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에서는 초반부에 김장옥(박희순)이 일경에 쫓기면서 격렬한 저항을 펼치다가 결국 민가에서 총으로 자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선인 출신 경부였던 이정출(송강호)은 못내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이 장면은 실제 있었던 김상옥의 최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상옥 의사가 누구였던가?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만들면서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으며, 1월 17일에는 종로경찰서의 형사부장이자 유도 고수였던 다무라를 사살하고, 두 명의 경부에게 중상을 입히면서 유유히 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가 다시 경성으로 재진입을 노린 그는 효제동에서 머물다가 이마저도 1월 22일에 발각되어 결국 일경 10명을 살상한 이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었다. 그러니 영화 [밀정]의 초반부 장면에 등장하는 '김장옥'이라는 인물은 김상옥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었다.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은 김상옥을 비롯하여 당시 의열단의 활동을 세세히 다룬 책이다. 최근 의열단장인 김원봉에 대한 훈장 추서를 놓고 논란이 일면서 의열단의 행적마저 테러로 치부하는 일부 세력의 등장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무장 독립을 주도하던 의열단의 활동을 정확히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에 김상옥 의사와 나석주 의사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책이 반가웠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영화 [밀정]의 첫장면이 김상옥 의사의 최후를 다룬 것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을 포함한 의열단의 행적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왜곡을 일삼는 토왜들이 당당하게 활동하는 요즈음 상황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1923년 종로경찰서에 대한 폭탄 투척과 함께 김상옥 의사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그에 대한 이해는 물론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폭탄에 의한 투쟁이 계획되어 있었음에 주목한다. 사실 김상옥 의사의 목표는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 경찰은 종로경찰서에 대한 폭탄 투척의 진범이 김상옥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일본 총독의 암살이 목표였다면 굳이 이전에 폭탄을 투척하여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은밀히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상옥 의사의 자결로 인하여 일본 경찰은 폭탄 투척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당시로서는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넘어가면서 국내의 독립투사도 전향하면서 일본의 계획이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식민지 시배의 혹독한 억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종로경찰서에 대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였으니 일본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서 일본은 바로 조선인 출신이었던 경부 황옥을 투입하게 된다. 김상옥 체포를 진두지휘한 미와가 경부보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미 경부였던 황옥은 일본으로부터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독립투사를 체포하는 과정에 큰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폭탄 투척에 대한 수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있는 인물로 황옥이 선정된 것이었다. 영화 [밀정]에서는 바로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 황옥에 해당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중 밀정으로 활동하다가 결국 의열단으로 활동하는 이정출을 보게 되지만, 실제 역사에서 황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학계에서는 황옥이 일본을 도와서 의열단을 배반하면서 경성에서의 대규모 폭탄 투척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영화처럼 황옥은 실제 재판을 받고 유죄로 인정받아서 혹독한 옥고를 치뤘다는 점과 독립 이후에 반민특위에서 친일 경찰들에 대한 증언을 한 점을 들어서 오히려 독립활동을 한 인물로 보는 시선도 있다. 특히 김원봉 역시 계획이 모두 들통나면서 일이 틀어진 상황에서 황옥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였으니 오히려 독립운동세력 측에서 활동한 인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저자는 황옥의 행적과 관련하여 무엇을 논하고자 한 것일까? 사실 의열단은 그동안 수많은 의거 활동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는 대부분 폭탄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었고, 심지어 대부분 불발탄에 그치는 바람에 실패를 한 경우가 많았다. 1926년 나석주 의사가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였지만, 모두 불발로 그치는 사건도 그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데, 1923년의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김원봉은 헝가리 출신의 마자르를 의열단원으로 영입하면서 이 문제를 잠시나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마자르가 바로 폭탄제조 전문가였고, 실제 그가 제작한 폭탄을 미리 시험해 보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된 것이었다.