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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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리뷰 총점 8.7 (18건)
분야
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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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진정한 인문의 의미를 생각하다! 평점6점 | YES마니아 : 로얄 i*****n | 2021.01.10 리뷰제목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러한 부제를 제시하면서,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스스로 정리한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하는 방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을 의식한 듯, 저자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논의를 일컬어 '타락한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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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러한 부제를 제시하면서,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스스로 정리한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경제적 효과만을 강조하는 방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을 의식한 듯, 저자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논의를 일컬어 '타락한 인문학, 빈곤한 인문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인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작업은 현 시점에서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저자의 주장들은 충분히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고, 또 기존의 인문학에 관한 논의들이 지닌 오류들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저자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너무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실상 인문학이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각각의 주장들이 가진 합리성을 따지는 가운데 풍성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문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저자 스스로가 비판하는 자기중심의 오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지배계급만을 위해 봉사하는 학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인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한 지식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전체 2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제1부에서는 16장에 걸쳐 '첫 인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바라보는 인문학과 그에 관련된 기존의 논의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다. 가장 앞에 제시된 '첫 이야기'에서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논의들이 지배계층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했음을 드러내고, 진정한 '인문학'은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의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3가지 원칙은 ''의 자유, '우리'의 자치, '세계'의 자연이라고 하는 3가지로 인류 문화인 인문이 구성되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지는 내용들에서는 각각 예술과 농사와 인문 그리고 독재와 민주 등 다양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인류 문화에서 저자가 꼽은 첫 번째 사례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는 역사상의 '첫 폴리페서'일 뿐이고, 유가에서 철저히 비판을 받았던 죽자는 '첫 평화주의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에서 비롯된 유가의 학문은 권력학문의 준말인 '첫 권학(權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고대 인문 이야기'라는 제목의 제2부는 주로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노예제에 근거한 계급사회라는 점과 철저히 귀족 중심의 권위주의를 통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즉 저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와 문화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평등주의'와 그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그리스의 철학자들로 추앙을 받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 역시 노예제를 인정하고 군주에 대해 복종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비록 당대의 권력에 의해 독배를 마시고 처형되었으나, 소크라테스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반발하는 입장이었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노예출신이자 권력에 빌붙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던 디오게네스야말로 진정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으며, 저자 역시 '가난하게 살기 위한 철학 공부의 모델'로 디오게네스를 추천하고 있다.

 

2부의 16장 가운데 그리스와 관련된 항목은 10장에 달하며, 이어지는 3개의 항목에서 로마의 문화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로마 문화에 대한 평가 역시 철저히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근거는 역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노예제로 지탱한 사회로 철학자들 역시 권력에 종사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계급관계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는 노예제를 옹호하고, 지배 계급과 권력자의 입장에 선 이론들이 과연 진정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저자의 비판적 시각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즉 대부분의 철학은 저자가 주장하는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의 회복에 반하는 이론들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실상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인문학이 처해있는 상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곳곳에서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고 있지만, 각종 프로그램이나 강연을 통해서 소위 잘나가는 '인문학 강사'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모두 경제적 이익만을 따지며 활동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인문학자들은 적어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지는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학문에 매진할 수 잇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능력과는 무관하게 소수에게 편중된 기회만이 제공되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지니는 본래의 의미를 짚어보고, 현재 그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반인문적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대 인문 이야기'라는 항목을 통해서, 한반도에서 계승되어온 인문의 전통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과 권위와 권력에 저항해야 하는 것은 인문학의 정신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날날 우리의 인문이 지향해야할 바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자치하는 사회를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추구하는 것'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아마도 이러한 전제가 저자가 기본으로 제시했던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이란 다양한 해석과 가치가 공존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기에, 특정 이론만이 독단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거짓 인문이라고 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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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문학의 타락을 막으려면? 평점9점 | z***a | 2017.06.13 리뷰제목
오늘의 인문학은 타락했다. 맞다. 서점이나 문화센터에서 '인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 가운데 진짜 인문학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동양인문학이든 서양인문학이든 말이다. 오늘날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일반시민의 교양퀴즈 쇼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인문학의 정신을 선정적인 방송매체에서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때로는 실제로 인문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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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문학은 타락했다. 맞다. 서점이나 문화센터에서 '인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 가운데 진짜 인문학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이 동양인문학이든 서양인문학이든 말이다. 오늘날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일반시민의 교양퀴즈 쇼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인문학의 정신을 선정적인 방송매체에서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때로는 실제로 인문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대다수 학인들이 사회적으로 무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인문학도는 자칫 '우리말 달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사전을 들춰보고 개정 맞춤법을 공부하여 상금을 타가는 이들보다 더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값싼 교양으로 전락한 한국의 인문학은 '타락했다'는 평을 받아도 싸다. 국내 아나키즘 계열의 지식인 가운데 그나마 대중이 알 만한 저명인사인 박홍규 선생이 그런 평을 남겼다. 『인문학의 거짓말』(인물과사상사, 2017)에서 저자는 인문학의 근본 척도가 민주주의라는 돌직구를 날린다. 그런데 저자의 이런 언급도 사실 우려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단지 민주주의라는 척도로 본다면 플라톤이나 공자 같은 고전 인문학의 대가들이 우익인사나 꼰대 훈장, 혹은 폴리페서의 원조격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플라톤과 니체의 급진 사상이 나치와 같은 극우 선동정치에 이용당한 적이 있고, 공자의 사상도 조선시대 가부장적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꼰대들의 강력한 호신부적이 되곤 했다.

