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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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맛

김사과 에세이

리뷰 총점 8.4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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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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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도서/에세이] 김사과 에세이 '설탕의 맛' 평점5점 | o*******7 | 2014.06.23 리뷰제목
하여 이것은 동시대의 여행에 관한 어떤 환상도 슬픔도 없는 기록이며 동시에 냉소와 환멸로 가득 찬 가짜 여행기다(가짜가 바로 우리들의 리얼리티이므로). 이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여행기에서 기대하는 것들(진실하고 고유한 경험, 여행산업과 미디어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 마치 식욕을 자극하듯이), 다시 말해 낭만적인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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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것은 동시대의 여행에 관한 어떤 환상도 슬픔도 없는 기록이며 동시에 냉소와 환멸로 가득 찬 가짜 여행기다(가짜가 바로 우리들의 리얼리티이므로). 이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여행기에서 기대하는 것들(진실하고 고유한 경험, 여행산업과 미디어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 마치 식욕을 자극하듯이), 다시 말해 낭만적인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것은 글로벌비즈니스가 쌓아 올린 쓰레기더미다. (_12)


  글쎄, 천재 또는 엘리트라는 푯말을 달고 있는 그녀의 루트를 일반적인 내가 이해하기란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수전 손택 정도가 되었다면 이기적이게도 난 다르게 읽었을지도 모르지. 여튼, 이웃 블로그에 극찬을 통해 궁금증이 생겼고 여행에세이라고 하니 좋아하기도 하고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 주저 없이 책을 들었다. 또 사진 몇 장 없는 구성의 책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여행 에세이와 다르기도 했고. 그런데 책을 읽을 수록 영 나와는 맞지 않았다. 감성의 단물은 모조리 뺀ㅡ홍인혜 작가와는 또 다르게ㅡ, 그녀의 일상적이고 담담한 시선은 내게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이방인으로, 고민만을 안은 채 표류하고 있는 그녀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한편 대도시 한폭판의 일상이 나를 괴롭혔다. 즐거움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끝없이 돈을 써야 하는 삶. 매일 저녁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가는 것이 지겨웠다. 게다가 번화가 한복판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 대형 마트에 가는 것이나 백화점 식품관에서 배달해다 먹는 것이나 비슷한 비용이 든다는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저녁이 오면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는데 카페와 술집과 카페와 옷가게와 옷가게와 옷가게와…. (_92)


그녀가 들려준 옥스퍼드 대학 공부벌레들의 실체는, 한국의 젊은 엘리트들과 다르지 않았다. 끝도 없는 경쟁, 스펙 쌓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초딩 수준에 멈춰버린 감정고 표현력,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나는 독특한 기행들. 우리는 자주 이 맛이 가버린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_103)



 깊게 읽었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도 설렁설렁 읽었던 것도. 그녀는 어떤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 채 책장을 넘겼던 것도. 그녀의 책에 흥미를 반감시켰던 무의식적 행동일 수도 있다. 무작정 감성을 깃든 여행 에세이가 아닌, 사무적인 통찰력으로 인물이나 풍경을 이야기 하는 그녀가 낯설었을 수도 있고. 결국 나는 공감은 하지만, 동감해 줄 수 없는 혹은 동감하고 싶지 않은 글들 사이를 헤맸다. 



 그녀의 글을 통해 ‘나’란 사람을 보고 만다. 좋은 말로 포장하고 위장하며, 도망가기 위해 애쓰던 나를. 단물이 넘쳐 흐르는 여행 에세이에서 나약한 기대를 품고 원대하게 떠나겠다고 꿈꾸는 나를. 그들처럼 감성과잉으로 이곳 저곳을 흐느적대며, 실은 돈이 없어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그런데 이런 나를 나는 내치고 싶지 않다. 서늘한 사회를 담담히 바라보며 ‘별거 없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결국 똑같아’라고 조소 섞인 목소리로 귓속말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맛보지 못한 단물에 입맛 다시며 오늘도 그날을 손으로 세며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것이니, 그것에 비한다면 꽤 괜찮지 않나. 글쎄, 조언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환상적이진 않아’ 그렇지만 덧대고 싶다. ‘그래도 해볼만해. 어서 나와봐!’라고. 



