 한 남자가 있다. 부도 명예도 지위도 가정도 모두를 잃은 남자. 그래서 소설이 주는 우울함은 시작부터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도가도 끝없이 계속되는 어지러운 미로속 처럼 주인공 해리의 인생은 상류수에서 고여서 썩어버린 물과 다름없는 하류인생으로 전락해버렸다. 그에 그 시궁창 인생을 벗어나고자 발악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외침이 neo-picaresque 소설 형식으로 서술되 있기에 읽는 나까지 어이없게 뒤바껴버린 그의 인생에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물론 모든 일의 원인은 어차피 '그 자신'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스스로는 한순간의 실수에 내심 진실함도 있었다고 회상하지만 내가 봤을때는 전혀 실수가 아닌, 어느 중년 남자의 현실의 팍팍함을 탈피하고픈 일탈 정도로 보이는게 문제다.
이번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 주인공은 상당히 답답한 인간이다. 답답하다못해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를만큼 한대 때려주고 싶기라도 한 인물이라 읽는 내내 끈질긴 인내심을 요했다. (휴우.....) 영화학과 교수였던 해리 릭스를 보면 남자들의 '성'에 대한 반응이 다 저랄까 싶게 절제와는 담을 쌓은 인물로 비춰진다. 그렇다고 무분별하다는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분별있는 사고는 전혀 없이 그저 감정이 시키는대로 속수무책으로 그 감정에 조종당하는 전형적인 감정적 인물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실질적으로 그에 따른 어떤 현실적인 대응책을 보이기 보다는 그 현실에 막무가내로 끌려가는 답답한 캐릭터. 자신의 주변에서 험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안일함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무능력해 보이는, 아니 생에 대한 의욕 자체가 없는 인물처럼 보이기에-처신하는게 무척이나 답답하다- 절대 동정이나 자비로운 눈으로 봐지지가 않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정 안가는 주인공이다.
낭만의 꿈은 찢어진 종이조각처럼...
과거 해리가 꿈꾸던 그대로였다면 프랑스는 충분히 낭만적인 장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걸 잃어버리고 도피처로 택한 프랑스에서는 낭만 같은건 꿈꿀 수 없는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나날이다. 터키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월세방이 있는 파리 10구와 5구 사이의 파라디스 가에서 해리의 프랑스 생활은 시작된다. 삶이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반듯한 '교수'라는 직함이 있었지만 이제 그는 소설쓰기를 꿈꾸는 돈 없고 배고프고 초라한 인생 낙오자이자 '소설가 지망생'이 되어있다. 이야기 속에서 해리 자신은 'picaresque 소설'을 쓰고 싶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더글라스 케네디가 작품과 현실의-독자가 한층 더 현실같이 느끼도록- 구분이 모호하게 만드려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듯 하다. 피카레스크 소설을 쓰길(피카레스크 소설에서는 자신이 사회적 위선과 억압,모순을 바로잡길 원하지만) 원하는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네오피카레스크 소설 형식을 띄며 한 남자가 과연 밑바닥 어디까지 곤두박질 칠 수 있는지 역설적으로 표현된 방식 또한 작가가 의도를 했는지 아닌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생각이니까!) 비정한 현실에 무릎 꿇어버린 남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인해 앞서도 언급했듯이 읽는 이들이 작품 속에 더 빠져들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제공해준다. 그렇기에 내가 주인공 해리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너무나 짜증나는!) 또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자, 꼭 그렇게 느끼기를 바랬던(?) 것이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소설 속 해결사 같은 주인공과는 다른,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별볼일 없는..그렇고 그런 주인공을 내세운 것도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함축적인 표현대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찌질한 생활에서 하루쯤 일탈을 꿈꾸고자 찾아간 사교 살롱에서 처음 만난 여인 마티드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숨 쉴 구멍이 필요해서 였을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어느정도 자제할만도 한데, 답답한 우리의 주인공 해리는 사랑 앞에서만은 그 어떤 장애물도 거뜬히 무시해주신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쪽박을 찼으면서도 말이다. 이 낯선 묘령의 여인은 어느날 갑자기 해리의 인생에 무단침입해서 그를 정신 쏙빠지게 만들어놓고서 인생 자체를 좌지우지 하려한다. 그렇게... 환상적 여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가 실은 자신을 평생토록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한 사람의 인생이 또 한 사람-마티드의 정체는 소설을 읽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만, 그게 반전의 묘미므로 여기서는 애매모호한 신비의 인물로 정의 내리겠다.