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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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리뷰 총점 8.9 (1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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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북유럽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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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평점8점 | k******5 | 2016.11.18 리뷰제목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언뜻 보면 '어린 왕자' 같은 킬러 안데르스의 모습이다.녹색이라선지 편안함과 평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킬러 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쓰다니. <이책은>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요나스 요나손  ---발췌하다Jonas Jonasson 어느 날 기상천외한 소설을 들고 나타나, 인구 9백만의 나라 스웨덴에서 120만 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일약 세계
리뷰제목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언뜻 보면 '어린 왕자' 같은 킬러 안데르스의 모습이다.

녹색이라선지 편안함과 평화를 떠올리게 되는데 킬러 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쓰다니.

 

<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요나스 요나손  ---발췌하다

Jonas Jonasson 어느 날 기상천외한 소설을 들고 나타나, 인구 9백만의 나라 스웨덴에서 120만 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요나스 요나손. 그는 1961년 7월 6일 스웨덴 백시에에서 태어났다. 예테보리 대학교에서 스웨덴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으며 졸업 후 15년간 기자로 일했다. 1996년에는 OTW라는 미디어 회사를 설립, 직원 1백 명에 이르는 성공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돌연 회사를 매각하고 20여 년간 일해 온 업계를 떠나기로, 그의 표현에 따르면 <창문을 넘기로> 결심한다.

 

2007년 스위스로 이주한 뒤 <첫 소설에 감히 도전할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 그는 오랫동안 구상해 온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집필하게 된다. 이 비범한 작품은 2009년 처음 출간된 이래 41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 120만 부, 영국 120만 부, 독일 4백만 부 등 전 세계 8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2013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스웨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 45개국에 판권이 팔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절찬리에 개봉되었다.

 

요나손의 두 번째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라야 했던 천재 까막눈이 소녀 놈베코가 어찌어찌하다 비밀 연구소에서 탄생한 3메가톤급 핵폭탄을 떠안게 되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모험담이다. 요나손이 그려 낸 이 기막힌 여정은 특유의 풍자와 유머러스함으로 독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한다.

 

현재 그는 일곱 살 아들과 함께 닭을 키우는 목가적인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책읽고 느낀 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는 책을 접하며 일찌기 이런 스타일의 책은 없었다! 고 느꼈다. 100세 노인이라는 숫자가 주는 선입견은 뭘할 수 있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100세 노인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인데 여타의 주변 요건들이 알아서 죽어주거나 엉뚱한 식의 해석을 하며 항상 노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은근슬쩍 능구렁이 담 넘듯 술술술 잘도 넘어가는 익살과 해학에 끌려다닌 시간이 유쾌했었다. 이 책은 그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하다. 그 스타일이지만 첫맛이 너무 강렬했기에 속편 따라가기는 무리였다.

 

  안데르스의 친구 둘은 페르 페르손과 여자 목사 요한나로 찰떡궁합인 애인이었다가 나중에는 결혼해 딸을 낳는다. 페르 페르손은 지지리 복도 없다고 느끼는게 조부 때는 말을 팔아 부를 축적했건만 사업이 기울라치니 순식간임을 안다. 하숙텔이라는 성인 업소의 카운터를 보는데 그 날이 그 날이요 특별한 꿈도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이 산다. 주어진 삶에서는 도망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 페르에게 휴식이던 날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으려는 찰나 후줄근한 차림의 여 목사와 대면한다. 모르는 그를 향해 기도를 해주곤 다짜고짜 돈을 요구하니 페르는 돈은 되었고 샌드위치라도 드실라우 건넨게 허겁지겁 다 먹어치운다. 체면치레라도 했다면 페르가 약간의 경외심을 가졌으려나.

