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하) / 찰스 디킨스 / 열린책들]
"그 고통이 옛날 네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하라는 가르침을 내게 준 지금 말이야. 나는 휘어지고 부러졌어. 하지만 내 모습이 더 훌륭한 모습으로 바뀌었기를 바라. 부디 옛날처럼 사려 깊고 착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 줘. 그리고 우리는 친구라고 말해 줘."
-본문 중-
하권에서는 핍이 런던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신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핍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상속자가 된다는 조건이 있어서 그럴테지..친구 하버트와 생활을 하면서 빚이 늘어나고 불필요한 모임에 참석을 하면서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편으론 에스텔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이 마음이 미스 해비셤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럽고 중요한 것은 에스텔라는 해비셤의 이름을 내세우며 핍을 이용하고 있다. 음, 에스텔라의 진심을 모르겠고 성장하면서 아름다워지지만 내면은 점점 삐뚤어지는 에스텔라는 핍이 좋지 않다고 말한 남자를 유혹하고 서서히 불행의 길로 가게 된다. 아 정말 에스텔라의 어리석음이 보이는데도 그녀는 양어머니인 미스 해비셤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려고 하고, 핍은 그녀를 만류하지만 소용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운명들이다.
여기에 핍의 후견인이 누구인지 드러나면서 핍의 인생 역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어릴 적 묘지에서 우연히 만났던 죄수가 바로 핍의 후견이었던 것. 그러나 단순히 밝혀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죄수의 상황으로 절대 영국으로 와서는 안되었는데 몰래 입국을 했기에 핍은 그와 함께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다. 이렇게 핍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무의미하게 살았던 세월을 보상하듯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깨닫게 된다. 또한, 누나의 죽음, 미스 해비셤과 관련된 인물들, 에스텔라의 탄생 등 궁금했던 부분들이 서서히 진실은 핍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신시가 되는 것 이건 핍의 목표였고, 운좋게 자신에게 신사가 될 기회가 왔었다. 그러나 부유한 환경에서는 방탕하기 바빴는데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상황에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힘들 때 떠오른 사람은 조와 비디였다. 또한, 핍이 모든 것을 잃고 채무에 시달릴 때 조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빚을 갚아주었다. 조는 핍이 그렇게 바라던 '신사'의 모습이다. 대장장이였고, 배우지 못했기에 세상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지만 진정 조는 신사였다. 소설은 부유한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겉모습으로 판단한 인간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신사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벌었던 프로비스(핍의 진짜 후견인)의 삶도 안타까웠지만 마지막 핍이 그에게 보인 행동으로 숨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때 핍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핍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을 할지 궁금했었다. 후견인은 당연히 미스 해비셤으로 생각을 했었지만 뜻밖의 인물이었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자신만의 신사를 만들고 싶었다지만 진정 이 마음이었을까?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야했기에 복수심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겐 신사가 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핍을 향한 그 마음은 애정이 되었다. 핍은 프로비스를 통해 살아가는 것과 배려를 배웠다. '위대한 유산' 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으로 물려주는 것 또한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위 도서는 네이버독서카페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이 책의 제목이 그냥 유산도 아니고 '위대한' 유산인지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물론 한 인간이 되기 위해 주인공 핍이 하듯 재산을 그 정도 탕진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그 정도 탕진하고도 인생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핍이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는 데는 물질적인 유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를 알게 모르게 이용했던 사람, 그가 가난한 대장장이 도제에서 부를 쥐게 되었을 때 변한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인간적인 본성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곁을 지켜준 사람 등의 모습에서 그는 삶을 깨닫고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나 핍의 전철을 밟는다고 해서 핍처럼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핍의 본성에 들어있는 것이 갈고 닦여져 빛이 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려운 주제다.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 미스 해비셤이 기괴함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이 인물은 한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세상에 대해 오기부리며 살아오다 핍의 영향으로 자신이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것인지 한순간에 깨닫게 된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라는 처절한 절규는 가슴 아프게 한다. 미스 해비셤은 몰려오는 회한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데 핍이 구하지만 중상으로 병중에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미스 해비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딱히 악하지도, 세상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는지 모르는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다. 양녀 에스텔라가 냉정하고 오만하게 길러져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핍이 미스 해비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들은 이야기의 마지막 제자리로 돌아온다. 미스 해비셤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삶을 망쳐온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던지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시간을 허비하고 세상에 오기부리고 박제가 되어 살아오다 겨우 반성을 하고 후회하던 날 어리석게도 몸에 불을 붙이는 가련한 여자다.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상처받고, 슬프고, 어찌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라도 자신의 삶을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
아름다운 인성의 소유자로 핍을 돕고 진정한 친구로 남는 두 사람 조와 비디가 있다. 조는 핍의 매형이고, 비디는 핍에게 글을 가르쳐 준 소녀였다. 그리고 핍의 속마음을 들어주던 소녀다. 핍이 자신의 허영과 잘못된 가치관을 반성하고 비디에게 청혼하겠다는 결심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날, 핍의 매형이었던(누나는 죽었다.) 조와 비디의 결혼식 날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만, 설마설마했다.' 핍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거론되지 않지만, 물론 당황하지만 바로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핍이 이제 제자리를 찾았는데 비디가 결혼을 하다니!' 핍은 그로부터 11년이나 지난 후 에스텔라와 이루어진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떨어져 보이지만 서로 얽혀있고 그 관계를 모두 밝혀내는 것은 핍이다. 이런 구성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핍이 진정한 신사라는 한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주제만큼 무겁지 않고 해학적 문체로 묘사되고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들과 핍이 겪는 사건들이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히면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좀더 일찍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랬다면 허튼짓들을 좀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갑작스러운 후원자의 호의로 막대한 유산을 거머쥐게 된 핍. 신사가 되는 교육을 받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갑자기 부유해진 경제상황에 정신 못차리고 흥청망청 사치의 길로 들어선다. 빚은 점점 늘어나고 설상가상으로 누나인 조 가저리 부인은 세상을 떴다. 앞으로 조와 비디를 잘 보살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만 그의 그런 다짐이 부질없다는 것을, 조와 비디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았을까. 미스 해비셤이 후원자이고 사랑하는 에스텔라의 짝으로 자신을 점찍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핍 앞에 드러난 진짜 후원자의 정체!