-으로 인해 조종 당하고 재설계 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유희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과 소중한 가족을 담보로 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꾸역꾸역 살아내지만. 답답하고 숨막히는 파리 생활에 회의를 느껴갈 때쯤 이 여인을 만난 후부터,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불만을 품고 급기야는 해리에게도 해코지를 하기에 이르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잔인하게 죽어간다. 하지만 소설에서 중요한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해리와 마티드의 불완전한 관계가, 그들의 기묘한 이야기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에 있다. 현실과 비현실, 망상과 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하는 주인공 해리의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은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존재론적인 의문으로까지 거슬러가는데-해리 또는 마티드, 어쩌면 그 둘 모두- 이것은 영혼을 믿고 안믿고의 차이를 떠나 잃어버린-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기 어려웠던- 주인공 해리의 모호한 정체성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마지막까지 현실과 비현실의 작은 틈에서 아슬아슬하게 고뇌하는 그의 삶에 대한 내가 던지는 시선은 그래서 암울한 회색빛을 닮아있다.
이번 소설은 기존 더글라스 케네디의 전작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스릴러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그것뿐만이 아니라, 전개 방식 자체가 '혹시 오래전 써두었던 습작 작품인가?' 싶을 만큼 전 작품들의 완성도를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껴지는 바이다. 그리고 이 사람, 더 냉소주의자가 되어있다. 작가의 작품을 한두 작품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자국인 미국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고 비판적인지 소설 속에서 몇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특징은 빠지지가 않는데, 계속 되풀이 되다보니 이제는 좀 많이 거슬린다고 해야하나. 『모멘트』에서 순화 되었다고 느꼈던(미국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 것은 단지, 그 소설이 주는 아련함에서 왔던 나의 판단 착오였을 뿐이었을까. 어차피 소설이라는게 지극히 작가의 개인적 사상과 생각과 스토리를 쏟아내는 공간이라 한다해도 지나치게 편협해 보이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모습은 지양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정말이지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의 기조 아래 280여 페이지 이후의 반전이 아니었다면 기억에서 쉽사리 스쳐가버릴 정도로 아쉬움만 그득한 작품이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스릴러 소설이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프랑스인이 아닌 이민자들이다. 주요배경은 파리 10구의 파라디스가로 터키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주인공은 미국인 영화학과 교수 해리 릭스. 여자 제자와의 스캔들로 학교에서 추방되고, 아내와 딸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쫓기듯 파리로 도피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는 파리에서도 계속된다. 수중에 남은 돈으로 겨우 빈민가인 파라디스 가에 단칸방을 얻어 생활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모험의 여정이 시작된다.
터키 이민자들이 대부분인 파라디스가는 범죄와 폭력의 온상이다. 온갖 불법이 횡행하고, 사람들 간에 의심과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해리가 살게 된 집주인 세제르, 그의 심복 마무드, 옆방의 오마르는 가뜩이나 힘겨운 생을 열어가는 해리를 밤낮 없이 괴롭힌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소설 집필이다. 하루에 500단어씩 써나가면 일 년이 가기 전에 책 한 권을 끝낼 수 있을 것이고, 소설이 성공하면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망에 내몰린 그를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다.
어두운 발코니에서 매력적 그녀가 말을 걸어 오면서 로맨스가 시작된다.
파리 뒷골목에서의 이민자간 밑바닥 이야기처럼 전개되는 스토리는 관능적이며 매력적인 여인 마지트가 등장하면서 로맨스 스토리로 전환된다. 어느 날 미국의 동료 교수 더그 스탠리의 소개로 6구에 위치한 사교 살롱을 찾은 해리는 그곳에서 헝가리 출신 여인 마지트를 만난다. 살롱에서 해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절을 베푼 여인은 없었다. 단지 해리가 살롱의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마지트를 만나면서 해리는 차츰 고독감에서 벗어난다. 마지트는 일주일에 단 두 번만 해리에게 만남의 시간을 허락한다. 그것도 파리5구에 있는 마지트의 아파트만이 만남의 장소로 허락된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각자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 위험한 거래가 시작된다.
