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ㅡ 열린책들 , 메리 로치 , 이한음 옮김
회사에서 쉬는 시간에 이 책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다 몹시 후회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었다 . 문제의 발단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마주하고 있는 월남전 파병 전우회사무실에서 대낮부터 불콰하게 얼굴이 벌겋게 물든채 또 손에 든 약주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화제에 오르며 전쟁 이야기가 나왔고 뒤이어 고엽제와 말라리아에 대한 이야기 , 고엽제로 인한 정부의 뒤늦은 파병군인 보훈 지원비정책이 있었다는 얘기들로 번져나갔다 .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을 정부가 인정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 그런데 제일 고참언니가 한숨을 쉬며 안그래도 자기 남편에게 그랬단다 . 월남전도 안나갔다오고 뭐했냐고 다녀왔으면 지금 그 지원비라도 받을게 아니냐고 했다는 말에 나는 아연실색을 했다 . 대체 이 언니는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걸까 싶으면서 70세를 훌쩍 넘은 연령이면서 (언니라고 하라니 언니라고 하지만 어디 언니가 가당키나 한가! 내 엄마의 언니가 되도 한참 언니뻘이 되실 분이다 ) 고작 몇만원을 받자고 남편이 평생 산 송장같은 세월을 살면 좋다는 말인지...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나중에 작은 언니에게 큰언니 집이 많이 어렵냐 살짝 물었다 . 작은 언니는 눈이 커다래져선 왜 ? 한다 . 아니라고 ... 하고 말았다 .
대체 얼마나 힘들면 남편을 전장에 내보내 보훈지원이라도 받아보고 싶어하나 하는 내 속내를 말할 수는 없었다 .만약 언니의 남편이 월남전에 다녀왔더라면 대낮에 비틀거리며 그 계단을 오르는 이는 바로 언니의 남편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
어쨌든 추억의 한 페이지가 생기긴 한게 분명한 책임이 분명해졌다 . 아니 일상이 , 사는게 전쟁이구나 싶은 씁쓸한 기억을 같이 껴안게 되서 맘이 더 안 좋아졌다 . 나는 말하건데 평화주의자다 . 비폭력을 지지한다 . 전쟁을 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 데이터는 간디가 행여 유령이 되었데도 비폭력과 평화주의에 입각한 내 생각을 더 공고히 하는데 더 없는 결과가 되면 되었지 그 반대는 될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고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 아무리 사람 대신 동물이 , 닭이 , 돼지가 , 염소가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의 가치로 쓰였대도 결과는 같다 .
어제였나 오늘였나 베트남 민간 학살 ㅡ50주년 기사를 읽어본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다 .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내내 우리 나라를 쫓아다닌 유령이 있다면 그건 바로 베트남 전쟁일거다 . 우리가 일본에 짓눌린 세월이 있던 만큼 , 우리 역시 베트남에 씻고 가야 할 업보가 있다 . 아무리 나라경제와 바꾼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해도 그렇다 . 비단 라이따이한 만을 말하는게 아니고 , 우리 국군도 민간 학살을 했다는 사실 . 전쟁 중에 일어난 일 . 우리 지난 정부는 파병을 했기에 모르새 ( 김대중대통령 때와 노무현대통령 때만 베트만 정부에 공식사과가 있었던 걸로 알고있다 . 그 이후의 정보는 또 알게모르게 닫혀있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 )로 일관을 하는지 모르지만 정작 파병을 다녀온 사람의 생은 평생 씻기지도 않는 피로 나머지 생이 엉망이 된다 .
