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입원하셨다.
핑계이겠지만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간병이랍시고 이틀을 비웠다.
어머니 곁에 있으면서 간혹 쓰레기통을 비우는 거나 간호사를 찾는 일 따위가
내가 할 수 있는 간병이다.
주변에 벌려 놓은 잡다한 일들과 마감기한이 있는 일들로 혼자 마음이 분주하다.
하지만 몸이 묶여 있으니 산란한 정신과 상관 없이 시간의 여분이 생겼다.
그저께 제목에 이끌려 급하게 구한 [필사의 기초 - 좋은 문장 잘 베껴 쓰는 법]- 조경국
을 꺼내 읽었다.
서문을 읽다 저자가 책방주인임을 알았다.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값을 치르듯 책 값을 급하게 지불하고 나온 꼴이 민망하다
저자에게 무례를 범한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매사 주의결핍이 한 두번 문제가 아니지만 이번의 경우는 참 못되먹은 행동이다.
‘필사를 주제로 글이 될까? 사전식 논문식의 글이 아닐까?’
책을 들며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글은 평소 정제되어 있는 품격의 글 그대로이다. 저자의 글쓰기를 접한 것은 페이스북이 고작이지만 나는 저자의 글에서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글이 품어내는 품격을 느꼈다. 비록 저자의 책은 첫번째이지만 그 글맛을 그대로 맛볼 수 있었다.
손글씨 대부분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대체되었다.
손글씨는 일상에서 애써 찾지 않으면 안되는 불편한 기능중 하나가 되었다.
굳이 자료로 남기기도 애매하고 찾기도 어렵다.
무엇이든 기억에 남길 만 한 혹은 메모할 것들은 스마트폰으로 얼른 찍거나 메모하면 그만이다.
긴 내용의 글은 키보드가 훨씬 편하고 빠르다.
쓴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성가신 일이 된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손글씨. 특히나 “필사"에 관심이 가게 된 것은 일상에서 생각의 시간과 공간을 찾고 싶은 까닭 때문이었다. 혹시나 “필사"에서 그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베껴 쓰는 일은 꽤 오래전부터 즐겨 했지만 예전에는 기계적인 놀이에 불과했다. 별것 아니라 여겼는데 하다 보니 단순한 재미 이상의 열예가 있다. 가까운 이들에게 주제넘게 권하곤 한다. 무엇보다 베껴 쓰기를 하고 있는 동안엔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가벼움에 잠시라도 납추를 얹는 느낌이다
저자의 “필사"에 관한 대목에서 나는 먼저 길을 찾은 구도자의 안내를 받는 듯 하였다.
내 빈한한 정신의 사유와 일상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설렌 마음을 느꼈다. 저자는 책에서 허균의 [한정록]의 한 대목중 독서하기 좋은 때를 소개하고 있다.
독서에는 독서하기 좋은 때가 있다. 그러므로 위나라 동우의 ‘삼여의 설'이 가장 일리가 있다. 그가 말하길 “밤은 낮의 여분이요, 비가 오는 날은 보통날의 여분이요, 겨울이란 한 해의 여분이다"
나는 이 말을 꼭, 반드시 그 여분의 시간이 생길 때 독서하라는 의미로 듣지 않는다. 무슨 조건이 되어야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의지박약. 게으른 자들의 서글픈 변명 뿐 이기 때문다.자주 내가 내뱉든 변명이다.
‘삼여의 설'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온다면 하루 5분이 되었던, 1시간이 되었던 필사의 순간이 그 시간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필사는 외로움을 견디고 굳은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책을 펴들고 마자 새로운 결심이 생겼다. 올해 성경 4독을 결심하시고 이미 2독을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이 결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성경을 필사하기로 말이다. 한 획, 한 줄, 한 장을 채우다 보면 그러다 글을 쓰다 멈추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독행-정약용의 독서의 방법 5가지 중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서법-할 수 있다면 내 빈한한 정신의 깊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정작 내 글씨는 기운도 없고 막상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ㅇ'이 맘에 안들고 받침글자 ‘ㄴ'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오와 열이 맞지 않은 글자가 ‘필사’에 임하는 내 각오를 주춤거리게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는 독서의 습관이 아직 여물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음을 알았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필사란 의미가 없습니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고 꾸준히 필사를 즐긴다면 언젠가는 글씨도 단정하게 형태를 갖춥니다. 습관이 될 때까진 시간과 마음을 내는 수밖에 없죠. 투자 없이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 아 쉬운 일은 없습니다.
글씨의 문제가 아니라 독서의 습관, 곧 내력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악필을 탓하기 전에 한 자 한자 정성들여 읽던 책을 필사해보니 글씨의 문제가 아니라 책과 벗하지 않은 무심한 시간과 무엇이던 빨리 하고자 한 조급함이 큰 문제임을 알았다.
손 안에 들어오는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맛깔스러운 필사의 인물과 문방구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기 까지 하다.
특히나 저자의 소지품인 문구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요즈음은 무슨 물건을 사게 될 때면 리뷰나 유투브 영상을 많이 본다. 흥미로운 영상을 보듯 글은 그렇게 흘러간다. 세삼 내가 소지하고 있는 만년필 세 자루와 노트 몇 권이 눈에 들어온다. 그 닥 새롭지도 않은 흥미롭지도 않은 물건들이 제법 근사해 보이고 친근해 보이는 까닭은 저자의 문구자랑(?)에 시셈이나 하듯 ‘나도 몇 자루 있어요' 티 내고 싶은 마음에서 일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1.5독을 하고 있다. 친한 친구를 새로 사귄듯 정겹게 손에 들고 있다. 무시로 읽히는 부담스럽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얇지 않다. 흥미로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작가의 필력이 시쳇말로 장난아니다.
장난 아닌 이 양반(?)의 사인을 어서 서둘러 받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