 글쎄. 예술가들은 예술가끼리 알아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같이 도망치듯 뛰어든 자들의 이야기가 더 편하고 좋다. 결정을 하기 전에 수도 없이 흔들렸고 불안에 움츠릴 수 밖에 없는 그들을. 그래서 김동영 좋고, 이병률이 좋고, 홍인혜가 좋다. 현상을 직관하는 대신 감성을 심어주는 것. 아무리 돌아봐도 우리는 감정 결핍이다. 어떻게 표현할지도, 어떻게 표출할지도 잘 모른다. 아직 나는 ‘겨울 왕국’ 같은 이야기가 훨씬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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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 평점10점 | n******5 | 2014.03.13 리뷰제목
<설탕의 맛>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에도, 책을 읽는 도중에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러가지 의문이 남는 책이다. 이 책의 장르는 여행 에세이, 책 소개글에서는 구태여 '여행'이란 단어를 빼고 '소설가 김사과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라고 적혀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은 세계적인 몇 몇 도시인 뉴욕, 포르투, 베를린 그리도 또다시 뉴욕이란 도시가 배경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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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맛>은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에도, 책을 읽는 도중에도,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러가지 의문이 남는 책이다.

이 책의 장르는 여행 에세이, 책 소개글에서는 구태여 '여행'이란 단어를 빼고 '소설가 김사과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라고 적혀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은 세계적인 몇 몇 도시인 뉴욕, 포르투, 베를린 그리도 또다시 뉴욕이란 도시가 배경이 되기 때문에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행이란 단어를 빼고 책을 읽는 편이 훨씬 작가의 속내를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설탕의 맛'이라고 하면 달착지근한 그런 맛을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서문에서,

" (...)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이다. 이 책은 그 맛에 대한 이야기다. " 라고 말한다.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 그런 맛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맛을 찾고자 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그 맛이 내가 찾은 맛인지 아닌지는 이 책을 덮으면서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하게 남는 것은 내가 아직 알지 못했던 '김사과'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문제적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소설가 김사과'  라는 글이 보이는데, 이 책 속에는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 도시들을 찾았음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1960년에서 1980년, 약 20년간 해외에 체류한다. 그래서 집안은 해외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작가는 1984년생으로 젊은 작가인데, 2005년 단편소설 '영이'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다.

2007년 한국 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해외에서 집필을 하는 목적으로 경비를 지원해 주게 되는데, 그녀는 뉴욕에 가서 소설을 쓰기로 한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한 권의 장편소설을 들고 오게 된다.

이 책은 2007년 소설 리서치를 위해서 뉴욕에 가기 전에 체코의 프라하에 들리게 되는데, 사회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중부 유럽 체코의 프라하에서 두 달을, 자본주의의 최전선인 미국의 뉴욕으로 세 달을 머물면서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게 된다.

" 도시와의 헤어짐은 사람과의 헤어짐에 비하면 슬픈 것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돌아가면 되니까. 어 그러면 되니까." (p. 72)

그리고 잠깐 샌프란시스코...

" 화장실 세면대 타월의 다양함. 그게 어쩌면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경험한 모든 것이다. (...)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모험 속에 들어 있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들어 낸, 여러 가지 종류의 세면대 타월로 이루어진. 시시하고 멋대가리 없는, 나의 모험." (p. 82)

김사과는 2007년에는 뉴욕에서 두 번째 장편소설을 쓰게 되고, 2009년에는 통영을 꼭 닮은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세 번째 장편소설을 쓰고, 베를린에서는 네 번째 장편소설을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2012년에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소설을 쓴다.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