(영화 [밀정]에서 등장한 외국인은 마자르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건물 파괴용, 대인 살상용과 같이 다양한 폭탄의 제조가 이루어졌기에 이제는 이를 국내로 무사히 들여와서 투척하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의열단은 고려공산당의 자금 지원은 물론 인적 지원으로 인하여 폭탄의 제조와 일정 장소로의 운반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 경성으로의 운반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원봉은 황옥을 주목하게 된다. 조선인 출신이지만 일본 경찰의 경무라는 높은 직책이었기에 그를 통한다면 폭탄의 운반이 용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황옥은 비록 일본 경찰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내심 조선의 독립투사들을 도와주면서 은연 중에 독립운동에 가세할 뜻을 내비친 상황이었다. 결국 황옥은 상부에서 폭탄 테러에 대한 지시를 이유로 중국으로 건너가서 김원봉과 조우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서 황옥은 대규모 폭탄의 국내 유입에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예상대로 황옥의 도움으로 의열단은 거사에 이용할 폭탄들을 무사히 경성까지 운반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폭탄의 준비로 인하여 의열단은 내심 기대를 하지만, 이는 미수에 그치게 된다. 바로 일본 경찰이 폭탄이 있는 곳을 알아내서 폭탄을 빼앗고, 거사에 참여하려는 모든 인물들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황옥 역시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함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황옥은 자신이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기 위하여 밀정 활동을 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무죄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죄가 인정되어 수감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영화 [밀정]처럼 이정출이 일본에 의하여 이용당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접하면서 우리는 왜 친일잔재의 청산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사실 의열단원은 김원봉에 의하여 점조직으로 운영될 정도로 비밀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1923년 거사를 단행한 김상옥 의사 역시 의열단원임에도 불구하고 의열단이 경성에서 또 다른 폭탄 투척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였다. 그렇다면 역시 황옥에 의한 정보 유출이었을까? 저자는 우선 고려공산당과의 연대가 비밀 유지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고려공산당 역시 의열단과 마찬가지로 극렬한 무력투쟁을 선호하였지만, 문제는 비밀유지에 취약했다는 점이다. 애초 황옥이 경성에서 폭탄을 숨겨 놓으라고 지시를 하였는데, 폭탄을 보다 안전한 곳에 보관한다고 선택한 곳이 조선 출신의 밀정들의 시야 범위에 들어온 곳이었다. 이들 밀정은 이를 다시 조선인 출신 고등 형사에게 보고하면서 결국 힘겹게 들여온 폭탄이 모두 일본에 의하여 색출된 것이었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도 한 몫을 하였지만, 결정적인 제보는 같은 조선인 출신의 밀정과 형사에 의한 것이었다. 앞서 김상옥 의사의 체포도 조선인 출신의 밀정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이들에 의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우리로서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최근 교묘하게 색깔논쟁과 더불어 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에 대한 비판은 물론 그들의 활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의견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색깔논쟁을 통하여 친일잔재세력이 보수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세탁하면서 이제는 기득권층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은닉 또는 포장하는 상황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확실하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밀고하고 때려잡던 세력들이 도리어 기득권으로 녹아든 한국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히 숨만 쉬면서 살아도 과분한 상황 속에서 거꾸로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들 세력을 보수라는 이름에서 확실하게 끄집어내야 한다. 과거 일본에 기생하던 무리들이 현재 한국이 또 다른 위기에 처한다면 과연 한국을 위할지 아니면 과거와 같이 유리한 쪽에 붙어서 매국행위를 할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저자는 의열단의 활동을 통하여 재조명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것 자체가 서글픈 우리의 현실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아..1923년! 스펙타클한 첩보영화같은 이 내용들이 실제 우리 역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라니.현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는 말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말들을 속으로 삼켜야했다. 사실이 아니었다면 흥미진진한 소설 읽는 기분에 빠져들 수 있었을텐데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도 거사에 실패하고 많은 열사들이 죽음 혹은 체포된 사건이라 흥미롭다는 생각을 갖는 것조차 왠지 죄스러웠다.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의 중심에는 의열단이 있었다.1923년에는 1919년 삼일운동 후 몇 년이 흐른 뒤 독립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의열단이 분연히 나선 것이다. 단원이 경성에 잠입해 암살과 폭탄 투쟁을 시도했고, 이는 사그라들어가는 국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재점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또 직접적으로 일제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폭력활동이었다.
