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공부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소명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마치 수도자와 같은 삶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을 저명한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 연구자로 소개하면서, ‘공부’라는 주제를 소재로 삼아 <공부하는 삶>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공부하는 자세를 마치 수도사적인 삶이 전제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1920년에 저술된 책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신학에 토대를 둔 학문 분야라고 짐작된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지성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진지한 자세로 지성인다운 소명과 덕목을 바탕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이 저술된 1920년대 유럽에서의 ‘공부’란 아마도 전문 학자를 지칭한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기독교적 바탕으로 신학을 연구하는 자신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하여 1장과 2장에서는 각각 ‘지성인의 소명’과 ‘지성인의 덕목’을 제목으로 내세워, 학자는 곧 지성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아퀴나스의 전언을 근거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결코 기도를 포기하지 마라’라는 조언을 하고, 나아가 ‘모든 공부는 영원에 대한 공부다’라는 등의 기독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처럼 공부하는 이를 ‘지성인’이라고 지칭하면서 그 소명과 덕목에 대해서 논하고, 이어지는 3장에서 ‘삶의 구성’이라는 제목으로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일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세히 논하고 있다. 물론 그 전제는 청교도적인 삶의 자세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장에서는 ‘공부를 하는 시간’이라는 제하에, 시간 활용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16가지 조언’을 바탕으로 삼아, 그 내용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공부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공부의 영역’이라는 제목의 5장에서는, 일단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전공 분야를 정해서 깊이 탐구하라는 조언이 제시되고 있다. 아퀴나스의 삶을 본받고자 하여 이른바 ‘토마스주의’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 역시 공부를 하는데 신학적 태도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더욱이 공부를 하면 ‘필연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자신의 전공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쏟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어지는 6장에서는 ‘공부하는 정신’이라는 주제로, 공부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중심 내용은 7장 ‘공부의 실천’에 있다고 파악된다. 그 내용을 ‘읽기’와 ‘기억하기’ 그리고 ‘노트하기’로 나누고, 이들이 공부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특히 ‘읽기’에서는 처음에는 가급적 폭넓은 독서로 시작하지만, 공부를 지속하면서 자신의 전공 분야를 정한 후에는 그에 대해 깊이 있는 독서를 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자신이 읽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하며, 그 방법으로 메모를 해서 그 내용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잘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마도 당시에는 책과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것이 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물론 지금도 다양한 정보에 대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은 학자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습관이 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8장에서는 쓰기를 비롯하여 ‘생산적인 작업’과 관련된 다양한 항목들을 제시하고, 마지막 9장에서는 ‘공부와 품성’의 연관성을 논하고 있다. 대체로 신학을 전공하는 저자의 역할로 인해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 특정 종교와 관련된 수도자적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도드라진 특징이다. 하지만 그러한 요인들을 참고하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공부의 방법에 대한 조언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대학원생들이나 논문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지침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꼭 학자가 아니더라도, <공부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의 내용들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소개하는 내용을 어떻게 자기화해서 실천하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 예스블로그 이벤트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에 대한 리뷰.
평범한 이들은 꾸준히 공부화면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간이 두 시간에서 여섯 시간이라고 어림한다. 핵심은 시간이 얼마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시간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충분하다. 그는 시간을 늘리지는 못하지만 시간의 가치를 높일 수는 있다. 무엇보다 그는 시간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p.146
적극적인 정신은 끊임없이 진리를 찾는다. 매 순간 정신이 찾는 진리는 정신이 헌신을 맹세한 완전한 진리의 표상이다. 지성은 아이와 같아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왜’라고 묻는다. 훌륭한 교육자가 이 멈추지 않는 질문 세례를 외면하던가? 발생 단계에 있는 정신적 유기체에 양분을 공급하는 이 생생한 호기심을 그가 기회로 삼지 않고 내버려두던가? 우리의 영혼은 늙지 않고 계속해서 자란다. p.181
이퀴나스는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다. 첫째, 기억하려는 것을 정돈하라. 둘째, 기억하려는 것에 깊이 몰두하라. 셋째, 기억하려는 것을 자주 생각하라. 넷째, 기억한 것을 회상할 때는 나머지를 떠올리게 해줄 기억 사슬의 한쪽 끝을 잡아라. 아퀴나스는 키케로의 선례를 따라서 지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과 연결하면 기억에 이롭다고 덧붙인다. p.261
도서관에서 수업준비용으로 빌려 읽었다가....북받치는 감동에 '소장해야겠다'로 바뀐 책. 때마침 북클러버활동으로 쌓인 포인트가 있어 얼른 구매했다.
