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은 더글러스 케네디의 첫 단편집이다. 모두 12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길이는 제각각이다. 나는 아직 케네디의 장편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읽으면서 장편을 먼저 읽어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짧은 호흡의 소설로는 그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 잘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모르면서 읽는 것은 내게 편하지 않았다. 내게 편한 독서란, 글에 투영된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다가온 심상이 전적으로 내 착각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을 쉬이 눈감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문체가 가볍고, 대사들은 살아 있으며 이야기가 중간에서 그만둘 수 없을만큼 흥미를 계속 잡아 당겼기 때문이었다. 339페이지에 담겨진 12개의 단편들을 읽는 데 들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이 없고 장시간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반나절에 다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뭐, 이런 정보 따윈 당신에겐 별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보다 중요한 것은 ''픽업'이 무슨 이야기냐?' 일 것이다. 12개의 단편들을 모조리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실패'라 하겠다. 스스로 완벽하게 세워놓았다고 자부했던 계획이 실패하는 이야기, 사랑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우리와 별로 멀지 않은 이야기다. 살면서 우리도 겪는 일이니까 말이다. 다만 이렇게 실패하는 이들이 모두 사회에서 아주 잘 나가는, 그렇게 지위도 제법 높고 돈도 많이 벌며 능력도 제법 출중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날 뿐이다. 케네디는 유독 그런 인물들을 단편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내가 원래 좀 이상해서 그런가 이것이 좀 더 내 흥미를 끌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 생활을 다뤘을까?' 하고 말이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나와 멀다. 내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겪는 경험은 언제든 내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의 처지는 내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이 아주 보편적인 실수요, 실패라는 걸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닐까?'
지위의 격차, 빈부의 격차 그리고 능력의 격차에 상관없이 우리는 똑같이 실수하고 실패한다. 자기에게 찾아온 진짜 사랑을 깨닫지 못하며, 지나치게 자신에게만 골몰하느라 정작 타인의 모습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허기를 채우는 것에만 매달리느라, 무시된 타인의 허기가 결국은 내게 어떤 복수를 감행할지도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청맹과니다. 나만 보고, 나 밖에 못 본다. 그래서 엎어지고, 상처입고, 눈물을 흘린다.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이.
그렇다면 이것은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자체의 문제다. 내 지위가 높아진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나게 된다고 해서, 부유하게 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 내가 달라져야 해결 될 문제다. 하긴, 우리가 만나는 문제들 중에 안 그런 것이 어디있겠냐 만은.
단편집 '픽업'은 바로 그런 깨달음을 위해 '픽업(pick up)'된 12개의 이야기들이다. 본질적인 면에서 나와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결국엔 바로 이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왜 불행이 만연할까? 우리의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일까? 인생이 절망과 실패로 점철되어갈 때 우리는 왜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가?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에서.
어느덧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네번째로 읽게 되었다.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온≫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새록새록하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픽업을 포함하여 전체 열두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간 발표했던 여러 장편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못지 않게 짧은 분량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내고 있다.
<픽업>은 금융사기꾼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를 유치하고 자금을 빼돌려서 돈을 버는 인간말종이 주인공이다. 결국 피해자 중의 한명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복수를 당하며 결국 손가락 하나를 잘리게 되는 끔찍한 결말을 맡게 된다. 잘린 손가락으로 맥도날드에 음식을 주문하며 주문받는 청년이 희대의 사기꾼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직한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짤막한 단편인 <크리스마스 반지>과 뒤에 이어지는 <여름 소나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특히 여름 소나타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애인을 놓아버리고 나서 후회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결국 애인을 내치고 결혼한 여자와도 결별을 하게 되는 결말이 영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 나는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날을 긴 호흡으로 읽어내려나는 장편소설과는 달리 시작하려는가 싶으면 끝나버리는 단편소설의 짧은 호흡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이 책 역시 고민 끝에 읽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단편소설집의 기존 인상을 지우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단편소설집이지만 인물들이 극단적이다보니 서로 연결고리를 찾게 되고, 앞에 나온 인물이 뒤에 나온 인물과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열두 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 상의 아쉬움은 인간의 아름다운 면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글라스 케네디 특유의 스토리라고 여겨지지만 열두편이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 이혼, 일탈, 미움, 사기, 일탈 등 인간의 어두운면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은 밝고 아름다운 면을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픽업/더글라스 케네디/밝은세상/사랑과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단편소설집...
