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대화’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펼쳐들고 보니 상대방을 말을 들어주는 ‘경청’에 대한 책이다. 순간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정작 나는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었는가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저마다 지내온 자신만의 시간과 상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00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면 100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듣지 않으면, 결국 상대를 오해하고 상황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경청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며, 내가 모르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현실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중략)..오로지 개인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 개개인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세상을 재구성한다. p.42
저자가 말한 대로 사람들은 자기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의 말도 나의 언어로 정리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책은 일곱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마지막 장에서는 비언어적인 경청까지 다룬다.
1장 우리는 모두 듣기 장애에 걸려 있다 ― 경청 학습의 네 단계
2장 경청은 잠자는 왕자를 깨운다 ― 경청의 기본적인 원칙
3장 경청은 거품의 상호 작용이다 ― 소통의 여러 양상
4장 경청하면 돌부처도 돌아본다 ― 신뢰를 형성하는 경청
5장 경청의 신, 침묵 ― 적극적 경청
6장 경청의 방해물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 경청의 방해 요인
7장 듣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우리를 위해 ― 비언어적 경청
개인적으로는 5장과 6장이 흥미로웠는데, 특히 6장의 ‘경청의 방해 요인’을 읽으면서는 나 역시 이런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말 중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다거나,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행동 말이다.
상대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행위도 흔히 경청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이다. 사소한 실수든 관점의 차이든 간에 논쟁이 그 부분에 집중되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멀어진다. p.145
저자는 경청의 중요성과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마지막 한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항상 귀담아들으십시오! p.219
*나에게 적용하기
상대방의 말에 끼어들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기
*기억에 남는 문장
경청의 방해 요소 대부분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자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p.41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부분의 행동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이 원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행동과 의도를 구분함으로써 타인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 p.48
상대와 깊고 진정한 관계를 맺으려면 자기 자신과도 깊고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갈등이 있으면 상대에게 모호하고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마련이어서, 결국 소통도 불안하고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p.82
우리의 충고는 자기중심적인 작은 세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위험할 정도로 주관적이다. p.161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충고나 조언보다 훨씬 효과적이면서도 간단한 방법이 있다. 시간을 할애해서 그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며, 그의 말을 틈틈이 재정리하는 것이다. p.163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별 것 아닙니다. 무시해 버리세요.”
“진정하세요......”
우리는 이런 말로 상대를 진정시키고 싶어 하지만, 이런 말들은 상대의 문제와 고통을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삶에서 가장 힘들 때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말을 듣는 셈이다. 우리는 이런 형식적이고 진부한 말에 담긴 무책임함과 어리석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이 잔혹하고 무익한 말을 상대에게 위로 삼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p.178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두 개 있다. (탈무드)
저자의 전작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재밌게 읽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피곤해지는 삶을 들여다보며 불필요한 생각들을 버리게 하더니, 이번 책에서는 소통의 중심이 되는 ‘경청’을 말한다. 요즘 흔하게 듣는 말이 소통인데, 정작 그 소통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고 생각이 오가는 정도로만 여겼는데, 우리가 말하는 소통의 핵심을 차지하는 게 경청이라는 걸 강조하는 저자의 말을 듣자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관계에서 소통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배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라고 한다. 그러니 그 소통도 자기중심에서 시작될 수밖에. 자기 가치와 우선순위가 들어 있는 ‘거품’ 같은 주관적인 우주 안에서 살다가, 타인과 만나 각자의 거품이 겹치며 상호 작용을 한다. 그때 결합하는 소통의 방식이 다양하며, 문제도 해법도 떠올려봐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려 애써야 하는데, 그 표현의 방식이 잘 듣는다는 거다. 듣기가 곧 소통이라는 것. 저자는 경청(소통)을 배우는 네 단계와 기본 원칙, 거품의 개념을 서두로 풀어놓고, 신뢰 관계의 형성과 듣기의 이해, 방법을 전한다. 듣기를 방해하는 요인을 제시하며 소통의 위기를 넘고, 실전 연습으로 듣기와 소통의 발전을 돕는다.
많은 노력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장 부담 없이 다가오는 건 ‘듣기를 여행처럼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사는 곳에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것은 반기지 않는다고 보면, 듣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기 말을 먼저 하고 싶은 게 여행과 닮지 않았을까. 내가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과 상대가 내 말을 듣는 것이 비슷한 흐름일 수 있다. 이런 비유로 새겨보니, 경청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알 듯하다. 상대도 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는 의미를 이렇게 배운다. 이 책으로 소통의 본질을 제대로 보면서, 그동안 어렵다고 하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관계의 발전과 회복을 기대해본다.
혹시 '늑대의 언어'를 들어보았는가. 물론 나는 외로운 야생의 늑대가 울부짖는 하울링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내짖는 '늑대의 언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난과 위협, 협박과 일방적인 명령이 가미된 막말이 바로 늑대의 언어다. 당신도 분명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님 정치인들의 입심을 겨루는 열띤 설전이나 거리에서 생중계되는 줌마들의 말다툼 같은 특수한 시점에서, 아님 이빨이 작렬하는 개그프로나 힙합 배틀 프로에서 '늑대의 언어'를 푸짐히 경험해보았다. 안 그런가. 설상가상으로 독하기 이를 데 없는 늑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독설가는 자기가 '소통의 고수'라는 대단히 잘못된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야말로 '불통의 달인'들이다.