 

  이런 인연으로 하숙텔에 묵게 되자 눈치껏 숙박료를 받아내려는 페르 앞에 백작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돈 봉투를 건네며 킬러 안데르스에게 전해달라는데 약속한 금액보다 적음을 알리고 가버린다. 킬러 안데르스로 말할 것 같으면 악명 높은 악당이자 살인자로 30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투숙객이지만 숙박료만 안내는게 아니라 늘 알콜이 들어가야는 인생. 킬러에게 돈 봉투가 온 걸 알고서 페르와 요한나는 살인은 하지 않고 종지뼈만 분지르는 업을 제안한다. 물론 부위마다 값이 다르다.

 

  킬러 안데르스는 악명 높은 악당이지만 실상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연히 그가 죽인게 되었고  또 여차저차해 둔갑하고...자신도 모르는 새 대단한 킬러가 되었다. 남들이 무서워서 접근을 못하고 대접(?)해 주는게 싫지 않음이라. 조금은 아둔한 킬러임을 요한나는 금새 간파한다. 페르와 요한나는 그새  눈이 맞아 연인이 된다. 둘이 연인임을 킬러는 다행히 인정해 준다. 백작에게 역제안을 해 오히려 남은 돈을 다 받아내면서 이들의 수완이 알려져 문전쇄도가 된다.

 

  요한나는 대대로 목사인 집안에서 딸로 태어난게 자신의 죄라는 아버지이자 목사의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엄마는 자살했고 꿋꿋이 공부해 목사의 자격을 얻었다. 얻고 싶어서 얻은 건 절대 아니다. 아버지를 누를 수 있겠다 싶은 싯점서 지병으로 사망하자 차마 담을 수 없는 말(끝가지 그 단어가 뭔지는 안 알려준다)을 내뱉고 신도들에게서 쫓겨난다. 목사직에 미련이 없던 그녀였대도 아버지가 그토록 자신을 괄시하는데도 그분은 도움을 주지 않았기에 더욱 불신하는 마음이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이 펼치는 사업은 승승장구한다. 킬러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성경 책을 읽으며 심취한다. 그러자니 요한나는 성경 귀절을 대입해 킬러를 선동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킬러가 한 마디씩 내놓는 성경 귀절도 웃음을 자아낸다. 성경 귀절은 맞는데 해석이 엉뚱해서다. 예수님의 피 어쩌구 하면서 그러자면 포도주를 마셔야한다는 설교사가 되어 양동이에 돈을 자발적으로 헌금하도록 분위기 조성을 하고...그 방법들이 킥킥대게 만든다.

 

  책은 전반적으로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는데 성경을 읽지 않은 나로선 그런 귀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있다고 치고 성경 구절에 나온 걸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해 행동을 한다. 나쁘게만 하면 에라 천하의 악당 놈, 그리고 친구 둘 하겠는데 좌충우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킬러 안데르스 때문에 멍청한 짓을 했는데 그게 선행이 되어 매스컴을 도배하고, 그럴수록 인지도가 높아지고...

 

악당이나 걸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누추하고 교활한 생존 방식을 보여 주며 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가리켜 '피카레스크 소설' 이라고 한다. -447 페이지

 

  요나스 요나손 소설은 피카레스크 소설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 이어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되시겠다. 두 번째 책은 가지고만 있으니 건너 뛰고 세 번째의 책을 만난 느낌은 싱거워, 순해, 엉성해, 그럼에도 번득이는 재치는 곳곳에 보이고 전반적으로 흐르는 감정이 평화다. 어쩔 수 없이 등처먹는 경우가 생기며 종지뼈를 분지른다 든지 식의 다소 겁나는 단어는 등장해도 어설픈 킬러라 교활하진 않다. 나 홀로 집에1 의 악당이 연상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1 댓글 24
종이책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작가 특유의 유머를 즐길수 있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16.11.09 리뷰제목
때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내용의 소설을 만날때 즐겁다. 처음엔 제대로 재미를 붙이지 못하더라도 점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소설 말이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이 그렇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여태 만나지 못한 인물들일지라도. 만약 우리 주변에 킬러가 산다면, 그것처럼 두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요리할 줄 알고, 그
리뷰제목

때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내용의 소설을 만날때 즐겁다. 처음엔 제대로 재미를 붙이지 못하더라도 점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소설 말이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이 그렇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여태 만나지 못한 인물들일지라도. 만약 우리 주변에 킬러가 산다면, 그것처럼 두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요리할 줄 알고, 그에게 순박한 면이 있다면 그 사람과 이야기 해볼만 하다고 여겨질까 의문스럽긴 하지만.

