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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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아는 역사도 다시 보는 한국사 반전 야사

리뷰 총점 9.0 (9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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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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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찌라시 한국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3.07.26 리뷰제목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쌤앤파커스/2018.2.23.   돈 버는데 영양가 없다고 한국사가 그동안 찬밥 신세를 못 면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다행히 수능시험과목으로 채택 되면서 이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동안 국사의 국정교과서화 문제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리뷰제목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쌤앤파커스/2018.2.23.

 

돈 버는데 영양가 없다고 한국사가 그동안 찬밥 신세를 못 면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다행히 수능시험과목으로 채택 되면서 이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동안 국사의 국정교과서화 문제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잡다가 이제 잠잠해져가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살린 우리의 역사관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시험 보기 위한 역사가 아닌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역사를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찌라시 한국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20161월 회사원 15년차 되는 새해 첫 출근 날부터 회사에서 좌천 통보를 받고 강제로 새 인생 출발선에 놓였다. 그해 글을 쓰기 시작하여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어 용기를 내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집에서 녹음한 찌라시 한국사20172월 시작하여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의리의 아내와 우리의 소원은 베스트셀러를 외치며 퇴사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 중이다.

 

찌라시 한국사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를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종 모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무겁지는 않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5가지 주제로 이야길 풀어 놓는다. 01 싸움의 달인 : 전쟁과 외교/ 02 모략자들1 : 권력과 암투/ 03 모략자들2 : 왕의 사람들/ 04 팩트체크1 : 반전의 야사/ 05 팩트체크2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등이다. 소주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이 고구려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사실 중에서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공으로 살수대첩을 승리고 이끌었다는 역사 기록은 삼국시대에 없었고,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최초로 나왔다고 해. ‘살수라는 이름 자체가 왠지 물을 이용해서 죽였다는 의미가 포함된 거 같지만, 살수(薩水)는 단지 지명일 뿐이야. 결정적으로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으로 30만 대군을 수장시킬 수 있는 강폭도 수심도 갖고 있지 않아. 게다가 겨울이었으니 얼어붙기까지 했겠지.(p.38)”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조차 기록이 없다. 심지어 어떤 관직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또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의 대승을 이끌고 난 후에는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물론 집필되었던 역사서들이 사라진 데에 원인이 있다 생각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발해는 건국 후 당나라나 일본 및 기타 국가에 보낸 외교문서에 우리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 틀 위에 세운 나라다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명확히 밝혀. 따라서 발해는 지도층은 고구려이고 말갈 등 북방 민족이 포함되어 세우게 된 나라라고 볼 수 있지. (p.52)” 그런데도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켰다. 우리의 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마다 그들의 해군이 출정하던 핵심 해군기지가 등주다. 발해는 건국 후 등주를 공격했다. 전략적으로도 적절한 선제 기습이었다. 당황한 당나라 현종이 급히 보낸 원정 병력이 등주에 도착했을 땐, 발해군은 이미 등주를 촡토화 시키고 철수한 후였다고 한다. 발해가 건국 된 후 선제공격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발해가 해동성국이라고 불린 이유 중에 하나가 해군력이 육군보다 더 강해서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기 926년 거란족의 침입에 단 3일 만에 항복을 하고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데, 최근에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화산폭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서기 900년 경 백두산에 화산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p.56)” 발해 멸망이 926년이고 마야 문명이 사라진 시기가 900년경이다. 아마도 그 때가 태평양 불의 고리가 활발한 화산활동을 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동성국이라 일컫던 나라가 단 3일 만에 멸망한 것이리라. 또 삼국사기에는 그 때 발해유민 몇 만 명이 고려로 망명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왕들은 모두 전하야. 황제 아래인 거지. 한데 고려는 대내적으로 황제국을 자칭했기에 전하 대신 폐하라고 불렀던 거야. 광종은 또한 황제만 사용 가능한 연호도 사용했어. 고려사를 통틀어 연호를 사용한 왕은 광종과 그의 아버지 태조 그리고 경종뿐이었어.(p.102)” 고려의 삼국통일에 지방호족들과의 혼인정책이 큰 몫을 했다. 그 결과로 태조 왕건은 29명의 부인에게서 34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고, 개국 공신만 3,2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왕건의 아들들은 3,4년마다 왕위가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이런 혼란을 안정시킨 것이 광종이다. 그런데 광종은 노비안건법, 과거 시행법, 관복착용법 등을 발표해 호족들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정적들을 많이 숙청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삼별초는 원래 고려 무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야별초란 이름으로 탄생한 특수부대야. 조직을 키워 좌별초, 우별초로 나눠졌고, 여기에 몽골 포로 출신의 신의군을 편입하면서 삼별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야.(p.150)” 역사에서 배운 것처럼 군부세력이 몽골과 왕권에 항거해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가고 왕도 세웠으나 1년을 버티고 무너진 후, 다시 제주도로 진영을 옮겨 항거한 것이다. 진도는 강화도에 비해 몽골군의 사정권보다 멀다는 점 외에도 물살이 몹시 세서 수군이 약한 몽골군에 대항하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곡선을 털어 부대 유지를 위한 재원도 마련할 수 있었다. 개경 정부와 몽골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었다.