왜 이런 과격한 이야길 하느냐면 전쟁과 과학이란 명분 아래 베트남 정글을, 또 나무 숲을 말리려고 미군에서 수없이 비행기로 퍼나른 게 고엽제 ㅡ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난데없이 왜 베트남 전쟁과 고엽제 이야기 ? 하겠지만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곳의 과학과 전쟁 , 그리고 살아남기의 이야기에 해당하기에 꺼낼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이 글을 정리하는 이시간 10월 1일 국군의 날이란 빨간 글짜가 달력 위에서 눈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 전쟁에서 살아남기 , 그리 멀리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 웃기는 말로 예전에는 들었지만 전쟁이 한참이던 때는 막말로 똥뚯간에 뛰어들어서라도 살려고 버둥대었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
아직 귓가에 생생한 목소리 , 커다란 바나나 , 야자수(?) 잎에 가려져 베트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던 기억 . 커다란 바나나 잎은 베트공만 가려줬을까 ? 이쪽 군인도 가려줬을테지만 아무 죄없는 민간인들도 그 나뭇잎이 총구로부터의 가림막이었을것이다 . 하늘에서 무차별로 뿌려진 고엽제는 베트남 정글을 말려버렸고 , 고엽제는 사람들 몸 속으로 스며들며 천천히 사람 역시 말려버렸다 .
물론 사람이 마르는 시간보단 기관총이 두두두 훑어 사람의 피를 말리는게 더 먼저였을테지만 ... 살충제가 비처럼 쏟아지고 베트남의 정글을 녹여버리는데 사용되리라고 누가 알았을까 ㅡ 진작 폐기 처분 되었어야 할 그것들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병사들을 몰아 붙이지 않은 한 어찌 같은 공기를 마시는 대기에 흩뿌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 애초에 그 살충제는 좀더 인간이 편하자고 만들어졌을거였다 . 다이옥신 따위가 검출되고 인간에 해가 되는게 알려지기 전까진 어떤 작물의 한 해 수확량이나 , 대규모 개간 사업들에 큰 활로를 열어 줬을게 분명한 발명의 이기였을거다 . 그런데 그게 어쩌다 전쟁 중의 한복판에 날아들어 비가 되어 쏟아진걸까 ...
생화학 전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던 공포물이었다 . 전쟁은 그 어떤 장르물보다 더 공포스럽다 . 그렇기에 나는 전쟁 영화는 볼 수가 없다 . 대의명분이란 허울아래 국가끼리 애국을 강요해 , 사람을 죽여도 좋다는 살인면허를 준다니 ... 또 그것들을 연구하고 개발? 의외성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쓰이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쳐도 , 전쟁을 위한 연구 자체는 옳은지 모르겠다 . 옳지 않으니까 필요할까 ? 이 책을 읽으면 그걸 좀 명확히 알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보고싶지 않은 정보만 늘어버렸다 . 어릴 때 나는 인체실험을 하는 마루타에 대한 이야길 내내 듣고 자랐다 . 조금 커서 읽은 책도 그런 책이다 . 731부대의 마루타니 , 하얀전쟁이니 하는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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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만 해도 전투 외상 의학을 공부하던 이들은 마취시킨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인명 구조법을 실습하곤 했다 .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 헛간의 동물들이 본래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사제 폭탄에 날아가는 상황에 처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 따라서 학생들을 훈련시키려면 그런 동물을 쏘거나 찌르거나 다리를 잘라 내는 일을 할 회사와 계약 할 수 밖에 없었다 .
(본문 145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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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의미에서 이 책의 앞 표지에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 은 신기한 ㅡ> 놀라운 정도로 대체 되어야한다 . 반면에 저자가 주지하려고 애쓴 부분은 그런의미에서 참신한 부분이라고 보였다 . 진짜 용기에 대한 것으로 희생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물론 쉽지 않기에 더욱 가치가 있고 알아두어야 할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 누가 총을 개발하고 훈장을 받았나 하는 것보단 사실 , 정말 알려져야 할 부분을 다뤘던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 하다못해 의복과 열에 의한 실험때문에 애쓴 돼지에게 핑크빛 훈장을 수여하는 것일지라도 ...
