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청년시인 : 저항과 순수가 녹아있는 123편의 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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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핀 청년시인 : 저항과 순수가 녹아있는 123편의 시 詩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리뷰 총점 8.9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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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시/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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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못다핀 청년시인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g********r | 2018.07.28 리뷰제목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그만큼 윤동주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시인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또 이 구절을 모르는
리뷰제목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윤동주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시인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또 이 구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상의 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교과서에서 그의 글을 한번쯤은 읽어보았을테고,

그가 천재적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테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대학생시절의 우리가, 술을 마실때마다

그렇게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며 찾아대었던 박인환 시인.

이 시 역시 교과서에 수없이 나오기에,

아마 이 시를 제대로 읽지는 않았어도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사람은 아니라도, 책을 좋아하는.. 글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는

이 세 명의 시를, 글을, 생각을,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고 영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학창시절, 시를 쓰는 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는 내내 교과서에 머리를 박은 채

교과서 사이에 숨겨놓은 소설책을 읽는 아이였고..

방과 후, 남들은 수학과 영어를 배우러 다닐 적에

시집과 원고지, 연습장을 가방에 넣은 채

시와 시조를 배우러다니던 학생이었다.

 

그 시절에는 나름 유명하다는 몇몇 대회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고,

통일글짓기에서 상을 받는 덕에 금강산 관광도 했다.

몇몇 대회에서 상을 받다보니, 나름 상을 받는 요령도 생겨서

상을 받는 법이나 상장을 받는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요령껏 써서 받은 시는

훗날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부끄러운 느낌으로 남았고,

수상은 하지못했더라도, 내 마음이 담긴 시는

오래오래.. 어른이 된 지금에서 읽어도 그 시절의 나까지 그리워진다.

 

문득- 지금에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 본인의 이름으로 뭔가를 한줄이라도 적어내는 사람은

본인의 글이 부끄럽지 않게 써야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쟁이가 되지 않길 잘했다.

날 가르쳤던 대선배님께서 하신 대쪽같은 말씀을

나는 글쓰는 사람이 아닌데도 아직도 수첩에 적어놓고 산다.

"글쟁이는 펜으로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난 글쟁이가 될 능력도 부족했지만

그런 책임감도 부족했기에 서비스강사로 사는 편이 나았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세명의 글쟁이.

윤동주와 이상, 박인환은 적어도 본인의 펜에 부끄러운 사람은 아니었다고 본다.

본인의 이념과 생각, 사회적인 사상까지 한 줄 글로 적으며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삶을 사셨다.

그러니 이 분들의 글이, 생애가 책이 되고.. 글이 되고.. 영화가 되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행복했다.

다 읽어본 시였으나, 다 아는 시였으나

한줄한줄이 마음에 가득히 남았고 내 마음에 별이 되어 뜨고 졌다.

나는 아마 한동안 이 책을 읽고 또 읽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동안은 시를 쓰고 싶어서,

글을 쓰고 살지 못한 삶을 후회하고 속상해하겠지.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시를- 이 세명 모두의 시를 읽을 수 있음이 축복이다.

만약 아직도 우리나라 글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이 아닌,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책 보급율이 이렇게 높지않는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평생, 천재의 시를 읽지 못했을 것 아닌가.

 

 

 

 

이 분들의 글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나 시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자면

깊이와 이야기가 훨씬 깊어지겠지만, 나는 그것은 하지않겠다.

그건 수업시간에 수없이 들었으니까.

난 그저,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얼마나 배아프도록 잘 쓴 글인지..

수없이 느끼고.. 수없이 공부하며 이 책을 읽었다.

 

 

 

평균수명 28. 이렇게 적고보니 이상하다.

윤동주 28. 이상 27. 박인환 29.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시절에 생을 마감한 그들이 남긴 글들.

서로 만난적은 없지만,

 

 

 

. 나도 글 쓰고 싶다.

 

 

 

 

 

내가 이 세명의 글쟁이들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들을 소개하며 이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절벽 - 이상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그나저나 이 리뷰는 이틀에 걸처서야 완성했다.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댓글 8
종이책 [못다핀 청년시인] 쉽고, 어렵고, 치열하고 평점10점 | h******o | 2018.07.29 리뷰제목
1.처음에는 천천히 읽고 리뷰도 1차리뷰랑 완전체 리뷰랑 나누어서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 장을 읽었다. 윤동주의 서시. 그러고 나니 다음 장이 읽고 싶어졌다. 자화상. 자화상을 읽고 나니 또 다음 시가 읽고 싶어졌다. 이렇게 해서, 책장은 마구마구 넘어간다. 윤동주의 시들은 밤에 읽었고, 이상과 박인환의 시들은 아침에 읽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
리뷰제목

1.