 

인조는 도망에 대해서는 조선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 무려 3번이나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거든.(p.259)” 정통성 없이 갑자기 왕이 된 인조의 허약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괄은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었음에도 무장이란 이유로 2등 공신으로 폄하시키고, 변방으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역모 죄로 몰아 붙였다. 그러자 이괄은 선조의 또 다른 아들인 흥안군을 왕위에 앉히고 자기가 실권을 장악해서 비록 3일간이지만 조선 하늘 아래에는 두 명의 왕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세력이 자리 잡기까지엔 많은 피를 흘리는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초당두부의 초당이 허엽의 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초당 허엽은 동인의 최고 영수였는데, 허균은 아버지의 후광을 안고 태어났다. 형인 허성은 훗날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고, 누이는 허난설헌이다. 이런 허균이 서자를 주인공으로 한 홍길동전을 쓰고, 서자 출신이나 사회의 소외계층과 거리낌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그의 스승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 조선의 이태백이라 불리던 손곡 이달(李達)인데, 이분이 바로 서자출신이었다.(p.313)” 또한 대부분의 사신들이 명나라에서 비단과 골동품 쇼핑에 빠져 있을 때, 허균은 무려 4,000권의 책을 싸들고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허균은 난설헌집을 중국 사신들에게 전해주었고, 그것이 대륙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고 한다. 허난설헌(초희)는 수많은 명작을 양산해 냈지만 시집의 냉대와 개인적 건강악화로 27세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허균 역시 한때 동지였던 이이첨의 모략으로 50세에 능지처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종계변무즉 이성계의 아버지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에 잘못 기록한 것을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이다이 한 문장을 고치는데 조선이 건국되고 200년이 지나 선조 때 홍순언이 해내었다. 홍순언은 그 후에 우림위장에 임명되었고, 당릉군이라는 군호까지 하사했다. 또 지금의 미동 땅을 내려 주었는데, 그 땅을 보은단동또는 보은담골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장골에서 미동이라는 지명까지 왔다고 한다.(p.311)” 그가 종계변무 사명을 띠고 역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술집에서 소복 입고 일하는 여인을 자기의 모든 돈을 털어 도와주었는데, 그녀가 나중에 결혼한 남편이 지금으로 치면 외교부 차관의 벼슬을 하여 조선의 숙원인 종계변무를 해결해 준 것이다. 이렇게 남을 도운 보답을 받았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흥미로운 사건이 기술되어 있는데, 위에 예시된 인물 이외에도 여자로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주도민을 흉년에서 살려낸 제주거상 김만덕,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도마 안중근, 조선의 잔다르크라 할수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등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를 느끼게끔 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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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찌라시 한국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18.03.06 리뷰제목
찌라시 한국사김재완쌤앤파커스/2018.2.23.sanbaram   돈 버는데 영양가 없다고 한국사가 그동안 찬밥 신세를 못 면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다행히 수능시험과목으로 채택 되면서 이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동안 국사의 국정교과서화 문제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리뷰제목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쌤앤파커스/2018.2.23.