재미있자고 읽은 책이었다가 , 세대차이 큰 어르신들 덕에 환기가 확 되버려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 그분들은 전쟁둥이라고 할만한 시대의 분들이다 . 가까스로 전쟁을 비껴나 태어나셨다고해도 나보단 더 이 나라의 아픈 면모를 많이 알고 겪은 분들일테다 . 그런데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되는거라더니 정말 그런지 , 너무 힘들면 다 잊어버리게 되는건지 , 알다가도 모르겠다 . 자꾸만 내게 좋은 시절에 , 좋은 시대에 살아서 좋겠다는 말만을 하는 그들이 물려준 이 시대를 뜨거워 뜨거워하면서 어쩌지 못하고 있다 . 그나마 내 대에 전쟁이 나지 않고 , 내 후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 그래서 이 책의 많은 연구들이 그저 무용한 것들이기를 바랄 밖에 ...
" 사람들은 군사 과학이라고 하면 전략과 무기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 전투를 벌이고 폭탄을 터뜨리고 진군하는 광경을 떠올린다 . 그런 소재들은 회고록 작가와 역사가에게 넘기련다 . 나는 어느 누구도 영화로 만들지 않을 측면들에 관심이 있다 . 즉 죽이는 쪽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일과 관련된 쪽이다 . 목숨을 지키는 것이 싸워서 남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이긴 해도 , 그쪽으로 이야기를 펼치지는 않으련다 . 이 책은 전투가 벌어진 뒤에 실험복 자락을 휘날리면서 달려가는 과학자들과 외과 의사에게 표하는 경의다 . 더 안전한 탱크를 만들고 , 더러운 파리와 전쟁을 벌이고 , 칠면조독수리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말이다 ....
영웅적 행위가 반드시 열띤 찬양을 받으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 때로는 작은 승리와 너그러운 마음이 역사의 경로를 바꾼다 . 때로는 * 닭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
(본문 13 , 14 쪽 ㅡ서문을 대신하여 ㅡ중에서 ㅡ) 이 책의 가장 맘에 드는 글을 옮기며 ,
* 그..그렇다면 제발 트럼프 대신 닭을 ㅡ대통령 자리에 앉히는건 어때 ? 참 , 못할 농담이지만 우리나라 비속어 중엔 바로 전 대통령을 닭에 비유하기도 해...ㅠㅠ;; 에휴 ...그녀는 누굴 살렸을까 ?
의무 병역을 겪었고 겪을 남성들과 그 가족에게는 더 남일 같지 않을 텐데 군대 문제와 무기 관련한 사건사고는 시시때때로 뉴스로 전해진다. 관련해 최근 이런 보도들이 내 주목을 끌었다. 하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납탄’을 썼다는 사실. ‘납탄’은 납 파편이 피부 조직 사이사이에 박혀 수술로도 제거하기 어렵고, 1977년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 세계에서 사용이 금지된 총알이다. 그러나 1980년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그것을 쐈다. 납탄 후유증으로 하루 수십 알의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다. 두 번째 뉴스는 철원 사격 훈련장 근처에서 사망한 이 일병 사망 사고. 직접사인가 유탄인가 도비탄인가 논란이 많다. 사격장 주변에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게 가장 실책이었던 거 같고, 이번에도 군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는 듯 진상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여전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전장이 아닌데도 안타까운 죽음과 그들을 잃은 가족의 고통이 이렇듯 비일비재한데 전쟁이 일어나면…….
메리 로치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전쟁에서 군인들이 겪는 고충, 부상, 고통들과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학자들의 연구들을 밀착 취재해 이야기를 풀고 있다. 관련된 모두가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생생히 느껴진다.