해리와 마지트의 만남은 섹스, 샴페인 한잔, 그리고 함께 개인적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해리가 그녀를 만난 뒤 파라디스 가에는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해리에게 못되게 굴거나 해꼬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것이다. 물론 해리도 용의자로 몰려 경찰조사를 받게 된다. 과연 천사의 구원일까? 악마의 유혹일까?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조금 판타지성 스토리로 흘러간다. 그녀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생전에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을 잔인하게 복수하고 자살한 사람이지만 오직 해리에게만 실존인물로 다가온다. 해리가 원하지도 않는 복수를 대신해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진 존재로서 말이다.
스릴러, 로맨스, 판타지의 삼박자가 결합되어 있어 음습하면서도 긴장감이 있고 애욕의 내밀함까지 느끼게 만든다. 소설의 스토리가 재미있으면 그만이겠지만 이 소설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건 거래를 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착한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다. 아마 당사자의 입장에선 세상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리 착한 사람으로 보여도 완벽하게 순수한 선의에서 나오는 행동은 없다. 마지트의 보이지 않는 도움은 보이지 않는 구속의 댓가이다. 그리고 판타지적 상황 설정 속에서 과연 진실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도 생각하게 만든다.
<파리 5구의 여인>의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 출신이지만, 미국 보다는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소설가이다.
21살에 아일랜드로 건너가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후에 여행기와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유럽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기사 작위까지 받았으니, 이번에 출간된 <파리 5구의 여인>은 배경이 파리5구와 10구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중에 처음 읽은 작품은 <빅 픽처>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벤 브래드 포드는 6살 때에 외할아버지 집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포토 그래퍼를 꿈꾼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변호사가 되지만, 항상 못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에 부인과의 불륜을 저지른 사진작가를 살해하게 되고, 완전범죄를 위하여 자신이 살해한 게리 서머스의 삶을 살기 위해서 멀리 떠나가게 된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작가이기에 그의 명성을 누리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듯했지만 그의 정체가 밝혀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삶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은 앤드류 타벨이 되어 살아 가는 것이다.
자신의 본 모습을 버리고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운 아들에 대한 만남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자식에 대한 사랑. 아들의 생일날, 만날 수 없는 자식을 그리며 먼 길 위에 서 있는 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빅 픽처>는 세 사람의 인생을 살지만,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너무도 잘 묘사된 작품이었다.
한 번 책을 들게 되면 책 속으로 빠져 들게 하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그 이후에도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그곳에서 잠깐의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과의 이야기를 다룬 <모멘트>
그리고 남성 작가가 묘사하기엔 한계가 있는 위킹 우먼의 사랑이야기인 <위험한 관계>
이 소설에서는 결혼, 그리고 임신, 출산, 이혼을 둘러싼 법정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었기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라면 소설가의 이름만으로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소설마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독특한 이야기라는 점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책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한 번 읽으면 또 그의 소설을 찾게 되는 것이다.
<파리 5구의 여인>은 그의 다른 소설들보다 스릴러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으면서도 로맨스가 있고, 거기에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다.
책 표지 그림의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에 꽂힌 것이 머리핀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소설 속 주인공이 노트북에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 그림 속에 이 작품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해리 릭스.
'인생에 있어서 이처럼 처참하게 추락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영화학과 교수였던 그는 18살 제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단 한 번의 외도로 그의 명성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 것이다.
여제자의 거짓 임신, 그것을 악용한 대학 학장인 가드너 롭슨의 술수로 여제자는 자살을 하고, 해리는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었다.