처음에는 천천히 읽고 리뷰도 1차리뷰랑 완전체 리뷰랑 나누어서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 장을 읽었다. 윤동주의 서시. 그러고 나니 다음 장이 읽고 싶어졌다. 자화상. 자화상을 읽고 나니 또 다음 시가 읽고 싶어졌다. 이렇게 해서, 책장은 마구마구 넘어간다. 윤동주의 시들은 밤에 읽었고, 이상과 박인환의 시들은 아침에 읽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도 좋은 시들이 많아서, 너무도 나를 매혹시키는 문구들이 많아서.

 

2.

윤동주의 시는 쉽게 나의 마음을 울리고 이상의 시는 어렵게 나의 머리를 울리고  박인환의 시들은 치열하게 나의 온몸을 울린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일부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윤동주의 시를 보면서,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글을 이렇게 쉽게 쓴다는 것.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낸다는 것. 그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까.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니므로,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억지위안을 찾는다.

 

나는 동주 형이 시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시를 쓴다고 야단스레 설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는 사상이 능금처럼 익기를 기다려서 부끄러워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양 쉽게 시를 썼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를 쓰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취미로 시를 쓴다고만 생각했었다. 한데 근 몇 수의 시를 남기려 세상에 왔던 것이다. 그의 가장 동주다운 멋은 역시 그의 시에 나타나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그는 사상이 무르익기 전에 시를 생각하지 않았고, 시가 성숙하기 전에 붓을 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 한수가 씌어지기까지 그는 남모르는 땀을 흘리기도 했으련만 그가 시를 쓰는 것은 그렇게도 쉽게 보였던 것이다.

-문익환 <동주 형의 추억> 중

 

『못다핀 청년시인』에는 윤동주, 이상, 박인환의 시뿐만 아니라 각각의 시인에 대한 특집이 실려 있다. 윤동주의 특집은 추모글이 실려 있고, 이상의 특집에는 그의 생가에 대한 소개와 생에 대한 간단한 글이 실려 있다. 박인환의 특집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실고, 잘못 실린 표석의 문구도 실어놓았다. 그의 책을 보지 않아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아야겠기에, 그에 관련한 글을 실어놓는다.

 

이곳은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이 1948년부터 1956년까지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였던 장소이다. 1955년에는 『박인환 시선집』을 냈으며 「목마와 숙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어지고 하였다. (세종로 박인환 생가 터 표석에 새긴 글 - 현재 교보문고 광화문 빌딩 뒤편주차장 )

 

이 짧은 표석의 문구는 두 군데나 사실과 다르다. 첫 번째로 1955년에 출간한 박인환 시집의 제목은 『박인환 시선집』이 아니라『박인환선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은 엄연한 고유명사이므로 그대로 써야지 마음대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시집 제목은 시인의 혼이 깃들이 있는 창작물이므로 더욱 그렇다. 두 번째 오류는 박인환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는 「세월이 가면」이 아니다. 이 작품은 노래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이 불러 유명해졌달 뿐이지 결코 마지막 작품이 아니다. 박인환 시인 발표한 마지막 작품은 1956년 3월 17일자 한국일보에 발표한 「죽은 아폴론」이다. 죽기 바로 사흘 전이다. 이 상을 너무 좋아한 박인환 시인은 3월 17일일 그의 기일로 착각하고는 그날에 맞춰 추모 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만약에 교보빌딩 관계자나 종로구청 담당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곧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 p.288

 

나는 공공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는 게 행복하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닌다. 윤동주의 글을 읽다보니, 그런 내 모습이 잠시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윤동주는 윤동주고 나는 나니까. 윤동주시인의 시가 좋은 거하고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거하고는 또 다른 거니까. 그렇게 나만의 위안을 찾는다.

 

 

3.