『빅 픽처』의 저자인 더글러스 케네디의 작품은 매번 색다른 주제와 세밀한 지식으로 무장되었기에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장편이 아니라 단편 모음집인데다 12편의 단편에 담긴 다양한 주제들이 모두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주제였기에 새로우면서도 친근했답니다.
가장 강렬했던 작품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하고 처음에 나오는 <픽업>이었는데요. <픽업>은 천재 사기꾼의 비참한 결말이 아이러니하게 그려져 있기에 유쾌하고 통쾌한 소설이었는데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인생은 '인과응보'이고, 남을 피눈물나게 하면 자신도 피눈물을 흘린다는 다소 고전적인 주제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코믹하면서도 톡톡 튀는 문장과 허를 찌르는 구성과 만나 몹시 유쾌하고 통쾌했답니다.
최고의 대학을 나온 금융인이 월 스트리트의 한 금융회사에서 윤리규정 위반을 하면서 해고를 당하고 금융사기꾼의 세계로 빠진 이야기이기에 뉴스의 한 자락을 보는 듯 했습니다. 유령 금융회사를 차려놓고 남의 돈을 가로채면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고 오히려 배심원 대표를 매수해서 무죄 판결을 받는 모습이나 자신을 변호한 법원 가정 변호사를 조롱하는 금융 사기꾼의 존재, 처제와 불륜을 저지르고 재판 중인 사기꾼에 매수되어 그의 무죄 선고에 일조히는 배심원 대표의 파렴치한 모습, 당하고는 못사는 고객이 꽃뱀을 매수해 자신을 등친 사기꾼에게 뒤통수를 치고 그의 전재산이 털어 사기당한 고객들과 분배하겠다는 모습에서 현실이 소설로 되살아난 듯 했답니다. 세상에 사기꾼도 많고 사기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 이도 많지만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고 인과응보의 진리는 존재한다는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가 식상하기는 커녕 스릴과 박진감, 유머가 녹아있는 소설이었기에 오히려 신선했는데요. 역시 더글라스 케네디였어요.
책에는 천재 사기꾼이 꽃뱀의 유혹에 끌려 전재산을 잃게 되는 이야기, 잘 나가던 변호사의 일탈을 그린 이야기, 운명 같은 여인을 보낸 뒤에 후회 막심한 세월을 보내는 남자의 삶, 이혼을 앞둔 남녀가 값비싼 결혼반지를 두고 벌이는 전쟁 모두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었는데요. 해서 읽으면서도 흘려 읽을 수 없었던 실화 같은 소설입니다. 모두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거나 뉴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비슷해서 인생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답니다. 매력적인 단편소설집이었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이 다 가고 아침저녁으로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자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마다 요즘엔 중간이 없이 하루 아침에 계절이 바뀐다고 난리였다. 생각해 보면 분명 작년 가을에도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늘 까먹어서 그렇지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뜨겁던 열정은 온데간데 없이 식어 있기 일쑤다. 소설 픽업의 단편들은 모두 파탄 직전의 상황에 눈뜬 일진이 사나운 날의 이야기다.
