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범인과 관련한 내용이 많이 있음을 밝혀둡니다.
한 때 나는 이른바 '영감'야말로 창작에 있어서는 폭발적인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그 무엇을 잡아 한편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힘, 그 잠깐의 영감에 미친듯이 악보에 음표를 그려넣는 작곡가며, 일필휘지로 시를 완성하는 시인을 연상하곤 했다.
그리고 이 영감은 번개처럼 하늘에서 내리치는 천부적인 것이고, 영감이 다 소진되면 창작력이 고갈되는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환상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구월의 살인'은 작가가 조선왕조 실록에서 소재를 구한 작품이었다. 효종의 즉위하던 해, 백주 대낮에 국문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를 당했다는 단 여덟줄의 기록. 살인 범행은 자백했지만 자신은 피살자 김태길의 종이라는 사실만큼은 끝내 인정하지 않은 채 죽고 만 것이다.
내눈에는 그저 사연있는 살인사건으로 비춰졌던 이 사건이, 작가의 눈에는 4백년도 훨씬 더 전인 이 사건의 결말이 수상하게 보였나보다. 그 뒤 각종 사료를 찾아 살인사건의 이상의 그무엇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사건을 소설로 세상에 선보였으니.
제목을 보고는 구월의 살인을 9월달에 벌어진 사건인가? 했는데, 살인자의 이름이 구월이었다. 그녀는 백주 대낮에 목격자가 있는데도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른 것인데, 처음에는 강도사건으로 마무리 됐던 이 사건은 피살자의 후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시 수사를 하게 되는데..
형조 좌랑 전방유. 계의 수장인 노장. 윤선달 그리고 범인인 구월. 이렇게 4인이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는 인물이었다.
전방유는 수차례 과거에 낙방하고는 결국 음서로 형조 좌랑이 되었다. 의무보다는 권리가 많았던 지배계급 사대부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뜻밖에도 자신에게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이 사건에도 전모를 밝히기 위해 뛰어들었다.
주인에게 겁간을 당한 여종 작은년. 하지만 수태한 그녀는 팔려가고, 아들만 남긴채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작은년에게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려나서는데, 그가 바로 윤선달이었다.
구월은 남편 노비 석산이 김태길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되자, 복수를 다짐한다. 윤선달과 구월의 복수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 계(契)의 수장인 노장이었고.
구월이 복수의 칼을 가는 그 심정이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자신의 눈 앞에서 남편이 그렇게 잔혹하게 죽음을 당했으니 그 상황에서 미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 대목을 읽는것만 해도 몸서리가 쳐쳤는데, 만약 피살자의 아내라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했다.
결론적으로 구월은 남편의 복수를 갚는데 성공했다. 비록 살인자가 되는 순간이었지만 잔혹하기 이를데 없었던 김태길의 몸에 비수를 찔러 그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 그녀는 분명 남편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이되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던 노비, 생명을 잉태하고 있어도 거래가 가능한 말할 줄 아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했던 존재.
살인을 한 구월은 잡혔지만, 그런데도 사건이 일단락된 것이 아니었다. 엉뚱한데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녀의 신분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구월이 공노비였냐 사노비였냐. 그 문제로 임금과 신하들은 이견이 생겼는데, 그녀가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 그녀에 대한 처벌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노비라면 주인을 살해한 강상범으로 역모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의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공노비인경우 남편의 복수를 한 상황이라는 정상을 참작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이 나기도 전에 구월은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으니, 아마도 구월은 자신의 신분이 어떻게되는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구월이 죽는 순간 기억해낸 것은 "자유롭지 않으면 희망같은 건 없다" 며 주인 김태길에게 바깥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던 남편의 당당함이었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 용감했던 남편의 아내로,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그녀는 숨을 거두었을 것이었다.
인간이되 인간이지 못한 존재. 신분제는 그렇게 존재의 의미를 나누어놓았다. 그리고 제도로 굴레로 개개인의 삶을 구속했고,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틀 안에 갇히게 만들었다.
서두에서 영감의 힘에 대해 언급했지만, 나는 영감을 찰나적이고 섬광처럼 스쳐가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는데, 창작가에게 영감이 되는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었던 그 시대적 상황과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 그것에 응시하고 파고들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것, 문제의식과 인간과 시대에 대한 호기심, 상상력 그것이 바로 작품을 낳는 힘, 작가에겐 궁극적 영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더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는데 이 소설 '구월의 살인'은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그런 특이한 소실이다
古語가 난무하다보니 친절한 해설에도 불구하고 페이지 당 모르는 낱말이 10여개는 족히 되는 듯
신기한 건 모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전체적인 얼개를 이해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전방유라는 일종의 수사관,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구월, 그를 좁은 윤선달과 인물들... 그들의 내력이 불쑬불쑥 밀고들러와 여간 집중을 하지 않으면 흐름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종 임금 때 이런 사건이 있었고 시건이 있었다는 팩트 하나로 빈틈없는 취재와 상상력으로 소설을 이끌어 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한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구월의 분노와 진방유의 노련함이 더 드러날 듯
<구월의 살인>은 <미실>을 통해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1649년 음력 10월, 조선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 벌어졌다. 석양이 내릴 무렵의 오후, 도성 한복판에서 살인이 벌어진 것.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결정적인 사인은 묘연하고, 동행하던 무관은 입을 열지 않는다. 본래 강도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던 이 기이한 사건은 당대 미제를 해결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형조 좌랑 전방유의 손에 맡겨진 뒤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책에서 전방유가 검험에 자질을 보이며 정의는 부정의 부정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앞으로 자네가 만나게 될 건 거짓일세. 무수한 거짓들이, 잘 장치된 기만들이 자네를 속이려고 달려들 걸세. 정의를 세우기 이전에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법부터 깨달아야 하지."
"점차로 전방유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득실을 위해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이들이었다. 차라리 죽은 자의 말에, 남아있는 시신의 웅변에 귀를 기울였다. 집요하게 사실을 파헤치다 보면 마침내 진실에 닿으리라 믿었다. 죽음처럼 변하지 않는 어떤 것에."
김태길을 죽인 구월은 김태길에게 양역을 살았으나 남편이 죽은 뒤 내수사에 투속해 인평 대군의 궁노임을 자처했다. 스물다섯의 젊은 여인이 대낮에 도성 한복판에서 살인극을 벌인 범행은 흔치 않은 범행이었으나, 사건 처리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구월의 살인이 전에 없이 잔혹하고 우아한 것은 그녀가 사랑의 힘으로 다른 것을 꿈꿨기 때문이다. 얼음같이 투명하고 명징한 복수심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설가 김별아는 <구월의 살인>을 통해 역사의 기록 속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사람의 풍경으로서 기대를 이해하기 위한 분투의 계속됨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김별아 소설가가 즐거운 침묵과 상상의 훈련이라는 추리라는 장르를 통해 조선 사회의 시대상을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기축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검시관인 전방유
노장의 오른팔을 하는 윤선달
연약하나 강인한 구월
이들을 둘러싼 살인과 숨겨진 사연의 이야기...
백주대낮에 일어난 살인사건, 임금과 신하간의 힘겨루기로 이어지는 과정!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번 실렸다는 기사를 바탕으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공감을 한다. 3대 여인네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