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그렇게 거지 누더기 같은 옷을 샀어?” 자주 얘기하던 어머니도 터틀넥 스웨터 앞에서만큼은 늘 “따뜻한 거 잘 샀네.”라고 말했다.(54쪽)
한밤에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게 뜨개질을 하는 이유는 시간 속에서 무념무상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야기에 대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이름을 짓고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외롭지 않은 서사인가.(132쪽)
“촘촘한 것은 촘촘한 대로 단정하고 성긴 것은 성긴 대로 자연스러우며, 아가일 패턴의 베스트와 페어 아일 패턴의 베스트는 같은 ‘장르’지만 각기 세련되거나 전원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p.12)
스웨터리 스웨터, 스윌 스웨터, 카디건 스웨터, 아란 스웨터, 맥시 스웨터, 페어 아일 스웨터, 집업 스웨터, 앙고라 스웨터,
터틀넥 스웨터, 틸던 스웨터, 코티지 인더스트리 스웨터, 레이스 스웨터, 크리스마스 스웨터, 무드 스웨터...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많은
스웨터가 있는 건가? 알아듣기 힘든 (내게는) 전문용어가 사용되니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
"주는 것은 실을 뜨는 것이고 받는 것은 실을 푸는 것이다. 뜨는 시간과 푸는 시간을 맞추는 일, 그것이 연애고 (동거고
결혼이고) 사랑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최후는 뜨개를 나타나게 하는 것일까 뜨개를 사라지게 하는 것일까.“ (p.23)
하지만 문장이 곱게 정제되어 있어 읽기에 나쁘지 않다. 아이템의 발굴과 저자 선정의 순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순서로 (아니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의해) 책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작가의 문장과 스웨터라는 아이템이 어울린다. 그리고 많은 부분
이러한 어울림은 김현이 구사하는 딱 부러지면서도 감성을 놓치지 않는 문장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 엄마의 뜨개질은 분명히 아주 멋진 결과물을 내게 안겨주곤 했다. 엄마의 스웨터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살 수
없던 유일한 것이었다. 지금은 엄마가 어떤 색으로 어떤 패턴을 넣어 스웨터를 떠주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스웨터가 공산품의 그것처럼
천의무봉의 완벽함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것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p.68)
내가 여태 옷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엄마가 떠준 옷을 입어야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스웨터를 돗구리라고 부르곤 했는데, 돗구리에는 자라목 모양을 한 옷깃 이라는 일본어 뜻이 있으니, 아마도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류를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엄마는 종이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적어가며 여름 내내 뜨개를 했고, 엄마가 뜨개질을
하는 옆에서 나는 공부를 했고, 겨울이 되면 우리 삼남매는 그것을 입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감정에 쉬이 휩싸이는 사람이 되지 않는 과정일 테지만, 그때 감정에 휩싸이지 않음은 감정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낼 감정은 드러내고 감추어야 할 감정은 잘 감추는 인간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이 둘을 헷갈려서 화병을 자초한다.”
(p.90)
심지어 엄마는 편물학원을 다니면서 강원도에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엄마가 실타래를 사오고, 그 실을 둥글게
마는 작업을 하는 동안, 양팔에 실타래를 걸쳐 놓고 얌전히 앉아 있고는 했다. 엄마는 스웨터 류는 물론 바지를 비롯해 모든 입을 거리를 뜨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아내와 동생의 아내는 엄마가 뜬 개량 한복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뜨개 한복은 장롱 속을 전전하다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오늘은 길을 걷다가 길고양이에게 물을 떠주고 간식을 챙겨주는 이들과 자주 마주쳤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는 계절의 말은
아마도 ‘상당히 상냥한 초겨울’이다. 초겨울의 상냥한 사람과 무심한 고양이와 달큰한 스웨터는 어쩐지 절묘하게 한통속 같다.”
(p.107)
전체적으로 책의 내용이 따듯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스웨터가 주는 따듯함 때문인지 스웨터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엄마의 돗구리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작품으로 손녀의 오색 한복을 뜨개로 만들었던 엄마는 조금씩 뜨개질로부터 멀어졌다. 엄마의 뜨개는
옷에서 피아노 덮개, 차받침 등으로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 아예 멈췄다. 엄마가 떠준 무언가가 아직 집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올해 서울의 첫 스웨터는 언제 관측되었을까? 망원역 1번 출구 인근 세 사람 이상이 입을 때, 라는 기준은 공식적인 게 될
없을까. 당신이 무언가를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만드는 비공식적인 기준이 어떤 때는 세계 유일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pp.136~137)
김현 / 아무튼, 스웨터 / 제철소 / 179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