〔그들의 수난사〕
● 소음에 시달리는 군인
“대다수의 귀마개는 소음을 30데시벨쯤 줄여 준다. 꾸준히 들려오는 지겨운 배경 소음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브래들리 전투 장갑차가 아스팔트 위를 덜거덕거리며 지나가는 소음(130데시벨)이나 블랙호크 헬기의 푸드득 소리(106데시벨) 같은 것들이다. 30데시벨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 시끄러운 소음의 세기가 3데시벨 커질 EO마다, 청력 손실 위험이 없는 노출 가능 시간은 절반씩 줄어든다. 사람의 맨귀는 85데시벨(고속도로 소음, 혼잡한 식당)까지의 소리에는 하루에 8시간씩 노출되어도 청력 손실이 없다. 115데시벨(사슬톱, 록 콘서트 무대 바로 앞)의 소음은 안전한 노출 시간이 30초에 불과하다. AT4 대전차 화기가 뿜는 187데시벨의 소음에는 1초밖에 견디지 못하는데, 그 짧은 노출에도 보호되지 않는 맨귀는 청력이 영구적으로 저하된다.(p68)
자신이 청각 장애를 겪는다는 걸 숨기거나 보청기를 끼고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일인가 싶다.
● 성 기능과 불임의 불안 속 군인
“위생병이 확인해 주었음에도(「모두 괜찮습니다. 대위님만 다쳤어요」), 한쪽 다리는 불구가 되었고 다른 한쪽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음에도, 화이트는 병사들을 점검하기 위해 계속 일어나려 애썼다. 상황을 파악해야 해. 지휘관이니까. 위생병은 그를 뉘어서 묶어 놓아야 했다. 좋든 나쁘든 간에, 그쪽에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그는 자신의 부상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조차 못했다. 폭발의 즉각적인 여파로, 그는 자신의 음경 끝이 <활짝 꽃핀flowewed out> 상태인 것을 보았지만, 얼마나 깊이 손상되었는지는 불분명했다(어울리지 않게도 꽃피다라는 동사는 IED(급조폭발물) 부상을 묘사하는 데 쓰여 왔다. 전형적인 하부 폭발 때, 다리 근육은 뼈와 분리되면서 날려가고, 그 벌어진 꽃 안으로 세균이 섞인 짙은 먼지 구름이 빠르게 몰려든다. 흙먼지로 뒤덮인 꽃은 씻어내기 힘들고, 치료하기 어려운 감염이 쉽게 일어난다.(p90~91)
"항구적 자유 작전(2001~2004년 탈레반 축출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미국의 군사 작전)에 참가한 퇴역 군인 중 약 300명은 부상으로 불임이 되었다. 「그 300명을 위해 15만 명의 정자를 은행에 보관하겠어요 」 예산을 감축하려는 국방부의 현재 분위기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메이도프는 군 예산 편성자들이 우려하는 점이 하나 더 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죽은 군인의 보관된 정자를 쓰는 미망인은 아기뿐 아니라 정부 연금 수혜자까지 낳는 것일 수 있다.(p121)
군 처우가 좋다는 미국에서도 이 정도니 한국 군인의 상황 생각하면 한숨만...
●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
“1960년대만 해도 전투 외상 의학을 공부하던 이들은 마취시킨 돼지와 염소를 대상으로 인명 구조법을 실습하곤 했다. (중략) 레이벌은 미 국방부가 살아 있는 조직을 대상으로 한 훈련에 쓰일 동물의 수를 2015년 수준ㅡ연간 약 8,500마리에서 3~4천 마리 수준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법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임 있는 의학을 위한 의사 위원회라는 동물권 옹호 단체가 배후에 있다고 한다. 환자 모형의 장치의 발달ㅡ그리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이루어진 고도로 극적인 컷슈트 시연에 힘입어서 생체 조직 실습을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다.(p145)
(※부연설명: 돼지는 인간과 내장의 크기와 배치, 혈압, 출혈 때 피가 흘러나오는 속도도 비슷하기 때문에 수난을 맞았고, 염소는 목 지방 두께가 돼지보다 절개하기 쉬워 응급 기도 확보 수술에 투입되었다.)