" 행군같은 여행이 아니라, 머무른 것인지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길고 임시적인 이동" 을 통한 여행이 아닌 그렇다고 해서 생활인도 아닌, 이방인의 시각으로 그 도시의 일원이 되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인연을 맺고, 작품활동을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소설가 김사과를 처음 알게 되었기에 작가의 소설을 아직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평이한 소설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제대로 읽으려면 일정량의 각오와 결단과 열량공급이 필요한 김사과 작가의 소설들과 달리, 이 에세이는 작가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어 신선하다. 여러 칼럼과 인터뷰 등에서 느낄 수 있듯이, 김사과 작가의 신중하고 논리정연하며 똑똑한 글은 아프고 부끄러운 곳마저도 주저 없이 한 방에 찌르는 과단성이 있다." (인터넷 책 소개 글 중에서)

<설탕의 맛>을 읽으면서 이 책은 분명 에세이라는 장르이지만, 어떻게 읽으면 한 편의 소설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글까지 읽게 되니 한 번쯤은 김사과의 소설들을 읽어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존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접한다면 '머리가 멍해지는 설탕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이 바로 그런 설탕의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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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김사과, 힙스터 평점7점 | YES마니아 : 골드 b***n | 2014.06.19 리뷰제목
최근 작가 김사과가 예전에 쓴 글이 회자되면서, 힙스터 작가=김사과의 공식이 된 것 같다.힙스터로 검색하다가 김사과의 에세이 '설탕의 맛'이 힙스터의 정석 같은 책이라는 글을 보고 도서관에 신청했다. 그리고 한달을 넘게 기다려서 지난 주말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기 힘들어 트위터에서 검색해보니, 누군가가 김사과는 레퍼런스가 없는 작가라고 말을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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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가 김사과가 예전에 쓴 글이 회자되면서, 힙스터 작가=김사과의 공식이 된 것 같다.

힙스터로 검색하다가 김사과의 에세이 '설탕의 맛'이 힙스터의 정석 같은 책이라는 글을 보고 도서관에 신청했다.

 

그리고 한달을 넘게 기다려서 지난 주말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기 힘들어 트위터에서 검색해보니, 누군가가 김사과는 레퍼런스가 없는 작가라고 말을 한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아 그렇구나, 했다.

 

그래 설탕의 맛에는 여러 가지 책, 음악, 미술 등 예술문화와 관련된 것들이 수도 없이 언급되지만 그에 대한 레퍼런스가 부족하다. 

 

어쩌면 그녀는 어차피 구글 검색이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이잖아? 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레퍼런스를 붙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만약 이 책이 1990년대 아직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던 시절에 나온 것이라면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도 있었겠다, 마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이던 서양생활, 스파게티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재즈를 듣는 그런 생활, 1990년대를 산 젊은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상황, 을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고 평해지는 노르웨이의 숲.

 

1990년대의 젊은이들은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세대였지만 즐길 거리가 거의 없어 유학생들, 압구정의 오렌지족, 이 어느 정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에게 만약 <설탕의 맛>을 보여주었다면 그녀가 누린 생활이 그 자체가 하나의 롤모델이 되었을텐데 지금은 '너 왜 다른 데서 나온 이야기 마치 니가 제일 먼저 생각한것처럼 쓰는 건데?' '너만 아는 거 아닌데?'라는 평을 듣는다. 그녀는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기반으로 글을 쓰는데 그 부분에서 레퍼런스가 나타나지 않는것 같다. 과거는 아무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변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이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항상 따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를 잊은 문학이란 있을 수 없다는게 중론이니 어쩔 수 없나? 그런 면에서 과거나 역사와 거리가 멀었던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갑자기 힙스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2010년 초반에 잠깐 떠올랐다 사그라진 단어이다. 아마 홍대앞 자영업자들이 홍대의 가게세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제주도에 사람이 넘쳐나면서, 자연스레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사라졌겠지. 그리고 버스커버스커가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밴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것도 한몫했겠지.