 

이상의 시에는 띄어쓰기가 없다. 그런데, 기타 시 중에 띄어쓰기가 있는 시가 있다. 진짜 띄어쓰기를 한 것일까,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시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자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 세상에 대한 사표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버렸다 /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 나에게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그라져버렸다 // 나는 아무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도 보이지 않을 게다 / 처음으로 나는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 이상 <회환의 장>

 

이상이 두 번의 결별을 겪으면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된 것일까. 이 회의주의조차, 이상의 시에서는 온전한 회의주의로 보이지 않는다. 살아가고 싶어서 이렇게 해야 살아지니까 이런 시를 남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못다핀> 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4.

박인환의 시들은 치열하다.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란 시가 대표작으로 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 기를 꽂고 산들, 무얼 하나 / 꽃이 내가 아니듯 /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 물빛 몸매를 감은 /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 하나

- <얼굴> 일부

 

그 외에도 많은 시들이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 시 중에 <불행한 신>이 있다.

 

오늘 나는 모든 욕망과 / 사물에 작별하였습니다 / 그래서 더욱 친한 죽음과 가까워집니다. / 과거는 무수한 내일에 잠이 들었습니다. / 불행한 신 / 어디서나 나와 함께 사는 / 불행한 신 / 당신은 나와 단둘이서 / 얼굴을 비벼 대고 비밀을 다 터놓고 / 오해나 / 인간의 체험이나 / 고절된 의식에 /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 또다시 우리는 결속되었습니다. / 황제의 신하처럼 우리는 죽음을 약속합니다. / 지금 저 광장의 전주처럼 우리는 존재됩니다 / 쉴 새 없이 내 귀에 울려 오는 것은 / 불행한 신 당신이 부르시는 / 폭풍입니다 / 그러나 허망한 천지 사이를 / 내가 있고 엄연히 주검이 가로놓이고 / 불행한 당신이 있으므로 / 나는 최후의 안정을 즐깁니다.

- 박인환 <불행한 신>

 

5.

비록 못다핀 청년시인들은 갔지만, 그분들의 시들은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최후의안정을 즐길 것이다. 그분들이 남긴 시들이 있기에, 오늘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시를 읽을 수 있고,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또 이렇게 『못다핀 청년시인』이란 이름의 유고시집이 나오게 된 것 아닌가. 그분들이 남긴 시들로 인해, 오늘날의 시들은 많은 발전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시들이 읽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못다핀 청년시인』을 읽으며 내 마음속의 잡다한 마음이 사라지고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삶의 의지를 태워본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을 통해 스타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8
종이책 못다핀 청년시인 평점9점 | h*****7 | 2018.08.02 리뷰제목
나이 서른을 공자는 이립(而立)이라고 했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이들도 허다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기 ‘못 다 핀 청년시인’들은 험한 세상에 태어나 저항정신과 시를 향한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서른도 못되어 요절한 시인들이다. 저마다 타고난 시대는 사람을 단련하고 성숙하게도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
리뷰제목

 나이 서른을 공자는 이립(而立)이라고 했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이들도 허다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기 못 다 핀 청년시인들은 험한 세상에 태어나 저항정신과 시를 향한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서른도 못되어 요절한 시인들이다. 저마다 타고난 시대는 사람을 단련하고 성숙하게도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이들의 음성은 꽃이 되어 빛났다. 소녀의 감성을 적시던 윤동주의 시, 난해하여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이상의 시, 왠지 낭만의 대명사로 느껴지던 박인환의 시까지. 저항시인이자 서정시인 이라 불리는 이들의 시 중에서 각 41편씩 골라 총 123편이 실려 있다.

 

 서로 만나지도 못했다는 이들의 특별한 인연으로 엮어진 운명 또한 묘했다.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이상, 또 이상을 너무 좋아해 그를 기리는 추모회를 주선하고 사흘 내내 폭음하다 요절했다는 박인환. 무엇이 그렇게 그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붙잡았을까. 시 뿐만 아니라 민윤기 시인이 취재한 그들의 흔적이 담긴 사진 자료라든가 각 시인들의 가까운 지인들의 추도 시 및 발문, 후기 등이 실려 있어서 시인들의 내면적인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윤동주의 서시(序詩)’, ‘별 헤는 밤은 우리가 그 시절 늘 사용하던 연습장의 겉표지에 시와 그림으로 나타나 얼마나 소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가. 아마도 그 시절이 시를 가장 많이 접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어머니

 

어머니!

