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해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저는 친구 따라서 2개월동안 국궁장을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서 가면 귀여움을 듬뿍 받곤 했는데, 도심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보니 덥고, 추운날에는 고생이 많은터라 점점 발길이 뜸해지더라구요.국궁은 145m거리에 있는 가로2m 세로2.8미터의 과녁을 맞추는 것입니다. 양궁처럼 원중심에 가까우면 점수가 높은게 아니라 과녁판 자체를 맞추면 명중으로 간주합니다. 145미터이다 보니 쾌 큰 힘으로 시위를 당겨야 하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터라 5발중에 3발이상만 맞춰도 잘 하는 축에 속하는 운동이죠.
갑자기 국궁얘기라구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입니다. 이 일기를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거의 매일 활을 쐈다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군사가 활을 연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활로 내기를 하는 이야기,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가 가득한 걸 보면, 이순신장군의 활쏘기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이겼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졌다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실력도 출중했다라는 점이죠. 매일매일 활쏘기를 5순~10순(1순에 5발) 하는 일상이었죠.
그 다음 일기에서 많이 나오는 것이 날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다닐때, 일기장에 있던 날씨 표시처럼, 매일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일기로 기록한 걸 보면 상당히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활과 날씨 이야기를 빼면 난중일기의 양도 상당히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활과 날씨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많이 기록했을까라는 것을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활을 쐈던 경험을 되살려봤습니다.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결론은 '바람'일 것이다라는 결론을 짖게 만들었습니다. 지지 않는 전투는 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이순신 장군은 이길 수 있는 날, 즉 바람도 자신의 편이 되는 날을 골라서 전투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매일 활을 쏘면서 그 날의 바람을 이해하고 활을 쐈을 것입니다. 다년간의 백데이터는 이순신장군이 활쏘는 데에는 달인으로 만들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활쏘기가 전쟁에서 이기는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매일매일 무엇을 하고 있나..무엇을 기록하고 있나 더듬어보자니,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매일 쏘는 것처럼 집중하면서 일상을 지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책도 대충읽는 것 같고, 삶도 열심히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난중일기]의 위대함은 일상을 헛되게 보내지 않은 한 사람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무패의 영웅 이순신도 상상하던 것과 달리 몸도 약하고 걱정 많고 때로는 남도 비난할 줄 아는 인간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았다. 임했던 모든 해전에서 승리했다는 얘기나, 일본 해군 교본 중에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전투 방법이 나와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늘 이순신 장군은 기골이 장대하고 한치의 빈 틈도 보이지 않는 당당한 장수의 이미지를 생각해왔던 거 같다. 그러나 장군의 일기를 보면 그저 한 인간의 모습으로 전투를 치뤄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하루가 멀다하고 식은 땀과 몸이 아픈 것도 그렇고 떨어져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챙기는 모습도 놀랍고 특히 원균과의 갈등도 이순신 장군은 어떤 비난에도 참아내는 모습일 줄 알았는데 어이없다는 표현으로 일기에 쓰여있는 것도 오히려 정감이 간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에 대한 해몽을 통해 길조인지 흉조인지 판단하는 것도 전투에서의 불안함을 점괘를 통해 미리 확인해보고 싶은 우리네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동안 알았던 영웅의 꺽이지 않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그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였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한 가지 놀라운 건 거의 매일같이 일기를 썼을 정도로 부지런한 분이였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어떤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순신 장군의 인품이 나타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유성룡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느낄 수가 있다. 그런 인품이 오히려 영웅의 모습에 가까운 거 같다. 평범하지만 꾸준하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는 일들을 묵묵히 하며 나아가는 모습이 통쾌한 해전의 승리보다 더 인상적이다.
그리고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일기를 보며 장군이 승리한 전투의 통쾌함을 맛보고 싶었으나 그저 깨부셨다는 표현만 나올 뿐 자신의 승리를 높이거나 과장한 흔적이 없어 우리가 알고 있는 대첩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마 저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잘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물론 승리한 뒤 부하를 챙기는 모습은 예상한대로지만 여러 해전에서도 승리에 대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후세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영웅시하기 위해 크게 부풀리진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기 내용 중 패했다는 말은 보지 못했으니 역시 이순신 장군의 전략은 탁월했을 것이다. 그 시절 좀더 큰 역할을 더 할 수 있었다면 우리 나라의 현재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분이 책과 상관없이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