 

어쨌든 웬일인지 김사과의 글이 다시 회자되고, 킨포크 매거진이 한국어로 발매되고, 힙스터가 은퇴하는 도시, 포틀랜드를 일본에서 띄워주고, 모든 건 다시 2010년으로 돌아가 '야 힙스터가 좀 그러면 에코, 그린라이프로 다시 분위기 살리는 건 어때?'라는 모드가 조성되고 있고,

 

그런 시기에서 김사과의 <사과의 맛>은 힙스터 입문자들에게 바이블이 될 수도 있을텐데, 출판사가 쌤앤파커스라 이미 힙과는 거리가 멀어서 실패다.

 

전혀 힙하지 않아, 

 

그는 타고난 예민함에 더해 한량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영향으로 까다롭고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추천한 식당은 하나같이 맛이 있었고, 고급문화에서 하위문화까지 모드를 게 없는데다가,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매력적인 미국 예술가들을 잔뜩 알고 있었다.

 

작가가 뉴욕에서 방을 빌린 집 주인 헨리, 미국내에서 정의하는 뉴욕 힙스터에 가까운 인물로, 부자인데 히피인 부모를 둬서 부모 덕에 돈 걱정 없이 임대소득 등으로 놀고 먹으면서 가진 건 돈과 시간 뿐이라 남들이 안 읽는 책 읽고, 공연 보고, 음악을 들어 취향은 한껏 높아지는데 그걸 창조적으로 풀 능력은 없어 그냥 세월을 보내는 돈 많은 한량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포르투, 베를린 등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비슷하다. 공부를 길게 하거나 집에 돈이 많아 자원봉사하며 지내거나,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당장 길거리 노숙을 해야할 경제능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그저 놀고 먹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춤이나 추는 청춘들.

 

마치 그런 청춘들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양, 쿨하고 멋진 듯, 그려진다.

 

20년 전이라면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지금은 '힙스터 나부랭이'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미 힙스터라는 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다들 질려 버렸을텐데,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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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설탕의 맛 평점10점 | s*****0 | 2014.03.13 리뷰제목
책 <설탕의 맛>은 소설가 김사과의 여행에세이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해외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탐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고민과 김사과라는 소설가의 솔직한 서사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의 뉴욕부터 포르투, 베를린, 그리고 다시 2012년의 뉴욕까지 고민하는 작가 김사과의 해외 도시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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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설탕의 맛>은 소설가 김사과의 여행에세이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해외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탐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고민과 김사과라는 소설가의 솔직한 서사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의 뉴욕부터 포르투, 베를린, 그리고 다시 2012년의 뉴욕까지 고민하는 작가 김사과의 해외 도시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냉전시기 해외체류의 행운을 가졌던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진짜라는 느낌을 받는다. 스타벅스가, 삼성의 광고판이, 인터넷이, 아이폰과 페이스북이 없는 시대의 여행. 진짜 여행. 독일에서는 독일산을, 일본에서는 일본산을 살 수 잇는 시대의 여행. 카톡으로 한국의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고, 중국산 관광상품을 끌어안고 돌아오는 이 시대의 여행과 전혀 다른, 이제는 시대극으로만 존재하는 그런 여행.

여행 내내 나는 초국적 자본주의가 직조해낸 촘촘한 그늘에서 단 한 순간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내 세대의, 우리 시대의 여행이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여행, 유사 혹은 하이퍼리얼리티로서의 여행. 일회용품의. 소비와 소보로서의. 일찍의 척팔라닉이 <파이터 클럽>에서 그려 보인, 불면과 공항과 싸구려 비즈니스호텔로 이루어진.

하여 이것은 동시대의 여행에 관한 어떤 환상도 슬픔도 없는 기록이며 동시에 냉소와 환멸로 가득 찬 가짜 여행기다(가짜가 바로 우리들의 리얼리티이므로). 이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여행기에서 기대하는 건들(진실하고 고유한 경험, 여행산업과 미디어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 마치 식욕을 자극하듯이), 다시 말해 낭만적인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것은 글로벌비즈니스가 쌓아올린쓰레기더미다."