젖을 빨려 이 마음을 달래여주시오.

이 밤이 자꾸 서러워지나이다.

 

이 아이는 턱에 수염자리 잡히도록

무엇을 먹고 자랐나이까 

오늘도 흰 주먹이

입에 그대로 물려있나이다.

 

어머니

부서진 납인형도 쓰러진지

벌써 오랩니다.

 

철비가 후누주군이 나리는 이 밤을

주먹이나 빨면서 새우리까 

어머니! 그 어진 손으로

이 울음을 달래여주시오.

-윤동주-(1939)(P69)

 

 식민지 치하에 너나없이 굶주림이 일상이 된 고통스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먹지 못하니 젖인들 잘 나오겠는가. 어린 것은 손을 빨고 있다. 어서 젖을 빨려서 이 마음을 달래어 달라고 한다. 배고픔뿐만 아니라 마음은 얼마나 허기가 졌을까. 자유를 뺏겨 힘도 없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허기진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비마저 내리는 그 밤, 울분은 괜히 죄 없는 어머니에게 향한다. 안타깝고 간곡한 어조가 더욱 서럽다.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던 윤동주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돈이건 시간이건 모두 내어주면서도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거부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시를 고치는 것에 대한 고집이 있었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렇게 친한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부르짖었던 윤동주는 애석하게도 19452월 조국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천재 시인 이상의 시는 옛날에도 어려웠으나, 오랜만에 읽었어도 여전히 어려웠다. 예전부터 천재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왜 알기 쉬운 언어로 쓰지 않는 것일까. 그 천재를 알아보고 그 시를 읽고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 있었을 거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자주 읽다보면 좀 이해가 될까. 오감도는 그 절정이다. 13인의 아해(兒孩) 도로로 질주하는 모습, 대부분 띄어쓰기가 없이 붙여서 쓴 시들을 읽는데 역시 글자만 읽을 뿐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육친(肉親)의 장()

 

나는 24. 어머니는바로이낫새에나를낳은 것이다. 성쎄바스티앙

과같이아름다운동생. 로오자룩셈불크의 목상(木像)을닮은막내누

. 어머니는우리들삼인(三人)에게잉태분만의고락을말해주었다.

나는삼인을대표하여-드디어-

어머니 우린 좀더형제가있었음싶었답니다

-드디어어머니는동생버금으로잉태하자육개월로서유산한전말

을고했다.

그녀석은 사내댔는데 올에는 19(어머니의 한숨)

삼인은서로들알지못하는형제의환영을그려보았다. 이만큼이

나컸지-하고형용(形容)하는어머니의팔목과주먹은수척하였다.

번씩이나객혈을한내가 냉청(冷淸)을극()하고있는가족을위하여빨

리아내를맞아야겠다고초조하는마음이었다. 나는 24세 나도어머니

가나를낳으드시키무엇인가를낳아야겠다고생각하는것이었다.

-이상-(P110)

 

 24세의 어머니가 를 낳고 그 내가 24세가 되었나보다. 여동생은 성 세바스티앙도 닮고 혁명가 로자룩셈부르크도 닮은 모양이다. 형제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들에게, 죽 둘러앉아 오래전 남동생을 유산한 사연을 전하는 어머니. 수척한 어머니를 보면서 어서 아내를 맞아야겠다고 초조해 했지만 병약한 몸으로 서른도 못 살고 간 이상 시인의 비애. 육친의 정이 느껴지는 이 시가 짠하게 다가왔다. 어려운 시들이 가득한 가운데서 이 시는 가장 내밀한 이상의 시라고 해야 할까.

 

 천재시인이자 소설가, 빼어난 건축가였으며 그림 솜씨가 뛰어났고 훌륭한 편집디자이너이자 명수필가였던 이상의 죽음을 듣고 김기림은 한국문학이 50년 후퇴했다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이상 특집으로 이상의 생애에 특별한 장소열 곳을 소개한다. 사직동 생가 등 운명의 여인 금홍을 만났던 제비다방, 일본 도쿄역과 마루노우치 일대, 긴자의 과자점 센비끼야 까지. 폐결핵이 악화되어 동경제국대학부속병원에서 267개월 삶을 마감하고 화장된 유해는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하였지만 지금은 주택가로 재개발되어 무덤들은 흔적이 사라졌다 한다. 이상의 묘소 역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후략)