 

소설 속 처음에 거론된 인물은 작가 이름의 어감과 비슷한 페르 페르손이란 인물이다. 한때 거부였던 할아버지의 손자인 페르 페르손은 할아버지때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 말 거래상을 했던 페르손의 할아버지는 시류를 잘 읽지 못했다. 적어도 사업을 한다면 시류를 잘 읽어야 한다. 농부들이 말을 버리고 트랙터로 갈아타기 시작했을때 재빨리 다른 사업을 생각해야 하지만, 트랙터의 나쁜 점만을 피력하다 망한 케이스다. 그래서 페르는 땅끝 하숙텔의 리셉셔니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몇년을 있었지만 그의 경제적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으니 킬러 안데르스라 불리는 자다. 그는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게 되는데, 이때 누군가를 패야 한다면 실수로 죽이고 만다. 두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있다가 최근에 석방되었다. 하필이면 땅끝 하숙텔의 리셉셔니스트 앞으로 와서 묵겠다고 말한다. 아침엔 맥주를 들이라며 협박까지 하고서 말이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인물이 있었으니, 이 두 사람을 진두지휘하는 목사 요한나 셸란데르다. 신을 전혀 믿지 않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목사가 되어야 했던 인물로 얼마전에 목사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설교 도중 불온한 말을 사용해서 였다. 

 

리셉셔니스트 페르 페르손과 요한나 셸란데르는 킬러 안데르스에게 들어오는 일로 폭행과 구타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게 된다. 페르 페르손과 요한나 셸란데르 목사가 매니저를 하고 킬러 안데르스가 주문이 들어오는 자들의 복수를 해주는 식이다. 누군가의 목숨값을 내놓으려면 상당한 금액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 그 금액들을 가로채자는 심보였다. 돈에 그다지 관심없었던 킬러 안데르스를 이용해 한 몫을 챙기겠다는 것이었는데, 리셉셔니스트와 목사에게 꽤 큰돈이 들어왔다.

 

 

 