그러나 플라톤과 공자의 사상에서도 매우 좌파적인, 오늘날로 치면 사민주의적인 측면도 찾을려면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가 플라톤의 사상을 도입해 세속적인 정치노선과 선을 그은 적도 있고, 공자의 사상을 후천개벽의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추구하고자 한 집단도 있다. 다만 그동안 우익 계열의 정치선동가들이 이들의 고전 텍스트에 나타난 보수적인 서사를 영리하게 이용했지만, 반면에 좌파 계열의 이상주의자들은 정치 일선에서 고전 인문학의 샘물을 민중 현실에다 활용하는 데 좀 미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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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문학의 거짓말] 고전의 거품 터트리기 평점8점 | k****9 | 2017.07.16 리뷰제목
저자의 책을 다수 찾아 읽어봤다. 날카롭고 삐딱한 시각이 새로웠고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았다. 끝까지 읽은 책은 별로 없다. 한 주제에 대해 반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고전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저자의 시각과 교차하는 지점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봉건적 시각에 머문 저서가 대부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라는 개념은 쉽게 쓸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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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다수 찾아 읽어봤다. 날카롭고 삐딱한 시각이 새로웠고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았다. 끝까지 읽은 책은 별로 없다. 한 주제에 대해 반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고전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저자의 시각과 교차하는 지점이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봉건적 시각에 머문 저서가 대부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라는 개념은 쉽게 쓸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보편적 인식을 넘어선다는 것은 왠만한 성현도 이뤄내지 못한 극강의 도전이다.
고전의 한계와 결점을 간과한 독서는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이 해석하기도 힘든 고전에 대해 비판적 읽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전문가가 쉽게 풀이한 좋은 해설서가 대안이라 생각한다. 고전에 대한 해설자의 오독과 일반 독자의 오독 위험 중에서 무엇이 더 클지는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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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문학의 거짓말 평점8점 | r***2 | 2017.06.14 리뷰제목
'이 책은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로 저자는 말문을 열고 있다. 동서양의 지배문화에 대한 비판없는 찬양에 대한 역겨움과 최근의 대중적 인문학의 유행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며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인문학은 백해무익'하다 말하고 있다.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의 머릿말을 인용해 책에 대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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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로 저자는 말문을 열고 있다. 동서양의 지배문화에 대한 비판없는 찬양에 대한 역겨움과 최근의 대중적 인문학의 유행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며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인문학은 백해무익'하다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의 머릿말을 인용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전적으로 타락한 인문학, 빈곤한 인문학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교양에세이를 읽은 느낌과 비슷하다. 물론 이건 어쩌면 내가 철학자들과 사상에 대해, 인문사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의 말을 흘려 읽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 기준에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 역시 잘 알지 못하면서 부정적인 측면만을 받아들일 수는 없기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한다면 오래전에 저자가 쓴 책을 읽어보고 - 환경 관련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와 닿아서 그 후에 또 저자의 다른 글을 기대하며 읽었다가 뭔가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글 읽기를 중단했던 기억이 있다. 구체적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처음 '인문학의 거짓말'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잠시 망설여졌다. 그냥 편하게 내 기준에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아직까지는 '교양'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한번 읽고 넘기는 글로 남을 것 같다.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는 우리가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는 많이 담겨있다. 그런데 첫 인문 이야기중 한꼭지인 첫 붓다 이야기에서 '미사용 라틴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신부가 있으면 존경하겠다'라는 표현에서 더 이상 이 책을 읽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2차바티칸 공의회가 언제적 이야기이고, 미사 경문을 우리말로 한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 이후부터는 왠지 저자의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한 자신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자신의 아집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 더욱더 술렁술렁 읽게 되어버렸다.  철학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때문에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할수도 있겠구나 싶기는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에서 저자에 대한 선입견이 확고히 생겨버렸기 때문에 그 이후의 글들은 말 그대로 저자의 의견일뿐이구나, 라는 생각으로만 읽게 되어버렸다. 나 역시 그런 부모님에게서 자랐고 마찰도 많았지만 지속적인 설득 과정에서 사상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기전에 부모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의도는 그런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왠지 자신의 사상과 다르다고 척을 지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것이다.