저자는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 지구상에서 한국보다 더 최첨단인 나라는 없기 때문이며 세계의 미래를 예감하고 싶다면 한국사회에 머물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거듭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번 나의 여행의 목적은 내일의 장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폐허를 발견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라크전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 '끝이 안 보인다'를 보면서 황폐화된 이라크의 풍경에서 전후 한국을 떠올렸다고 한다.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의 폐허가 된 한국사회를 비판한다.

"한국이 지옥인 이유는 당연하다. 무책임한 살육과 독재, 무계획적인 파괴와 증축은 영혼을 파괴한다. 같은 일이 이라크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 또한 거기에 한 발을 담갔다. 좀 더 많은 부를 위해 과연 한국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영혼을 갖게 될 수 있을까? 풍요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돈으로 교양을 쌓고, 3개국어에 능통해진 채, 전 세계를 돌며 커리어를 쌓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그들이 영혼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식으로는 어떤 가치도 태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저주받았다. 그리고 그런 식의 저주를, 미국이 이라크에 퍼붓고 있다. 오직 유전 때문에?"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하겠다며 홍대 근처에 ​살고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뭘해서 먹고살 것인가에 대해 위기감에 시달린 저자는 짧은 소설을 계약하고 동시에 두 번째 장편소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동시에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강독 세미나를 다녔다. 동시에 지젝과 바디우와 고진을 읽고, 시사잡지에 칼럼을 연재하는 한편 엄청나게 긴 단편소설을 썼다. 저자는 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것을 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도망칠 궁리 끝에 예쁜 도시라고 들었던 통영과 닮았다는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로 향했다.

"대도시 한복판의 일상이 나를 괴롭혔다. 즐거움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끝없이 돈을 써야 하는 삶. 매일 저녁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가는 것이 지겨웠다. 나는 두통에 시달리며, 평범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이야기를 썼다. <자본론>은 너무 난해했고, 프랑스어 문법은 너무 복잡했다. 하지만 뭘 하든 이 정체불명의 모호함을, 이 모호한 짜증과 불안을 걷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늘 그렇듯이, 나는 도망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마라라는 친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똑똑한 여자다. 그녀는 매력적이며, 친구가 많다. 그녀는 조울병 환자다.​ 베를린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중, 그녀의 상관이 그녀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녀를 옥스퍼드로 보냈다. 그녀는 옥스퍼드에 적응하지 못했고, 조울병이 발병했다.

가끔 시내를 걷다 보면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며 느릿느릿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혼자임에도 꼿꼿했고,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상황에서건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는 유럽의 노인들. 그것은 서구 개인주의의 승리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아주 지독한 애처로움이 있었는데, 그건 나에게 미셸 우엘백의 몇몇 소설들을 떠오르게 했다. 유럽, 늙은 땅, 긍지를 잃지 않는, 우아하게 늙어가는 고독한 노인들의 대륙, 그 안에서 나는 우엘백이 느낀 구역질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여행에서 소설을 쓰며 여행자도 거주자도 아닌 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않는 삶'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어딜 가고 싶은지, 어디에 있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어쩌면 모든 곳에 있고 싶고, 아니 어디에도 있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숱한 여행들 속에서 결국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곧 나는 내 세 번째 소설의 초고를 끝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당장 어디에 있든 상관없는 삶을 갖게 되었다는,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가 어디든, 머물 이유도, 떠날 이유도 없다. 가야 할 이유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노트북을 올려놓을 책상이 있다면, 그게 어디든 상관없다. 이것은 행운인가? 모르겠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않는 삶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저자는 런던에서, 뉴욕에서, 베를린에서 일어나는, '세련된 방식의 뉴타운 개발'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똑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도시를 보면서 한국의 도시 서울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서울은 슬럼화하는 지방도시보다 도쿄와 훨씬 더 닮았다. 서울의 젊은이들은 지방 노동자들보다 뉴욕의 젊은이들과 더 많은 물질적, 정신적 토대를 공유한다. 이 시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제국의 지도는 입점한 도시의 리스트가 빽빽하게 새겨진 아메리칸 어패럴의 비닐백이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한 나라의 시민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다른 세계와 다른 장소에 속해 있다. 아니, 누군가는 속해 있으며 누군가는 쫓겨났다. 나는 더 이상 국가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다. 국가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건 나의 나라도 당신들의 나라도 아니다. 가진 자들의 것도 버려진 자들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며, 그 환상은 기능을 멈췄다. 나는 더 이상 국가를 알지 못한다. 오직 도시들이, 숨 막히도록 서로 닮아가는 도시들의 근친상간 이야기가 여기 있다."

