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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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건축

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 건축 바로 알기

리뷰 총점 7.8 (9건)
분야
예술 대중문화 >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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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임석재, 펜이라는 이름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다. 평점9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d | 2008.10.01 리뷰제목
임석재. 건축 분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쓰고 있는, 건축이 전문분야가 아닌 사람도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의 책 '서양 건축사' 1~5권은 언제나 나의 지름신을 자극하고, '건축 우리의 자화상'은 말 그대로 건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번 책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일반인들에게는 건축의 입문서이며,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촌철
리뷰제목

 임석재. 건축 분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쓰고 있는, 건축이 전문분야가 아닌 사람도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의 책 '서양 건축사' 1~5권은 언제나 나의 지름신을 자극하고, '건축 우리의 자화상'은 말 그대로 건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번 책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일반인들에게는 건축의 입문서이며,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촌철살인의 훈계이다.

 

 글의 구성은 이렇다.

제 1장 건축가, 문화와 도시의 창조자

제 2장 건축, 새로움을 창조하는 공간 예술

제 3장 역사와 철학 위에 짓는 집

제 4장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충실한 집

제 5장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축가의 양심.

 

 1장에서는 우리나라 건축과 건축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부분은 건축가가 꿈인 학생이라면 꼭 한번 즈음 읽어볼만하다.

 2장에서는 건축의 특성(예술+인문학+공학의 융합)과 건축과 미술의 비교, 서양 건축사의 흐름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건축의 전반적 이해를 돕고 있다.

 3장에서는 우리나라의 건축사를 돌아보면서 100년간의 한국 건축사의 문제점을 짚어가고 있다.

 4장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건축의 문제점들(상업주의, 표절 등)을 하나도 숨김없이 자신이 건축을 전공했음을 잊은 듯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5장, 우리나라 건축의 나아가야할 길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자체가 추구해야할 미래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끝으로 더 읽어볼 책들까지 자상하게 소개하면서 글은 마친다.

 

서양 건축, 우리나라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문제점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임석재의 다른 어떤 책들보다 시사적이며, 임석재의 목소리가 뚜렷히 담긴 책이다. 오랜만에 건축에 대해 좋은 책이 나왔다.

 

TIPS: 건축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학생에서부터 건축에 몸 담고 있는 사람까지 누구나 한번은 읽어보고 깊게 고민해 볼만한 책이다.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댓글 0
종이책 교양으로 읽는 건축(임석재)-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 건축 바로알기 평점9점 | x*****l | 2018.05.28 리뷰제목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읽었던 책 이야기를 잠시나마 다시 회상하고자 쓰는 글이다.이 분을 직접뵌적은 없지만 건축관련도서에 흥미를 갖게 된 최초의 책이 교수님 책이었기 때문에고등학교때 기록해두었던 독서기록파일엔 유독 이 분 책이 자주 등장한다.1) 이 책에서 말하는 건축이란 "현대 사회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 대한 찬반의 양면적 해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근대화가 가져
리뷰제목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읽었던 책 이야기를 잠시나마 다시 회상하고자 쓰는 글이다.

이 분을 직접뵌적은 없지만 건축관련도서에 흥미를 갖게 된 최초의 책이 교수님 책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때 기록해두었던 독서기록파일엔 유독 이 분 책이 자주 등장한다.


1) 이 책에서 말하는 건축이란

 "현대 사회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 대한 찬반의 양면적 해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근대화가 가져온 선물이면서,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건축가는 어떤 사명을 가져야하는지, 사적인 창작을 하면서도 얼마나 공적인 책임감을 가져야하는지

사람과 테크놀로지 사이에서 감성과 지성을 어떻게 발휘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2) 건축가가 책임감을 지녀야하는 이유

 → 물리적 스케일이 큰 매체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수의 불특정 다수에게 늘 노출되어있다뿐만 아니라 한번 지어놓으면 몇 백년은 간다




3) 건축가는 

    → 건축가는 직능인이자 예술가인 동시에 문명비평가이다세상을 바른길로 이끌수 있어야 한다. 

     → 미술적 섬세함을 요구한다:간접경험의 능력


+) 사실 건축에 대한 진로를 고민할 때에 건축가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그게 정말 나와 맞는지. 내가 지니고 있는 능력인지 항상 불안했었다. 

요즘도 각종 입시사이트엔 <어떻게 그 장래희망이 나와 맞을지 안맞을지 알 수 있냐?>고 하는데 사실은 그건 노력도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조금만 노력해서,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하다 못해 인터넷서점이던, 여러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건축가들이 "공통점으로 말하는" 어떤 능력들이 있다. 