" 내 인생이 산산이 부서진 날, 나는 도망치듯 파리로 갔다. " (p. 5)
파리로 떠나 오게 된 해리는 가진 돈도 없으니, 파리 10구의 터키 이주민들이 사는 파라디스 가의 지저분한 쪽방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자신이 20 년전부터 쓰고 싶어 했던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이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 '내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리리라'는 생각은 실패한 사람,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흔히 내보이는 허망한 꿈일지도 모른다. 비록 바닥까지 추락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며 절망하기보다는 소설로 마지막 기회를 부여잡고 싶었다. " (p. 67)
그러나, 해리의 생활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파라디스 가에서의 생활은 예의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 터키인들과의 갈등을 빚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야간 경비일을 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불법적인 일이 자행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잠깐 탈피하기 위해서 찾아 간 살롱에서 헝가리 국적의 여인 마지트를 만나게 된다.
오십대 후반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그녀와의 1주일에 2번의 밀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 사람에게는 절대로 치유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다만 슬픔을 떠안은 채 적당히 적응하면서 살아갈 뿐이리라. 그러면서 차츰 상실감을 품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리라. " (p. 189)
'완벽하게 순수한 선의에서 나오는 행동은 없다'고 했던가...
살롱에서 그에게 다가왔던 파리 5구의 여인.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함정으로 들어가는 악마의 덫이었을까.
"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내가 당신 인생에 들어간거야" (p. 404)
해리 릭스를 둘러싸고 그를 힘들게 하였던 사람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사라진다.
그 누군가에 의해서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당하는 것이다.
살인의 끝은 어디일까?
해리 릭스는 그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차츰 흥미롭게 진행되고, 언젠가 본 스릴러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가 해리 릭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니 그의 머릿속의 생각들까지를 모두 읽어 내는 것이다.
" 마침내 쿠타르 형사가 말했다.
" 선생은 귀신에 씌었군요."
그렇다. 나는 정말로 귀신에 씌었다. " (p.420)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스릴러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라니....
해리는 죽기 전에는 그 악마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자살로 귀결될 것만 같은 그의 인생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처럼 뒤돌아 보아도 돌아갈 수 없는 너무도 먼 길을 와 버린 그런 느낌이 마지막 문장을 통해서 느껴진다.
해리가 나락으로 한없이 굴러 떨어졌을 때에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준 일탈은 그의 발목을 잡는 악마의 덫이자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블랙 홀이 아니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내려 놓는 나의 손은 무겁다.
마음은 더 씁쓸하다. 깔끔하게 끝맺지 않기에 주인공의 불행이 예견되는 소설이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래도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4권 중에는 멈추지 않고 피해가지만 또 다른 장애물이 놓여 있는 벤의 이야기를 그린 <빅 픽처>가 가장 훌륭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빅 픽처>가 너무 강하게 다가 왔기에 그만한 작품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미 내 마음 속에 들어온 작가이기에 그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다려 본다.
머리 복잡할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가운데 하나가 나한테는 바로 이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다.
술술 넘어가고 내용 쉽고 흥미롭고 흔한 소재를 다루긴 하지만 또 그게 흔하게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매력.
이번에 읽은 파리5구의 여인은 소개글도 읽지 않고 그냥 시작한 책이다.
그래서 로맨틱 스릴러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소개글을 보니 여기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문구를 이제서야 발견하게 되었다.
어쩐지..중간까지 은근히 스릴러틱하게 넘어가던 이야기가 뒤로 가서는 전혀 달라지는 분위기에 조금 당황하긴 했는데...
그래도 더글라스 케네디에 중독되었나..판타지 이야기라면 아예 시작도 안하는 내가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다니 참 스스로도 희한하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자신의 조국인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나 그런 부분이 아주 잘 드러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다시피 해서 온 파리에서 만나는 파리지앵들의 미국인에 대한 시각.
물론 성에 대해무지 자유로운 프랑스인들의 시각에서 본 미국인들의 성문화의 비판적 시각은 뭐라 말하기 그렇지만 그 외에도 프랑스인들과 미국인들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곳곳에서 대화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이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하나같이 바닥까지 내려간다. 꼬이고 자신의 인생인데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리고..그렇지만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이야기들.