종로 경찰서 폭탄투하 사건,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의 거사였지만 독립운동사상 유례없는 다발적 폭탄투척, 만약 이 계획이 제대로 성공했다면 삼일운동 이후 소강상태였던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일제를 혼란에 빠트리며, 결코 굴복하지 않는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게 드러내 보였을 것이다.
때는 1923년 1월 12일 금요일 저녁 7시 반. 종로사거리에서 느닷없이 거리를 뒤흔들만큼 큰 폭발음이 들렸다. 한 사나이가 종로경찰서의 서쪽 창문으로 느닷없이 사제폭탄을 투척하고 유유히 빠져나간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사망자는 없었고 몇명의 부상자만 발생했지만, 이 사건으로 종로 뿐 아니라 경성의 경찰은 발칵 뒤집혔고 비상이 걸렸다. 범인 잡기에 혈안이 됐다. 경성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종로, 그것도 일제의 첨병이고 삼일운동 때 33인의 민족 대표를 비롯해 수많은 항일투사들을 잔혹하게 고문한 종로경찰서. 그곳에 폭탄이 투하된 것은 조선인들에게는 쾌거였지만 일제로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본진에 구멍이 뚫린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이 사건은 보도 통제로 기사화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식이 퍼지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소문은 방방곡곡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조선인들 사이에선 묘한 긴장감과 생기가 감돌았지만, 반대로 일본은 이런 조선인들의 민심반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경성의 중심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하한 이 담대한 이는 김상옥이었다. 고생 끝에 '영덕철물상회'라는 공장을 가질만큼 기반을 다졌지만 미련없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인물이었다.
김상옥이 일제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 것은 불문가지였는데,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체력적으로도 뛰어났지만 그만큼 정신력 또한 남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체포 직전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나왔던 그는, 일제의 추격을 피해 은신했지만 결국 다시 일본의 포위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투항하라는 일본의 권유를 마다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 많은 일본경찰과 대치하면서, 마지막 세 발의 총알을 남기고 자결하는 순간까지도 총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단신으로 그 많은 경찰과 대치했을 그..경성 효제동 일대에 퍼져갔던 총성. 서른 넷 짧은 생애를 장렬하게 마감한 김상옥의 최후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죽은 뒤에도 둘째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쥐고 놓치지 않았을만큼 결사항전한 모습은 강인한 인간 김상옥의 마지막 투혼이었을 것이다.
김상옥은 자결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의열단에서는 또다른 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대규모, 다발적인 폭탄공격을.
이 작전의 중추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안그래도 비범해보였던 그를 몇배는 더 평가하게 되었다. 그는 일제입장에선 조선인으로 최고의 현상금을 내걸만큼 흉악범이었고, 베일에 가려진 사나이였다. 어찌나 보안에 철저했는지 얼굴이나 이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걸 보면 그만큼 주도 면밀했고 신중했던 것이다.
폭력을 독립운동의 방법으로 확실하게 활용한 그다웠다. 대규모 다발적 폭탄 공격의 위력은 상상해보면 알 것이다. 고성능 폭탄을 비밀리에 국내로 반입해서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조선은행,경성우편국,경성전기회사 등 주요시설에 타격을 가하고, 암살을 한다면...일제가 받을 충격이 얼마나 엄청날 것인지.
최근에 일어난 유럽의 폭발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의열단은 고려공산당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 작전에 만전을 기했다. 문제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었던 황옥이 협조하게 된다. 그는 비록 일본 경찰에 몸담고 있었지만 평소 독립운동에 참여하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던 인물이었기에 기꺼이 참여했건 것이다.