[공부하는 삶] 제목에서 뭔가 거북스러움을 느낄수도 있고 반대로 기꺼운 맘으로 책장을 열수도 있겠다. 공부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중의미를 담기 보다 시험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등의 목표지향을 떠올리기에 뭔가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데 적절한 단어찾기가 쉽지 않았나보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삶이라니~ 전혀 예상과 다를 내용이라고 희망을 주기에는 책은 좀 혹독한 맛이 있다. 작가도....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계신 신부이자 철학과 교수이신 만큼 글 전반에 경건과 절제와 인내라는 덕목을 바탕한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종교적 입장을 배제하더라도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큼 깊고 감동있다. 나를 이루는 성격과 재능 환경을 한데 모아 나를 더욱 고취시키며 나아가는 엄중한 숙명적 태도를 일깨우기 때문.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온전히 내게 집중할 의지가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삶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긴채인가 아니면 유의미한 시간을 가지고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한 시간을 살려 하는가. 공부하려고 하는 목적과 이유는 지적소명을 가졌기 때문인데 이는,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인간이 쌓아온 지혜를 영원히 보존하는 일, 시대의 유산을 모으는 일, 오늘날을 위해 정신의 규칙을 체계화하는 일, 실재와 원인을 발견하는 일, 사람들의 방황하는 눈길을 제1원인으로 향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지고한 목적으로 향하게 하는 일, 필요하다면 꺼져가는 불길을 되살리는 일, 진리와 선을 선전하는 일에 소박하게나마 동참하고 싶은가? 35쪽
지성인을 향한 촉구는 대단히 명료하고 설득력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혜와 지식의 영역을 누군가는 인내로서 경주했으며 그 맡은 바 소임과 책무의 짐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는 건 역사의 산물을 누리며 사는 모두가 알테다. 그렇다면 현재는 그러한 소임과 책무가 없는가? 살아온 짧은 매일에 나만의 공부-개인이되 사회인이며 지성의 한 줄기 혜택으로 사는 자로서의 공부-를 해왔는가에 답을 한다면 부끄럽다. 인내의 경주를 다하지 못함은 다름아닌 무한하리라 믿는 나태한 나. 시간의 유한함을 잊는 어리석은 나. 그런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게 만든다. 혹독한 부분이란 다름아닌 이런 부분이다. 문장으로 채찍에 맞는 기분이 들 만큼. 아프지만 이유있는 아픔이라 손에서 떨칠 수 없는 글과 글. 끝나지 않는 떨림과 성찰의 반복.
