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 한순 시집
미리보기 공유하기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 한순 시집

한순 시집

리뷰 총점 9.0 (20건)
분야
에세이 시 > 시/평론
파일정보
EPUB(DRM) 12.92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9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슬픔 조련사의 담담한 위로 평점10점 | a*********9 | 2021.06.04 리뷰제목
나는 식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꽃을 봐도 무감각했다가 그 정반대의 내가 된 건 삼십 대 중반 무렵인 듯하다. 나도 아주 어릴 땐 그렇지 않았는데...   나는 타인은 물론이고 가족과도 잘 섞이지 않는 이방인의 삶을 오래 자청해왔다. 왜 그런지 가족만 생각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에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삶에선 나 자신 외엔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리뷰제목

 

나는 식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꽃을 봐도 무감각했다가 그 정반대의 내가 된 건 삼십 대 중반 무렵인 듯하다. 나도 아주 어릴 땐 그렇지 않았는데...

 

나는 타인은 물론이고 가족과도 잘 섞이지 않는 이방인의 삶을 오래 자청해왔다. 왜 그런지 가족만 생각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에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삶에선 나 자신 외엔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식물이든 그게 뭐든.

 

한순 시인은 내가 오래 잃고 살았던 위의 두 가지에 은은하게 촌철살인 하는 삶을 살았구나 싶다. 그래선지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여울지는 잔상으로 한동안 멍해 있었다. 생에 스민 잔잔한 슬픔에 비하면 고독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

 

언니의 제삿날은/그래,/꽃잎이 난분분 떨어지는 때/손바닥 위로/분홍색 꽃잎 하나 팔랑이며 내려앉으면/나는 그 꽃잎 그늘에 엷게 숨어들었지//봄마다 언니는 환한 분홍으로 피어나/다시 흩날리고 있을 뿐//꽃의 길목에 서 있으면 떠났던 것들은 돌아온다는 것을/봄마다 새로 배운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돌아온 꽃잎>)

 

위의 시를 읽던 나도 문득 딸들만 줄줄이 낳다가 막둥이 아들을 낳고 어화둥둥 하던 어느 날 그 아들을 낳은 지 불과 2년 만에 하늘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부모님의 슬픔이 떠올라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처럼 시 곳곳에서 부모님과 고인이 된 언니, 남편 등의 가족·친지를 향한 시인의 지극한 사랑이 전해졌는데, 그 안엔 짠한 안쓰러움, 비애 등의 감정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병원도, 서울 나들이도모두 거부하는 80대 노모를 하루라도 더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녀의 왼쪽을 노(<개망초 3>)리며 엄마 대신 아프고 싶어 한다거나 말을 지우고/탑 그림자를 밟고 발길을 옮긴 후 무겁게 젖어드는(<도선사>) 남편의 등이나 잠든 모습, “작은 의자에/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아버지의 노을>)에게서 느끼는 가엾음과 같은. 그런 감정들을 덤덤하게 할퀴는 데서 오는 묘한 슬픔이 휠씬 더 오래 지속된다는 걸 본서의 시들에서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 조련사인 시인은 슬픔을 슬퍼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생의 순간순간 마주치는 불안마저도 매혹적으로 조감鳥瞰한다. “봄의 불안 속을 걷노라면/아버지의 생이 천천히 지나가고/이복 삼촌의 미안한 웃음이 비치고/비 오는 날 새끼 낳는 돼지와/말을 주고받던 엄마가 보이고/아름다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지나간다는 것인지/이 매혹적인 불안(<연둣빛 불안>) 그 모든 그림자의 의미를 포용하고 톡톡히 치러냄으로써 자가 치료와 자기 위무慰撫를 하게 되자, 그녀는 마침내 부지불식간에 기습하는 슬픔을 노련하게 대처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슬픔을 잘 다룰 줄 아는 시인은 자주 꽃(나무)를 보고 그를 껴안는다. 계절의 변화를 통해 생사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순환하는 꽃에게서 사람,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봄이 오고 있어요//이 봄이 마지막인 듯/화사한, 꽃들//웃지 말아요//그 봄과 그 봄 사이/색은 바래고//승복을 입은 당신이 끌고 온/주름진 햇빛//늙은 봄이 오고 있어요//꽃을 슬퍼하는 건/내 오래된 지병//아버지 그림자로 핀 겹복사꽃/꿈속의 꿈을 꾸어요 (<겹꽃의 자락>)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희로애락도 어쩌면 자연이 선점한 건지 모른다. 시인은 그중에 슬픔을 인간과 자연의 대표 감정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감정의 우위에 있는 슬픔은 그 외의 감정들마저 끌어안는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도 비슷한 슬픔에게 기쁨, 화남, 즐거움은 그 자체로 어딘지 애처롭고 애틋해 보인다. 나이 먹어 늙고 병든 나를 나은 부모, 그 부모의 자식인 나의 자식들마저도 언젠가는 나이 들어 주름진 노인이 되는 삶의 순환을 시인은 슬픔으로 일갈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봄과 화사한 꽃에서조차 슬픔을 읽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시로 놓고 간 사람 또한 한순. 나는 그녀가 아프다, 나처럼.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종이책 향기가 낭자하다 평점10점 | t***o | 2017.05.08 리뷰제목
향기가 낭자하다 저렇게 농익을 때까지 한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비명도 지나가고 한숨도 지나가고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한숨이야 말할 것 없겠고 터질 것처럼 붉은 해 두 알 업보를 다 덮어줄 푸른 손바닥 때 된 것들의 만남 향기가
리뷰제목
향기가 낭자하다