도박판에서 돈을 계속 잃고 손 안의 패까지 안 좋은데도 곧 만회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는 위험신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다 잃고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잘못을 깨닫는다. 열두 편의 단편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전문직 종사자다. 남에게 사기칠 만큼 똑똑하고, 웬만한 협상에서 지지 않는 고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해외 비밀계좌의 돈, 값비싼 결혼반지 따위에 가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안심한 걸까.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온 지 오래되어 바닥에 곤두박질치기 직전에서야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악한다. 필사적이면서 즉흥적으로.
세상만사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늘 절정만을 목적지로 삼는다. 지나고 나면 찰나의 순간인데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그래서 다른 삶을 꿈꾼 지 오래여도 망가진 삶을 쉽게 놓지 못하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지난 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솔직히 인정하고 과감하게 다른 길로 갈아타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삶을 더 망가뜨린다. 누군가의 덫에 빠져 엉뚱한 곳에 다다랐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스스로 판 무덤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붙잡고만 있는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 속에서처럼 가족을 내팽개치고 하던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넘고 때를 놓치기 전에 뭐가 문제인지 살피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면 된다. 탈출구를 찾으려면 눈앞이 캄캄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니, 후회할 때야. (158쪽)
더글라스 케네디, 라는 이름을 마주하면 <빅 픽처>가 바로 떠오른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이 소설에 대한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오랜 시간 동안 책장 안에 꼽아두고서는 보물처럼 간직하고만 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의 책이라 함은 <파이브 데이즈>에 대한 화두로 물꼬를 트게 하는데 이유인 즉슨, 그가 저술한 장편 소설 중 단 두권만을 읽어봤으며 그 중에서도 이 파이브 데이즈를 읽으며 꽤나 많은 생각들을 곱씹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리하여 더글라스 케네디의 히트작인 <빅 픽처>보다도 <파이브 데이즈>의 잔상으로 이번 신작인 <픽업>을 읽게 되었는데 나보다도 동생이 먼저 읽은 견해를 써보자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직은 버겁기만 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게 금새금새 넘어가는터라 가독력이 있어 좋다고 했는데 책을 펼치며 몇 페이지를 넘기기 동안 바로 그녀의 말에 끄덕이며 오랜만에 정신없이 이틀 만에 책을 완독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종의 방법으로 횡령을 하고 사기를 치고 있을 뿐이었다. 적자생존의 세상, 아무리 친절을 베풀어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어찌 보자면 주식시장의 큰손들도 근본적으로 나와 다르지 않은 횡령이나 사기를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고 있지 않는가? 정부의 행정 명령이나 법령은 사람들은 쉽게 통제기 위해 만들었을 뿐 나를 위해 만든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반드시 정부의 행정 명령과 법령이 정해놓은 절차를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본문
이 <픽업>은 12개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책인데 그 중 이 책의 제목인 <픽업>이란 소설이 가장 먼저 등장하게 된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후 그 회사의 주식을 부자들에게 발행하여 판매한 후 상장이 되면 이 비용의 몇 배의 수익을 건질 수 있을 것이란 주인공 찰리의 말에 속아 넘어간 수 많은 피해자들은 종이조각이 되어 버린 주식과 그 페이퍼 회사의 공금을 횡령해 개인의 부를 취득한 그를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워 올리게 된다. 허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기의 모략에 대한 그 어떠한 죄책감도 없는 찰리는,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전후사정을 살피는 데 지략가인지라 이미 그 몫돈은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 놓았으며 배심원 대표에게 그의 약점과 뇌물이라는 달달한 당근을 함께 제시하여 법의 심판대에서마저도 유유히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말마따나 그를 변호했던 변호사마저도 혀를 내두르며 언젠간 찰리가 죄값을 달게 받기를 바란다는 쓴소리를 남기고는 술집을 나서게 되는데, 그렇게 혼자서 자신의 무죄 석방을 축하하던 그 자리, 아리따운 여인과 마주하는 행운까지 얻게 된다. 이 안하무인의 궤변론자에게 내려지는 끊이지 않은 행운의 연속을 보노라면 베알이 뒤틀리며 어디선가 보았던 현실의 모습이 소설 속에도 이어지는 듯 하여 씁쓸함이 감도는 와중, 그에게 드러난 이 모든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통쾌함이 밀려들면서도 그가 남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라는 이야기에 한 순간에 한 인간이 이토록 개과천선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마저도 들지만 어찌되었건 그의 마지막은 보는 이로하여금 청량감을 전해준다.
