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의사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린의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수용소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고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들은 삶의 목표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반면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서 만나야 할 가족이나,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마이클 푼케의 소설 [레버넌트]를 읽으며 다시금 삶에 대한 인간의 집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200년 전 실제 인물 '휴 글래스'의 실화를 소설화 한 것이다.
휴 글래스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은 산 인물이다.
그는 한 때 화물선의 선장으로 일하며 카리브해를 누볐다.
그러다가 해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기도 하고, 탈출하다가 인디언에게 잡혀 그들과 같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글래스가 헨리대위가 이끄는 모피사냥단을 따라 미주리강 오르면서 시작된다.
당시 미주리강 주변에는 여러 인디어인 있었지만, 그 중에서 '아리카라 족'이라는 호전적인 족속이 백인들을 공격하며 미주리강을 막고 있었다.
헨리 대위는 아리카라족의 공격으로 단절된 교역을 회복하려 모피사냥꾼을 이끌고 미주리강을 거슬러 북쪽의 유니언 진지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냥꾼이었고, 인디언을 피해 사냥을 하며 식량과 모피를 조달하고 있었다.
혼자 사냥을 나갔던 글래스는 커다란 곰과 만나게 되고, 사냥 도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헨리 대위는 글래스가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라는 두 명을 글래스 곁에 남겨 둔다.
글래스가 죽으면 그를 묻어 준 뒤에 따라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열한 노름꾼이자 협잡꾼인 피츠제럴드는 오로지 글래스의 안슈타트라는 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인디언이 나타나자 글래스를 버려두고 그의 총과 소지품만을 약탈해 도망간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글래스가 죽어 잘 묻어주고 왔다고 거짓말을 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글래스는 오로지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광활한 숲 속을 기거나 걸으면서 그들을 쫓아간다.
글래스를 살아움직이게 한 것은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이다.
이 소설은 글래스의 생존의 모습과 복수에 대한 일념을 처절한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따.
불가피한 지연에 짜증이 났지만 그랠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회가 올 때까지 욕망을 단단히 다져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기어이 살아남아 배신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안기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날 글래스는 세 시간 이상을 엉금엉금 기어 이동했다. 2마일은 넘게 온 것 같았다. 그랜드 강의 기슭은 모래와 풀과 돌들로 덮여 있었다. 일어설 수만 있었다면 글래스는 발로 딛기 수월한 부분을 찾아 얕은 강을 마음껏 건너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글래스에게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속 북쪽 기슭을 따라 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돌들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어느새 양모 패드는 너널너덜 해어져 있었다. 패드 덕북에 찰과상은 면할 수 있었지만 타박상까지는 아니었다. 글래스의 무릎과 손바닥은 검푸른 멍자국들로 덮여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심한 통증이 느겼졋따. 왼 족 팔 근육에서는 경련이 일었고, 허기침에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예상한 대로 고기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당분간 풀로만 버터야 했다.(P106)
글래스는 뱀을 잡아 먹거나 늑대와 싸워 그들이 먹던 물소의 시체를 빼앗아 먹으며 치열하게 생명을 연장해 간다.
또한 계속해서 아라카라 족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살아남아 헨리 대위 일행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광할한 대자연을 묘사하고, 그 가운데 생존을 향해 발버둥치는 나약한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유니언진지를 나선 글래스는 엘로스톤 강을 따라 이동했다. 헨리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단 미주리 강 상류쪽은 왠지 아닐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엘로스톤 강뿐이었다. 닷새에 걸쳐 엘로스톤 강을 따라 오르자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경이로운 풍경이 펄쳐졌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빅혼 산이 그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엔느 구름이 몇 점 걸려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한양 눈이 햇빛을 머금어 눈부시게 빛났다.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나왔지만 그는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20년간 평원을 누벼온 글래스였지만 이런 황홀한 풍경은 처음이었다. (P225)
또한 이 소설을 통해 당시 미국의 서부개척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루이스와 클라크의 여정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탐험은 이 소설의 배경인 1820년대에서 얼마 전인 1804년에서 1806년까지 이루어진 탐험으로 미국 동부에서 로키 산맥을 넘어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까지 계속된 탐험이었다.
이 탐험으로 미국의 로키산맥 주변의 지역을 알 수 있고, 주변 여러 인디언들과 교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글래스의 여정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이 탐험의 여정과 겹치기도 한다.
소설의 끝에서 복수는 허망하게 끝난다.
그럴꺼면 굳이 왜 그렇게 고생을 하며 헨리 대위의 일행을 쫓았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복수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과연 글래스는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신을 살게 하고, 힘을 주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목표들은 막상 도달하고 나면 허상이거나 허무한 것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허무한 목표때문에 사람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픈하우스의 '버티고시리즈'를 좋아한다.
단순한 장르소설이 아니라, 역사와 심리에 관련된 소설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독성면에서는 [레버넌트]가 가장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잡는 순간부터 한 순간에 읽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