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집사가 되면 이런 주제의 책이 탄생하는구나~!
진중권 저자의 반려묘, 루비의 목소리로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합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집사가 간식 먹자 말하고 짝짝 박수 치면 다리 부비부비~ 그다음부턴 다리만 비벼줘도 '조건반사된 집사'가 간식 갖다 준다는 말에서 빵 터졌어요. 아... 이런 파블로프의 인간이 ㅋㅋ
대한민국 집사계에 팽배한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집사 문화에 새로이 '고양이중심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는군요.
▲ 유명인들의 반려묘
고양이의 철학 편에서는 동물에 관한 관점 변화를 짚어줍니다. 동물은 사유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 언어 없이 그저 자극-반응 반사 활동하는 존재라는 라캉, 죽음을 의식 못하기에 진정으로 죽을 수 없다 믿은 하이데거까지는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이었다면, 얼굴이 없기에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레비나스는 이성중심주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데리다는 인간중심주의마저 무너뜨렸는데요, 동물을 인간화하지 않고 대등한 주체로 봤습니다.
고양이 특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중심주의에서 고양이중심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고양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팔불출 집사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에피소드도 있고, 읽다 보면 인간은 집사일 뿐이라는 운명이라는 게 절절하게 느껴지는군요.
책 가격이 만만찮은데 고양이 역사, 문학, 철학 전반적으로 두루 다룬 책이어서 가격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반려묘 루비의 일상 에피소드라든지 빵빵 터지는 웃음 코드를 원했던 분이라면 생각했던 주제는 아니라는 걸 미리 염두에 두셔야겠네요.
무척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고양이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고양이가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했는지를 살피는' 고양이 역사학'을 시작으로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다룬 '고양이의 문학', 철학자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쓴 '고양이의 철학' 까지.
저자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냥줍'을 통해 집사로 간택되었고, 별수없이 고양이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인간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고양이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밝힌다. 설마 고양이 한 마리 키운다고 해서 삶의 방향까지 달라질까 싶지만, 이미 sns를 통해 많은 집사들이 이 과정을 겪고 있거나 겪었다는 내용을 고백하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갔다.
가령, 내가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중에 고양이 방송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아리'라는 고양이는 주인의 손을 무는 것으로 지금 현재 17만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스타다. 구독자들의 댓글을 보면 대개 고양이를 열렬히 응원하면서 고양이를 더 열심히 섬기라는 말로 집사를 압박한다. 집사는 댓글을 보며 '악마들'이라고 절규하지만 집사 역시 고양이의 추종자에 불과하다. 다른 채널에서 고양이를 '귀여운 아기'로 등장시키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고양이에게 사람보다 더 주인 같은 이미지를 부각시켜 구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 채널에서는 이미 고양이 중심적 세계가 형성된 것이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 '루비'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 저자가 고양이에게 바치는 선물이 이 책인데 내용은 그다지 달콤하지 못하다. 사이프러스 섬에서 발견된 고양이 뼈를 통해 신석기 시대부터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생활했고, 지금 집고양이로 살고 있는 모든 고양이들의 조상이 '근동 들고양이'라는 정보는 흥미롭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신성시 했으며 그리스, 로마로 확산 된 고양이는 유럽까지 진출한다. 고독한 수도자의 유일한 친구노릇을 한 것도 고양이고 무슬림들이 사랑한 반려동물도 고양이였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고양이들의 수난시대가 찾아온다.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중세에서 고양이는 우리 사회의 '빨갱이'처럼 사용되었고, 잔인한 학살이 수세기동안 이어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가서야 비로소 고양이에게 덧씌어진 가면이 벗겨지면서 지금과 같은 반려동물의 자리를 차지할수 있었다고하는데 고양이의 수난을 읽는 일이 힘 들었다.