곰곰히 내가 정말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일인지(★중요★) 생각해보면 

스스로 금세 답을 찾을수 있는 데도 왜 아무것도 하지않고 불평만하고 있는지...가끔 의문스럽다


고등학교시절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확신을 얻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그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주변지인들이 건축가의 진로를 고민하는 사이에서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가겠다고 외칠수 있는게 아닐까?




4) 한국식 박물관 도시를 꿈꾸다

 * 보존을 통한 미래로의 발전

   → 우리의 일상조형환경을 이루는 모든 것이 보존의 대상

     (마을장식능선구멍가게재래시장개천등)

   → 물론 우리는 한국전쟁과 조국근대화라는 우리만의 현대사적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선진국들과 집겁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밥줄인줄알고 여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 전통에서 배우고익숙함에 낯섬을 첨가하라

      *한옥은 분명히 새집증후군과 냉난방의 문제점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다나무창호지기와같은 자연재료는 잘 알려진 바와같이 인체의 생체리듬과 일체가 되며 열조절 능력도 뛰어나다그러나 좀 부족하다왜냐하면 한옥속의 쟤료를 떼와서 아무리 좋다고 한들 한옥은 한옥 그 자체로 좋은것이기 때문이다




+) 요지: 전통 건축을 하겠다고 한옥에서 쓰이는 재료만 따로 가져와서 아무리 조합을 한들 전통을 계승한 건축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전통에서의 근본을 따와서 그 원리를 활용한다면 재료가 현대식이라도 전통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닫는글

임석재 교수님의 저서는 어째서인지 보통 다른 건축도서보다 조금 더 날카롭다. 본인의 생각이 짙게 배여있고, 

자칫하면 독자들이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할 가능성(그대로 받아 들일 가능성)이 있다.


초반에 <건축,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책을 읽었을땐 우리나라의 건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등등의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고등학교 시절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다시 말하자면 살짝 멘탈이 깨졌었다)


