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병원, 모든 상황을 알아차리고 깨닫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나, 그리고 머릿속의 깊은 영혼과의 대화, 병실에 들어와 무엇을 하든 진심이 느껴지는 간호사 페이스 등이 등장하면서 " 기적을 부르는 인생소설 "은 시작이 되었다.
"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절대 고독의 그 남자는 자기와의 진짜 대화를 시작하는데..." 그 대화에 내 삶의 일부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철길을 걷는 뒷모습의 어른과 아이의 표지도 인상적이었다. 감동, 사랑, 슬픔... 등 많은 것을 내포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 용서, 죄책감, 원망에 대한 엇갈린 감정들을 " 통해서 삶에 대해 소소한 기쁨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주어진 오늘에 감사함이 들었다.
" 너한테 너무 엄격하게 대했지. 네가 강해지길 바라고,절제력을 갖길 바랐다.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지만, 우리 아버지도 그랬었다. 막내의 투정과 애교는 나 자신도 상상을 못한 채 자라고 말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며 나도 아이를 그렇게 훈육했었다. 조금은 현명하지 못했지만, 사실이었다. 지나고보니 좀더 느긋했어야 하고 좀더 따뜻한 애정이 있었야 했었다. 그랬다면 아이가 성장하는데 방황과 고뇌의 시간은 줄었고 지름길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누군가가 병상에 8개월 누워있다면, 그의 아이가 태어나려면 3주도 남지 않았다면,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면 과연 어떻게 처신을 할까 생각해봤다.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도 지쳐가고 현실적으로도 금전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지켜 보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부모에게, 태어날 아이에게, 사랑하는 아우라, 나 자신에게 쓴 편지 중에 " 했어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만 존재하는 거란다. " 했어야 했다라는 것은 이미 후회다. 그러나 그로인해 오는 일들은 희망일지 분노일지 잘 모른다. 현실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었어도 무슨일을 하고 있어도 지금 살아있는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부모라서일까. 아기라는 새생명, 자식이라는 이름이 삶의 원동력이며 세상에서 가장 큰 희망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를 읽으며 느꼈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극에 달했을 때, 끝까지 갈 때까지 갔을 때에야 본심이 나온다. 후회와 함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왜 미리 마음을 보여주고 서로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존심일까, 강해보이는 것일까. 슬플 정도다. 가면이 진심이 아니지만, 진심을 못 본다면 슬픈일이 아닌가. 삶 자체가 선물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깨달은 내용이 바로『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라는 소설이다. 인생에 긍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에 훌륭한 소설이다.
또한 살아가면서 나자신과 제일 가까운 가족에 대한 용서가 무엇인지 깊이 알 수 있게 한 소설이다. 건강한 자아로 거듭나게 하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는 힘이 있는 내용들로 한 줄 한 장이 경이로웠다.
그렇게 보낼 인생이 아니다.
요즘에 삶을 살아가면서 뭔가 즐거운 일들보다
돈을 위해서 일에만 빠져서 계속 똑같은 하루하루 일상에 여유가 없는
개인시간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빡빡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것일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
가끔은 자신에 뒤를 돌아보고 건강도 챙기고 해야 되는것 아닐까 ?
생각은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게 너무 힘들죠....
뇌는 살아있지만 몸은 움직일수 없는
식물인간 .... 전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식물인간이 된다면
자신에 선택으로 죽을수도 없고 살수도 없는 ....
정말로 어떻게 하는게 최선에 선택일까 ?
아무런 준비가 없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서 이렇게 된다면
과연 소리는 들을수 있으나 몸은 움직일수 없고 나에 자식들은 곁고 있을 고통 ~
그것을 알면서도 어떠한 도움도 줄수가 없는 그런 삶을 하루하루 연명을 하게된다면
과연 나는 .....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고
하루에 삶이 그냥 보내는것이 아니라 얼마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만들어준 책이었네요.
낚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책 소개에 보여지는 '300만명의 감동, 기적을 부르는 인생소설' 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철학적인 느낌과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고, 고민하게 만들며, 죽음의 문턱에 있는 주인공 '나' 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통해서 나 자신의 삶을 다시 봐라보게 하며, 주인공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 나는 어떻게 상처와 마주하고, 그것을 치유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 속에서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리 잠자를 연상케 하며, 세상 사람들이 나무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처럼 주인공 '나' 앞에서 도덕적인 문제가 되는 것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 그들이 감히 그런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나'의 상태가 비정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4남매 중 둘째이다. 반항끼 넘치는 아이, 위로 형이 있으며, 아래로 여동생 둘이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주인공은 뇌는 살아있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8개월동안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 심폐소생술을 여러 차례하면서 장기는 점점 더 망가지고 있으며, 하지만 그의 뇌는 살아있기에 일반인과 똑같이 사유하고 고민한다. 세상을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것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그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반응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살아있는게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연명치료를 할 것이냐, 말것이냐 기로에 서있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의 고독함과 쓸쓸함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는 것, 그건 존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즐기는 걸 말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너는 영원의 일보였고, 죽으면 다시 영원의 일부로 돌아가. 우린 우리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짧은 시간을 부여받았으니, 최대한 그 시간을 활용해야 해.."(p101)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하지만 나 자신과 대화를 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는다. 왜 그럴까. 특별히 나 자신과 대화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늘 해오던 대화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아닐까. 왜냐하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떤 고민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와 대화를 해보자' 생각한다면 안 될 거 같다. 이상하고 무의미한 짓 같다. 나 또한 그렇게 여태 생각해왔다. 이 소설을 읽어보기 전까진.
이 소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청년이 사고를 당해 의식은 깨어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법을 깨닫게 된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를 통해서 말이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지금의 나를 새로운 나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가족도, 힘들 때마다 의지가 되는 친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 언제나 가장 가까이서 날 지켜보고 늘 나와 함께 하는 영원한 나의 동반자, 바로 나 자신.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나의 얘기를 들어주었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듯하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라는 핑계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채 입안에서 맴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특히, 지금처럼 시시각각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일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 해결 방법을 찾고자 더욱 이 책이 끌렸던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고민거리는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할까. 정확히 말하면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그것을 잊어버릴 때쯤이면 다시 한번 이 책을 꺼내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