저자는 인간들은 몰환상을 견딜 수 없기에 우울증이란 범주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삶에는 환상이 필요하다. 내가 나라는 환상. 우리가 함께한다는 환상.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환상. 이해받고,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 그것이 없으면 미친다.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인간들은 견딜 수 없다. 그것을 견디라는 것은 모욕이다. 사물들의 본모습. 맨얼굴을 드러낸 도시. 치부와 금기들. 사랑 없는 성관계. 개죽음. 카페인 빠진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가짜약과 인공향,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정말 가짜인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서 환상과 거짓을 포함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 살점들이 녹아내리고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우울증이라 부른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결국 인간은 어디나 똑같아. 그는 토할 정도로 많은 곳을 여행했으며 그 결과로 그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내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토하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한 다음 지극히 단순한 깨달음에 도달하기. 아무튼, 맞는 말이다. 어디든 좋은 사람은 좋고, 나쁜 사람은 또 비슷하게 나쁘다. 좀 더 잘 배우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겉보기에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교육과 자본과 아무 상관없다. 진정한 고귀함은 흔하지도 않고, 랜덤이다. 운과 같다. 막상 고귀한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다. 아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 싶다."

저자는 문학가들이 '지금 여기의 혼란을 포착해낼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내는 데 관심이 없다'며 질타한다.

"한편 문학은 어떤가? 애플이나 삼성같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어버린 유명 문학가들은 막다른 골목에 갇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나머지는 대중주의를 보편성과 혼동하고 있다. 누구도 지금 여기의 혼란을 포착해낼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내는 데 관심이 없다. 다들 인자하게, 추하지 않게, 늙어가기를 원할 뿐이다. 모든 게 멈춰 있고,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운한 사람들이 모두의 고통을 떠맡은 채 망가져가고 있으며 그것은 냄새나고 더럽고, 못생겼고... 한마디로 가까이하기 싫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고.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흥미로운 것은 암페타민에 절어 주절거리는 캣 마넬의 바이스 칼럼들뿐. 그것들이, 맥북 화면 속에서 빛나며, 내 앞에 놓여 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설탕의 맛'은 무엇일까. 저자는 설렘보다는 불안이 더 컸던 그 시기 덜 익은 과일처럼 시고 떫은 맛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여행을 채운 것은 대체로 지나치게 단 설탕의 맛이었다고 한다. 저자가 매일 밤 잠들기 전 눈을 감은 채 여행에 대한 망상에 푹 잠겨 있던 자신이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설망의 맛을 많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도시는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한때 나는 그것을 사랑했다. 사랑했고, 사로잡혔고, 외쳤고, 울었고, 썼고, 만들었고, 껴안고, 입 맞췄다. 하지만 이제 나는 침묵을 원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침묵을 원한다. 나는 소움으로 가득한 거리가 싫다. 비명과 광고의 대답과 질문과 여행객과 히피와 상점으로 가득한 그 거리가. 왜냐고? 거긴 오직 슬픔뿐이니까. 오직 베개를 적시는 눈물뿐이니까. 하지만 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라는 걸. 이게 내가 살아온 삶이라고. 그리고 삶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이 거리를 통과하여 살아가야 한다. 살기를 원한다면, 하지만 도대체 삶이란 뭔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소유한다. 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지나치게 충분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뭔지를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소비자일 뿐이니까. 우리는 그저 소모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게 우리들의 삶이다. 그저 쓰레기통에 처박기 위해, 불태워버리기 위해, 모든 것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산다. 판매자들을 위해. 그게 사랑이고, 우정이고, 효이며... 그게 우리가 아는 관계들이다. 그러니 나한테 정말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어떤 게, 도대체 뭐가 나한테 필요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외롭지 않기 위해, 괜찮기 위해, 좋아지기 위해, 대체 얼마나, 얼마나 많은 것들ㄹ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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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설탕의 맛 평점9점 | j*******h | 2014.04.05 리뷰제목
『설탕의 맛』을 읽어보기 전, '현대인의 기본적인 정서상태에 관한 나른하고 건조한 리뷰'라는 소개글을 훑어 본 일이 있습니다. ​ 대개는 일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품들에서도, 한 가지 특징을 잘 잡아내어 마치 그것이​ 엄청나게 큰 장점을 지닌 것으로 표현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에 들리는 방향에 따라서도 ​호평아닌 호평, 또는 혹평아닌 혹평으로 느
리뷰제목
『설탕의 맛』을 읽어보기 전, '현대인의 기본적인 정서상태에 관한 나른하고 건조한 리뷰'라는 소개글을 훑어 본 일이 있습니다.
대개는 일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작품들에서도, 한 가지 특징을 잘 잡아내어
마치 그것이​ 엄청나게 큰 장점을 지닌 것으로 표현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라 생각이 되기 때문에
들리는 방향에 따라서도 ​호평아닌 호평, 또는 혹평아닌 혹평으로 느껴지는 『설탕의 맛』에 대해서는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 작가의 시선과 그에 얽힌 생각들을 본연의 맛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믿게 되었던 것만 같네요.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세상에 대한 모습들은 김사과 작가의 눈의 통해 독특하게 재창조될 수 있다는 신비감과 함께
일반인들인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도 요동칠 수 있는 그 설렘과 두려움 또한 이해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 『설탕의 맛』
여행에 얽힌 에세이인 듯 느껴지면서도, 젊은 청춘들의 불꽃같은 목표와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갈등들에 대해 다룬 소설같아 보이는 그 맛.
『설탕의 맛』은 ​독자들에게 이색적인 여행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는 달리
동떨어진 공간 속에 대한, ​한 편의 소설 작품을 읽는 것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여진다 소개를 해보고 싶네요.​
 