소설에서 가장 코믹한 장면들은 킬러 안데르스가 목사인 요한나 셸란데르에 의해 성경을 읽게 된다는 설정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는 자기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죽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에게 모든 사람들은 어린양이라는 말씀 한 구절로 어린 아이를 비롯해 어른까지도 어린양으로 보는 장면이었다. 킬러 안데르스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사라진다. 상대방은 무서워 벌벌 떠는데도 죽일것처럼 돈을 맡기는 모습에서 점차 사람들이 그를 달리보는 것처럼,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서 신도들을 위해 설교하는 사람은 목사만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설교사'라는 이름으로 예배당에서 설교를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사 교육을 받지 않아도 예배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비록 하나님의 몸과 피인 포도주를 마시면서 진행하는데도 말이다.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 받았고 그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킬러를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목사와 리셉셔니스트의 활약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소설인데, 꽤 재미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여기에서 소설의 주요 내용은 누군가에게 덤터기를 씌우지만 그들은 누군가에게 베풀때 큰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는 게 중요하다. 폭력과 구타를 일삼는 회사를 세워서도, 현금이 들어오는 교회를 구매해 하룻밤에 수만 크로나를 걷어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때 가장 기뻤다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은 목사였건만 어느새 킬러 안데르스가 느끼는 복음의 의미와 신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진정한 행복은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이며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의 이름이 줄어든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보면 많이 가졌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8 댓글 6
종이책 신이 주관한 세계에 빅엿을 날리는 유쾌, 상쾌한 여정 평점10점 | l****1 | 2016.11.10 리뷰제목
우리나라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은 내게 그야말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았다. 나도 제법 장르 소설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인 탓에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는 뒷 얘기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 소설만큼은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다음의 이야기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부분에서 무턱대고 꺼낼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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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은 내게 그야말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았다. 나도 제법 장르 소설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인 탓에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는 뒷 얘기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 소설만큼은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다음의 이야기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부분에서 무턱대고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여간 그래서 그간 천편일률적으로 뻔한 전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식상하셨던 분들이라면 얼른 이 책을 손에 들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종잡을 수 없는 예측불허의 전개만으로도 끝까지 읽게 만드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 소설의 주인공은 킬러 안데르스가 아니다. 비록 제목에 유일하게 고유 명사로 표기되고 가장 앞에 나왔어도 얘는 조연에 불과하다. 진짜 주인공은 바로 뒤에 나오는 '그의 친구 둘'인 것이다. 이 '친구 둘'이란 하나는 남자, 다른 하나는 여자다. 얼른 커플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도 같은데, 원래는 아니다. 둘은 주인공 남자가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만났고, 더구나 그 때 여자는 남자에게 기도 하고 기도값을 받는 식으로 사기를 치려 했다. 그랬던 여자의 이름은 요한나 셸란데르. 전직 목사다. 그러나 지금은 설교 도중 사람의 성기 운운하는 쌍욕을 신에게 범해 강단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다. 그래서 신의 이름을 빌어 사기를 친 것이다. 사기를 당할 뻔 했던 남자의 이름은 페르 페르손. 작가 이름인 요나스 요나손 처럼 비슷한 발음의 나열이다. 그는 이 이름을 싫어한다. 그 이름을 물려준 가문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남자의 집안은 아주 잘 살았다. 할아버지 때만 해도 엄청 부자였다. 그 때 할아버지는 말 사업을 했다. 하지만 디젤 기관이 발명되고 자동차 산업이 활황하면서 할아버지 주력 사업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건 아버지 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대가 가문의 앞길을 작정하고 막아서는 것처럼 하는 사업마다 시류를 잘못 만나 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현재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 스웨덴에서 가장 음침하며 작고 허름한 호텔의 리셉셔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당연히 급료는 병아리 눈꼽만큼이고 사는 곳도 데스트 뒤에 딸린 원래는 창고로 쓰였던 작은 방이다. 사는 낙이 있을리 없다. 그에게 이름은 가문이 줄기차게 당한 불운의 겹침의 형상과도 같았다. 남은 것은 그런 이름을 가져다 준 가문에 대한 원망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에 대한 복수심 뿐이다.


 요한나 셸렌데르도 다르지 않다. 그도 집안에 대한 원망이라면 페르 페르손 못지 않다. 그녀는 원래 대대로 목사인 집안 출신이었다. 그것이 여자인 그녀에겐 저주가 되어버렸다. 목사는 편견과 고집의 구현체나 다름없다. 요한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그는 목사는 반드시 남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가 목사가 되는 것은 불경이었다. 그런데 그만 딸이 태어나버린 것이다. 그는 딸을 태어날 때부터 원망했고, 그걸 신의 형벌이라 여겼다. 그는 딸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 딸을 낳은 어머니도 용서할 수 없었다. 무시하는 것 정도는 귀여운 애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갖은 학대가 자행되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방치했다. 딸은 결국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목사가 되었다. 마음 속에는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지만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끝내 반항 한 번 못했다. 그것이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 날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와 그런 운명을 허락한 신에 대한 원망이 그 날 강단 위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쫓겨 났다. 이렇게 페르와 요한나는 혈통과 세상 그리고 신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을 공유했다.


