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이 서는 날이면 옷 보따리를 이고 십 리를 걸어 난전에서 옷을 팔던 어머니는 장이 파할 무렵까지 있다 떨이로 파는 갈치나 고등어를 사와서는 무 넣고 조려주었다. 나물 반찬만 먹다 생선의 살점을 뜯어먹을 때면 비린내와 개펄 냄새 이면에 숨겨진 풍미가 혀를 자극한다. 신선도가 떨어진 생선을 조려먹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로 와 맛본 갖가지 해산물은 산채나물 중심의 섭생을 바꾸었다. 볼락 구이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며 직장 생활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힘을 얻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비린내를 즐기는 자신으로 변화해 있었다. 해양 생물들을 길러내는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 어선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조업을 나간 어부들의 분주한 손길을 떠올리며 해양생물학자가 전하는 해산물들의 보고 속으로 빠져들었다.
비주류 해산물로 여기기 십상인 해삼과 멍게, 개불의 영양 가치를 재해석하며 바다의 보약으로 삼았다. 보혈하면서 신열을 떨어뜨리고 신장을 이롭게 하는 해삼, 회복기 환자나 노약자의 건강식으로 활용되는 전복, 삶은 소라 껍데기 안에 고여 있는 국물이 최고라는 정보를 얻는다. 제주에서 여름을 나기 위해 자리돔을 먹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방어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때에 따라 맛볼 수 있는 제철 물고기 종류는 다양하다. 여름에는 기생충이 있어 개도 안 먹는다는 방어는 클수록 맛이 있는 어종으로 피를 빼낸 후 즉시 칼질해야 하는 요리법까지 담았다. 몸집이 작은 자리돔을 빼째 썰어 만든 물회는 여름철 냉국으로 쫄깃거리는 식감을 살리는 여름나기 음식이다.
계절이 바뀌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회유성 어종인 참돔은 성장이 빨라 양식이 일반화되어 돔 중에 최고라는 지위가 흔들릴 정도라니 흔해지면 푸대접 당하는 게 다반사처럼 보이는 게 씁쓸해진다. 이에 비해 성장이 느린 황돔은 양식을 해도 수익성이 떨어져 희소성이 있는 어종으로 지위가 오르고 있으며, 회·탕·구이 등으로 이용하는 자바리는 버리는 부위가 없이 전부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어종이라니 물고기의 다채로움이 더한다. 고등엇과에 속하는 외양성 고도 회유종인 다랑어는 10여 년이란 일생에 걸쳐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니 인상적이고,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된 EPA와 DHA는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인데다 두뇌를 좋게 하는 음식이라 유익함이 많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 무분별한 남획과 환경 변화로 바다 생태계가 달라져버린 상황은 서식지로 삼고 유영하던 물고기들이 떠나는 악순환의 지속으로 바다의 황폐화를 초래하였다. 해조류와 해초류가 바다 숲을 이뤄 물고기가 알을 낳고 기르는 산란장과 보육장, 자라면서 먹이를 섭취하고 사는 섭이장과 서식장으로 풍요로운 바다를 복원해야 한다. 멸종 위기에 놓인 수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산생물 종자를 방류하고, 수산생물들이 살 수 있는 서식장을 만들어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는 의의가 없을 것이다. 둑처럼 돌을 야트막하게 쌓아 놓고 고기를 잡는 ‘원담’어법, 대나무로 발을 쳐 놓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헤엄치다가 걸리는 물고기를 잡는 죽방렴 등의 슬로피시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몸에 이로움을 주는 먹거리 생산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비린내를 무척 싫어해 나는 생선을 잘 먹지 못했다. 대신 굴, 홍합, 홍어회를 좋아했다. 평생 싫어할 것 같았던 비린내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남편과 결혼한 후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먹은 생선구이, 거제도에서 먹어본 항아리 해물탕, 여수 오동도 인근 무인도에서 갓 잡은 생선회,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서 먹은 푸짐한 조개구이 등 국내를 여행하면 어딜 가나 이들 비린내가 맞아주었고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이제 비린내는 내게 행복한 추억을 실어다주는 매개다.
이름도 모양도 괴상한 해삼(海蔘). 우리말로 '뮈'라고 하고, 흑충(黑蟲)과 해남자(海男子) 등의 이름이 있다. <전어지(佃漁志)>에는 해삼의 효력이 인삼에 맞먹기 때문에 바다의 인삼이란 뜻의 해삼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도 "해삼은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라고 하여 높은 가치를 매겼다고 한다. 중국에는 '남삼여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남자에게는 해삼이 좋고,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는 뜻이다.