나는 살아있기에 단순히 반사된 상이 아니며, 살면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고무하는 저자를 닮은 사유가 아니라 나 자신을 닮은 사유를 내놓아야 한다! 246쪽
저자를 닮은 사유가 아닌 나만의 사유란 그리 멀지 않다. 책을 읽고 난 나만의 느낌과 소감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사유일것이고 또 이렇게 리뷰로 남기는 행위는 생각의 틀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읽는 이를 반영한 쓰기이면서 나를 비추는데 가감없으니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반복된 사유와 쓰기는 결국 결실을 맺는다. 아 쓰디쓰다만 나를 닮은 결실의 배경은 결국 인내라는 거대하며 조용한 바다를 거치며 생성된다. 가슴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책읽기와 글쓰기, 고립이 아닌 고독, 삶의 구성과 공부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 그중 고립이 아닌 고독을 일부러 가져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공부가 홀로 묵묵히 견뎌야 성취가능하기때문이요 그뿐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읽는 이라면 지극히 공감될수밖에. 필수불가결한 고독. 그 시간을 통한 사유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관계를 오히려 더 내밀하게 하고 만족하게 한다. 풍성한 내면의 성찰은 고독의 시간으로 채우되 관계를 통해 성찰의 반영을 누리니 이 두 밀접한 관계를 통해 결국 성숙에 도달해 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독한 나를 그대로 둘줄 아는 건강한 내면유지가 필요하다. 그걸 돕는 것이 독서일테고 나로 계속 나자신이 되도록 달릴 수 있는 힘은 이러한 책을 통해 비춰지는 희망이 별처럼 반짝이기 때문이겠지.
2024년을 마주한지 한달이 다 되어간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고스란히 답할 책으로 공부하는 삶, 이 한 권을 추천해본다.
외적인 평가.
저는 책 종이냄새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책에는 종이 냄새 말고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거나 화학적인 잉크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래된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그리고 재생 용지로 만든 책이라 종이질이 많이 떨어지네요. 그럼에도 품질대비 가격은 다른 책과 비교해서 비쌉니다. 읽을 때마다 기름 냄새가 풍기니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내적인 평가
책의 내용은 좋습니다. 일반인이나 학생들 구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설명했으니까요. 이 책은 내용에 깊이가 있어 한 두 번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천천히 여러 번 읽을수록 가치를 드러나는 책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 용어나 기타 어려운 말이 있어서 한 번에 쉽게 이해가 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번역하시는 분이 좀 더 쉬운 용어로 풀어 줬다면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공부하는 삶』. ≪신학대전≫으로 가톨릭 신앙을 집대성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구한 권위자인 프랑스의 수도사 세르티앙주의 저서로, 1920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래 현재까지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이다. 그는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것인지, 어떻게 읽고 쓸 것인지, 어떻게 시간을 규율할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규율할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지성인을 ‘지적인 일’이라는 소명에 따라 ‘성별’된 존재, 신성한 일에 쓰이도록 선택받은 존재라고 본다. 또한 진정으로 지적인 삶이라면 반드시 ‘정신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즉 지성인에게 공부는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공부를 위해 삶 자체를 규율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맛보고자 하는 예비 지성인에게 이 책은 곁에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며 공부하고 하는 마음을 북돋아주는 잠언서가 되어준다.
세르티양주는 지성인을 ‘지적인 일’이라는 소명에 따라 ‘성별’된 존재, 신성한 일에 쓰이도록 선택받은 존재라고 본다. 세르티양주는 “지적 소명은 다른 모든 소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능과 능력에, 이성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종의 내적 충동에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성인에게 공부는 삶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농민이 농사일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조율하듯이 지성인은 공부를 위해 삶 자체를 규율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하여 그가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먹고사는 일을 도외시하고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라. 아니, 고요한 확실성 안에서 편히 쉬어라.”
그러나 저자가 “공부하는 사람들은 궁핍과 오랜 훈련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더러는 인간을 넘어서는 끈기를 보여야 한다”라고 말하듯 공부하는 삶은 무척이나 고된 삶이기도 할 것이다. 역자가 정리한 것처럼 소명을 따르는 공부는 명성이나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외적 성공을 추구하는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는 무관한 절대적 척도에 따라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공부다.
이렇듯 공부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맛보고자 하는 예비 지성인에게 이 책은 곁에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며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북돋아주는 잠언서이다. 이 책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실제로 자신의 삶에 적용한 한 지성인의 글을 아래 전재한다. 『공부하는 삶』의 영문판 앞에 실린 조지타운대학교 정치철학 담당 교수 제임스 샬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