 그런 그들 앞에 '킬러 안데르스'가 나타났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호텔 '7호실'의 손님. 만일 그가 잠에 취하는 바람에 그에게 올 의뢰비를 페르와 요한나가 맡지 않았다면 페르와 요한나의 기상천외한 사기극도 없었을 것이다. 그 의뢰비 때문에 그들은 킬러 안데르스가 한없이 가벼운 자신들의 주머니를 빵빵하게 채워 줄 '귀인'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그저 있는 것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성깔과 탁월한 폭력 기술뿐 머리는 없는 안데르센을 꼬드겨 그의 매니저가 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팔이나 다리를 뭉개버리고 싶은 사람을 킬러 안데르스과 연결시켜 주거나 홍보를 통해 얼마간의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페르의 아이디어로 스웨덴 제일의 무서운 폭력배가 되어버린 안데르손 때문에 의뢰는 쉴 새 없이 들어오고 곧 페르와 요한나의 기대대로 그들 수중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온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전직 목사였던 요한나가 안데르스에게 무심코 하게 된 예수 이야기 때문에 안데르센은 그만 더이상 폭력을 쓰지 않으리라 결심하게 된다. 사업에 중대한 위험이 닥쳐왔다는 것을 감지한 페르와 요한나는 이미 눈도 맞고 해서 의뢰비를 사기쳐서 잔뜩 받아서는 그것만 들고 둘이 같이 튀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안데르스이 또 우연히 그 계획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역시 요한나의 화려한 말빨에 설득되어 같이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셋은 그렇게 튀고 의뢰비를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웨덴 최고의 범죄 조직의 수장 '백작'과 '백작 부인'은 그 대가로 그들의 죽음을 치르게 하기 위해 그들을 추적한다.


 여기까지도 흔한 전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돈을 둘러싼 주인공 일행과 범죄자들의 쫓고 쫓기는 전개는 많이 봐 온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예수를 영접하고 회심하게 된 안데르스는 교회가 보일 때마다 돈을 마구 헌금함에 집어 넣는가 하면 기부도 아끼지 않고 해 버린다. 이 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안데르스는 여왕이 감사를 표할만큼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기부 천사가 되고 그가 예수의 말씀을 따라 했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그래서 페르와 요한나는 안데르스를 목사로 내세워 헌금을 모아 가로챌 계획을 꾸민다. 처음은 세상에 대한 복수였고, 이제는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행운의 여신이 가문 대대로 불운을 선사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번에도 행운이 마구 작용해 그들의 계획은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마냥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왕년에 스웨덴에서 가장 좋은 교회 지기라고 자부하던 한 인물에 의해 교회 사기극이 발각될 위험에 처하고, '백작'과 '백작부인' 또한 그들의 위치를 알아낸다. 한 쪽에서는 감옥의 창살이, 다른 한 쪽에서는 죽음의 창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과연 페르와 요한나의 사기극은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바랐던 돈을 들고 잘 달아나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순진한 희생자의 위치에 서 있는 킬러 안데르스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직접 이 소설을 읽는 수밖에 없다.


 요나스 요나손은 주어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적극 지지하고 찬양해 온 작가다. 그의 이름을 우리나라에 처음 알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부터 이 소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까지 내내 그랬다. 생각해 보면 역사와 종교는 선험적으로 가장 굳어져 있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힘으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 바로 역사와 종교라는 말이다. 하지만 요나스 요나손은 거기에 균열을 일으킨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는 역사가 개인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고,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에서는 성경 말씀과 신이 전혀 다르게 응용되고 이용된다. 그렇게 역사와 종교는 더이상 인간을 지배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더욱 넓히는, 일종의 사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field)으로 바뀐다. 요나스 요나손은 그런 주체에게 간직된 역량을 무한히 펼쳐 보인다. 어쩌면 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한 가운데 얻는 해방의 느낌은 바로 거기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가 어디까지 강해지고 넓어질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똑똑히 봐!' 나는 그것이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세계가 들려주고 싶은 진심의 모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신자유주의로 인해 더없이 개인이란 존재가 위축된 이 시대에 그의 소설이 각광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런 나의 말은 어디까지나 사족에 불과하다. 때로 소설은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한 경우가 있다. 바로 재밌다는 것. 여기에 동의한다면 이 소설을 얼른 손에 들어도 좋지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정말 재밌게 읽었다.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댓글 1
종이책 빈틈이 허락한 빈틈 평점9점 | y*****7 | 2016.11.09 리뷰제목
70년대 , 80년대의 가장들은 나약함을 들키기 싫어 술에 얼굴을 감추고 폭력의 힘을 가져와 무능을 감췄다.그래서 억척스런 어머니들이 더욱 늘어갔고 , 그런 어머니를 안쓰러워하다가 지켜주고 싶다가 경멸하다가 때가 되면 자식들은 등을 돌리고 ,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냐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 여자는 기댈 남편이 없었고 남편들은 아내가 더이상 자신을 남편으로 존경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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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 80년대의 가장들은 나약함을 들키기 싫어 술에 얼굴을 감추고 폭력의 힘을 가져와 무능을 감췄다.그래서 억척스런 어머니들이 더욱 늘어갔고 , 그런 어머니를 안쓰러워하다가 지켜주고 싶다가 경멸하다가 때가 되면 자식들은 등을 돌리고 ,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냐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 여자는 기댈 남편이 없었고 남편들은 아내가 더이상 자신을 남편으로 존경하지 않을 때를 두려워하다 인생을 망친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따지고보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서 신뢰하고 의견을 진지하게 나누기만 했더라면 달랐을 일들 . 혹은 빈틈을 서로 내보이는 일들 .