〔의외의 기여〕
● 위생병들이 겪는 다소 비인도적인 훈련의 목적은 실제 겪을지 모를 상황에 대한 예비접종이자 극도의 생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자동적으로 응급치료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조난당하는 영화 《127시간》이 생각난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바위틈에 낀 내 팔을 자를 수 있을까. 훈련도 없이 내 의지는 용기를 얼마나 낼 수 있을까.
● 군의 연구는 일반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장관 응집성 대장균ETEC 백신을 개발하려는 군 과학자들의 노력은 연간 ETEC 사망자 380,000~500,000명의 수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할 것이다.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는 설사로 사망하는 5세 미만의 아이가 하루에 2,195명이라고 추정한다. 말라리아, 에이즈, 홍역으로 사망한 아이 수를 더한 것보다 많다.”(p186)
바지에 설사를 하면서도 행군을 계속했다는 한 특수대원의 인터뷰는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 파리는 전쟁터 식중독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조지 펙 같은 연구자는 구더기가 난치성 감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걸 알아냈다. 구더기 관리 문제로 상용화되긴 어려워 보였다. 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골칫거리인 파리가 전쟁 종식의 주역이 될 수도 있었다. 나치가 점령한 스페인령 모로코에 파리 유인제와 치명적인 병원균이 섞인 모조 똥들을 투하해 파리가 나치 음식에 살포할 것을 기대한 작전이 있었다. 이런 작전들을 보면 너무 어이가 없다. 민간인들에게까지 미칠 영향은? 척 봐도 의심스러운 작전 성공률. 그런데 일명 <누구, 나? Who, Me?>라는 OSS(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정보기관) 서류철 속에는 웃어야 할지 놀려야 할지 막상막하인 냄새 작전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투하하기로 한 스컹크 냄새로 만든 《누구, 나 》 Ⅱ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린 건 아쉬운 일이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미군 역사상 열대 해역과 그 상공에서 전투를 벌인 최초의 사례였다. 추락해 상어에게 공격을 받고 잡아먹히는 이야기가 해군과 공군에 떠돌자 상어 퇴치 연구가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바다에 추락했다가 살아난 비행사 2,500명의 증언을 검토하니, 상어를 보았다는 사람은 38명에 불과했고, 그 중에 상어에 물려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12명뿐이었다.”(p261)
“볼드리지의 상어 공격 파일 자료 분석 결과는 정반대다. 공격을 받을 당시에 희생자가 피를 흘리고 있었던 시례는, 1,115건 중 19건에 불과했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 많은 상어 공격 때 희생자들이 단 한 차례만 물어 뜯겼고, 커다란 상처에서 피가 마구 쏟아지는 데도 상어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떠났다는 점을 생각할 때, 사람의 피가 상어를 끌어들이고 흥분시킨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p268~269)
상어 연구 진행을 보면 우리가 상어에게 느끼는 공포와 정보들이 매우 피상적이거나 잘못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책에서/
〔마무리〕
수면 장애에 시달리며 카페인을 넣은 간식거리(심지어 고기에도)를 먹는 등 잠수함 생활을 하는 해군의 이모저모도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들이 맞는 사고 상황에서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이 오버랩 되는 부분도 많아 더 유심히 읽기도 했다.
이라크에서 미군 법의관이자 홍보 담당관이었던 폴 스톤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는 매주 20~30구의 시신이 이곳을 거쳐 갔다. 2004년 이래로 이곳에서 약 6천 건의 부검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복무하다가 사망한 사람(그리고 개)은 모두 부검을 받는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이전에는 사망 당시의 목격자가 없거나, 사인이 불분명한 시신만 부검을 했다. 스톤은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하나 들다가 말을 멈춘다. 「학술적으로 따지면, 다 살인이지요」”(p336)
그렇다. 우리가 살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기필코 상대를 죽인다. 부검 사진사가 시신의 전신을 담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보고 메리 로치가 한 이 말도 참 공감됐다.