만약 이분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작가분은 원래 비판적 성향이 짙은 분이구나"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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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축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 문명비평서 평점8점 | YES마니아 : 골드 d****o | 2016.07.30 리뷰제목
임석재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거의 문명 비평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우선 지금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다면서 건축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고통은 좁게는 후기 자본주의로 세상은 넘어갔는데 건설업 중심의 성기 자본주의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는 충돌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을 확장해서 보면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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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거의 문명 비평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우선 지금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다면서 건축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고통은 좁게는 후기 자본주의로 세상은 넘어갔는데 건설업 중심의 성기 자본주의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오는 충돌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을 확장해서 보면 일제강점기에서 압축 근대화로 이어지는 20세기 한국 현대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건축이 그대로 짊어진 채 한 발짝도 못 벗어난 데에서 오는 혼란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은 건축이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과 한국 현대사회에 건축이 끼친 그림자를 하나로 묶여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현실의 관점에서 건축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현실이란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물질 숭배로 심하게 전도된 위기상태이고, 그 한가운데에 부동산 투기가 있으며, 부동산 투기의 한가운데에는 다시 건축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인문학과 예술과 공학의 종합 장르인 건축은 순수학문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로서의 건축은 돈 욕심을 부풀리는 사회적 메커니즘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이런 메커니즘은 학문과 예술로서의 건축을 오염시키고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건축 활동을 대형 설계사무소, 부동산 개발업자, 건설회사의 삼각편대가 독점하게 되면서 건축계마저 부동산 개발 이익에 의존해서 먹고 살게 되었다고 개탄한다. 즉, 우리의 건축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불러주는 재테크이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적 목적을 위해서 건물이나 집을 짓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는 말이다. 이 메커니즘을 끊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는 소득은 늘어나겠지만 점점 더 살기 힘들고 삭막하게 되어갈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이란 단순히 집을 짓는 행위 이상이라 말한다. 육하원칙에 따라 삶의 형식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지극한 정성으로 감싸주는 작업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조형 환경 전반을 책임지는 수준 높은 문명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육하원칙을 하나씩 따져보고 있다. 우선 누가 짓는가의 문제다. 집은 집에 대한 건전한 가치관과 일정 수준 이상의 자연스러움을 가진 건축주와 건축가가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현실은 시행사와 시공사가 그 자리를 접수하고 있으며, 그들은 결국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집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언제 짓는가의 문제를 살펴보면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와 사회 단위의 정신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는 시기에 집을 지을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극에 치우친 시대에 지은 집은 절대 건강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 다음 어디에 짓는가의 경우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무엇을 짓는가의 문제는 사회단위에서 요구하는 수요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면서 지어지는 건물의 종류와 디자인을 보면 그 사회의 가치관과 정신상태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짓는가의 경우 한국 설계사무소는 싼값에 무리한 시간에 맞춰주는 이류 집단으로 낙인 찍힌 지 오래라면서 작품에 대한 차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왜 짓는가의 문제는 결국 집이란 살기 위해서 지어야지 돈을 벌기 위해서 짓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또한 건축의 전문적 소질이란 게 매우 모호하지만 몇 가지 구분되는 소질을 가지고 있다면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무엇인가 만지작거리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질이다. 무엇인가를 잘 만든다는 건 전 과정의 공정을 머릿속에서 한 번에 그리고 다룰 수 있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건물 사진이나 도면 등을 보면 가슴이 뛰고 친밀감이 생긴다거나 지금 사는 집이나 내 방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직접 나만의 집을 설계하고 싶은 의지가 용솟음친다거나 자기만의 좋아하는 건물, 장소, 길 등이 있다면 건축가로서 소질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공간을 감성적으로 대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라 해석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유를 자기만의 생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이때 설명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 이유와 감정적이고 서정적 이유가 적절하게 배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길을 알려주거나 길 안내를 받을 때 머릿속에 지도가 잘 그려진다면 공간을 짜는 3차원 능력이 있고 이것을 감정 상태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간에 분위기를 실어낼 수 있는 감성적 능력이 있다는 뜻이라 한다. 거기에 사람의 행동, 행태, 사는 방식, 생활형식 등을 비교하는 객관화 능력도 건축가로서의 소질을 알려주는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이 책에서는 서양에서부터 이어온 건축가의 특징을 일별하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는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치며 건축가라는 직업, 더 근본적으로 건축의 기본 속성이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르네상스 때인데, 이 때부터 전문적인 직접 예술가가 등장하면서 집 주인의 요구보다 건축가의 예술성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산업혁명 이후로 기술과 자본이 건축가의 예술성마저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압축 근대화기를 거치면서 짧은 시간에 이 둘이 한꺼번에 일어났기에 대혼란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혼란을 잠재워줄 묘약으로 압축 근대화와 부동산 투기가 등장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건축가상은 조직관리 잘하고, 일거리 잘 따오고, 부동산 개발 정보 알아내서 미리 선점하고, 심사위원 찾아 다니면서 로비 잘하는 따위의 능력들이 적당히 버무려진 한국적 CEO형이라 한다. 어쨌든 르네상스 시기에 건축가는 시각예술의 3대 주요 장르인 건축, 조각, 회화에 모두 능통한 종합예술가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건물 속에 조각품, 그림, 공예장식 등이 많이 들어갔는데, 한 사람의 건축가가 이것들을 모두 담당해서 자신의 작품으로 채워야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는 주로 조각적 소질을 건축에 적용했고, 라파엘과 줄리오 로마노는 회화적 상상력으로 건축을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19세기에는 화가를 겸한 미술적 배경으로 건축을 풀어나간 건축가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독일의 싱켈은 낭만주의 화풍으로 훈련한 낭만성 개념을 19세기 독일 신고전주의에 잘 접목시켰다고 한다. 20세기 현대 건축에서는 데 스테일 건축가나 르 코르뷔지에 등이 회화를 바탕으로 건축을 했는데, 특히 20세기 전반부 모더니즘을 이끈 대부분의 주요 건축가들은 모두 사회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모두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구도를 위험한 것으로 경고하며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이상을 풀어나가고 실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부의 가장 큰 흐름은 건축 내에서 순수 양식사적 해석을 통한 작가주의 건축가들이 주도했다는 것인데, 뉴욕 파이브, 팝 건축, 후기 모더니즘, 하이테크 건축, 신 합리주의, 해체주의, 신 표현주의 등이 그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다양한 건축 사상은 시대마다 요구되는 덕목에 따라 건축가들이 대응한 결과 형성된 것들이라 언급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덕목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리스 시대에는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한 시민 세력, 로마 시대에는 황제를 정점으로 한 세속 권력, 중세 때에는 교황청과 지역 주교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권력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때는 도시를 다스리던 금융가문과 총독, 바로크 시대에는 가톨릭과 절대 왕정, 19세기에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20세기는 민간 자본이 그 자리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건축은 실제 건물을 지어야 하기에 권력의 도움 없이는 장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문제는 권력의 요구에 맞추면서도 그 최종 결과는 예술작품으로 구현해냈다는데 있다고 말한다. 권력자 쪽에서도 최소한의 문화적 안목과 소양을 갖추고 건축가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요구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개탄한다. 자본 권력에의 봉사는 노예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한국적 건축 모델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서양의 최근 양식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작은 스케일의 건축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3차원 공간을 세우고 생활 조형환경을 세밀히 돌보아 사람에게 육체적,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정성이 필요하고, 큰 스케일의 건축은 한 국가 단위의 군집적 축조행위를 총괄하여 그 국가의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가치관을 상징화하고 경제활동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종합적 문명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건축은 학문과 현실 두 체계의 독립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며, 한 시대의 건축이 건강하고 성공적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과 현실이 따로 놀지 않고 적절히 협력해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현대 건축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양식 사조가 탄생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론이 없다는 것이라 진단한다. 즉, 건축가들의 이론적 토대가 약하기 때문에 우리만의 양식 사조를 창출해낼 역량이 안 되었다는 말이다. 서양은 적어도 르네상스 이후 5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이 쌓여있기에 이론의 도움을 받아 창작하기가 훨씬 용이한 여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건축이 의외로 미술과의 연관성이 적다고 말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건축을 잘하는 것은 더욱 관계가 없다면서 말이다. 건축은 미술적 소질보다 미술적 섬세함을 요구하며, 시각 예술에 요구되는 심미성, 그리고 공학적 감각과 인문학적 소양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이 책에서는 서양 건축의 역사를 일별하고 있다. 우선 한국 전통 건축은 장인들의 기술행위로 행해졌기 때문에 건축가라는 전문 직업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별도의 이론도 연구되거나 기록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반면 서양 건축은 건축가들의 개인 예술 작업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들도 함께 발전했다고 말한다.