이 후원자가 등장하면서 핍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 덕분에 이 자리에 와 있고, 사실은 자신이 어떤 그릇의 사람인지 깨달은 핍은 이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에 성장소설로서의 요소가 엿보인다. 배은망덕하고 흥청망청 돈을 쓰며 향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핍이 자신이 받은 진정한 유산은 돈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짜 '신사'로 거듭나는 것.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용서와 이해, 화해의 순간들이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는, 독자로 하여금 이 [위대한 유산]에서 출생의 비밀, 사랑과 우정, 성공과 야망, 범죄 등 흥미로운 소재 속에서 핍의 성장을 지켜보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인생 속에서 참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신사 혹은 숙녀로 살아가는 길인지 가이드를 제시하는 듯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핍의 행보는 뜻깊었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비디에 대한 감정이었다. 미스 해비셤의 도구로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에스텔라를 여전히 잊지 못하면서, 이제 자신은 새사람으로 거듭났으니 비디와 결혼하여 겸손한 삶을 살아보리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인 것인가! 비디가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비디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핍의 오만함을 보면서 아직 더 커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핍의 인생에 일어났던 한 편의 영화같은 기적. 그 기적을 통해 우리 각자가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필요에 따라 '과거'를 잊기도, 잊어서는 안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미스 해비셤처럼 과거의 그늘에 사로잡혀 현재와 미래까지 포기하지도 말고, 핍처럼 바로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것들로 인해 소중한 과거를 잊어서도 안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존재들이지만,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멋진 작품이다. 2권을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작가가 '핍'에게 심어놓은 짐작이라는 오해 속을 무한히 함께 떠내려오는 시간도 핍과 함께 보냈던 작품이다. 갑작스러운 인물들의 등장과 알 수 없는 편지의 발신자에 대한 의심과 불안 속에 '핍'을 따라가보는 시간, 쉼 없이 새로운 사건들이 등장하면서 풀려가기 시작하는 의문들을 하권에서 만나게 된다.
상권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하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연결고리들은 꽤 촘촘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연결고리들 덕분에 하나씩 구도를 잡아갈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인간이 가진 유약함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보게 한다. 인간이 유지하고 있는 사회구조의 움직이는 동력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들을 작가는 여러 인물들과 가족들을 통해서도 돋보기처럼 들여다보게 한다. 핍을 교육해 준 선생의 가족이 갖고 있는 굴러다니는 가족들의 모습들과 선생의 아내가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결혼에 대한 조급한 갈망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게 한다. 선생의 아들의 결혼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하권에서 목도하게 한다.
사랑하고 흠모하며 아껴주면서 기다리는 시간들이 연인들을 통해서 보여진다. 하지만 유독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여인이 보인다. 그녀의 결혼은 행복할까? 그녀가 성장한 저택에서 '핍'과 우연히 마주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에게서 듣는 새로운 모습과 대화들.
어린시절부터 어떻게 양육되느냐에 따라서 어른 성인으로 성장하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도 만나게 된다. 제대로 양육을 받았다면 범죄의 길로 방향을 잡지 않았을 어린아이들을 감옥과 재판과 사형제도를 작품을 통해서 보게 한다. 그 아이들이 점차 범죄의 길, 어둠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음을 인물들을 통해서, 사건들을 통해서 보게 한다.
의문스러웠던 저택의 비밀들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 저택에서 성장한 양녀의 부모에 대한 비밀들도 놀라움으로 만나게 한다. 핍이 성장한 시골마을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모습도 작품은 다룬다. 핍의 대리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삶의 태도는 많은 상징적인 모습이 된다. 그 직원의 결혼하는 모습들과 핍의 친구인 허버트의 결혼과 비디의 결혼까지도 차분히 떠올려보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조와 비디이다. 상권에서 만났던 조와 비디의 모습은 하권에서도 한결같고 지혜롭다. 그들의 모습은 삶의 지표가 되며 조가 가진 성실함과 바른 모습은 지금 내 곁에 있는 한 사람과도 같은 사람이었기에 고마움을 떠올리면서 작품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조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그를 한없이 신뢰하고... 373쪽
조가 핍에게 친구라는 호칭과 신사분이라는 호칭을 함께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호칭이 가지는 경계선은 무엇일까? 진정한 신사란 무엇일까? 성실하게 대장간에서 땀을 흘리고 노동하는 조의 모습과 아내의 부족한 성품까지도 안아주며 유지하고 있는 결혼생활과 어린 핍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크게 감동받는 작품이 된다.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을 유지하고 사교모임을 즐기며 사치와 절재하지 못하는 탐욕의 지름길을 핍은 경험했고 좌절했고 후회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뿐이다. 거대한 유산이 약속된 약속된 핍에게 벋어있는 길은 넓고 탄탄한 길이었을까? 그것이 진정한 신사였을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되묻고 무엇을 삶 속에서 만나고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재미있는 탄탄한 작품으로 우리들에게 질문하는 소설이 된다.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기대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다. 오만이 가지고 있는 위태로운 모습들을 핍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핍에게는 평탄한 미래가 보장되었을까? 책표지 디자인의 그림이 꽤 의미심장하게 디자인된 책이다. 2권의 책표지 디자인이 가진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