“나는 전쟁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 천 개의 불빛A thousand point of light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때에만,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중 어느 한 불빛의 가치를, 그것을 꺼뜨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전체를 조망하기란 힘겹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할지 상상하기가 버겁다.”(p339)
우리는 많은 전쟁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겪고 보고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 베여도 화들짝하는 게 사람 아닌가. 나는 전쟁과 평화가 반대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가 평화의 의지를 하나하나 잃어갈 때마다 그것이 전쟁의 색깔로 물들어간다고 느낀다. 자신과 가족과 친구가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 타인에게는 가차 없이 무기나 무력을 휘두르는 건 분명히 모순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회가 국가가 이런 상황을 만든다. 이 책에 소개된 냄새 폭탄 작전은 우습기도 했지만 비살상의 해법을 찾는 모든 노력은 박수받아야 한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메리 로치는 이 책을 썼고, 전쟁 뒤에 가려져 있는 이런 내용을 위트 넘치게 전달한 것도 그 일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 속에 오늘도 누군가 살아남아 삶의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 작년 8월은 상황이 그런 때였다. 정말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외면했다. 전쟁이 나면 모든 게 끝인데,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전쟁은 애당초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생각했다. 사실 작가 이름도 보지 않았다. 봤어도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이미 그녀의 『꿀꺽! 한 입의 과학』이란 책을 읽긴 했었지만 저자 이름은 잊고 있었고, 그녀의
다른 책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적어도 한반도에서) 전쟁 얘기는 드물어진 상황에서 이 책을 펴든 것은
전쟁 때문이 아니다. 작가가 메리 로치이기 때문이다(이 책이
메리 로치, 혹은 메리 로취의 책으로 번역된 것으로 마지막으로 읽는 책이다). 메리 로치가 전쟁에 대해서 쓰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는 되었다. 책 내용이, 결국에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긴 해도, 그게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외면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인) 우리말 제목이 잘못 지어진 것은 아니되, 제대로
지어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메리 로치의 다른 책들처럼 책의 원래 제목(『Grunt』)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메리 로치의 번역된 책들의 경우, 『스푸크』, 『봉크』 같은 책들처럼 아예 원래 제목을 우리말 제목으로 삼은 경우도 있고,
『꿀꺽! 한 입의 과학』, 『우주 다큐』처럼
고친 제목도 있고, 『스티프』에서 『인체 재활용』으로 제목을 바꾼 경우도 있다).
‘Grunt’는 ‘투덜거림’이란 뜻이다. 전쟁과 투덜거림이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쟁을 고작 투덜거림 정도와 비교하다니… 그런데, 메리 로치가 쓴 내용들을 보면, 그래도 이해는 갈만 하다. 메리 로치는 분명 전쟁에서의 ‘생사(生死)’ 에 대해 쓰고는 있지만, 또 그것은 가볍게만 보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심각한 표정으로 비감하지는 않다. 그게 투덜거림이다. 심한 악취에, 오랜 행군에, 몰려오는 졸음에 병사들이 투덜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메리 로치는 그렇게 이 책을 쓰고 있다.
남들이 쓰는 전쟁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별로 관심을 받지 않으면서도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얘깃거리를 찾아서 경험하고, 묻고, 찾아가면서 쓴 책이 이 책이다. 전쟁 얘기를 하면서 성기 절단, 조류 실험, 세균, 졸음, 의무병의 실습, 땀, 상어 기피제 개발, 설사, 파리, 악취 얘기를 듣기는 굉장히 드물다. 그러면서도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너무나 중요한 얘기들이다. 그러니 그것들에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각광은 받지 못할 지언정. 메리 로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쫓고 있고, 그런 이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를 미국 아니면 다른 데서는 쓸 수가 있을까? 지금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나라는 (적어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아마도 미국 밖에 없지 않을까? 전세계 어디가에선 미군이 관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전쟁에 대한 얘기도, 그것도 이런 사소하고도 중요한 것에 대한 얘기를 미국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게 읽다가도 씁쓸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악취로 적을 물리치거나, 사랑의 묘약 같은 것으로 서로를 감화시켜 전쟁할 마음을 없애기 위한 시도에서 눈이 번쩍 떠지기도 했다(물론 거의 실패에 관한 얘기다). 메리 로치도 우연한 기회에, 많은 도움을 받아가며 이 책을 썼지만 결국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부검실에는 바퀴가 달린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단식 알루미늄 사다리가 있다. 나는 천장을 수리하나 보다 생각했다. 「아니에요. 내려다보기 위해서죠.」 스톤이 말했다. 부검 사진사는 전신을 담으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나는 전쟁도 그렇지 않을까 추측한다. 천 개의 불빛(A thousand points of light)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볼 때에만,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중 어느 한 불빛의 가치를, 그것을 꺼뜨리는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전체를 조망하기란 힘겹다. 사다리를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할지 상상하기가 버겁다.”