'고양이의 문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화신은 고양이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웃음 고양이,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 등이 거론된다. 많은 내용들 중에서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시 한 편이었다. 중세 아일랜드 수도승이 썼다는 시를 그대로 옮겨 본다. 서로 상대를 인정해주며 살았을 수도승과 고양이의 관계가 무척 따뜻해보여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다.
판거 밴
나와 내 고양이 판거 밴,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하지
쥐를 쫓는 것은 그의 기쁨이고
나는 밤새 앉아 낱말을 쫒네
세인의 칭송보다 훨씬 좋은 것은
책과 팬을 들고 앉아 있는 것
판거는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자기의 단순한 기술을 연마하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작은 방에 함께 앉아
각자 제 일을 하며 우리는
정신의 즐거움을 느끼네
때로 길 잃은 쥐가
영웅 판거에게 걸리듯이
때로 나의 열정적 사유도
그 망 속에서 의미를 잡아내네
그가 둥글고 날카로운 눈길을
벽으로 던지면
나는 알량한 나의 지혜를
지식의 벽으로 던지네
쥐가 구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오, 판거는 얼마나 기뻐하는가!
씨름하던 문제를 풀었을 때
나 또한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렇게 평화롭게 제 일을 해나가네
판거 밴, 내 고양이와 나는.
우리의 기술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네
나는 나의 행복, 그는 그의 행복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연습으로
판거는 제 소임을 완수해나가고
나 역시 밤낮으로 지혜를 구하며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놓지.
'고양이의 철학'은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왜 인간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해야만 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묻고 있다. 과연 인간 만이 영혼을 지녔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 저자가 하고 싶은 핵심은 아래의 내용 같다. 나 역시 반려동물과 함께하면서 나날이 깨닫고 있는 내용이다.
이성이나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동물도 우리랑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가 무너진다. 근대 철학을 지탱해 온 이 두 기둥이 무너지면서 비로소 동물은 고통 받을 수 있는 생명체로서 처음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287쪽
저자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누리게 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책이었다. 언론에 노출된 저자의 이미지처럼 무척이나 자부심 강하게 쓴 내용들이 그 무거움을 많이 덜어주었다. 집사에게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살피게 하고 이렇게 책까지 쓰게 하는 것이 고양이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니 고양이가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고양이 집사라면 고양이의 역사와 문학 철학 정도는 알고 있어야되지 않을까?
트위터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트위터 대학 서열'이라는 게 있다. 어느 대학이 1위에 올랐을까? 현실 대학들을 모두 제치고 '구몬밀렸대', '퇴근한대', '내일입대' 등이 우열을 다투는 가운데 '집에고양이있대'가 1위에 올랐다.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면 (적어도 트위터리안 사이에서는) 바야흐로 '고양이 중심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진중권은 트위터 내 고양이 열풍의 주역이자 대표적인 '냥집사'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의 비 오는 어느 날 거리에서 주인 없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냥줍'한다. 그가 새끼 고양이에게 지어준 이름은 '루비'. 보석 이름이나 핑클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게 아니라, 그가 존경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약자다.
"초보 집사들은 자기들이 우리를 데려왔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우리랑 좀 지내다 보면 슬슬 너희가 우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외려 우리에게 ‘간택’당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야." 진중권은 3년 반 동안 루비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가 루비를 키우는 게 아니라 루비가 그를 집사로 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바로 그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이 책은 루비가 구술한 내용을 진중권이 받아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고양이의 창세기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문학, 철학 등 다방면을 아우른다. 고양이는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인간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이프러스 섬에서 발견된 약 9500년 전에 인간과 나란히 매장된 고양이의 유해가 발굴된 것이 그 증거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 신을 모실 만큼 고양이를 신성시했고, 농부들은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쥐를 잡아주어서, 수도승들과 수녀들은 외로움을 달래주어서 고양이를 예뻐했다.