 

우선 고대 시대를 거쳐 헬레니즘이라는 고전주의 건축이 완성되었고, 그리스 시대에는 서양 건축을 구성하는 기본 구성 방식인 오더를 중심으로 신전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오더는 기단-기둥-지붕의 세 덩어리가 핵심요소로서 도리스 식, 이오니아 식, 코린트 식의 세가지 기본양식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정한 비례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장식에 의한 상징성이 합해졌다는 것이다. 이어서 로마 시대는 아치와 조적술이라는 구조시공 기술이 발전했으며, 쾌락이라는 인간의 감성 기능을 건축에 도입하여 다양한 비정형 형태와 장식주의가 나타났다고 한다. 중세시대는 기독교 문명으로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로 나눌 수 있는데, 초대 교회는 초기 기독교 건축과 비잔틴 건축이, 중세 교회는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건축이 대표적이라 한다. 초대 교회는 성당과 무덤 교회의 기본 내용이 완성된 시기인데, 성당은 라틴 크로스의 선형 평면으로, 무덤 교회는 반지형의 중앙 집중형 평면으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중세 교회는 높이를 올리고 벽이 얇아져 창을 많이 냈으며, 리브 볼트, 플라잉 버트레스, 네이브 월 등 새로운 구조적 발명이 뒤따랐다고 한다. 성화 이외에 조각, 돋을새김, 공예장식 등이 더해지면서 공예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시기라고도 말한다.

 