이 계획의 성사 여부는 폭탄을 성공적으로 반입하느냐와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지 않게, 보안을 유지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다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국경에서 검문에 걸릴까, 국내에선 경찰에 발각될까, 일촉즉발의 순간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긴 한숨이 나왔다. 마지막단계에서 폭탄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그리고 황옥을 비롯해서 작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체포되고 말았다.
거사 직전 단계에서 하필 밀정에게 폭탄을 보관해달라고 부탁한 것에서 경찰에 꼬투리를 잡혔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많이 허무했다. 수많은 고비를 넘긴 끝에 겨우 폭탄을 국내로 들여왔는데..마지막 단계에서 부주의로 작전을 그르치고 만 것이었다. 거기에 황옥, 김시현 등 계획에 참여했던 열혈 독립활동가들마처 체포되고 말았으니..그 인적 손실과 그동안 들어갔던 경비며..의열단의 출혈이 막심했다.
앞의 김상옥도 밀정이 경찰에게 제공한 단서로 체포된 것인데, 이번에도 밀정의 염탐으로 인해 몇년동안 준비했던 계획이 모두 헛수고가 돼버린 것이다. 이 순간 왜 하늘은 조선을 돕지 않은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저 고비만 넘겼다면,폭탄을 옮기지만 않았어도.. 장기간 작전을 준비했던 김원봉은 얼마나 맥이 빠졌을까. 실패한 안타까움 때문에 만약에, 만약에 하는 가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조선이나 독립군 활동지에는 밀정이 많았다. 자나깨나 밀정 조심을 외치고 싶을만큼 그만큼 일제의 감시망이 촘촘하게 짜여져있었다는 말인데, 밀정들의 암약은 독립군의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에서는 한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않은 시도였다. 단발적인 폭력투쟁이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가라앉은 국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조국 독립에 위한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이 거사가 발각된 것에서 그만큼 일제의 감시망이나 조직이 치밀해서, 철저하게 항일 운동이 막혀있던 당시 조선 사정을 파악하게도 된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신문 보도나 논문 등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인데, 소설처럼 긴박하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에 방점이 찍혀있다. 김원봉은 물론이고, 김상옥, 황옥, 김시현 등 목숨을 걸고 이 거사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들의 동선을 좇아가면서 거사 과정을 풀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체포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황옥이나 김시현은 잔혹한 고문을 견뎌야 했고,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말고 체포된 이 중에는 고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동지를 자백한 죄책감을 못이기고 자살한 이도 있었다. 실제로 김상옥의 체포에 협조해야만 했던 인물도 있었던 것을 보면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그 이상의 의지와 인내심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이런 엄혹한 식민지를 거치고 살아남아 독립이 된 뒤였다. 김원봉은 친일파 경찰의 대명사 노덕술에게 취조를 받는 모멸감과 환멸에 북한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6.25를 반대하는 등 김일성 노선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자 돌아온건 숙청이었다. 장개석 중국 국민당 스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죄명으로 숙청되면서 북한 역사에서도 그의 존재는 삭제되고 말았다.