 

킬러 안데르스는 처음부터 킬러였나 , 어쩌다보니 흘러흘러 좀 으르고 겁주는 법을 잘 알고 , 그게 쉬워서 하다보니 나중엔 이름처럼 킬러가 붙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 하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순간 어머니가 스치듯 말 한  ' 알고보면 속까지 나쁜 놈은 아니란 ' 말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하는 , 나빠지고 싶어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잘 지키고 살고 싶었던 남자에 지나지 않는게 진심인지도 모른다. 쎄고 강한 남자로 말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킬러 안데르스

 

가업이어서 자신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성별도 상관없이 여목사가 되야했던 요한나 쎌렌데르 . 하라니 했을 뿐인데 , 아버지는 그마저도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엄청난 폭력의 (그게 무슨 폭력이었든)시간을 견뎌야했던 요한나 .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고 , 실컷 미워할 수있는 위치에 섰다고 생각하니 그 대상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애증의 대상이 돌연 사라지는 것 만큼 삶의 이유가 무너지는 일이 또 있을까 ... 거기다 교구에서 쫓겨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망할 신이 있다면 말이지만 가장 증오스런게 신인데 자신이 목사라는게 사실이고 , 달리 꿈이란 걸 가져본 일도 없는 것 같다 .

 

기계화가 되기 전의 문명은 폐르손의 가문에 축복이다가 발전과 함께 무너지고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살다보니 알바에 전전하던것이 전업이 되서 이름만 거창한 리셉셔니스트지 별볼일없는 인생이다 . 그런 그가 우연히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나눠준 거렁뱅이 여자가 요한나이고 여자 목사이며 그가 일하는 곳이

저렴한 숙소를 제공할 수있다는 정황들 때문에 인연이 된다 .

 

백작이 나타나 의뢰를 한 보수를 반만 주고 간 것에 요한나와 페르가 얼결에 문제를 떠맡고 킬러와 함께 동업의 형태를 이루는데까지 일들이 얼토당토않는데 , 그 얼토당토 않은 헛점들이 기막히게 따지기 애매하단 점에서 먹혀들어가는게 이 책의 전체 재미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 어쩌면 성경을 읊조리는 여목의 논리에 남을 해치는 일을 맡기는 조폭들이면서 최악의 인간이란 점은 모두 피하고 싶어하는 이상한 심리가 이 소설 전반에 걸쳐져 있다는 걸 읽게 된다는 게 더 웃긴 건지도 모르겠다 .

 

악당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건 킬러나 조폭들이나 모두 같고 , 그러니 대행이 필요하고 , 일은 의뢰받아 돈은 챙기니 할 수없이 요구를 처리할 뿐인 , 말 그대로 일 .