 

'교양'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내게 그만한 교양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비유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 책이 그런 느낌이다.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성경을 읽어보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을 읽은 후 성경이 쓰여진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하고 난 후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이건 마치 성경은 읽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비판만 드는 느낌?

그래서 더욱더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이 책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책을 제대로 읽은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

한가지 덧붙이자면 우리가 너무 교조주의적 사상에 빠져있어 제대로 비판을 못한다거나 유대인 선민사상에 대한 비판, 팔레스타인과 이슬람에 대해 잘 알 수 없고 그에 대한 자료도 많이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는 번역된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한 것들을 많이 접해왔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만 예로 들지 말고 최근의 자료와 접근해볼만한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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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더 없이 거칠다. 이러면 주류 사상이 될 수 있겠는가? 평점6점 | h*****j | 2017.08.16 리뷰제목
38쪽    그렇지만 현대의 홉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킨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고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통섭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학문을 지배하고자 하는 학문 제국주의에 이르고 있다.인간 행동의 차이, 능력의 차이, 사회적 성취의 차이를 유전자 때문으로 보면서 사회적 불평등을옹호하는 이런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대두한 것은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각각 미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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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쪽

    그렇지만 현대의 홉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킨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고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통섭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학문을 지배하고자 하는 학문 제국주의에 이르고 있다.

인간 행동의 차이, 능력의 차이, 사회적 성취의 차이를 유전자 때문으로 보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옹호하는 이런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대두한 것은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각각 미국과 영국

을 통치한 1980년대 이후 탐욕을 자유시장의 기초로 본 신자유주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39쪽

    침팬지와 보노보의 자질이 모두 인간에게 공존한다면, 인간의 특징적 성격이 사랑이냐 증오냐,

생존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경쟁이냐 협력이냐 같은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인간은 완전히 평화롭거나 경쟁적이지도, 오로지 이기적이거나 도덕적이지도 않다. 한 사

람에게는 물론 인류 모두에게도 그 둘은 공존한다. 따라서 전체주의적인 사상 개조에 대해서 인간

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저항한다. -중략-

우생학이나 자유방임주의는 여러 문제를 갖지만 특히 모든 사람에게 자신은 우생이거나 강자인

반면 자기 외의 타인은 열성이거나 약자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모두를 경쟁에 나서게 하는 점이

문제다. 보노보만을 특별히 강조하거나 찬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44쪽

    특히 1920년대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한 혁명적인 노동조합주의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회진화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치적인 상호부조론이 주목되었음으느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지적 유산이

다. 물론 시대적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특히 정신 개조 또는 인격 수양의 강조로 한정되어 그 정치성

이 거세되었다. 따라서 과거의 식진지적 왜국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지만 그 근본의 뜻까지 부

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부정한 제3의 길이라는 점이었다. 그 제3의 길은 임시

정부의 노선이었고 이는 해방 후 최초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대다수가 희망한 새로운 체제였다.

-중략- 그러나 이제는 제3의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 바로 자유-자치-자연의 삶을 중심으로 한 새로

운 인문의 길이다. 그것이 첫 사람의 길이다.

 

    음 틀린 말은 없는데 왠지 한국이 되게 약해져서 일본에게 먹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저자의 주장 중에 옳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고 사례도 적절히 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철저히 객관적으로 읽게 만드는 것, 이 생각에 동의하고 싶다가도

이건 아니지라고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박홍규 저자의 특기일수도 있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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