sanbaram

 

돈 버는데 영양가 없다고 한국사가 그동안 찬밥 신세를 못 면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다행히 수능시험과목으로 채택 되면서 이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동안 국사의 국정교과서화 문제로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잡다가 이제 잠잠해져가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살린 우리의 역사관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되었다. 이런 때에 시험 보기 위한 역사가 아닌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역사를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찌라시 한국사라 할 수 있다. 저자는 20161월 회사원 15년차 되는 새해 첫 출근 날부터 회사에서 좌천 통보를 받고 강제로 새 인생 출발선에 놓였다. 그해 글을 쓰기 시작하여 독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어 용기를 내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집에서 녹음한 찌라시 한국사20172월 시작하여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의리의 아내와 우리의 소원은 베스트셀러를 외치며 퇴사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 중이다.

 

찌라시 한국사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를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종 모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무겁지는 않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5가지 주제로 이야길 풀어 놓는다. 01 싸움의 달인 : 전쟁과 외교/ 02 모략자들1 : 권력과 암투/ 03 모략자들2 : 왕의 사람들/ 04 팩트체크1 : 반전의 야사/ 05 팩트체크2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등이다. 소주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이 고구려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사실 중에서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공으로 살수대첩을 승리고 이끌었다는 역사 기록은 삼국시대에 없었고,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최초로 나왔다고 해. ‘살수라는 이름 자체가 왠지 물을 이용해서 죽였다는 의미가 포함된 거 같지만, 살수(薩水)는 단지 지명일 뿐이야. 결정적으로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으로 30만 대군을 수장시킬 수 있는 강폭도 수심도 갖고 있지 않아. 게다가 겨울이었으니 얼어붙기까지 했겠지.(p.38)”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조차 기록이 없다. 심지어 어떤 관직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또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의 대승을 이끌고 난 후에는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물론 집필되었던 역사서들이 사라진 데에 원인이 있다 생각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발해는 건국 후 당나라나 일본 및 기타 국가에 보낸 외교문서에 우리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 틀 위에 세운 나라다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명확히 밝혀. 따라서 발해는 지도층은 고구려이고 말갈 등 북방 민족이 포함되어 세우게 된 나라라고 볼 수 있지. (p.52)” 그런데도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켰다. 우리의 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마다 그들의 해군이 출정하던 핵심 해군기지가 등주다. 발해는 건국 후 등주를 공격했다. 전략적으로도 적절한 선제 기습이었다. 당황한 당나라 현종이 급히 보낸 원정 병력이 등주에 도착했을 땐, 발해군은 이미 등주를 촡토화 시키고 철수한 후였다고 한다. 발해가 건국 된 후 선제공격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발해가 해동성국이라고 불린 이유 중에 하나가 해군력이 육군보다 더 강해서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기 926년 거란족의 침입에 단 3일 만에 항복을 하고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데, 최근에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화산폭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서기 900년 경 백두산에 화산폭발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p.56)” 발해 멸망이 926년이고 마야 문명이 사라진 시기가 900년경이다. 아마도 그 때가 태평양 불의 고리가 활발한 화산활동을 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동성국이라 일컫던 나라가 단 3일 만에 멸망한 것이리라. 또 삼국사기에는 그 때 발해유민 몇 만 명이 고려로 망명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왕들은 모두 전하야. 황제 아래인 거지. 한데 고려는 대내적으로 황제국을 자칭했기에 전하 대신 폐하라고 불렀던 거야. 광종은 또한 황제만 사용 가능한 연호도 사용했어. 고려사를 통틀어 연호를 사용한 왕은 광종과 그의 아버지 태조 그리고 경종뿐이었어.(p.102)” 고려의 삼국통일에 지방호족들과의 혼인정책이 큰 몫을 했다. 그 결과로 태조 왕건은 29명의 부인에게서 34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고, 개국 공신만 3,2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왕건의 아들들은 3,4년마다 왕위가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이런 혼란을 안정시킨 것이 광종이다. 그런데 광종은 노비안건법, 과거 시행법, 관복착용법 등을 발표해 호족들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정적들을 많이 숙청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삼별초는 원래 고려 무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야별초란 이름으로 탄생한 특수부대야. 조직을 키워 좌별초, 우별초로 나눠졌고, 여기에 몽골 포로 출신의 신의군을 편입하면서 삼별초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야.(p.150)” 역사에서 배운 것처럼 군부세력이 몽골과 왕권에 항거해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가고 왕도 세웠으나 1년을 버티고 무너진 후, 다시 제주도로 진영을 옮겨 항거한 것이다. 진도는 강화도에 비해 몽골군의 사정권보다 멀다는 점 외에도 물살이 몹시 세서 수군이 약한 몽골군에 대항하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었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곡선을 털어 부대 유지를 위한 재원도 마련할 수 있었다. 개경 정부와 몽골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었다.