책의 첫머리에서는, 여행에 대한 설렘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무미건조한 기회에 대한 소개로 시작이 됩니다.
누구나가 목적이 있는​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단지 그 목적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죠.
​여행을 계획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지쳐있는 듯한 모습 속에서 일반인들의 솔직한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는 사실들은
작가가 경험한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순수한 동경과 예찬을 쏟아붇는 일상적인 내용들과는 참 다른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지에 대한 풍경들을 늘어놓는 기본적인 여행 에세이에 대한 고정관념적 틀을 깨부술 수 있는 『설탕의 맛』이 되겠죠.
지원을 따르는 여행으로 그 내용들에 해당하는 요소 하나하나들을 잘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는 달리
미국으로만 떠나는 듯 보여지면서도, 그 당혹감이 느껴지는 상황들은 한없이 무덤덤하게 표현되는 어감들
김사과 작가의 시선적인 부분에 대해 마음과 관계라기 보다는, 감정의 호소라는 점에서 별개로의 큰 차이를 지닌다 생각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네 가지 연도별 제목으로 표기가 된 주제와는 달리, 그 모습들에 대한 상상적인 예찬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이 작품을 여행 에세이라 표현하기에는 조금 힘든 부분이 많았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뿐이네요.

결과적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과 그 구체적인 이름들에 대한 언급(프라이버시로 인해 더욱 자세하게 전할 수는 없었지만)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해외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닌지

그 오묘한 세계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었던 『설탕의 맛』

​절대, 설탕과 같은 순백색의 외관과 달콤함이라는 미적 특징들을 찾아보기란 어렵게만 느껴지는 『설탕의 맛』에 대해

독자로서는 마치 이상한 나라와, 익숙한 듯 불편하게 느껴지는 여러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던 시간의 여행이라 생각을 해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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