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영화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지중해는 끝없이 푸르른 바다와 흰 돌담의 이미지인 남부 유럽 지중해로 한정되어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지중해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공존과 섞임, 갈등과 화해의 현장으로서 그 범위가 상당하다. 가히 문명의 바다라고 불리는 지중해의 무대에서 지금껏 수많은 영화들이 나왔으며 그중 일부는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걸작의 배경에 지중해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영화’의 정체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같은 지중해권의 [아멜리에](프랑스)와 [칠판](이란)의 경우 같은 지리적 위치에 속해 있으나, 전자는 전형적인 유럽 이미지의 영화이며, 후자는 영토 없이 부유하는 쿠르드족에 관한 영화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멜리에]가 오늘날 프랑스의 관점으로는 허상에 가까운 인종 청소를 감행한 나라로 비판을 받은 점과, [칠판]이 소수 민족 영화로서 국제관계에서 힘의 역학과 패권주의의 부산물로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서로 다른 두 영화의 간격이 좁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중해의 영화를 한자리에 모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저자는 이 책이 ‘지중해의 영화’라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 관한 하나의 가이드로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네필의 고향 프랑스 영화의 변모: 실존에서 공존으로
프랑스 영화는 지금껏 미학적인 관점에서 세계 영화사를 선도해왔다.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작가가 되어 모든 창조적 책임을 총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주창한 작가주의 이론의 누벨바그 감독 계보는 이제 시대를 거쳐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에 관한 고찰, 68혁명 당시의 젊은 세대의 반항을 대변했던 프랑스 영화가 현대에 와서는 이민자로 대변되는 타자에 대한 수용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프랑스 사회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증오], [바이 바이], [생선 쿠스쿠스], 그리고 최근 2014년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의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대사 위주의 문학적으로 진행되는 기법과 심리적 사실주의, 실존주의로 대변되는 프랑스 영화의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공존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벗어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다문화, 다인종 시대를 맞이한 현재의 프랑스 영화들을 통해 고민해볼 수 있다. 전 지구화 현상과 노동 이주 등의 물결 속에 디아스포라의 진입이 더 가속화될 것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한국에서도 한국 이주자 출신 또는 그 2세대 감독들의 작품을 보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삶과 영화 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이란-쿠르드, 팔레스타인 영화들
2012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의 수상기념 축하행사는 이란 정부가 막아서는 바람에 열리지 못했다. 이처럼 영화인에 대한 정부에 탄압이 심한 이란에서는 많은 영화감독들이 해외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책의 2부에서는 30년이나 정치적으로 구금되었던 시인의 분노가 담긴 본격적인 정치영화 [코뿔소의 계절]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시에 영상을 입혀낸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미학적 자유로움을 풀어내고 있으며, 기나긴 분쟁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영화 [천국을 향하여]와 [오마르]를 통해 국가와 정치라는 거대담론을 떠나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났을 때 싸워야 할 명분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는 진실을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가 설명하는 영화 보기란, 현실 속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상적 문제가 아닌 등장인물의 얼굴과 두 눈 사이의 미간으로 서서히 집요하게 파고드는 카메라의 클로즈업을 통한 섬세한 인물의 내면을 관객들로 하여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드러나는 성찰과 고민의 찰나를 집요하게 포착하면서 지중해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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