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가 넘어져 있을때도 쉼없이 흘렀다.'
부제 - 어린 나는 그곳을 여권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저자 - 김민섭
제목 때문에 고른 책이다. ‘아무튼 망원동’이라니. 90년대에 망원동으로 이사 가,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성산동에서 살고 있으며 몇 년 전까지 망원동 쪽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상당히 끌리는 제목이었다.
책은 2017년도에서 시작해 2016년,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4년까지 갔다가 다시 2017년으로 돌아와 마무리를 짓는다. 그 시간 여행 속에서 저자는 작업실을 구해 글을 쓰는 작가에서 군인, 대학생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어려졌다가 다시 아이가 있는 가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망원동은,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추억의 장소에서 점차 옛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즐겨 찾았던 가게들이 남아 있는 모습에 반가워하고, 사라진 상점 터를 보면서 아쉬워했다.
지금은 2020년이 끝나가고 있으니, 이 책이 나온 2017년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 저자가 아직도 있다고 반가워했던 ‘서교 가든’은 여름이 지나면서 코로나 19를 버티지 못해 문을 닫았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망원 우체국’ 역시 사라졌다. 아직 ‘망원 시장’은 남아 있지만, 그 안의 가게들도 많이 바뀌었다. 얼마 전에 갔을 때, 아직도 몇몇 가게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예전에 어린 조카들의 손을 잡고 주말마다 장을 보러 갔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실 장을 보는 것보단, 조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사러 갔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추억의 시간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고향이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낳고 자란 장소가 아니라, 정서적 안정을 주고 마음 깊은 곳에 지지대이자 버팀목이 되는 곳,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그런 곳. 저자뿐만 아니라, 그 친구들에게도 망원동은 그런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 같다.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왔던 걸 보면 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사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아 하고 있으니까.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그건 이 동네, 그러니까 망원동과 성산동 골목 골목에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나 놀았던 신촌과 홍대, 조카들 손을 잡고 주말마다 돌아다녔던 망원 시장, 설날에 작은 집으로 갈 때 지났던 망원동 유수지, 여름에 돗자리와 음료수를 들고 찾았던 한강 공원, 운동한다고 올라갔던 성미산, 조카들 숙제를 위해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던 망원동과 성산동의 이곳저곳……. 지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기억으로 가득한 곳이어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도 약간 언급되고 말았지만, 문제는 집값이다. 홍대 연남 상수를 강타한 집값 폭등은 망원동과 성산동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때문에 추억으로 가득한,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을 떠나야 한다는 건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다.
10년, 20년이 지난 후, 이 동네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그때는 이 동네가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도 알고 싶다.
나는 '고향'에 대한 추억이 없다.
워낙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이리라.
기억하는 것만 해도 수원 탑동, 서울 보광동, 수원 송죽동, 용인 추계리, 용인 양지리.
지금의 주민등록지는 용인 양지리이다. 어쩌면 이제는 고향이라 부를 법도 한 동네지만, 부모님이 이사 다니기를 끝내신 이후론 내가 그리도 돌아다녔다.
고등학교는 안성에서, 대학은 수원에서, 군인으로 영천을 갔다가, 연기군(지금의 세종시)으로, 직장은 수원에서 서울로, 다시 수원으로.
그래서인지 내가 죽마고우라 할 수 있는 친우는 동네친구도 아니요, 초중고 동창도 아니다. 중3때 만난 흑석동 살던 그 친구라는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한 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추억하는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고향의 상실'은 어떤 의미일까. 그 '상실'을 나는 해를 걸러 한번씩은 겪어왔는데, 그런 추억 하나 없는 유소년, 청년기는 참으로 헛헛하단 생각을,
김민섭작가의 '아무튼, 망원동'을 읽으며 문득, 그런 잡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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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역시 이제 망원동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아는 많은 또래가 서른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크고 작은 인생의 변화를 겪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의 북쪽 끝인 수유나 미아로 간 친구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역곡으로, 동탄으로, 원흥으로, 김포로, 저마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로 떠났다. 광역버스나 급행전철의 노선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조금 더 멀어져야 할 지 모른다.
...한 중학교 동창의 결혼식에서 만난 D는 결혼하고도 망원동에 남은 몇 안 되는 친구다. 그런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내가 자란 망원동이 정말로 좋아. 여기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계속 살고 싶어. 지금은 그게 유일한 목표야." 그에게 다른 도시로의 이주는 밀려나는 일이 될 것이다.
- 아무튼, 망원동, p31. 김민섭 지음.
처음엔 작가분의 이야기 인줄로만 알았어요
삽화가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다 읽고 보니 삽화가 필요없단 걸 깨달았어요
글을 통해 그림을 그려보고 있던 저를 발견했어요
같은 동네는 아니지만 내 삶의 터전을 되짚어 보고 그려볼 수 있는 책이에요.
가벼운 마음으로 추억여행을 가다보니
기억하지 않고 추억하다보니 저에겐 미화되기 보단 아련하고 눈물나는 그런 추억들이 생각났어요
특히. 작가분이 마무리 하는 117, 118 페이지의 기억에 대한 정리는 가슴에 짠하게 남습니다.
조그마한 책 크기와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페이지의 책이 아닌 걸 알았습니다.
작가분의 바램처럼 오늘 그리고 내일. 내 주변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책. 좋은 글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자의 기억 속에서 나의 유년시절을 읽어내다 보면 단숨에 읽힌다. 그의 전작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의 충실한 독자였기에 신작 '아무튼, 망원동'도 아껴가며 읽었다.
공간에 대한 자기서사이지만, 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와 같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나 공감하고 되짚어 볼 만한 이야기이다.
따뜻하고, 시니컬하게 웃기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날카로운 그의 글이 좋다. 친절한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