고양이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위기를 맞는다. 중세 시대 유럽은 소(小) 빙하기에 접어들어 우박과 서리가 내리고 농작물의 수확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고자 했고, 이때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 여성과 고양이였다. 죄 없는 여성들을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동안 옆에서는 역시 죄 없는 고양이들을 죽이는 고양이 사냥이 벌어졌다. 마녀는 고양이를 키운다거나 검은 고양이를 보면 재수가 없다거나 하는 미신은 이때 생겼다.
흔히들 한국인은 개를 좋아하고 일본인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옛 문헌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조선 시대 학자들 중에는 요즘의 냥집사 못지않은 애묘인이 적지 않고, 일본에는 고양이가 일정 수명 이상을 살면 요괴가 된다는 '바케네코' 설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왼손으로는 손님을 부르고 오른손으로는 돈을 부른다고 일컬어지는 행운의 고양이 '마네키네코'는 에도 시대 이후 상인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함께 퍼진 것으로 여겨진다.
"마술사는 먼저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한 줌을 취하고 거기에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길 한 자락을 더하고 반짝이는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 두 개를 땄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두 손에 고이 모아 쥐고 ‘후’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연기는 고양이의 털이 되고 불길은 고양이의 혀가 되고, 별은 고양이의 눈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것. 그것이 바로 고양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에 따르면 고양이는 외관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인간을 능가한다. 고양이는 잡지 못한 쥐를 아쉬워하는 법이 없고, 훗날 잡게 될 쥐 생각에 눈앞에 있는 쥐를 놓아주는 법도 없다.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현혹되어 현재를 소홀히 하는 인간과 달라도 크게 다르다. 선형적 시간에 묶이지 않고 모든 순간을 동시에 현재로 취하는 존재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고로 고양이는 우월하며, 우월한 고양이를 인간은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 '묘'하게 설득된다.
일단 책을 좋아하는 집사임을 밝혀둡니다ㅎ
저자인 진중권씨가 고양이 루비를 만나고 나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예약구매를 해서 친필 사인과 루비 발자국을 겟! 했습니다.
이렇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을 기다린 적이 얼마만인지ㅋㅋ
결론적으로 간만에 아주 만족했던 책입니다.
진중권 저자의 여러 책을 읽어(사실 쓱 훑어보는 정도) 보았지만
저에게는 이 책이 가장 재밌게, 단기간에 끝까지 읽어 내려간 작품이었습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인간이 다른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인간의 판단에, 영역에 끼워넣으려 하는 것을 지적하며 '고양이 중심주의 선언'을 합니다.
다짜고짜 철학하는 집사의 머릿속은 어떤지 보여주고 있습니다ㅋㅋㅋㅋ
이 문장을 보자마자 우리 집 고양이는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매우 못생기고 성가신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상을 버리고, 생각의 틀을 부숴서, 더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철학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 또한 저에게 그런 시선을 제시하는 듯하여 만족스럽습니다.
고양이의 역사, 문학,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중에는 제가 모르는 것도 많았고,
아 철학자의 눈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이런 방식으로 해석되는구나 하고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자료가 풀컬러로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있어요.
책 전반에 보송보송하게 루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어, 웃음짓게 되기도 했네요.
(저희 집 고양이가 저를 엄청 핥는데,, 저도 얘를 핥아 주고 싶은 적이 종종 있습니다. 뭐 그렇다구요;;)
귀여운 루비 팬시상품이 함께 나왔었으면 아낌없이 포인트를 썼을텐데..
출판사는 전국 루비 랜선이모삼촌들의 마음을 헤아려 급히 엽서라도 한장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맛동산을 캐면서 고양이 모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해봐야겠습니다.
진중권 작가의 정치적 견해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진중권 작가는 고양님을 모시고 있는 집사님으로도 알려졌는데, 이젠 고양이와 관련된 책까지 내버렸다ㅋㅋㅋ 읽어 보니 진짜 고양이 책이다. 과거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가 어떤 상징적 존재였는지 등등 다양한 고양이의 실생활(?)을 보여주었다. 나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귀여운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