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사는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힘겨운 현실로부터 멀찌감치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몸도 함께 피폐해진다. 오늘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병은 그렇게 점점 깊어져 간다.
(그런데) 우리가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일들에서 정말로 도망치면 안 되는 것일까?
(만약 ‘도망’이라는 선택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목을 조르는 상황들이 사실은 나 스스로 만들어놓은 함정이거나
주변에서 무턱대고 요구하는 일들이라서, 내 삶에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이다.” [pp. 8~9]
하나뿐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하지만 타인의 기대와 생각,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꼭두각시 인형처럼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나오는 한스 기벤라트처럼 그 기대의
무게에 짓눌려서 죽음의 신을 만나게 되기 쉽다.
그런 삶을 살려면 차라리 저자의 말처럼 지금의 현실[일, 인간관계, 책임, 결정, 거절할 수 없는 상황, 걱정과 두려움]에서 도망쳐도 괜찮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잘되길 바란다는 기대를 받으면
거기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실패하기 바란다는
기대를 받아도
그런 마음에 저항하려고
더욱 실패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인가 ” [p. 95]
100%
확신에 찬 결정은 없다.
“어떤 일도 결과가 분명히 드러나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실컷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더라도 결말이 크게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어떤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는 것은 양쪽의 장단점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안과 B안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pp. 130~131]
만약 “당신이 A안을 선택했을 때 마음속으로 아직 B안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면, 그 뒤에도 마음은 계속 A안과 B안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다 보면,) 결국에는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A안으로 결정하고는
이것에만 집중하기로 결단을 내리면, 이때 머릿속은 이미 B안에
대해 완전히 지우게 된다. 이 상태에서 A안에 열정을 쏟아
부으면 그 집중력만으로도 충분히 A안 쪽이 잘 진척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선택하는 순간의 생각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p. 132~133]
즉, 100% 확신에 찬 결정을 할 수 없기에
선택은 어느 순간이건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을 ‘후회하는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도망쳐라, 망가지기 전에.
도망치는 것이 패배라고 생각하며 최후의
최후까지 완강히 버티는 사람은 위험도를 정확하게 판단할 힘마저 잃는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죽거나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나 도망치려고 발버둥치게 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늦었다.
차라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위험이 느껴지는 순간
상황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다. 자신의 마음과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도망치고 싶어하는
이유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 어디로 어떻게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하거나 안전한 루트로 전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p.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