 

일은 참 웃기게 전재산을 걸어 자신의 아내를 지키려한 남자로부터 꼬이게 되고 그런 돈을 덥썩 받아 챙겨 더는 나쁜일은 하기 싫다는 킬러를 버리고 떠날 생각이던 두 친구는 신변이 위험해지면서 킬러를 버릴수도 없어지고 만다 . 도망칠 돈을 끌어모으느라 잔뜩 받은 돈을 킬러가 여기저기 기부를 하면서 엉뚱하게 그가 갱생하고 선한 이미지의 설교자의 아이콘으로 바뀌는 걸 눈치챈 둘은 또 한 몫 잡을 생각에 이번엔 진짜 교회에 자릴 잡는데 , 진짜가 아닌 흉내의 노릇이란 원래 오래가기 힘든 법 . 킬러만 진심이고 둘은 겨우 겨우 버티는 수준으로 아슬아슬하다 결국 백작과  교회 관리인이 덫을 쳐서 와해가 되고 킬러는 다시 감옥신세 를 지게된다 . 

 

페르와 요한나는 잠시 자신들 시간을 즐기지만 그런 시간은 순식간이고 결국 남의 걸 받으면서도 줄 때가 더 행복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세상 천지에 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 그들은 그런 생각자체가 안되는 게다 . 원래 셋이 시작을 해서 ... 다시 출소한 킬러를 영입해 이번엔 산타클로스로 분해 미혼모등을 돕는 기부천사로 나서서 어마어마한 기부금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요한나는 이제 신이 그닥 밉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 증오가 가득하던 그녀는 점차 증오의 리스트에서 애정의 리스트로 옮겨야 할 대상이 늘어감을 인정해야했고 그러자 거짓말같이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착하게 살려고 대단하게 맘을 먹었던 그들이 아니었다 . 원래는 나쁜일을 하려고 작정한 일인데 , 한가지 두가지 열외의 상황들 ...그러니까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폭행치 않는다거나 , 아이를 안을 수 있게 양 팔이 아닌 한 팔만 부러뜨린다거나 하는 식의 예외를 적용하다보니 , 악독의 독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해야할까 ...또 , 먹고 살아야하니 밑천을 좀 들여서 남도 좋고 나도 좋자는 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마음까지 여유롭게 바꿀줄 , 페르 페르손이나 요한나가 알았을까 ...

 

그냥 세친구의 유쾌하고 엉뚱한 스토리로 읽어나가다 변하고픈데 기회를 갖지 못하는 킬러를 보면서  우리 아버지들 생각이 났다 . 또 , 왜 하필 여목사냐하는 부분에서도 그게 자꾸 걸렸던 탓도 있다. 엉뚱하고 좀 애둘러 오긴 했지만 킬러도 페르손도 요한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강제로 입을 닫게한다거나  겁을 주지 않는다 . 물론 겁을 먹을 그녀도 아니지만 , 그런데 , 가만보면 페르손도 킬러도 엉뚱하게 요한나의 진심어린 속얘길 들은 첫 사람들이란 점에서 인상적인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윽박지르면 되던 그들의 삶을 젤 처음 바꾼 사람이 요한나라는 사실이다 . 그것도 다소 엉뚱하고 말 안되는 우격다짐같은 허당끼가 섞인 말로 , 그러니 더 미워할 수가 없다 . 완벽한 이론을 무기로 내세운 얘기였다면 어쩌면 안되었을지도 모르는 , 빈틈이 허락한 빈틈 아닌가 한다.

 