-박인환-(P210)

 

 학창시절 자주 접했던 이 시를 외우면서도 버지니아 울프를 알지 못했다. 왠지 외국어 명칭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왠지 멋져만 보이던 기억이다.세월이 가면과 위의 시로 박인환 시인의 전부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는데 이제는 그 밖의 시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인환 시인의 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낯익은 시가 이 두 편 밖에 없다니. 이제 고통을 짊어지고 순수를 노래했던 세 시인의 시를 알게 됐으니 한 편 한 편 소리 내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대표적인 시 몇 편만 알고 있었는데 많은 시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삶을 마쳤지만 이 시인들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청년시인으로 남아있다. 험난한 시절에 태어나 조국의 자유를 찾기 위해 저항하고 고통을 무릅쓴 숭고한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시를 향한 열정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주지 않았을까.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했던 이들의 육성이 소중한 시로 남았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시를 읽으면서 소통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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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영원한 청년시인, 윤동주, 이상, 박인환..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18.07.30 리뷰제목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이다. 분명 시를 읽고서 알지 못하는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시는 읽는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어떤 시는 그저 좋아 암송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시는 노트에 써넣고 시간이 날때마다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시인을 그리고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기도 했다. 학교 다니
리뷰제목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이다. 분명 시를 읽고서 알지 못하는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시는 읽는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어떤 시는 그저 좋아 암송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시는 노트에 써넣고 시간이 날때마다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시인을 그리고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기도 했다. 학교 다니면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를 공부할 때면 남들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분해한 것을 무작정 외우면서 시란 의례 그렇게 읽는 것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누구도 시를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시를 읽곤 한다. 그렇지만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저 써 있는 그대로를 읽고 느낀 그대로를 생각할 뿐이다.

 

  이상, 윤동주, 박인환 이들이 시인이란 것, 그리고 요절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무작정 외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30년도 살지 못하고 요절한 스물 일곱의 이상, 스물 여덟의 윤동주, 스물 아홉의 박인환은 사는 모습은 달랐지만 시에 대한 열망은 누구도 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책의 머리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이상을 사랑했다는 시인 윤동주, 이상을 좋아해 그를 기리다 요절했다는 시인 박인환. 이들 세 시인들의 운명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들의 시를 한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들 시인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던 해 태어난 이상을 나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의 작품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오감도], [날개], [건축무한 육면각체]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난해하기 그지없었고, 그의 짧은 생애는 흔히 천재들이 그러하듯 기이함 만을 안겨주었다. 그러다 일전에 그의 생애에 대해 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천재였기에 오히려 박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분명 그의 시들은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지만 이 책에 실린 41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아마 아직도 나는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일 게다.

 

  나에게 시인 윤동주의 삶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식민지 치하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를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평범한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체제와 통념을 거부하고, 조국과 동포의 고달픔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삶과 시를 읽으면서 나는 현실을 이상으로 바꾸려는 시인과 같은 젊은 삶들이 있었기에 우리역사가 그나마 이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가 진실로 사랑했던 것은 시인 이상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보는 이상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인이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위에/내 이름자를 써보고/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고 노래했던 것은 아마 폐결핵으로 동경제대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이상이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나는 그의 [서시]는 내가 암송할 수 있는 시인의 유일한 시이기도 하다.

 

  이상이나 윤동주에 비해 박인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단지 그의 시 [목마와 숙녀], 그리고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세월이 가면]을 들어 보았을 뿐이다. 또한 시인 박인환을 이상이나 윤동주와 함께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그들의 삶이 해방전후로 나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시인 이상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박인환은 아마 술병에서 별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동주의 시는 많이 접해보았지만 이상이나 박인환의 시는 그들의 대표작 말고는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 읽었더라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일 게다.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던 이 책에서 그들의 시를 한편한편 읽어보면서 시인들의 삶과 운명을 생각해 본다. 시와 함께 실려 있는 시인들의 삶에 대한 해설은 내가 미처 몰랐던 시인들의 세계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서른이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 시인들, 그래서 시인들은 영원한 청년으로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와 함께..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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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윤동주, 이상, 박인환 - 못다핀 청년시인 평점10점 | o*****s | 2018.08.08 리뷰제목
1. 사람이 되고 싶은 아우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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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되고 싶은 아우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아우의 붉은 이마를 싸늘한 달이 비춘다. 붉은 이마와 싸늘한 달이 맞물린 아우 얼굴에서 시인은 슬픈 그림을 본다. ‘슬픈이라는 시어가 마음에 걸린다. 아우 얼굴을 보며 형은 왜 슬픔을 느낄까? 형이 발걸음을 멈추고 살그머니 아우의 앳된 손을 잡는다. 그리고는 묻는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아이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사람이 되지”. ‘사람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마음에 걸린다. 사람이 될 거라는 아우 말에 시인은 서러움을 느낀다. 무엇이 서러운 것일까? 사람이 될 거라는 아우 말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아우는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거나, 돈 많이 벌어 가족들 호강시켜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사람이 된다는 건 사람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살겠다는 마음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본분을 지키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시인은 그것이 못내 서럽다. 사람으로 사는 게 힘든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겠다는 아우 말에 서러움을 느끼는 이 마음이 참으로 서럽다.

