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사에 이어 한국 기독교사, 그리고 일본과 한국 기독교사의 연관 관계가 궁금해져서 구입했다.
일본의 한국 진출에 이은 조선 선교는 사실상 일정기 아래의 선전 정책 정도의 효과만 있었던 것 같고(애초에 모두가 평등해야 하는 게 기독교 사상인데,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에 교리를 사용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비슷한 점이라면 기독교를 처음 들여올 때의 분위기 정도이다. 일본 기독교는 오다 노부나가(기독교 수용)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기를 거치며 박해당한다.
조선의 경우 흥선대원군이 외국과의 교류를 위해 일단 기독교를 수용하지만 이후 박해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차이점은 조선의 기독교는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학자들이 중국 등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들여와 직접 발전시켰다는 점이 대비된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는 국가 색이 짙은 현지 기독교에서 기독교 교리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색깔이 바뀐다. 이러한 예와 설명들은 굉장히 재미 있고 한국과 일본 각각의 기독교의 느낌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됐다.
프로테스탄트 출신 종교사가가 쓴 한국 가톨릭의 역사에 관한 작은 책이다. 한국 가톨릭사는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편찬한 자료들이 대부분인데, 그와 달리 교회 외부의 시선에서 비교적 균형잡힌 시선으로 가톨릭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특히, 파리외방선교회의 보수적 성격과 북경교구의 태도변화, 가톨릭 수용자의 유형을 정하상 타입과 황사영 타입으로 나누어 서술한 부분은 기존 한국 가톨릭 역사 서술에서 찾기 어려운 새로운 내용이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를 통하지 않고 가톨릭을 받아들인 것과, 전무후무한 순교의 역사를 커다란 자랑으로 여긴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펴내는 역사서는 이러한 것들을 한껏 부각시킨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본다면, 이는 강력한 제정일치 종교(유교)국가 조선과, 이와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문명의 충돌로 발생한 야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세 차례의 큰 박해가 있었고, 마지막 박해인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박해 때 조선에서 학살당한 가톨릭 교인은 자그마치 8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1866년이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년 전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로 여겨지는 일제강점기의 시작이 107년 정도 되었으니, 그리 멀리 않은 시기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교도 집단살해를 엄청난 야만으로 여기지만, 실은 불과 150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유교탈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조선이라는 제정일치 사회는 탈레반 못지않은 유교 근본주의 사회였음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조선'이라는, 과거와 같은 이름을 쓰는 북쪽의 정치집단이 '주체사상'의 종교를 앞세워 그 배반자들을 거리낌없이 학살하는 모습이 우리의 본디 모습과 더 닮아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빛나는 순교의 한국 가톨릭 역사는, 야만의 학살이 있었기에 가능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가톨릭 교도는 순교에 이르기까지의 굳센 믿음을 본받음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한국인들은 언제든지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우리 이웃을 죽일 수 있는 야만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잠자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일본의 난징대학살, 중국의 문화대혁명, 콩고의 부족학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결코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가톨릭의 역사는 가톨릭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충분하다.
책 수정이 필요한 부분
78쪽 밑에서 2번째 줄 오타: 조선숭배 -> 조상숭배
역사라는 도구로 기존의 어떠한 것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 장점들이 있다. 한국의 카톨릭도 그러한데 지금의 한국의 카톨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의 한국 카톨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면 현 카톨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조그만 책은 한국의 카톨릭의 시작을 이야기하여 준다. 한국의 카톨릭에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고 누가 그 중심에 있었는지 이야기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