그러니 돌아보면 억척스런 우리 삶의 어디 쯤 , 반드시가 아니면 안되던 어디 쯤 , 빈틈을 가진 우리가 있을텐데 ... 남자도 여자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말이다 . 스산함만 남은 현재가 아닌 가진 것 없어도 배운 것 많지 않아도 모여 앉아 즐거운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 땅 끝 세상 어디 킬러 아닌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처럼......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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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평]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둘-요나스요나손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b***8 | 2016.11.15 리뷰제목
아무리 제대로 읽으려고 해도 그의 친구'들'이라고 말하게 된다. 아무래도 '친구들'이라는 발음이 더 쉽게 느껴지나보다. 친구 둘. 두 명의 친구라는 뜻. 제목이 그대로 말해주듯이 이 책은 킬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안데르스와 친구 두명으로 구성된 총 삼인조가 벌이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요나스 요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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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제대로 읽으려고 해도 그의 친구'들'이라고 말하게 된다. 아무래도 '친구들'이라는 발음이 더 쉽게 느껴지나보다. 친구 둘. 두 명의 친구라는 뜻. 제목이 그대로 말해주듯이 이 책은 킬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안데르스와 친구 두명으로 구성된 총 삼인조가 벌이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요나스 요나손은 특유의 유쾌함으로 이야기들을 잘 버무려 나간다.

 

전작에서도 그런 점은 잘 드러난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노인]에서도 제목이 모든것을 말해준다. 글자 그대로 100살인 할아버지가 요양원에서 살다가 창문을 통해서 뛰쳐나간 이야기이다. 그 할아버지가 전국 방방곡곡 아니 전 세계를 다니면서 벌이는 역대급 어드벤쳐가 펼쳐진다. 알란할배의 여행기가 궁금하다면 당장 파란색의 표지의 할아버지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진 책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후 작가의 행보는 할아버지에 질렸다는 듯이 노선을 확 바꾸어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셈을 할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또한 제목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셈에는 기막힌 능력을 가진 까막눈이 여인을 통해서 그녀만의 개성있는 여행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주황색의 황홀할만큼 눈이 부신 색의 책표지를 찾아서 읽어볼 일이다.

 

이번에는 초록초록을 내세웠다. 전작과 다른 점도 있다. 전작에서는 주인공 한명을 내세우고 주인공들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과감하게 그 틀을 깨고 주인공 세 명을 전면에 배치했다. 세명이라고 해도 표지에는 안데르스만을 내세워 독보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즉 안데르스가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이름도 제목이 실리지 않을만큼 부수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그의 친구 둘이 없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진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안데르스와 친구 둘은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것이다.

 

이쯤해서 친구 둘의 이름을 밝혀볼까. 온갖 뜨내기 사람들의 보금자리인 하숙텔의 리셉셔니스트 페르. 그의 이력도 화려하다. 할아버지는 무진장한 부자였으나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 시대를 잘못 만나 쫄딱 말아먹은 집안. 결국 그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목사. 아니 전직목사 요한나. 그녀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그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지만 교회로부터 쫓겨나게 되었고 결국은 한끼도 먹기 어려워 구걸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안데르손. 청부업을 전문으로 하는 그는 돈만 받으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누군가를 손봐주는 일을 한다. 양쪽팔을 부러뜨려 달라는 오더를 받은 그는 일을 하러 가지만 아이를 들고 있는 남자를 봐주게 되고 양쪽팔을 부러뜨리는 대신 한쪽 팔을 두번 부러뜨린다. 그 댓가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이 생각한 돈의 딱 절반. 그것도 자신이 직접 받지 못하고 리셉셔니스트 페르를 통해서 받게 된 그는 화를 낸다.

 

그 상황에 딱 맞게 자리하고 있었던 요한나. 그녀는 페르와 힘을 합해 자신이 그 돈을 받아주기로 하고 삼인조가 되기로 협정을 맺게 된다. 일은 안데르스가 하고 자신들은 안데르스를 관리해주면서 수입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추구한대로 이 일은 온전히 흘러갈 수 있을까.

 

알란 할배처럼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약간은 블랙코미디적인 면이 강하게 강조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들을 통해서 호탕하게 웃을지도 모르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 감동을 느낄수도 있겠고, 그들조차도 사람인 까닭에 돈에 연연해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찰 수도 있겠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거운 인생을 살았고 그것을 보는 우리들도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았는데 말이다. 시국이 뒤숭숭하다. 책 한권으로 잠시동안 현실을 잊고 그들을 따라서 좌충우돌하다보면 복잡한 머리도 어느정도 식혀지지는 않을까. 불현듯 예전의 홍길동이나 임꺽정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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