전쟁 과학 하면 얼른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은 확증 파괴, 대량 살상이 주된 목적인 병기 제작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리 로치의 책,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전쟁 과학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적을 무찌르고 승리해서 살아남는 게 아닌, 정말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전쟁 과학의 모습을 말이죠.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접해보지도 못했던 분야를 열어주는 책이라 읽으면서 사실 놀랐습니다. '아니, 이런 것까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것도 오직 병사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하고 말이죠. 그야말로 이 책은 좁은 제 시야를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의 내 연구와 실험이 전쟁에서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살릴 것이라 믿으며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을 보면서 세계가 내 생각보다는 더 희망찬 곳이라는 걸 믿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전쟁 과학의 분야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여러 과학적인 지식마저 습득하도록 하며 어느덧 세계와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리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워싱턴 포스트' 지가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로 평가한 메리 로치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인 것입니다.
과연 저자에 대한 '워싱턴포스트' 지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피부와 온도 그리고 감각과 설사 등 여러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망라하고 있지만 결코 어렵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마다 들어차 유쾌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중간에 덮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책에 담긴 내용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것들로 가득이라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거든요. 진정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기막히는 연구가 행해지는 것을 몰랐을 것이며 우리가 무심히 여겼던 것들이 의외로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런 것을 수시로 던져주니 아무래도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더군요.
너무 칭찬만 하는 것 아니냐구요? 하지만 과장이 아닌 걸 어쩌죠? 감히 법정에서 선서도 할 수 있을만큼 제겐 좋은 책이었습니다. 올해의 가장 좋은 책으로 뽑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이 책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여러분, 닭 대포가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닭을 쏘는 대포입니다. 물론 죽은 닭이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불쌍한 닭 가지고 무슨 만행이야?' 하면서 삿대질을 하기 전에, 왜 이 닭 대포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얼른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혹시 영화 '인디아나 존스' 3편을 보셨나요? 네, 숀 코네리와 해리슨 포드가 부자지간으로 나오는 영화 말이죠.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인디아나 존스 부자가 해변에서 전투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주인공에겐 달리 대항할 수단이 없는 상황. 그 때 숀 코네리가 우산을 활짝 펼치고는 갈매기 무리에게 달려가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합니다. 마침 전투기가 다가오는 시점이었습니다. 갑자기 전투기는 비상한 갈매기 무리에 둘러싸이고 많은 갈매기들이 전투기에 부딪힙니다. 수많은 갈매기와의 충돌로 결국 전투기는 추락하고 맙니다. 이건 절대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새들에게 부딪혀 비행기가 추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는 더 그렇구요. 그래서 비행기를 새떼들과 부딪혀도 추락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그 강도의 실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닭 대포인 것입니다. 몸무게 1.8킬로그램의 닭을 시속 약 65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쏘아 과연 비행기가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죠. 하하, 그런 닭대포라니. '정말 희한한 게 다 있구나!' 할 만하지 않습니까? 세상 어딘가엔 지금도 죽은 닭이 펑펑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닭 대포의 실제 모습.