초기 근대에는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발달했으며, 건축가라는 전문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그룹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어 르네상스 때의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가톨릭의 부활 시기가 시작되는데, 이에 따라 예술은 종교적 감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곡선이나 타원 같은 비정형주의가 득세했다고 한다. 이어서 근대 이전에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과학합리주의가 등장했으며, 근대에 들어서서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구조재료 방식의 등장에 맞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찾는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한다. 아르누보, 국제주의 양식과 더불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역주의, 대중주의, 유기건축, 생태건축, 후기 모더니즘, 하이테크, 팝 건축,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신 표현주의 등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미 유럽은 130년 전에, 미국은 70여 년 전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경쟁에서 발을 뺐다고 한다. 고층 건물의 높이 경쟁은 산업 문명의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문화 차원의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수직선 경쟁 대신 수평선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조형미를 개발하는 일에 몰두했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 건축의 경우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청나라와 일본이 중심이 되어 각종 서구 양식을 수입해 이식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주의적 양식과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독일로부터 들여온 건축양식인 네오 르네상스, 혹은 네오 바로크 양식이 유행했으며, 도심형 한옥과 일본식 주택이 혼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건축의 갑작스러운 수입은 생활 조형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하였는데, 이를테면 전통 방식은 재래라는 부정적 의미로 비하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 방식과 입식 생활을 하는 서구식 조형 환경을 적절히 섞는 문제, 전통 자연 재료와 근대 산업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문제, 기와와 초가에서 콘크리트 육면체 건물로 전환하는 문제, 목수 중심의 전통 산업에서 건설회사 중심의 근대 산업으로 전환하는 문제 등이 여러 갈등 요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자유당 정권 때 건축활동은 한국 전쟁의 피해복구 중심으로 근대적 건축 체계의 기틀을 닦은 시기였지만, 내용 면에서는 건축을 검은 돈이 나오는 창구로 보는 관행이 자리잡았기에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날림과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던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의 시기에 근대적 의미의 건축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대부분은 일본 유학생들이었으며 서양 유학생들은 서양인 스승의 작품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군부독재를 거치던 시기에 서구화된 근대식 건축을 독자적으로 운용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 때에도 친일 잔재와 서구에의 종속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특히 조형환경이 단순 육면체 중심의 삭막한 건물로 획일화되었으며, 군부독재가 과시 행정의 수단으로 건축을 동원하였기에 건축에서도 물량 중심의 과시적 결과가 미덕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보통 서울 정도의 나이를 먹은 도시들은 구도심을 지키고 신시가지를 따로 개발하는 것이 통례지만, 우리는 구도심을 철저히 파괴하면서 고층 아파트를 짓고 다시 신시가지에 해당되는 강남도 아파트 중심으로 개발하는 이중의 우를 범했다고 개탄한다. 이어서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건축 분야에서도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테면 공공환경과 가로건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광장을 만들면서 도시공간이 개방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건축가들의 작가적 독립성이 처음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는데, 모더니즘을 재해석한 네오 모더니즘의 등장이 대표적이라 한다. 모더니즘의 재해석은 건물의 골조를 밖으로 노출시켜 프레임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주를 이루었으며, 추상경향을 기하와 연관시켜 조형성을 추구하면서 한국적 추상 논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니멀리즘, 무채색주의, 동양의 비움 사상을 배경으로 한 건축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또한 노출로부터 표현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수평선이 주요 조형 어휘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외부에 여러 종류의 재료와 색채를 혼합하는 혼성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도 일어났는데, 주변 조형환경에 대한 맥락주의적인 대응이 바로 그것이라 한다. 이렇게 1990년대 나타났던 다원주의는 세계화에 묻혀 빠르게 사라졌다고 말한다. 크게 보면 사회 전체를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상이 심화되었으며, 건축도 경제적 측면의 절대적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건물에서 다양한 심미적, 인문사회적 가능성을 찾으려던 움직임은 배부른 철부지 짓으로 매도당하며 급속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대형 개발 사업이 설계시장을 독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대외적으로 설계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건축가들의 한국 진출이 본격화되었는데, 한국의 대형 설계 사무소들은 이들의 하청업체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설계비를 더 주더라도 외국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 하면 분양가를 올려 받을 수 있고 분양률도 그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남는 장사였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거리를 많이 따서 돈을 많이 버는 것뿐이지 한국의 핵심부가 외국 건축가들의 손으로 설계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한다. 아파트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지어졌는데, 건설회사마다 상표를 내걸며 요란하게 선전하지만 내용을 보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이름과 포장, 그리고 광고에 등장하는 여배우 얼굴뿐이고 관급공사는 소위 말하는 공무원 양식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아파트와 관급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거의 한 두 종류의 오피스 빌딩으로 통일되었다는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건축을 여전히 과시적 성과를 통해 표를 모으는 수단으로 생각했는데, 모든 분야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최대한 부를 창출하는 쪽으로 기본구도가 고쳐졌다고 언급한다. 개별 건물 중심의 이전 방식으로는 부의 창출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고, 대단위 재개발과 신도시 개발 같은 도시 차원의 지역지구 단위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외국의 대형 설계사무소 진출과 맞아 떨어졌는데, 한국의 기존 건축가들로는 이런 대규모 개발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었고 이것을 멋지게 포장해낼 건축가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형 설계사무소들은 외국의 투기자본과 파트너가 되어 움직인다고 한다. 투기자본이 다른 나라에 들어가서 기업이나 부동산 등을 인수하면 대형 설계사무소가 뒤따라 들어가 투기자본의 입맛에 맞는 건물을 설계해주는 흐름이란 것이다. 이런 건물들은 다시 그 나라의 언론들에 의해 세계적 수준의 세련된 첨단 건물이라며 칭송을 받으면서 그 나라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문화공신의 대접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재벌 회장님들에게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돈만 벌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그 속에는 크게 보면 서구 문명 전체의 문화코드, 좁게 보면 설계 사무소의 상업철학이 숨어 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수백 년은 우리의 생활환경에서 주인 행세를 할 것이고, 이런 물리적 환경에서 살다 보면 당연히 정신적으로 지배를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시 자발적 정치종속과 경제종속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큰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외국건축가들의 작품은 단순히 외국 양식뿐 아니라 외국 기술의 침투도 동반하게 되는데, 설계를 하면서 한국에는 없는 기술을 곳곳에 심어 놓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설계된 건물을 시공하기 위해서 그 부분의 도면을 그리는 기술과 그것을 시공하는 세부기술을 함께 도입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싼 기술료를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구의 대형 설계사무소는 이런 기술을 절대 이전하지 않는다면서 부분적으로 자신들이 지정하는 서구 건설회사가 들어와서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부분만 세부시공을 하고 비싼 기술료를 챙겨 떠난다고 말한다. 한국의 건설회사는 아직도 기술적으로 제일 쉬운 부분만 받아 싼 값에 노동력이나 팔아먹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이전의 문제는 설계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고 말한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서구의 설계사무소나 건축가에게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부터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발상이라고도 언급한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건설회사 전체를 보면 100퍼센트 아파트 사업만 하는 곳이 9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다. 아파트는 토건업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가장 낮은 유형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부가가치를 남기려다 보니 분양가 부풀리기와 무리한 공사 수주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며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한국 건축가들의 직무유기에 대해 저자가 개탄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예술작품을 한다는 건축가들도 외국 건축가들의 최신 경향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며 표절과 모방이 매우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엘 크로키"라는 스페인의 월간 잡지를 언급하며 이 잡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국 건축가들이 한국적 현대 양식을 창출하지 못하고 작가로서의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한국 건축가들이 푸대접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국적 사대주의가 나타나게 된 사회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소비 상업주의라면서, 이 양식은 세계화의 산물이므로 서양 자본으로 소비를 부채질하고 충동구매를 극단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네오 아르데코 양식이 대표적인데, 이 양식이 바로 미국이 대공황 이후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프랑스의 공예장식 전통을 빌려와서 만든 극단적 소비주의 양식이란 것이다. 또한 주변 가로 구조와 도심 골격도 모든 것이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것도 문제라 지적한다. 요즘 한국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대형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면 100퍼센트 아파트, 주상복합, 백화점, 대형 상가, 대형 마트, 오피스 빌딩 등의 일만 하게 된다고 개탄한다.