 

인조는 도망에 대해서는 조선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 무려 3번이나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거든.(p.259)” 정통성 없이 갑자기 왕이 된 인조의 허약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괄은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었음에도 무장이란 이유로 2등 공신으로 폄하시키고, 변방으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역모 죄로 몰아 붙였다. 그러자 이괄은 선조의 또 다른 아들인 흥안군을 왕위에 앉히고 자기가 실권을 장악해서 비록 3일간이지만 조선 하늘 아래에는 두 명의 왕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세력이 자리 잡기까지엔 많은 피를 흘리는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 초당두부의 초당이 허엽의 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초당 허엽은 동인의 최고 영수였는데, 허균은 아버지의 후광을 안고 태어났다. 형인 허성은 훗날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고, 누이는 허난설헌이다. 이런 허균이 서자를 주인공으로 한 홍길동전을 쓰고, 서자 출신이나 사회의 소외계층과 거리낌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그의 스승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 조선의 이태백이라 불리던 손곡 이달(李達)인데, 이분이 바로 서자출신이었다.(p.313)” 또한 대부분의 사신들이 명나라에서 비단과 골동품 쇼핑에 빠져 있을 때, 허균은 무려 4,000권의 책을 싸들고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허균은 난설헌집을 중국 사신들에게 전해주었고, 그것이 대륙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고 한다. 허난설헌(초희)는 수많은 명작을 양산해 냈지만 시집의 냉대와 개인적 건강악화로 27세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허균 역시 한때 동지였던 이이첨의 모략으로 50세에 능지처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종계변무즉 이성계의 아버지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에 잘못 기록한 것을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이다이 한 문장을 고치는데 조선이 건국되고 200년이 지나 선조 때 홍순언이 해내었다. 홍순언은 그 후에 우림위장에 임명되었고, 당릉군이라는 군호까지 하사했다. 또 지금의 미동 땅을 내려 주었는데, 그 땅을 보은단동또는 보은담골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장골에서 미동이라는 지명까지 왔다고 한다.(p.311)” 그가 종계변무 사명을 띠고 역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술집에서 소복 입고 일하는 여인을 자기의 모든 돈을 털어 도와주었는데, 그녀가 나중에 결혼한 남편이 지금으로 치면 외교부 차관의 벼슬을 하여 조선의 숙원인 종계변무를 해결해 준 것이다. 이렇게 남을 도운 보답을 받았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 책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흥미로운 사건이 기술되어 있는데, 위에 예시된 인물 이외에도 여자로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주도민을 흉년에서 살려낸 제주거상 김만덕,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도마 안중근, 조선의 잔다르크라 할수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등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를 느끼게끔 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이 책은 쌤앤파커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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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찌라시 한국사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k******4 | 2018.08.12 리뷰제목
<찌라시 한국사>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를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종 모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무겁지는 않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5가지 주제로 이야길 풀어 놓는다. 01 싸움의 달인 : 전쟁과 외교/ 02 모략자들1 : 권력과 암투/ 03 모략자들2 : 왕의 사람들/ 04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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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를 사랑하는 와이프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종 모임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무겁지는 않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5가지 주제로 이야길 풀어 놓는다. 01 싸움의 달인 : 전쟁과 외교/ 02 모략자들1 : 권력과 암투/ 03 모략자들2 : 왕의 사람들/ 04 팩트체크1 : 반전의 야사/ 05 팩트체크2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등이다. 