동네 횟집 앞을 지날 때마다 이름이 궁금했던 해산물이 있다. 이 책을 보니 '개불'이다. 고려 말의 요승 신돈이 정력 강화제로 즐겨 먹었다고 한다. 한방에서도 성기능이 쇠약해졌을 때 권하기도 한다니 효력이 입증된 것인가. 모양이 참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아닌게 아니라 개의 불알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개불상놈'이란 말은 성미가 아주 고약하거나 행실이 나쁜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조가비에서 태어난 것을 그린 그림이다. 어떤 조가비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바로 가리비다. 가리비에는 큰가리비(참가리비), 국자가리비, 비단가리비 등 전 세계적으로 300종 이상 분포한다고 한다. 제철은 12월~4월의 겨울에서 봄까지고 큰 패주에는 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특수한 성분이 있다고 하니 비너스가 탄생한 게 우연이 아닌가 보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shell의 심벌도 가리비 조개껍질이다.
고등어보다 세 배나 맛있다고 이름에 '삼'자가 붙은 물고기가 삼치다. 삼치는 성질이 급해 금방 죽는 물고기라고 한다. 그래서 경매 방식도 조금 다르다. 삼치의 신선도를 잃지 않기 위해 삼치잡이 배들이 들어오기 전에 최고가격을 써낸 사람이 전량 수매하는 방식이다. 성질 급한 삼치가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몰라 바닥에 늘어놓고 경매할 여유가 없는 거다. 회를 비롯해 소금구이, 조림, 찜 등으로 요리해 먹는다고 한다.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는 클라운피시clownfish 또는 아네모네피시anemone fish라고 하는 오렌지클라운피시orange clownfish다. 빨강이나 오렌지색이 흰색과 어우러져 광대 같다고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리돔과 같은 과에 속하는 흰동가리류로 총칭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여름 제주에서 물회를 먹어봤는데 바로 자리돔을 썰어 만든 자리물회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어두육미(魚頭肉尾)' 또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사자성어는 머리쪽에 살이 많은 돔 또는 도미와 관련 있다. "물고기와 육고기의 몸통을 얻을 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이 소위 부속에 해당하는 머리와 꼬리 부분을 먹으며 자위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전 세계는 녹색혁명을 넘어 청색혁명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공급에 대한 기대와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갯벌의 중요성으로 인한 관심이다. 지속 가능성이 위기인 시대에 슬로피시는 어업과 식량자원의 미래가 달린 국제행사다. 슬로푸드 운동이 제안하는 슬로피시는 지속 가능한 어업과 소비자의 책임 있는 수산물 소비를 중요시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슬로피시인 죽방렴과 건간망, 독살과 석방렴, 제주의 원담이 있다. 인간과 바다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복원해 살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멸치 머리에는 블랙 박스가 있다>에 이은 황선도 저자의 역작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끄는 멋진 제목이다. 소설가 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가 언뜻 떠오르지만 이 책은 비린 감칠맛 묘사에 치중하기보다 어패류에 대한 전문 지식을 먹기 좋게 회 떠서 대중적 초장에 잘 버무려 독자의 입에 넣어 주고 있다. 해산물의 맛을 설명해도 그 맛있음의 이유를 밝혀 준다. '7년생이면 1미터 길이에 7킬로그램이 넘는 대물. 마라도 해역에서 잡힌 삼치는 물살이 센 곳을 헤엄치다 보니 근육질이 탄탄해 져서 식감이 좋다.(2장 첫 꼭지 삼치와 방어 편에서 인용)'라는 식이다.
어류는 지구에 약 3만 2천종이나 있어서 척추동물 중 가장 많은 종이란다. 그런데 그저 해산물로 다 퉁쳐서 물고기로만 여겨 왜곡되어 알려진 점이 많다며 저자는 아쉬워한다. 물고기 박사답게 각종 어패류에 대해 생태나 이동 경로, 육질과 영양 성분 등 전문적,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것은 기본이다. 곁들여 도루묵이란 이름의 유래를 고서를 추적해 고증한다거나(선조와 관련 없다고 한다), 위도 앞 바다 임수도 근처에서 건져올린 문인석을 통해 과거 인신공양 풍습을 언급한다거나 풍어제를 소개하는 등, 바다와 관련 문화에 대한 읽을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글이 어찌나 맛있던지, 읽는 내내 술 한 잔 회 한 점 생각이 나서 입맛을 다셨다. 또, 각종 어패류를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에서 통용하는 명칭을 한자와 가나로 표기해주고 있어서 한중일 언어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런 점은 나만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펄이나 유기물이 있다면 해감을 해야 한다. 흙이나 모래는 바지락이 채취될 때 놀라서 흡입한 것으로, 본래 조개는 몸에 들어온 이물질을 배출하려는 습성이 있으므로 바다물이나 소금물에 하룻밤 담가 두면 저절로 토해 낸다.