 

이런 기능유형들은 처음 출발부터 오로지 경제성이나 상업성에 의해서만 주도되기 때문에 세밀한 작품성이나 인간을 위한 섬세한 정성 따위는 철저하게 제외된다는 것이다. 건축계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도 문제라 말한다. 물론 저자 자신 조차 대안을 제시하라면 사회나 문명 자체가 변해야 된다는 것 이외에는 별 방도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말이다. 도시의 중심을 무슨 종류의 건물이 차지하는 가를 보면 그 사회의 가치관과 정신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서울에서 내세울만한 중심부는 신촌, 명동, 강남역 등 상업 번화가라고 언급한다. 건물 단위로 보면 백화점, 코엑스 몰, 복합 영화관 등 대형 소비시설을 초점 삼아 그 주위에 자잘한 상업 소비 시설들이 빌붙어 있는 형국이란 것이다. 이에 비해 그리스는 시민모임, 경제활동, 미술품 전시, 정치집회 등 시민들의 도시생업 전반이 일어나던 공간인 스토아와 신전 중심이었고, 중세시대에는 성당이 그것을 계승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 건축계는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역사관과 분석력이 요구되는데, 르 코르뷔지에로부터는 기계문명을 추종하되 최소한의 예술성을 지키는 작가주의 정신을, 가우디로부터는 기계문명에 완전히 전도된 현대 건축 전반에 대한 거시적 차원의 대안을 배울 수 있다고 언급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문제의식이 가득한 책이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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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교양으로 읽는 건축 평점8점 | k*******7 | 2014.10.07 리뷰제목
외국에서 온 친구와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얼마 전, 외국에서 친구가 왔다. 친구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부동산업을 하기 때문에 미국과 다른 서울의 한국적인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관광지로 소문난 곳은 쇼핑으로 가득 차서, 꼭 여행 패키지 상품에 들러야 하는 상점들에 쇼핑과 그곳에서 파는 물건 또한 외국 물건들이다. Mad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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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온 친구와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얼마 전, 외국에서 친구가 왔다. 친구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부동산업을 하기 때문에 미국과 다른 서울의 한국적인 멋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관광지로 소문난 곳은 쇼핑으로 가득 차서, 꼭 여행 패키지 상품에 들러야 하는 상점들에 쇼핑과 그곳에서 파는 물건 또한 외국 물건들이다. Made in China...... 서울 지역 하나하나가 이국적인 모습만을 추구해서, 한국 본연의 맛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나의 얼마 전 고민과 비슷한 글귀들이 많았다. 외국에 여행을 다니면, 아니 한국의 다른 지역에 여행을 다니면 우리는 그 나라, 그 지역의 집과 건물들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건축이라는 분야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만드는 분야가 아니라, 그 지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얼굴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을 중요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이 동네에 가도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는 있고, 다른 동네에 가도 같은 브랜드의 시장이 있다. 마을 또한 공장에서 찍어서 나가듯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나는 <교양으로 읽는 건축>을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이 책에는 건축가가 되려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단순히 수학을 잘한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건축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은 예술, 공학, 그리고 인문학의 융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TV속에서 비쳐지는 건축가의 모습만이 진실이 아님을 얘기해준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연애의 발견>에서도 건설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이고, 건축 설계부터 공무원들까지 모두 건축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 책을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건축가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아마도 그들도 처음에는 돈만을 위한 건축가가 되려는 꿈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도시를 대표하고자 하는 건축물,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의 떼를 잠시나마 벗겨 낼 수 있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국적인 것만을 좇은 체 우리 본연의 것만을 놓칠 때가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골목길, 재래시장은 점점 대형 마트에 파묻히고 있다. 건축을 통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건축은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얼굴이다.

