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설헌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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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설헌 원림

화가 박태후의 정원 일기

박태후 저 / 리일천 사진 | 열화당 | 2014년 1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 9.2 (5건)
분야
예술 대중문화 > 건축
파일정보
EPUB(DRM) 32.0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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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죽설헌 원림 평점10점 | y****a | 2020.08.31 리뷰제목
산야를 돌아다니며 각종 나무들의 종자를 채취해 파종하고, 삽목하고, 접붙이고, 전정하는 기술들을 배우며,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한 지 사십여 년이 흘렀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조그만 정원이 만들어져 죽설헌이라는 이름을 짓고, 죽설헌에 피어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들을 이 작은 책에 맏아 보았다.   여러 정원수들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를 좋아해 집
리뷰제목

산야를 돌아다니며 각종 나무들의 종자를 채취해 파종하고, 삽목하고, 접붙이고, 전정하는 기술들을 배우며,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한 지 사십여 년이 흘렀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조그만 정원이 만들어져 죽설헌이라는 이름을 짓고, 죽설헌에 피어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들을 이 작은 책에 맏아 보았다.

 

여러 정원수들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를 좋아해 집 뒤편 언덕에 대나무를 심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제법 울창한 왕대숲을 이뤘다. 온갖 새들의 보금자리로, 특히 산비둘기, 참새, 각종 철새 들이 해질 무렵이면 날아들어, 대숲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때부터는 잠자리에 들려는 새들에게 방해될까 봐 대숲 길 산책을 가급적 자제한다. 겨울에는 눈도 비교적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눈 덮인 대숲을 동경해 죽설헌이라는 당호를 짓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단지 일 년에 몇 차례 예초기로 키 높은 잡풀들만을 베어내는 것뿐, 키 낮은 야생화들은 잔디처럼, 카펫처럼 저절로 깔려 간다. 큰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는 그늘에 강한 야생화가, 햇볕 내리쬐는 양지쪽에는 햇볕을 좋아하는 야생화가, 습한 곳은 습한 곳을 좋아하는 야생화가, 건조한 곳은 건조한 곳에 잘 견디는 야생화가, 비옥한 곳은 비옥함을 좋아하는 야생화가, 척박한 곳은 척박한 데서도 살아남는 야생화가 빈틈없이 그들 스스로 꽉 채워 나간다. 그 속에는 지렁이, 땅강아지, 귀뚜라미, 여치, 땅개비, 사마귀, 개구리, 물뱀 들도 제멋대로 허락없이 들어와 산다.

 

바로 이것이다. 깔끔하게 정리정돈한 잔디밭이나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 가꾸어진 정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살아 숨위는 자연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잡풀 한 포기 없이 오직 잘 다듬어진 잔디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어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다. 잔디밭에서 힘들여 뽑아내는 토끼풀, 민들레, 질경이 등의 잡초들(이들은 사실 하나같이 훌륭한 야생화들이다)을 그대로 놔둔 채 가끔씩 예초기로 키 큰 풀들만 베어내 주면 다양한 무늬의 형형색색 천연 카펫이 계절 따라 저절로 탄생되는 것이다.

 

 

자연은 사람이 손대지 않고 가만 뇌두면 순리에 따라 스스로 조정되고 생태 순환이 이루어진다. 다만 지나치게 자라는 키 큰 풀들을 예초기로 가끔씩 베어 주는 게 가장 큰일일 뿐이다.

 

산책길은 아침 이슬이나 빗물에 젖은 풀잎으로 신발이 젖을 수 있으므로 좀 더 자주 예초 작업을 해 주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질경이가 그늘진 길을 따라 하나둘씩 번져 가더니 지금은 대부분의 산책길을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마치 죽설헌 숲이 우거지니 새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자연의 또 다른 이치를 깨닫게 된 일종의 사건이었다.

 

지금은 죽설헌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는데, 소리 없이 들어와 눌러앉아 버린 질경이들 덕분에, 가장 사랑스럽고 독특한 자연 생태길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 산책길에는 이제 또 토끼풀이 서서히 번져 가고 있어서, 여성 방문객들은 산책 하다가 네 잎 클로버 찾느라 바쁘다. 질경이나 토끼풀이 깔이 이 산책길을 나중에는 또 어떤 작은 풀들이 점령해 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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