저렇게 농익을 때까지
한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었던 것인가

비명도 지나가고
한숨도 지나가고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한숨이야 말할 것 없겠고

터질 것처럼 붉은 해 두 알
업보를 다 덮어줄 푸른 손바닥

때 된 것들의 만남
향기가 낭자하다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연잎 아래 감 두 알〉(전문)에서 -

* 시인의 시선은 놀랍습니다.
푸른 연잎에 떨어진 감 두 알을 보고
지난 시절의 비명과 한숨을 읽어냅니다.
인생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비명과 한숨이
수없이 교차합니다. 그 세월을 오래 견디면서
익을 만큼 익으면 저절로 내뿜는 향기가
사방에 가득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평점10점 | s******s | 2017.04.26 리뷰제목
그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자란 토란잎은 내 근심거리보다 얼굴이 더 커졌다 저 넓은 잎에 무거운 마음을 많이 기대었다 녹색의 이파리는 내 어두운 얼굴을 이리저리 굴리다 바닥에 쏟아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가
리뷰제목
그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내 한숨을 먹으며 자란 토란잎은
내 근심거리보다 얼굴이 더 커졌다
저 넓은 잎에 무거운 마음을 많이 기대었다
녹색의 이파리는 내 어두운 얼굴을
이리저리 굴리다
바닥에 쏟아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토란잎에게〉(전문)에서 -


* 얼마나 간절했으면
토란잎을 보며 가벼워졌다 했을까요.
그래요.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일도 공부도 신나고 즐겁게 웃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무거워지거든 토란잎을
바라보십시오. 꽃과 나무를 바라보세요.
그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질 것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 평점10점 | s******s | 2017.04.26 리뷰제목
아버지의 노을 낮게 해 지는 저녁 작은 의자에 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 얼마나 많은 신음을 석양으로 넘기셨나요?-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아버지의 노을〉(전문)에서 -* 아버지들은
리뷰제목
아버지의 노을

낮게 해 지는 저녁
작은 의자에
휘어진 못처럼 앉아 있던 아버지
얼마나 많은 신음을
석양으로 넘기셨나요?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아버지의 노을〉(전문)에서 -


* 아버지들은
때로 신음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울대 안으로 삼키고
또 삼키며 붉은 노을을 바라봅니다.
내일 다시 떠오를 붉은 태양을
미소로 기다립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종이책 하얀 새 평점10점 | i******1 | 2017.03.20 리뷰제목
하얀 새 저녁 밥상에 올려놓은 흰밥을 먹다가 문득 쳐다본 창밖 짙은 어둠이 밀려드는 산자락 앞으로 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저 흰색의 새가 왜 인간의 영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나 엄마, 아버지,속절없이 떠난 언
리뷰제목
하얀 새


저녁 밥상에 올려놓은
흰밥을 먹다가
문득 쳐다본 창밖
짙은 어둠이 밀려드는 산자락 앞으로
하얀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저 흰색의 새가
왜 인간의 영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나 엄마, 아버지,
속절없이 떠난 언니의 영혼이라고
믿는 저녁


- 한순의 시집《내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에 실린
              시〈하얀 새〉(전문)에서 -


* 옹달샘에도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단풍은 지고 벌거벗은 나무들이
거세지는 찬바람에 부딪치듯 떨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갈색 꿩 한 마리가 푸드득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날아갑니다. 아, 살아 있구나!
벌거벗은 나무들도, 갈색 꿩 한 마리도!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이들이 불현듯
생각나고, 속절없이 떠난 우리
아이들의 영혼도 보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한줄평 (1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6.0점 6.0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