- 118쪽에서 인용
다 읽고나니 위 인용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바지락이 놀라서 흙을 먹는다니 슬프다. 나만 슬픈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바지락 칼국수 먹다가 흙을 씹더라도 짜증내지 않고 바지락에게 연민을 느낄 것 같다. 놀랐니? 나도 놀랐다.
***
1.
여기에 나오는 '바라래'는 바다에, '나마자기'는 '해조류', '구조개'는 '굴과 조개'를 일컫는 말로 추정된다
-99 쪽에서 인용
=> 위는 1장 네번째 꼭지인 '굴 꼬막 바지락' 부분 설명이다. 청산별곡에 등장하는 '나마자기'는 해조류가 아니라 '나문재'라는 바닷가에 사는 풀이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오류이니 리뷰에 적는다.
2.
참다랑어를 회를 즐길 때 생강과 함께 먹으면 생강이 살균 작용을 함으로써 소화 문제를 예방해 준다.
- 229쪽에서 인용
=> '소화 문제'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다. 생강의 살균 작용이라면 소화가 아니라 '배탈 문제' 아닐까?
한창훈의 소설과 산문에는 늘 바다와 갯벌, 그리고 거기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늘 갓 잡아올려 펄떡거리는 바다 물고기같다.
그런데 바다와 바다 물고기에서는 '갯내'가 나기 마련인데, 이걸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생명의 원천의 냄새라는 건 알지만 민감한 후각은 그걸 '비린내'로 인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걸 갯내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한창훈을 좋아하겠지만, 그걸 비린내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독자들의 대부분에게 한창훈의
소설이나 산문이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이런 부분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머리로는 좋아할 수 있지만 공감을 하는건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비린내’를 전면에 내세운 걸 보고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게 사실이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비린내'라고 하면 뭔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니깐.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비린내'는
바다냄새이자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들의 냄새이다. 그러니깐 그야 말로 생명의 시원이 갖는 냄새.
그렇게 보자면 심지어 '비린내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아주 로맨틱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이 책은 '피맛골'에서 먹던 고등어 구이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하는데, 피맛골을 구수하게 채웠던 그 고등어구이 냄새가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사랑하는 비린내’이다.
따라서 그런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아주 기분 좋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바다와 바다생물들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그 생물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학 성찬’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큰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로는, 식욕을
돋우는 풍성한 읽을 거리들.
‘풍미 가득한’에서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가득 고이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풍성한
읽을 거리로 가득하다. 흔히 잘 차려진 밥상을 대하면 ‘상다리가
휘어지겠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어느 것에 젓가락을 가져가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모든 글들이 먹음직하고 싱싱하고 맛있다.
바닷물고기부터 패류—해삼, 멍게, 개불, 전복, 소라, 꽃멸, 원담, 굴, 꼬막, 바지락, 도루묵, 삼치, 방어, 돔, 다금바리, 다랑어, 연어, 홍합—까지 해산물의 유래와 생태, 그리고 바다 생태계의 역동성까지를 두루
섭렵하며 다루고 있어 읽을 거리가 풍성할 뿐 아니라, 곁들여진 사진들도 바다내음을 가득 풍긴다.
이 책의 두 번째 책은 첫번째 축보다는 훨씬 진지하다. 첫번째 부분이 부제 중에서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에 해당한다면 이 부분이 바로 ‘인문학적 성찬’에 해당되는 부분일텐데, 작가의 전공과 직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의식과
담론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가령, 바닷
속 생물을 '해산물'이라 지칭하는 것이나 '물고기'라고 호칭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라는 지적이 그러하다. 이러한 명명은 바다 생물을 오직 먹거리로만 취급하는 인간의 관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해양생물’을 조사하고 연구한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걸 언급하면서, 생명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해양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귀기울일만 하다. 이른바
‘청색혁명’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 마안도와 해중림 이야기. 공장식 어업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슬로피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공동체(이때의 공동체란
인간과 해양생물 모두를 포함한다) 모두를 위해 생태적인 ‘슬로피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적이고 공감이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나처럼 해산물이나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대중서이면서,전공자들나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관심도 충족시킬
수 있는 교양서적 성격도 갖고 있다. 어느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흥미롭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설사 당신이 ‘비린내’를 싫어하던 사람이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냄새까지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매력적인 책.
[덧] 혹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는지? (책
제목을 누가 지었나 모르지만, 두 책 모두 작명 센스만으로는 백점 만점에 백점이다!)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열두 달 우리 바다 물고기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인데,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황선도씨의 첫번째 대중서다.