 

아우는 아직 이 세상을 모른다. 일제 강점기를 조선인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서러운지 모른다. 시대 상황과 거리를 두고 있기에 아우는 사람의 본분을 지키며 살려고 한다. 마음속에 순수를 품고 추악한 세상을 사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라는 작품에는 인간에게 불을 준 대가로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뜯어 먹히는 프로메테우스가 나온다. 시인은 프로메테우스를 고전소설 󰡔토끼전󰡕에 나오는 토끼와 연결시킨다. 용왕에게 간을 빼앗길 뻔한 토끼와 제우스의 명령을 어겨 지독한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는 당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조선인을 상징한다. ‘은 생명이다. 간이 없으면 생명은 살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을 빼앗기고 죽은 듯 사는 조선인을 보며 시인은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사람으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라는 진술로 시인은 아우를 향한 애달픈 마음을 직설법으로 표현한다.

 

시인은 아우 손을 슬며시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얼굴이다. 시간이 흐르면 저 얼굴에도 세상 때가 시나브로 묻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우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때도 사람이 되지라는 말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을까? 품어도 문제이고, 품지 않아도 문제이다. 순수를 가슴에 새긴 채 사는 삶을 시인은 이미 알고 있다. 바람에 나뭇잎이 일렁이는 장면을 보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험난한 시절을 보낼 수 있을까? 시대는 순수를 원하지 않는다. 시대는 전쟁터에 나가 무자비하게 적을 죽이는 영웅을 원한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이 영웅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지닌 아픔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강한 자만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 전쟁터에서 순수니 하는 너저분한 말로 어떻게 살아남을까? 사람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어도 시대가 그를 죽일 것이고, 이 말을 품지 않아도 시대가 그를 죽일 것이다.

 

시인은 아우의 슬픈 얼굴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본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서 아우가 가야 할 길을 미리 보고 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형과 아우는 둘이지만 이미 한 운명으로 감싸여 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시인은 아우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빛이 젖어 있는 걸 본다. 아우가 맑은 눈으로 시인을 본다. 붉은 이마에 서린 싸늘한 달빛이 그 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문득 시인은 아우 눈에 비친 자기 눈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별을 꿈꾸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 마음을 꺾는 바람 또한 만만치 않게 사방에서 불어온다. 시인은 아우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품은 순간 이 거센 바람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거라는 걸 잘 안다. 아우가 품은 뜻을 존경하는 마음과 아우가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시대 사이에서 시인은 끝도 없는 고민에 빠진다.

 

이 시에는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라는 구절이 두 번 반복된다. 1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작과 끝에 이 구절을 배치할 만큼 시인은 아우 얼굴에 서린 슬픔이 자꾸만 눈에 걸린다. 물론 그 슬픔은 아우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픔이 투영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아우의 인상화(印象畵)’라는 제목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얼핏 스친 아우 얼굴에서 슬픔을 보고, 그 슬픔을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그대로 투사한다. 아우는 지금 시인이 살아온 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시인은 그 너머에 깊은 슬픔이 있는 걸 알면서도 아우에게 다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 사람으로서 사는 길을 걷지 않으면 달리 갈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은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사는 삶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 마음을 시인은 차마 아우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저 아우가 사는 삶을 지켜볼 도리밖에는 없다. 아우는 어쨌든 아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2. 끊임없이 변이하는 시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상의 오감도

 

    