                                                          (지은이 소개글 중에서)

 

한 시대의 건축이 건강하고 성공적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과 현실이 따로 놀지 말고

적절히 협력해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p100)

 

전통에서 배우고 익숙함에 낯섦음을 첨가하라(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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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평점8점 | j******5 | 2010.11.23 리뷰제목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집인가, 부동산인가. 축은 부동산으로 기운지 오래다.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도 '살 집'이 아닌 '팔 집'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집을 고르는 기준은 팔아서 얼마나 차익이 남느냐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재화로 몰락한 집, 역사를 상실한 도시, 그리고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건축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 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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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집인가, 부동산인가.

축은 부동산으로 기운지 오래다.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도 '살 집'이 아닌 '팔 집'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집을 고르는 기준은 팔아서 얼마나 차익이 남느냐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재화로 몰락한 집, 역사를 상실한 도시, 그리고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건축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무엇을' 짓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곧 한 사회단위에서 요구하는 수요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새로짓는 집은 아파트가 99퍼센트요, 그 주변을 상가와 마트, 온갖 유흥업소와 백화점,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별의별 유해업소가 호위하듯 에워싼다. 건축은 사회의 자화상이다. 지어지는 건물의 종류와 디자인을 보면 그 사회의 가치관과 정신상태를 고스란히 읽어 낼 수 있다." (p36) 

 

지금의 아파트를 제대로 구현해 낸 건축가는 '르 코르비제'다. 하지만 아파트가 담고 있는 가치는 사뭇 달랐다. 노동자의 주거란 어떠해야 하는가 란 고민을 치열하게 한 끝에 나온 형식이 아파트 였다. 거기에는 공동생활이 전제가 됐다. 취사, 육아, 교육 등등 개별 주거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자 집단이라는 공동체 이념이 아파트 건축의 주가 됐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의 압축근대기에서는 달리 구현됐다.

 

"전쟁복구의 핵심은 주택건설이었다. 전국이 잿더미로 변한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나, 뒤집어 생각하면 맨땅 위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기 때문에 체계적 관리와 계획을 정착시킬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주거 모델은 무엇인지, 이것을 몇 종류로 나누어 어떻게 설계하고 시공할 것인지, 해방 이후 현대 한국에 맞는 군집방식은 무엇이지 등 조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날림과 주먹구구 식으로 해치웠다."(p172)

 