소주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이 고구려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역사적 사실 중에서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공으로 살수대첩을 승리고 이끌었다는 역사 기록은 삼국시대에 없었고,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최초로 나왔다고 해. ‘살수라는 이름 자체가 왠지 물을 이용해서 죽였다는 의미가 포함된 거 같지만, 살수(薩水)는 단지 지명일 뿐이야. 결정적으로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으로 30만 대군을 수장시킬 수 있는 강폭도 수심도 갖고 있지 않아. 게다가 겨울이었으니 얼어붙기까지 했겠지.(p.38)”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조차 기록이 없다. 심지어 어떤 관직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또 살수대첩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의 대승을 이끌고 난 후에는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물론 집필되었던 역사서들이 사라진 데에 원인이 있다 생각하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발해는 건국 후 당나라나 일본 및 기타 국가에 보낸 외교문서에 우리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 틀 위에 세운 나라다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명확히 밝혀. 따라서 발해는 지도층은 고구려이고 말갈 등 북방 민족이 포함되어 세우게 된 나라라고 볼 수 있지. (p.52)” 그런데도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켰다. 우리의 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마다 그들의 해군이 출정하던 핵심 해군기지가 등주다. 발해는 건국 후 등주를 공격했다. 전략적으로도 적절한 선제 기습이었다. 당황한 당나라 현종이 급히 보낸 원정 병력이 등주에 도착했을 땐, 발해군은 이미 등주를 촡토화 시키고 철수한 후였다고 한다. 발해가 건국 된 후 선제공격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발해가 해동성국이라고 불린 이유 중에 하나가 해군력이 육군보다 더 강해서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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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기존 역사와 관점이 다른 역사 이야기 평점7점 | 이달의 사락 j****3 | 2018.03.09 리뷰제목
찌라시라는 말은 주의, 주장이나 사물의 존재 가치 따위를 여러 사람에게 널리 전하거나 알리기 위해 만든 종이쪽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 역사서에 이 말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저자도 많은 생각을 해서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표현하면서 구태여 찌라시라는 말을 사용해 내용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가볍게 쓰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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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라는 말은 주의, 주장이나 사물의 존재 가치 따위를 여러 사람에게 널리 전하거나 알리기 위해 만든 종이쪽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 역사서에 이 말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저자도 많은 생각을 해서 제목을 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표현하면서 구태여 찌라시라는 말을 사용해 내용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가볍게 쓰겠다는 의미라면 그렇게 수용할 수도 있겠다. 글을 읽으면서 역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했다.

 

표현에서 많이 거슬린다. 조금은 지적이고, 경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경의는 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모든 것을 도외시한다. 요즘 카톡의 언어가 범람하는 듯한 생각이 든다. 이 책도 그런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책들이 이 카톡의 언어로 재미를 보고 있고, 인기를 얻고 있는 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지로 그려낼 때의 문제이지, 이렇게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적당할까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유희적인 느낌이 들어 무게감이 떨어지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랴. 역사적인 무게가 있는 내용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물론 내용이 중요하지 표현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이 가벼우면 내용도 마음에 잘 다가오지 않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 책은 그렇게 가벼운 어투로 표현되고 있다.