황옥은 내내 병마에 시달리다, 밀정인지 투사인지 논란을 남긴 채 한국전쟁이후에는 그의 행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김시현은 더욱 파란만장했다. 김구 암살 사건에 격분한 나머지 이승만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전력으로 인해 그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저 뜨거운 심장으로 일제에 맞섰던 이들이라 시류에 영합하지 못하고 돈과 권력과는 상관없는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해방 뒤 그들의 삶에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분단과 외세에 의존해야 했던 한반도의 비극은 이렇게 1923년 뜨겁게 일본에 저항했던 독립투사들의 말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워게 했다. 아마 그들에게도 분단이나 친일파 득세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1923년 부분을 읽으면서 뜨거워졌던 내 가슴이 해방 뒤에 와서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1923년 펼쳐졌던 작전을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스럽다고 여겼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존경과 예우를 받아 마땅한 독립투사들의 해방 뒤 삶에서 또, 이분들도.. 하는 생각에 통과의례처럼 슬픔을 느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1923년의 거사, 그 치열했던 과정과 조국 독립을 향한 간절한 심정으로 그 작전에 뛰어들었던 투사들이 있었음을, 죽음을 당하고 체포되고..그 고난조차 감내했던 투사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우연하게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소설을 읽었을까?'를 읽을 때 영화 '밀정'의 배우들의 인터뷰를 봤다. 그때 김지운 감독님이 배우 한지민에게 이 책을 권해주었다고 한다. 영화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다. 영화 '암살'을 보고 나서 전지현의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래도 난 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의 부제는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이다. 단지 독립군이라는 단어만 알고 있었는데 의열단이라는 단어를 보니 왠지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냥 그런 책이 있구나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출판사를 보니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소개, 당시 신문기사와 잡지, 관련자료와 논문 등을 찾아내 재구성한 긴박감 넘치는 논픽션)
개정판 시작글
의열단 이야기는 무관심 속에 잊힌, 때로는 잊힐 것을 강요받았던 기억이다. (중략) 이 조각들을 모아 한 편의 생명력있는 스토리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글을 시작하며
2000년 여름 <세계일보> 8.15 기획특집으로 서울 시내 한일 독립운동 유적지의 보존과 관리 실태 탐사보도를 했고, 그 후 블로그 연재를 하고 단행본으로 나왔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으로 아무리 찬란한 역사적 사건도 후손이 망각하면 사라지지만 아무리 쓰라린 경험이라도 후손이 잊지 않고 되새기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중략) 앞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통해 1923년 경성에서 벌어진 의열단의 투쟁을 영원히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이 책에는 크게 두 인물이 나온다. 김상옥과 약산 김원봉.
우선 김상옥의 이야기부터 풀어나간다.
일본 해군대장 출신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이 강압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면서 겉으로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된 듯하나 더 치밀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1923년 1월12일 금요일, 종로경찰서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당시 총독부와 경찰은 모든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여 신문은 게재금지가 되어 이틀 후에 보도가 되는데 경찰은 불령선인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부르는 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하지만 오리무중이고 요주의 인물을 무작정 연행하여 조사를 한다.
마루야마 - 총독부 경무국장 (경찰청장)
모리 -종로서장
우마노 - 경기도 경찰부장 (서울경찰청장 급)
미와 - 경부보 (경감급)
특히 미와는 조선인에게 공포의 대상인데, 독립운동가와 좌익 사상범을 색출해내는 남다른 감각이 있고 온갖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배후를 실토하게 한다.
그 즈음 의열단 등 무장독립운동 세력의 모종의 폭탄 거사가 있을 거란 정보를 갖고 있던 터라 암살단원으로 만주로 간 김상옥이 돌아왔을거라 생각하고 그의 집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김상옥은 아버지대신 가장으로서 여러 일을 하고 '영덕상회' 철물점을 운영하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인데, 항일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조선물산장려운동, 일화 배척운동, 국산생필품 개발, 3.1만세운동, 항일 운동조직 '혁신당' 결성, 지하신문 <혁신공보> 발행 등 조선인의 독립열망과 투쟁정신을 고취했다. 1919년 12월 '암살단'을 구성하고 조선총독을 비롯해 총독부 고관과 민족반역자 암살 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만들었는데, 일제 감시를 피하기도 어려웠지만 군자금과 무기 확보가 큰 난관이었다.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형,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임정 법무국장 김한은 무산자동맹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을 한다. 의열단과 폭탄상자를
만주 안둥현에서 김한이 신의주로 옮기고 다시 경성으로 옮겨 김상옥에게 전달하기로 한다. 하지만 김한이
고등경찰에게 매수되었다는 소문으로 폭탄은 반입이 지체되고 이 사실을 모르는 김상옥은 마냥 기다린다. 물론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삼판통 총격전’ 17일 여명 시내 모처에서 종로서 형사들 총살
1.23 효제동 사건. 김상옥은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고 자신이 아끼던 모제르 7연발을 사용한다.