시의 변이라는 말에는 시는 변화하는 양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변이(變異)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짐을 의미하는데, 시의 변이를 이에 대입한다면 우선 무엇으로부터 시의 변이가 이루어지는지를 밝혀야 한다. 한국시의 중심에 서 있는 이상(李箱) 시의 경우, 1930년대의 이상 시와 이전 시대에 발표된 시들과의 관계를 통해 변이의 여부가 밝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의 변이를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변이의 기준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시의 변이를 규정짓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귀납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시의 변이는 어떤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시의 변이는 시와 관련된 수많은 현상들이 집적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1920년대 근대시의 대척점에 이상 시가 있다면, 그것은 이상 시에 함유된 시적 맥락이 전대의 시 양식과는 다른 (의식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시의 변이는 바로 이러한 시적 의식의 변이라는 맥락 속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되어야 한다. 이상의 오감도 제1라는 작품을 통해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이상의 오감도조감도(鳥瞰圖)’의 의도적 오기(誤記)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오감도연작시를 보면 이상이 의도적으로 근대시의 조감에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시를 쓰려고 했다는 점만은 분명한 듯싶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그는 근대시의 범주를 벗어나는 ()근대시의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 이상의 이러한 의식은 오감도 제1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 시는 달리기 시작하면 막혀버리고, 멈추면 뚫려버리는 이상한 골목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공포를 담고 있다. 무서운 아이와 무서워하는 아이로 구성된 열세 명의 아이들은 달리면 닫히고, 멈추면 열리는 이상한 골목을 끊임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들은 골목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역설적으로 골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골목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달리는 척하는 것일까 

 

이상은 골목의 공포(혹은 놀이?)에 온몸을 내맡긴 아이들의 정신으로부터 전대의 근대시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의 세계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이들의 골목은 근대의 조감도로는 해석할 수 없는 미로, 곧 판타지의 공간이다. 골목은 근대세계의 너머에 있고, 이성의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판타지의 세계이다. 그러니 거기에서는 달리면 골목이 열리고, 멈추면 골목이 닫히는 역설의 세계가 거울 속에 비친 상()처럼 연속해서 뻗어 있다. 이상한 골목을 질주하는 아이들의 공포가 즐거운 놀이로 변주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거니와, 어찌 보면 이러한 시적 놀이의 정신이 이상 시의 변이를 예증하는 단서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한국시는 이상 시에 이르러 그때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신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만든 언어의 세계는 아이들의 놀이에 나타나는 판타지를 변주한 세계였으며, 그것은 그만큼 그가 당대의 이성적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라는 양식에 접근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상의 또 다른 시 詩第十五號를 참조한다면, “거울없는室內에서 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있”(詩第十五號)는 이상의 시적 주체는 근대의 공포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를 족쇄처럼 껴안고 있다. 그는 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거울 속으로 몰래 들어가지만, “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굴로동시에꼭들어오는 상황에 곧바로 직면한다. 현실의 나는 거울 속의 나 때문에 거울 속()에 갇혀 있고, 거울 속의 나는 현실의 나 때문에 거울 밖()에 갇혀 있다. 거울 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서로를 가두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서 해방되려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골목의 너머는 골목의 안쪽에 있다. 거울 속의 세계는 거울 밖에 있다. 그러니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면 거울 밖으로 나가야 하고, 골목 밖으로 나가려면 골목의 안쪽으로 더욱더 들어가야 한다.

 