"군부독재 시기에는 건축이 사람 사는 생활환경에 대한 섬세한 정성에서 벗어나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현상이 심화되었다.(중략)첫째, 건축은 정치자금 착취창구로 전락했다. 전투력 배정하듯 국가차원의 건축일도 수의계약으로 배분했다. 이 과정에서 특혜에 대한 반대급보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착취했다.(중략)이런 부도덕한 관례는 매우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가능한 한 싸게 건물을 지은 다음 공사비를 부풀려 정치자금을 빼내는 일이 건축일을 하는 사람의 능력이 됐다. 둘째, 과시행정의 수단으로 건축을 동원했다. 정권과 밀착한 급성장이 성공모델로 정해졌다. 건축에서도 물량 중심의 과시적 결과가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서구에서 오랜 고민 끝에 탄생한 국제주의 양식이나 기능주의 같은 모더니즘 모델 양식에 대한 심각한 곡해와 왜곡이 가해졌다. 이런 양식들에 내재돼 있던 단순화의 가능성만을 극단화시켜 삭막한 단순 육면체 건물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셋째, 건축이 권력자들의 가장 긴요한 부정축재 수단이 되었다. 강남을 개발하면서 군부독재의 실세들은 필지 한 조각씩, 아파트 한 채씩을 나눠가졌다. 국민들은 이것을 보고 배우며 건축을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건축의 핵심은 부동산 투기로 귀결되었다. 건물을 지을 때 숨통이 트일만한 여유 공간을 두는 것은 건축주의 재산을 좀먹는 범죄행위에 가깝게 여겨졌다."(p175~177)

 

문제는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의 중심공간에는 중심 인간상이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는 아고라와 포럼이라는 일상 경제활동 공간이 근면성실을 대표했고, 중세 기독교 문명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한 성당이 정신적 종교적 공간으로 도시의 중심을 차지했다. 지금의 서울은 어떠한가.

 

"지금 서울에서 내세울만한 중심부는 신촌, 명동, 강남역 등 상업 번화가이다. 대형소비시설을 초점으로 삼아 그 주위에 자잘한 상업 소비시설들이 빌붙어 있는 형국이다. 초고층 주상복합이 강남과 강북 가릴 것 없이 이들 상업시설과 경쟁하고 있다."(p235)

"소비공간이 도시의 중심부를 차지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동일하다. 소비촉진 한 가지에만 기형적으로 집중된 편집증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의 내부구성과 외관, 그리고 건물 주변의 환경 등 모든 조형요소를 이런 한가지 목적에만 맞추어 처리한다. 건축의 공공성은 외관부터 시작된다. 가로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좋건 싫건 그 건물을 항상 보게 되어있다. 반강제적 공공성이라 할 수 있다."(p240)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역사와 전통이다. 도시의 역사성을 살리는 '박물관 도시', 전통가옥 한옥에서 교훈을 얻은 집의 재구성이다.

 

"문화재가 고급 역사라면, 장식, 능선, 구멍가게, 재래시장, 개천과 같은 것들은 중산시민들이 일군 살아있는 역사이다. 문화재가 한 번 죽은 화석화된 역사라면 이런 것들은 아직 살아서 우리의 생활과 함께 하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능선과 개천은 자연환경이지만 이것 역시 중산시만들의 역사를 담는 그릇이다. 문화재는 국가 차원에서 법과 돈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중산시만들이 가꾼 역사는 그렇지 못하게 때문에 이것이 지켜질 수 있음을 담보하는 것은 전 국민의 문화적 의식과 수준밖에 없다."(p277)

 

"낮은 단계에서는 현실을 인정하며 현실 내에서 부분적 대안을 찾는다. 아파트라는 현실을 인정한 위에 어떻게 하면 아파트를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아파트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자발적 노력도 있을 수 있고, 종교부지를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간 단계에서는 현실을 어느정도 뛰어넘는 양식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주거유형은 네 가지 이상의 선택권이 있는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 집을 짓고 사고 고를 때는 돈 논리에 골치를 썩어서는 안 된다."(p290~291)

 

<교양으로 읽는 건축>은 내용면에서는 흠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건축 저술가인 만큼 건축의 역사, 우리나라 건축의 현실에 대한 비평, 그리고 대안까지 내용은 아주 풍부하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아쉽다. 이 책이 주독자층으로 설정한 건 '건축에 관심있는 독서가'나 '건축학과 신입생'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저자가 냈던 서양역사서, 한국전통건축서 등의 내용을 한 권에 모두 넣으려 하면서, 기본 설명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건축역사는 당시의 정치적 배경, 사회적 철학과 동떨어져서는 서술될 수 없다. 차라리 이 내용을 제외하고 건축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나 건축가를 꿈꾸는 이들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쪽이 나았을 법하다. 그랬다면 쉽고 간결하게 라는 '교양서'의 맛이 더 살지 않았을까 한다.

 

많은 건축전공자들이 높은 이상을 품고 설계사무소나 시공사에 입사하지만, 현실에 실망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거나 아니면 다른 길로 진로를 변경한다. 현실이 모든 이상을 따를 순 없으나, 실현 가능한 이상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부정당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실현 가능한 이상'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독려하는 것은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책과 같은 매체의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살 곳'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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