김상옥 사건이 있기 전 의열단에서는 보안 유지가 생명이라 서로의 존재나 작전 내용을 모르게. 2가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김상옥과 유석현 암살폭탄투쟁.
고려공산당의 자금지원받는 의열단은 중국에서 약산은 고려공산당 간부 장건생 등과 꾸준히 연락주고 받으며 거사를 준비한다. 문제는 고성능폭탄이었다. 우연히 몽골에 있던 조선독립운동가 이태준을 만나고 폭탄문제가 해결되는듯 싶었는데, 그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조선을 비롯한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을 열렬이 지지하는 헝가리 출신 폭탄제조 전문가 마자를를 만나 폭탄 제조에 성공한다. 약산은 단재 신채호를 만나 의열단의 이념과 정신을 담은 '조선혁명선언'을 부탁하여 선언문을 받고, 폭탄과 선언문이 준비되어 이제 경성으로 가져가면 된다.
경찰에 투신해 많은 독립투사 체포하여 경부로 승진한 황옥은 겉으로 드러난 이력만 보면 일본에 아부해 출세하려는 악질 고등계 형사지만, 경찰 상부에 (부자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달라고 말하다 잡힌) 유석현을 조선 독립운동 단체들의 활동을 염탐하기 위한 밀정으로 포섭했으니 풀어달라 요청한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히가시 과장은 황옥에게 중국 텐진으로 가서 종로서 폭탄투하 진범과 배후세력을 밝히라는 명령을 내린다.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추적해라.
황옥은 고등과 동료 하시모토 경부보, 조선인 밀정으로 알린 유석현 (김세진으로 이름 바꿈)을 데려간다. 그리고 폭탄은 만주와 경성으로 가게 되는데..
경성에 돌아와 황옥은 김상옥의 배후인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의 동태를 감시했지만 단서 잡지 못했다고 보고를 하려는데, 히가시 과장은 우마노 경찰부장 방으로 호출을 한다. 그런데 히가시가 소형폭탄을 갖고 있다. 그리고 황옥과 히가시와의 복잡한 심리전이 이어진다. 물증까지 있는 첩보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유능한 고등경찰인 황옥의 결백을 믿어야 할지.
실로 리면에는 여러
가지 긔괴한 것이 잇스나 자유가 업서 모다 보도치 못하노라
동아일보 1923년4월13일 ‘의협담대 기괴, 의열단 사건 중 형형색색의 이야기’
의열단원, 그 후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경험을 알고 있는 우리는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다 쓰러져간 투사들의 삶을 조명하며 정당하게 평가하고 대우해주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소설을 읽었을까?' '밀정' 영화이야기에서 들은 이 책을 읽고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무한도전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는 정말 가슴이 찡했다. 그 시대를 산 분들의 애국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진실과 거짓 그리고 배신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이제 영화 '밀정'을 기다린다.
영화 ‘밀정’의 모티브가 된 책으로 알려진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자는 동료기자들과 8.15 기획특집으로 ‘서울 시내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의 보존과 관리 실태’를 탐사보도 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예측 가능하게도 많은 장소가 관리 소홀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기념 표석도 그저 ‘돌덩어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를 묻혀두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로서 느낀 이 감동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야겠다.
이야기는 과도한 감정 이입 없이 그저 담담히 당시의 자료들에 근거해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적혀있는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안타깝고 처절해서 더 마음에 닿았다.
이 책에는 우리가 그간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영화 ‘밀정’에서도 그려진 김상옥(영화속 ‘김장옥’, 박희순)의 총독과 친일파 인사 암살계획, 일본경찰로 활동한 황옥(영화속 ‘이정출’, 송강호) 그리고 의열단원 김시현(영화속 ‘김우진', 공유)의 이야기는 오히려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 인상적이고 큰 울림을 준다.