근대를 향한 이상의 공포가 발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1930년대 이상 시는 이러한 역설의 주체를 내세움으로써 한국시의 새로운 변이를 이끌어낸 셈이다. ‘변이라는 말에 내포된바 그대로, 시의 변이는 곧 시의 의미의 확산이라는 맥락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이전까지는 시로 인정되지 않던 내용(=형식)이 시로 인정되는 순간, 시는 변이의 과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당대인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시()시의 논리로 끊임없이 변이한다. 이상 시는 시의 변이에 함유된 이러한 맥락을 예시하고 있는바, 그의 시에서 우리는 당대의 일반적 정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 새로운 정신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3. 당신의 서늘한 입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박인환,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동시에 시인은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고 쓰고 있다. 이름을 잊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잊은 건 아니다. 이름을 잊는 것과 눈동자, 입술을 기억하고 있는 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인은 사랑을 노래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의 감각을 노래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왜 잊을 수 있는 걸까? 이름은 가슴에 새겨진 감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사람을 이름이 아니라 눈동자로 입술로 기억한다. 한없이 소중한 그 사람은 감각으로 남아 여전히 사랑에 빠진 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 눈동자와 입술은 관념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 사람 눈동자에 물기라도 비쳤으면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눈물만으로도 그 사람을 기억한다. 촉촉한 입술에서 느끼던 그 감각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는가? 눈동자를 통해, 입술을 통해 시인은 그 사람을 기억한다. 감각으로 새겨진 기억. 지금 그 사람은 시인 곁을 떠났지만, 그 사람의 감각은 아직도 시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게 사랑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별다르지 않은 이 풍경이 왜 시인의 마음을 울리고 있을까?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시인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날 그 가로등에서 두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인과 그 사람만 아는 이 기억으로 하여 헤어진 두 사람은 하나로 묶인다. 헤어진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 추억은 그리움이다. 그 사람과 함께 갔던 그 길을 나 홀로 걷다 보면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추억이 떠오른다. 추억은 무의식이다. 이별한 사람에게 추억은 억압해야 할 세계라는 말이다. 하지만 억압을 할수록 더 짙어지는 게 또한 추억이기도 하다. 왜 그 밤을 잊지 못할까? 그 밤은 시간도, 공간도 아니다. 그 밤은 단지 그 밤일 뿐이다.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그곳에서 그늘의 밤이라는 감각이 밀려나온다. 그곳에 그냥 남아 있는 밤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미지로 표현되는 감각.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다. 옛날은 추억이다. 절대적인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사람은 남은 삶을 살아간다. 기억에 남은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에서도 분명 시간이 흐를 것이다. 그런데도 헤어진 연인(戀人)은 그곳을 시간이 흐르지 않는 절대공간으로 비워둔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곳은 그대로 거기에 남아 있다. 절대공간에는 의미가 없다. 아니, 오로지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하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억이다. 잊히지 않는 감각이다. 머리에 박힌 그 감각=기억으로 하여 그곳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실재가 된다. 실재가 출현하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뒤흔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현실 바깥에 있어야 할 실재가 현실을 지배하는 격이니, 실재와 맞부딪친 사람은 옛날에 사로잡혀 미칠 도리밖에는 없다.

 

사랑은 갔다. 옛날이 남아도 사랑이 갔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억은 이미지일 따름이다. 이미지는 시간을 넘어서 있다. 헤어진 연인이 추억을 실물처럼 느끼면 어떻게 될까? 시간 밖에 있는 세계가 경계를 넘어 현실로 밀려들어온다. 사랑이 그리움을 넘어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은 지나간 사랑에 집착하는 상황에 빠져버린다. 그 사람 눈동자와 입술을 실물로 느끼는 연인을 상상해 보라. 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다. 여기에 없는 그 사람을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직도 실물로 느낀다. 보내야 할 사람을 보내지 않고 가슴에 묻은 자가 내보이는 멜랑콜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그 사람 이름을 잊은 연인은 그래서 한없이 서늘한 가슴을 느낀다. 명치 부근에 묵직한 게 느껴지는데 손 쓸 도리가 없다. 옛사람들이라면 ()’이라는 말로 이 마음을 정리했으리라.

 

시인은 지금 멜랑콜리와 애도 사이에 놓여 있다. 떠난 사람은 보내야 한다는 걸 시인은 분명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보내려는 마음을 낼수록 가슴을 묵직하게 하는 돌덩어리는 더욱 무거워진다. 그 사람의 눈동자와 입술을 그는 왜 가슴에 묻었을까? 보낼 수가 없어서이다. 멜랑콜리에 휩싸여 보내야 할 이를 떠나보내는 애도 의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 게 애도 의식에 담긴 의미이다. 이승과 저승은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 곳에 있다. 설사 두 곳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살아있는 인간은 그 경계를 넘을 수 없다. 그 사람 이름을 잊었으면 그 사람 눈동자와 입술도 잊어야 한다. 그 사람과 감각을 나누었으니 그 감각 또한 씻어내야 한다. 감각으로 새겨진 사랑은 이토록 잊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가슴에 묻은 그 눈동자와 입술을 그만 세상으로 풀어 놓으시길, 제 갈 길로 가게 훌훌 놓아버리시길. 그래야 당신도 살고 그 사람도 산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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