이런 것들이 여기엔 잔뜩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영화에서 전투 중에 위생병이 너무나 당황하여 부상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왕왕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걸 보면서 인지상정을 여길 뿐, 놀랍게도 그런 것을 막는 훈련이 실행되고 있는 것은 모르겠죠. 영화 감독까지 데려와 무대와 각종 특수 효과 장치로 실제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 상황을 연출하여 위생병이 그런 상황에 심적으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훈련이 말이죠. 그리고 또 전쟁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의 설사라는 것도 알 수 없을테죠.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적군의 총알에 맞아 죽는 병사 보다 이질이나 설사로 죽는 병사가 더 많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1848년 멕시코 전쟁 때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은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4배가 더 많았다.(p. 178)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연간 220만명이 설사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질질 싸는 것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설사 근절에 여념이 없는 한 학자는 오늘도 군대의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있는 병사들의 테이블을 돌며 "왜 설사를 참고 견디나?"고 묻고 다닌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지사제를 사용하면 4~12 시간 정도면 설사가 멈춰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않고 평균 3~5일 동안 설사를 참기 때문이죠. 그럴수록 안 좋은 것도 모르고 말이죠.
냄새 폭탄은 또 어떻습니까? 2차 대전 때 미국은 일본 장교들에게 사용할 냄새 폭탄을 만드는데 꽤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일본인은 소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아무데나 눌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데 유독 대변에서는 그런 걸 많이 느낀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런 대변 냄새가 나는 소형 분무기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주로 일본 장교에게 뿌려 냄새 때문에 부하들이 장교를 기피하게 만들고 장교 역시 부하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 작정으로 말이죠. 네, 이런 것도 미국은 아주 진지하게 연구했습니다. 그것도 엄중한 기밀 프로젝트로 말이죠. 이름도 있었습니다. <누구, 나?> 폭탄이라는.
뭐든 깊이 들어가면 진지함과 개그의 차이 같은 건 없어져버리나 봅니다. 이런 내용들이 연타로 나오니 어떻게 중간에 덮어버릴 수 있겠어요? 거기다 메리 로치는 실제 그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현장 체험기가 또 재밌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냄새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냄새를 잘 판별하여 병사가 스트레스를 받기 전 개입할 것을 목적으로 스트레스 냄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인데, 여기에 메리 로치도 일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기부한 것이죠. 이러한 생생한 체험기까지 도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욱 '큭큭' 하면서 읽었습니다.
바야흐로 명절이 코 앞입니다. 선물처럼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 중이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가진 정보가 남달라서 지식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뿐 아니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재미도 충만하기 때문에 연휴의 편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야말로 한 번 거닐어 볼만한 지식의 신세계 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
'이 작가 진짜 특이하다'
그리고
'당연히 필요한 연구 분야구나'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작가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다소 민망할 수도 있는 수술 장면과 경험담,
귀찮을 수도 있는 연구실 견학이나 인터뷰 등을
흔쾌히 허락해준 여러 관계자 덕분이다.
실감나게 죽고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연구비 보조도 쉽지 않지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하는 과학, 의학 분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
첫 장은 제 2의 피부에 대해 다룬다.
그냥 군복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중요한 것일 줄이야.
지퍼 하나 다는 것도 연구가 필요하고,
전장에서 청력보호를 위한 귀마개,
'청각 배제'라는 개념도 흥미로웠다.
'땀'이라는 인간 체온 조절 체제 덕분에
지구 전역에서 살수 있게 된 인류.
'병사들에게 화약과 총알보다 더 치명적인' 이질.
우습게 보여도, 베트남 전쟁때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4배나 더 많았다고 하니,
전쟁터에서 먹는 것,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어봄직한
'전쟁났을 때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라는 질문에 실감나게 대답해준 군인^^;;;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어쩔수 없지요.
여러 연구를 하고 있지만,
피드백을 받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은 정말 끔찍하다.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더 많은 군인의 목숨을 지켜야지.
작가를 따라다니며 생생하게 보고 듣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