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연 신부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유유자적하게 게으름을 피고 있던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다.
느닷없이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더니 빨리 티브이를 틀어 PBC를 보라는 것이었다.
엉겹결에 티브이를 틀고 채널을 돌려보니 어느 신부가 강연을 하고 있었다.
미와 파 사이의 음계를 지닌 듣기 좋은 목소리로
충청도 억양은 아니되 충청도 억양을 떠올릴 만큼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며
적절한 비유와 제스처로 강연을 이끌어가는데 노련한 이야기꾼의 풍모가 엿보였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웃음을 터트리는 방청객들의 모습도 참 신기했는데
더 신기한 것은 나 또한 나도 모르게 티브이 밖의 방청객이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내용도 그럭저럭 들을 만했고, 강연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강연은 티브이를 켠 지 10분 안으로 끝이 났고,
엄지손가락만 한 요구르트를 먹다 만 허전함이 들긴 했지만,
내가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챙겨볼 생각은 없어서 또 그런 대로 잊고 지냈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통해 황창연 신부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내 앞으로 책을 보내셨다. 바로 이 책 <삶 껴안기>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어지간히 황창연 신부를 나에게 소개해주려 하신다)
사실 이런 류의 책, 특히 혜민스님, 법륜스님으로 대표되는 자기성찰이나 명상류의 책은
결말이나 메시지가 뻔한 느낌이 들어 나 같은 비주류애호가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도 어머니가 애써 보내주신 책이어서 그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자는 마음에서
별 기대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예상 밖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누구나 예상하는 뻔한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다 읽고 보니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자세 자체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의 기본기'나 '삶에 대한 태도'를 논하는 것인데,
요즘 내 삶이나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삶 껴안기의 다른 말은 행복이다.
삶 껴안기라는 제목 자체에서 삶에 대한 긍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을 논하자는 신부님이 먼저 돋보기를 들이댄 부위가 의외다. 바로 대한민국의 사회이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처럼 특권과 지위, 경제적인 부를 무기로
추악한 욕망을 스스럼 없이 배설하는 사회가, 시대가 또 있을까?
검찰의 지위를 악용하여 시꺼멓게 한몫 챙긴 검사가 있는가 하면
권력 실세로 군림하면서 요즘 한창 비리 때문에 뉴스를 타고 있는 고위인사도 있다.
이쯤되면 개, 돼지 드립을 내뱉는 고위공직자는 애교로 봐줘야 할까?
황창연 신부는 이러한 문제를 단지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로 범위를 확대하여 화두를 던진다.
이를 테면 우리 또한 특권과 지위를 쥔 자리를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자리에 올라가서 과연 남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출 수 있는지 준엄하게 묻는다.
즉 남과 비교 없이 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인정해줄 수 있는 태도가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절대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지금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라는 대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사람을 비교하는 것에서 차별이 시작된다며, 사람을 비교하려는 태도를 버리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선행될 것이 바로 나눔이다. 나누는 기쁨을 알면 나와 함께 나누는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은 내가 요약해놓은 말처럼 딱딱하지도, 공자왈 맹자왈 느낌으로 교과서적이지 않다.
신부님의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영화, 책, 명사들의 명언이 인상적으로 이어져서 술술 읽힌다.
'비교를 통해 행복을 찾지 말아라', '행복하려면 지금 행복해라'...
행복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의 각양각층의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봉사와 희생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그 '뻔한 말'을 하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열대여섯 페이지마다 일까,
스무 페이지 정도쯤일까...
자주자주 마음이 따스해지고 나부터 잘살아야겠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이자, 독서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에도 현란하고 화려한 기술이 가장 팬들의 이목을 당기지만,
야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입에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것은 바로 기본기이다.
어쩌다 한두 번 보는 누구나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기술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그 선수는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가 없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번트를 대서 내 앞의 주자를 진루하게 하는 것,
투수가 실수로 던진 폭투를 뒤로 빠트리지 않게 몸으로라도 블로킹해는 것,
그것이 기본기이다.
대한민국이란 그라운드 안에 함께 있는 우리 모두 또한 이런 기본기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가치 있게 되고, 행복해진다.
요즘 열대야 나날이다. 나처럼 땀이 많은 사람은 자기 전에 늘 샤워를 한다.
내일 또 엄청난 더위를 겪으며 땀 흘릴 걸 알면서도 샤워를 하는 이유는
조금 더 안락한 잠자리에서 내일 하루를 잘살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같은 자기성찰이나 명상에세이를
너무 뻔하다고 폄하하려는 내 자세도 미성숙한 생각이 든다.
한순간의 샤워만으로도 잠자리가 달라지고 내일 하루 시작이 달라지듯이
잠깐잠깐 짬을 내어 이 책을 읽고 진정한 행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