정치인들이 파워게임에서 사용한 '늑대의 언어' 실례를 들어본다.
A: 당 대표로서 공천관리위원회가 당헌·당규의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거나 최고위원회에서 의결된 공천룰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데 대해 제어할 의무가 있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겠다.
B: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자꾸만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면 성질만 난다. 앞으로 그런 언행도 분명히 용납하지 않겠다.
A: 회의 그만합시다.
C: 당이 잘 돌아간다. 나라가 이 지경에 처했는데 지도부에서 계속 이런 모습 보이다니.
어떤가. 이것이 바로 '늑대의 언어'다. 경고와 분노, 불쾌감과 비꼼이 난무하지 않는가 말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하리라'. 그런 말이 있다. "소통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차원이다."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의식적 차원에서 침묵을 지킬 줄 안다면, 혹은 진심으로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런 '늑대의 언어'가 쏟아져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을까. 진정한 소통의 달인은 '기린의 언어'를 쓴다고 한다. 기린의 언어는 '관찰, 느낌, 필요, 부탁'의 화법 순서가 특색이다. 내가 언급한 '늑대의 언어'와 '기린의 언어'라는 이분법은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의 용어다. 늑대의 언어가 상대방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폭력적 소통법이라면, 기린의 언어는 상대방 마음에 공감과 연민을 표하는 비폭력적 소통법이다. 이런 비폭력적 소통인 기린의 언어의 기본자세가 바로 경청이다.
인성은 소통에서 시작되고, 소통은 바로 경청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의 소통전문가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이처럼 '경청의 힘'을 강조한다. 경청에 기반한 소통법이야말로 발신자와 수신자간의 신뢰관계인 '라포'를 잘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일단 상대방에 대한 '좋다'와 '나쁘다', '옳다'와 '틀리다'라는 가치판단식 평가를 피해야 한다. 그 어떠한 소통방식이든 소통에는 오직 '이로운 면'과 '제한적인 면'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우리가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인 작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뽀글이 '거품'에다 비유한다. 거품은 개인적인 가치관과 우선순위 및 관심사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대화나 소통은 결국 두 사람의 거품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상호작용의 유형을 크게 거품 양상, 동일화 양상, 메타 양상, 투영 양상 네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 사회는 일방적인 발신을 강조하는 과도한 자아지향적 세계에 살고 있기에, 보다 객관적인 관찰자 시점을 유지할 수 있는 메타 양상의 소통법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산다. 듣지 않는다는 건 적막한 홀로섬이나 산 속 깊이 들어가 혼자 수도를 하거나 하며 "나의 소리"만을 듣고 있거나 이 소리 마저도 거부하는 사람일 거다.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했거나 혹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다음 행위를 하기 위한 외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들어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이 들어본 적이 없기에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들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한 예라 할 수 있다.
듣는다는 것에 한 글자인 "잘" 이라는 부사를 붙이면 이 책의 제목이 된다. 잘 들어주기.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빠 엄마의 굳어진 생각의 틀로 판단하지 말고 "잘 듣고" 아이의 이야기를 판단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자어로 "경청"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잘 듣기"는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 그 필요성을 역설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는 그런 단어이며 행동 양식이다.
숱한 경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잘 듣는 행위는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서비스 업종이나 영업 업종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간의 관계, 직장 안에서의 동료간의 관계에서도 당연하게 서로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덕목이 되고 있다. 다양한 "영업관련 서적"이나 "자기계발" 관련 서적에서 다루는 다양한 관계개선의 지름길에 꼭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잘 들어주기, 경청"이다.
경청을 훈련하라고 한다. 행동방법까지도 알려준다. 시선을 마주치고, 자세도 상대를 향해주고, 끄덕임도 .... 다양한 훈련거리를 나열해놓고 이를 실천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들까지 나와있다. 그 만큼 듣기,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관계를 위해 "경청"을 훈련하라는 여타 책들관 달리 "너도 너의 말 들어주는 사람이 좋잖아? 그치?" "나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좋아" 라고 나를 기준으로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단순한 자기계발서적이 아닌 인지심리, 사회심리, 아동심리 등 전문 심리상담가의 입장에서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을 하나의 맥락을 유지해 풀어가고 있다. 다름아닌 "겸손"이라는 단어다.
책을 끝까지 읽어가며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최소한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나와 마주쳐 내게 그의 인생을 나누어주는 상대에 대한 감사하는 "겸손"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면 상대의 말을 잘 들을 수 밖에 없고, 상대가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책에서 발견한 재미난 것 한 가지, 책 중간 중간에 삽입한 그림들이 그것이다. 여자, 남자의 유화 그림을 책장을 넘기면서 보게 된다. 책을 읽는 처음엔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책의 중간 쯤 읽어가면서 저자가 그림을 삽입한 의도를 어렴풋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림은 모두 사람이 중심이었고, 혼자 혹은 두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둘이 함께 있는 그림에는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듣고 있는 모습이다. 절묘하게 챕터와 챕터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그림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참 어렵다. 겸손은 "훈련"으로 얻기에 너무도 어려운 덕목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인간개조가 되기 전엔 그저 들어주는 "척"만 하지 공감하거나 경청과는 거리가 먼 시간을 보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자꾸 나서서 상대의 말을 가로채 내 말을 , 내 목소리를 크게 높일 수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을 버릴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