 

요즘 왜 이런 문체의 글이 뜨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면 할 말은 없다. 자라는 아이들이 이런 언어에 익숙해져 있고, 그들이 지식을 이런 방법으로 습득한다고 알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사를 이런 가벼운 방법으로 습득한다면 역사관이 어찌될까? 물론 잘 읽히지도 않게 답답하도록 공부하라는 말은 아니다. 재미가 있더라도 사실에서 재미를 찾고 내용에서 흥미를 가지며 역사의 무게를 마음에 담아야 할 듯하다. 역사적 지식이 너무 가볍게 인식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 그 삶의 지혜를 얻는다. 그런데 진지함이 제거된 내용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책의 표지에 관점을 바꾸면 다른 역사가 보이고 관심을 가지면 진짜 역사가 보인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물론 관점의 부분에서는 색다른 바가 있다. 수나라가 살수에서 쫓겨 돌아간 이야기를 하면서 을지문덕의 지혜로운 전술도 있었지만, 그들의 무리한 공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얘기된다. 수나라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해 나가는 내용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수의 백만 대군이 요동성에서 위장 항복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과 별동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설정은 그럴 듯하다. 역사적인 사실까지 가미가 되어 있으니까? 이면 지식을 가지고 좀 더 풀어내었다고 보면 되리라. 하지만 음성언어 표기가 익숙하지 않다. 뭔가 나에겐 내용을 자꾸 흩어지게 만드는 느낌으로 다가든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발해였어. 그 이후 발해가 큰 탈 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빠져 국가 정사에 손을 놓아버리고, 대신들이 당나라를 닭나라로 만들어가느라 발해까지는 신경을 못 썼다는 후문이 있기도 해. Thanks to 양귀비! (p55) 모든 표현이 이런 식이다. 이것이 참일 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분석하고 결과를 따져보는 전개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하는데, 풍문을 그려 놓고 가벼운 농담을 하고, 그러면서 진짜 역사라 외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견해는 궁구해 보나, 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용마저도 가볍게 다가온다. 발해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인 도움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동모산이라는 곳이 충분히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이었고, 충분히 나라를 경영할 능력을 보였던 그들이다. 그러기에 200년의 장구한 세월을 국가를 유지하면서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발해의 장구한 시간을 중국에 기대어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얘기하고 있다. 주로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것이 가볍게 얘기하듯이 표현하기 쉬운 모양이다. 외교의 달인 서희 얘기를 하고 있고, 낙타전쟁을 소개하고 있다. 서희를 외교를 처음 시작한 표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외교가 왜 없었겠느냐만 그만큼 달인이었다는 말일 게다. 광종이 노비안건법을 들고 나온다. 이는 양인 중에 노비가 된 자들을 찾아내 면천시켜 주는 법이다. 이것을 이 책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재벌과 정치인들이 아닌 호족들의 귀싸대기를 시원하게 후려치는 법이었어. 그런데 그 법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퍼스트레이디까지 나서서 광종을 뜯어말리려고 했어. 폐하,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폐하께서 링컨도 아니신데 어찌 노예 카드를 들고 나오셨습니까? 지금의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이런 결정을 혼자 하신 것입니까?(p100) 적나라하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광종의 치세가 이것과 과거제도 실시인데 이것이 이런 식으로 충격적으로 표현된다. 내용이 머리에는 잘 다가온다. 하지만 가슴에는 머물지 않는다. 내가 문제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예시하면서 같은 화법으로 전개해 나간다. 많은 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 더러는 구체화 되고 더러는 반전을 일으키며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카톡 세대들은 이 언어들이 쉽게 다가오리라. 그리고 공감하리라. 저자도 시대와 관련해 진실을 밝히고자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다. 고려 무신정권,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의 주역들. 인수대비와 연산군, 송강의 두 얼굴, 광해와 그의 형제들, 허난설헌, 임꺽정, 허균, 김만덕, 안중근까지 많은 분들이 제시되어 있다. 상황과 그들의 이면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는 저자의 노고가 느껴진다.