과연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나밖에 없을까? 물론 나만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행복을 마다하고 결국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우리의 생은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행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 일인가?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오래전 내가 스스로 떠나보낸 여자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곡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앤이 연주한 브람스의 곡에는 내 마음을 괴롭히는 깊은 슬픔이 녹아들어있다. -본문
스쿠르지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은 느낌이 들던 <크리스마스 반지>를 넘어 <여름 소나타>는 흥미진진한 액션과 훈훈한 이야기를 넘어 무언가 한 남자의 미련하지만 나름의 순애보를 전해주는터라 각각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에 금새 빠져들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20여년이 지나서도 자신의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19년 동안 함께해온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저 지나쳐버린 세월에 불과한 것인지, 만약 내가 그의 아내였고 오래 전 첫 사랑을 잊지 못해 이제 떠나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떠한 답을 그에게 할 수 있을지, 그들이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압축되어 있기에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단편 소설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겠지만은 그 한계점은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 나름의 재미를 빠져 이야기를 읽어내려가게 된다.
소유하지 않은 걸 바라고, 바라지 않았던 걸 소유하는 것.
저 멀리 어딘가에 다른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현재의 삶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
무엇을 찾아야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
택시운전사가 다시 물었다.
"손님, 어디로 가실지 말씀하셔야죠?"
내가 대답했다.
"나도 몰라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본문
첫 장을 읽으면서 대체 무슨 일이지?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던 <전화>. 너무도 완벽한 삶을 살고 있던,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영위했던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한 통의 전화가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던 그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대체 어떠한 이야기가 전해져 올지에 대한 궁금증에, 모든 일에 계획적으로 일사천리의 시간을 보냈던 그와 부랑자와 같이 변모해가는 그를 보노라면 마치 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그 비밀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는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회피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나아가야할지조차 선택하지 못한 채 그 질문을 타인에게 던지는 것을 보며 무기징역 증후군은 비단 그만의 모습이 아니기에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데 그렇게 이야기는 <냉전>을 넘어서 매번 남편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던 아내의 마지막 단호한 이야기에 통쾌함을 느꼈던 <당신 문제가 뭔지 알아?>까지 그야말로 쉴틈 없이 읽어내려간다.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의 뒷 이야기에 무척이나 궁금했던터라 이대로 끝나는게 아쉬울 정도였는데 그래서일까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던 <픽업>과 <전화>보다도 책을 닫고서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란 이야기가 계속 잔상으로 남아있다.
나는 레베카의 손을 잡고, 아직 마시지 않은 코냑 잔을 건넸다. 레베카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상태로 코냑을 마셨다.
바로 그 순간, 25년의 세월이 사라졌다. 25년 전, 우리는 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인생의 처절한 굴곡을 겪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결혼해 운명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그 순간, 찬란한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반짝이던 그 순간에는 이 세상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전혀 없었다. -본문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 행복의 무게가 어느 새 사그라들지 모른다는 강박에 결국에는 제 손으로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린 한 남자가 있다. 물론 그는 25여년 전의 세월 속에 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 나름대로 평범한 듯 그의 가정의 꾸리며 지내왔던 여느 평범한 어느 날, 오래 전 자신이 놓쳐버렸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 마주한 그들이지만 25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간 듯한 그들은 서로의 삶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현재의 이야기까지 흘러오게 되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로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금 종료된다. 아니 종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나의 머리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다음을 그리고 있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각각의 풍기는 느낌이 다르기에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에 그의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전해지게 될지, 벌써부터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