황선도는 생명과학자로, 30년간 우리 바다를 누비며 바닷물고기를 연구해 온 토종 과학자이다. 별명은 ‘물고기 박사’.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우리 바다의 생태계 복원을 연구하며 언젠가 사라진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올 날을 고대하고 있단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30년간 우리 바다를 누비며 바닷물고기를 연구해 온 물고기박사 황선도 씨가 새 책을 냈다. 2013년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책에서는 일년 열두 달 제철 물고기 16종을 소개했었다.
이번 책은 ‘스키다시’로 무시 받는 해산물부터 존재감 넘치는 물고기와 바다를 호령하는 풍운아까지 골고루 담았다. 특히 횟집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해삼·멍게·개불, 전복·소라, 굴·꼬막·바지락 등 작은 개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놓았다. 마지막으로 해중림 가꾸기와 슬로피시 등 고갈되어가는 수자원을 살리기 위한 대안 어업도 제시했다.
지구상에는 약 3만 2천 종의 다양한 어류가 있다.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우리는 싸잡아 ‘물고기’로 칭한다. 고유의 개체적 특성 없이 오로지 먹거리로만 규정한 탓이다. 저자는 물고기의 입장에서 인간사를 바라보면, “여간 억울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통해 그간 잘 몰랐던 바다 생물과 수자원에 대한 통찰을 일깨워준다. 가령 해삼을 보자. 극피동물에 속하는 해삼이 살지 못하는 해저는 없다. 영양분이 부족한 어려운 서식지에서도 안개처럼 떠돌아다니는 수중 유기 부유물이나 해저 표층에 엷게 쌓인 퇴적물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해삼이 이런 변변찮은 먹이로 생을 견뎌낸다 해서 신선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극찬한다. 중국은 전 세계 해삼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소비한다.
진짜 다금바리. ‘바리바리’ 많아서 ‘바리’란 이름이 붙은 바릿과 물고기는 남획으로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익숙한 이름의 유래를 설명한 대목은 자못 흥미롭다. 가령 다금바리는 바리바리 많아서 '바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바지락 조개는 ‘바지라기’라 불리던 것이 줄어 그리 되었다. 혹자는 조개가 밟히는 소리가 ‘바지락 바지락’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참치’는 본래 동해지역의 사투리였는데, 해방 후 해무청(오늘의 해양수산부)의 어획 담당관이 이 말을 보고서에 썼기 때문에 원래 이름 '다랑어'보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등어, 삼치, 다랑어, 방어. 네 등푸른 생선들 중 분류학상 종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 답은 방어다. 앞의 세 가지는 고등엇과에 속하고, 방어는 전갱잇과에 속한다. 방어와 삼치는 제주 지역 겨울바다의 진객이다. 회로 썰었을 때 방어는 두툼한 식감이, 삼치는 연한 맛이 일품이다. 방어를 즐기는 미식가라면 겨울철 모슬포항을 찾는 것이 제격이겠다.
지난 40여 년 동안 수온이 높을수록 삼치와 고등어 및 멸치의 어획량이 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지만, 적당한 서식 수온이 주어지면 먹이가 되는 소형 어류와 이를 먹는 대형 어류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한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원담이란 돌을 둑처럼 야트막하게 쌓아 놓고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물을 타고 빠져나가다가 엉기성기 쌓인 돌담 사이로 물은 빠져나가고 고기가 걸리게 한 돌 그물이다.
삼치는 끌낚시의 손맛을 즐길 수 있다. 은박지로 만든 가짜 미끼를 드리우고 배로 빠르게 끌면 마치 멸치 같아서 질주본능의 삼치가 덥석 문다. 끌낚시는 돌 그물 ‘원담’이나 남해 죽방렴 그리고 강화도 건간망 처럼 생태 어업이요, 슬로피시다.
슬로피시는 이익만 좇아 기업형 선단과 어망을 동원하여 대량생산하기 보다는 자연에 순응하여 느리게, 그리고 소비자와 가까운 산지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슬로피시는 2003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처음 국제대회가 열린 후 홀수 해마다 개최된다.
2015 슬로피시 대회 포스터
한편 바다숲은 다시마와 미역 등 해조류와 거머리말 등 해초류가 무리 지어 사는 바닷속 군락이다. 이곳은 물고기가 몸을 숨기거나 알을 낳는 곳이요, 치어들이 자라는 생태 공간이다. 인류에게는 웰빙 식품이고, 의약품용·산업용으로 쓰이는 기능성 물질을 제공한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온실가스를 줄이고, 청정 바이오에너지를 위한 원료로도 활용된다. 우리는 5월 10일을 바다식목일로 정해 다양한 쓰임새를 지닌 바다숲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해산물은 무한히 찍어 내는 공산품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서로 공존하지 않으면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슬로피시와 바다숲 가꾸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육지가 녹색 혁명이라면, 바다는 청색 혁명의 시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