어떻게 보면 읽을 때는 흥미로운데 나중에 이 작가의 책을 다 섞어놓고 줄거리를 말해보라 하면 그게 그거 같고 비슷비슷할 것 같긴 한데 일단 이번 작품은 조금 독특해서 후에라도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그런데...표지 속 여인은 굉장히 젊네..실제로는 아니던데...
국내에서는 ‘빅 픽처’를 시작으로 알려진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임팩트 있는 다양한 소재의 소설들을 내놓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빅 픽처’를 시작으로 ‘위험한 관계’, ‘모멘트’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저자의 소설을 대부분 접했다. 의도적인 선호로 접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마치 시리즈를 모으듯이 ‘파리 5구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소설을 모두 소장하고 읽은 듯싶다.
그의 소설들 모두 개인적인 만족감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로맨틱과 스릴러, 판타지적인 소재를 다채롭게 버무린 흥미로운 스토리는 각각의 소설에서 저자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그만큼 그의 소설에는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재미와 매력이 존재한다. ‘파리 5구의 여인’ 역시 로맨스와 스릴러,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흥미롭게 전개된다.
영화학과 교수인 주인공 해리는 제자와의 스캔들이 공개되면서 종신교수직에서 쫓겨나고 아내와도 이혼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한 파장으로 나쁜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적으로 매장되었고, 더욱이 사랑했던 여제자까지 자살을 하고 만다. 해리가 여제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이미 학장 롭슨과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던 아내 수잔, 롭슨의 폭로와 모함으로 해리는 사면초가에 이르렀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도망치듯 프랑스 파리로 오게 된 해리, 설상가상의 경험을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겨우 버티던 중 터키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라디스 가에 가까스로 정착하게 된다.
직업과 가족, 모든 걸 잃은 그에게 오랜 꿈이었던 소설 집필은 유일한 희망이자 안식이었다. 당장 생계가 막막했던 해리는 인터넷 카페에서 바텐더에게 우연처럼 경비 일을 소개받게 되고 힘겹게 생계를 이어간다. 소개받은 경비일이라는 것이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는 것이라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생계유지와 더불어 경비 일을 하면서 소설을 쓸 수 있어서 그에게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궁핍해져버린 생활, 막막하고 암담한 미래, 딸과의 이별이라는 현실은 그를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옥죄어왔다. 어느 날 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작은 위로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사교 살롱을 방문하게 된다. 해리는 여러 사람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나눴지만, 별다른 결실이 없었다. 그렇게 기대감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관능적이면서 지적인 매력을 가진 여인 마지트를 만나게 되고 둘은 그 순간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그녀에게 주소와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네받은 해리는 이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고 고통의 현실에서 유일하게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녀를 만난 이후 해리 주변에서 잇달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더욱이 두려웠던 것은 살해당한 사람들이 그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마치 해리의 복수를 누군가가 대신해 주듯이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되거나 곤경에 처하게 된다. 덕분에 해리는 경찰에게 살해 용의자로 지목을 받는다. 상황은 겉잡을 수없이 꼬여가고 해리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왔던 해리는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로와 즐거움이었던 매력적인 여인 마지트. 하지만, 그녀는 충격적인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로맨스적인 요소와 더불어 격정적인 사랑, 그리고 스릴러적인 전개,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충격적인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사건전개에 따라 적절하게 어우러져 중독성 강한 흥미를 이끌어낸다. 한 때 국내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해외드라마 '환상특급'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고통스러운 순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해결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지니라기보다는 악마와 거래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의 결말은 해피앤딩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주인공에게는 무섭고 불행한 앤딩일 수도 있다. 주인공이 어떤 관점에 의미를 두냐에 따라 불행과 행복은 한끝 차이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안정된 행복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은 이루어져버린 것이다. 내가 주인공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마지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현실의 고통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흔들리게 만든다.
이 책의 스토리에 몰입하다보면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불편한 진실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 역시 이 부분에서 괴로워하며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연 미지의 힘에 의해서 사적인 복수로 악을 처단했다면 이는 선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악을 처단하기 위해서 또 다른 악으로 맞서는 것을 우리는 악을 처단하는 선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한다. 이 역시 진정한 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악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하기보다는 이를 처단하는 것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에게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복수심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