누가 독립운동가인지 밀정인지, 독립을 위해 뜻을 함께 한 동지가 일본경찰에 매수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독립운동은 얼마나 고되고 치열했을까. 그리고 그 배신이라는 것이 단순히 적극적으로 정보를 빼돌린 밀정노릇을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었을까? 그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살 길만을 찾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나?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역시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나와 가족의 안위를 떨쳐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일까, 김상옥이 일본경찰들과 총격전을 하다가 들어선 집에서 집주인에게 총탄을 조금이라도 막아내고자 이불을 빌려달라 했다가 거절당하고, 결국 집주인이 경찰에게 김상옥이 어디로 도망쳤는지를 말하는 장면에서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포위를 뚫지 못하고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의열단 동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 김상옥에 대한 당시의 기사는 상황의 비장함을 그대로 전달해준다.
범인은 최후까지 권총을 두 손에 쥐고 바른손에는 사망한 후에도 둘째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걸고 권총을 힘 있게 쥐고 있었다며 여하간 범인은 처음에 발에 총을 맞았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것과 최후까지 총을 쥐고 죽은 것을 보면 매우 대담한 사람이라고 말하더라
<동아일보> 1923년 1월 23일, ‘세 군데 총을 맞고도 죽은 후에도 총을 쥐고 있어’
김상옥 외에 영화에서 이야기의 큰 비중을 차지한 황옥(송강호 역할)은 일본경찰이다.
1920년 경찰에 투신해 많은 독립운동 투사를 체포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22년에는 간부인 경부로 승진했다.
이러한 이력만으로 보면 친일파가 확실한 황옥은 의열단과 접촉하며 거사를 위해 자신의 짐 속에 폭탄을 숨겨 들어온다. 하지만 이 역시 독립운동가를 가장한 김두형이라는 인물에 의해 일본경찰에 발각되고, 결국 암살폭탄 투쟁을 도모했던 김시현 등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체포되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황옥은 재판에서 ‘자신은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고 일부러 김원봉 등에게 접근해 폭탄 반입을 돕는 척’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함께 거사를 준비했던 김시현 등 독립운동가들은 그에게 속았다며 분노한다(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다소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모호한 지점이 있는데, 훗날 의열단의 단장인 김원봉은 황옥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던 것이라고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옥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
"우리의 혁명운동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오. 혹시 이번의 우리 계획이 불행히 패를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황 공은 결코 우리가 이번에 취한 수단 방법에 관하여는 일체, 발설을 마오. 한번 드러나고 보면 같은 방책을 두 번 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김원봉이 경성으로 출발하는 황옥에게 한 말
결국 그가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밀정'을 가장한 '독립투사'였는지는 황옥, 자신만이 그 진실을 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얕은 역사지식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름모를 분들이 이 땅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할 일은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책의 시작에 적은 글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
저는 역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적용하기
우리나라의 역사서적을 1년에 2권 이상 읽기
*기억에 남는 문장
"폭발탄은 교통실 남편 창에 마저 폭발이 되었는데 유리창 세 개는 산산히 깨여져 땅 위에 마음대로 흩어졌으며 그 유리조각은 싸늘한 아침해에 반사가 되야 비참한 광채를 발하고 있으며 폭탄 조각에 맞은 게시판은 마치 벌통같이 숭얼숭얼 구멍이 뚫렸고 또 창 옆에 걸어두었던 순사복 한 벌도 좀이 먹은 듯이 구멍이 많이 뚫리었는데 이 모든 광경은 폭탄이 지나간 위험을 아직까지 말하고 있는 듯 하더라."
<동아일보> 1923년 1월 14일 15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 기사
"개성 송악산에서 흐르는 물은 만월대의 티끌을 씻어가도 선죽교의 피는 못 씻으며, 진주 남강에 흐르는 물은 촉석루 먼지는 씻어가도 의암에 서려 있는 논개의 이름은 못 씻는다."
- 만해 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