 

조선의 잔다르크 정정화는 내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다. 이 공간에서 알게 되었다. 물론 임시정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는 분이리라. 하지만 누구나 쉽게 인지하고 있는 분은 아니다. 저자가 특심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분이리라. 이 역사서에 유명인과 사건들 사이에 게시할 만큼. 나도 특별한 분으로 만나게 되었다. 유관순보다 2살 위라고 한다. 모진 세월을 살아왔는데, 일제잔재 세력들이 청산되지 못한 것을 보는 가슴 아픈 일까지 겪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시대가 충분히 마음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

 

글이 재미는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면의 모습을 보는 지식도 준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비친 내용이다. 이 내용이 그대로 우리들에게 흡수되기엔 조금 문제가 보인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고,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가 유희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니 내용의 무게가 감해지는 사실은 어쩔 수가 없다. 달콤한 이면에 부실해 지는 느낌을 받는다. 역사를 다루면서 조금 더 진지해 지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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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찌라시 한국사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3 | 2018.03.08 리뷰제목
큰아이는 한국사나 세계사, 동아시아사를 즐겨하고 재미있어 하지만 작은 아이는 그런 쪽으로는 무식(?)하기 그지없다. 큰아이는 이런 과목을 암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맥락을 찾아 이해하지만 작은 아이는 역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니 그저 외울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생각하면? 나 역시도 작은 녀석 스타일이다. 그나마 나는 국사를 재미있어 하며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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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한국사나 세계사, 동아시아사를 즐겨하고 재미있어 하지만 작은 아이는 그런 쪽으로는 무식(?)하기 그지없다. 큰아이는 이런 과목을 암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맥락을 찾아 이해하지만 작은 아이는 역사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니 그저 외울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생각하면? 나 역시도 작은 녀석 스타일이다. 그나마 나는 국사를 재미있어 하며 암기를 했지만, 작은 아이는 재미없다 생각하며 암기를 하니 성적이 좋을 리 없고. 이런 내가 성인이 되면서 다양한 역사 관련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아니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역사를 배울 때, 단순 암기 형태가 아닌 사건 위주로 혹은 인물 위주로 토론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하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는 역사도 다시 보는 한국사 반전 야사인 ‘찌라시 한국사’를 읽었다. 역사책을 읽으며 이렇게 많이 웃어본 게 언제인지. ^^ 역사적 상황과 함께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날아가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승자의 역사가 모두 옳다고, 역사는 변할 수 없는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이젠 안다. 역사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어떤 입장에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 관련 책을 읽으며 알지 못했던 상황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랬다.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화산 폭발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윤관이 개척한 동북 9성의 위치에 대한 논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백제 하면 제일 먼저 떠올랐던 계백장군이 있었는데 ‘흑치상지’란 국민 영웅도 대단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흑치상지란 장군이 있는데 왜 백제가 망했는지 모르겠다는 측천무후의 말이 있었다니... 이런 일화는 역사책에서 읽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또한 천추태후가 백성들에게 잘했음에도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수절하지 않고 김치양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설이 재미를 떠나 씁쓸함을 안긴다. 공민왕과 신돈의 관계, 세종의 장자 문종에 대한 이야기, 신라에서 엄청난 기술을 가진 슈퍼 갑 구진천의 이야기 등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예나 지금이나 희생은 언제나 민초들의 몫이라는 사실. 그리고 권모술수로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 때문에 진정한 영웅들이 희생양이 되고 그 불합리한 종착역에 백성이 있다는 것. 이러한 사실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아플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실수, 실패,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시대만 다를 뿐.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실패를 하고 심지어 타락하고 부패하기 까지 하니, 정치인들에게 역사 공부를 필수로 시키고 매주 시험이라도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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