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리뷰에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재미있다는 평을 보고는 도서관에 대출 예약을 시도했다. 우리 구내 도서관 세군데에 예약을 신청했지만, 모두 예약 대기자가 넘쳐서 예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 도서관에서 겨우 예약에 성공했고, 어제 김장하느라 몸이 피곤했는데도, 득템한 기분으로 한달음에 읽어 내려갔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는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에 케리 그랜트를 능가하는 매력의 소유자인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직관이 뛰어난 피아형사가 콤비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이었다. 그러고보니 독일 추리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인 것 같다.
전 여자친구 로라와 자신을 떠나려 한 여자친구 스테파니 이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10년을 복역한 뒤, 고향인 알텐하인으로 돌아온 토비아스, 그는 성적도 빼어나고 여학생과 친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그야말로 전도양양한 청소년이었다.
독일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도 살인죄로 기소가 가능한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토비아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10대의 미성년자라 2건의 살인사건에 대해10년복역으로 끝난 모양인데, 하지만 갓 서른이 돼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이가 있을 리 없다. 이웃들은 살인자의 귀환을 환영하지 않았고, 그와 어린시절 내내 함께 자랐고 이제는 여배우로 성공한 나디야만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미남미녀이다. 수산반장도 미남이고, 토비아스 역시나 미남에 머리까지 좋은 청년이었다. 피살된 두 여자 주인공 특히 스테파니는 연극에서 주연인 백설공주역을 맡을정도로 빼어난 매력과 미모의 소유자였다. 이렇게 설정한 작가의 의도에 추리소설적인 면에서 그다지 점수를 주게 되진 않았다. 로맨스 소설의 설정 같은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한눈에 상대를 반하게 하는 성적 매력의 소유자들의 등장으로 너무 쉽게 행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성이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아멜리가 토비아스에게 첫눈에 이끌려서 살인사건을 파고들어가게 되는 것에도 보듯이.
의사가 되려고 했던 토비아스의 꿈과 그들 부모의 삶은 풍비박산 나버렸다. 살인죄로 유죄판결 받은 아들을 둔 그의 부모는 재정적으로도 위기였고, 이혼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살해됐던 로라와 스테파니 부모들, 피해자 유족들의 삶 역시나 휘청거렸다. 트라우마를 안은 채 피폐해지는 피해자 가족의 삶 또한 작가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알텐하인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이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이 작은 마을은 잇속과 욕망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알텐하인의 유지인 테를린덴은 이런 유족들의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토비아스의 절친이었던 라르스의 부친이었던 그는 토비아스에게도 일자리를 제안하지만 내키지 않았던 토비아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을 주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잇속을 채웠고, 그런 경제력을 통해 이 마을에 보이지 않는 지배력을 늘려가는, 겉과 속이 달랐던 것이 그의 실체였던 것이다.
토비아스와 두 피살자를 가르쳤던 그레고어 라우터바흐도 의사 다니엘라와 결혼한 이후 정치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는데..
그러던 차에 살해됐던 로라의 유해가 11년만에 발견됐고, 알텐하인의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직관력이 뛰어난 피아 형사는 토비아스가 유죄가 아니라는 심증을 갖지만, 보덴슈타인은 아내의 외도로 혼란에 빠져 수사에 집중하지 못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는 보덴슈타인과 피아, 이 두 수사관들의 애정문제와 사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한축, 또 그 사건과는 별개로 이들의 삶이 작품의 다른 한축을 차지하고 있다. 범행과 그 범행을 좇는 수사관의 삶이 공존하고, 수사관으로서의 캐릭터나 인간적인 모습이 함께 부각되는 느낌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애정문제는 범죄인만이 아닌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고 혼란스러움이라는 명제를 깔아놓은 걸로 보여졌다. 다만 욕망에 이끌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때, 일방적이거나 그저 말초적인 욕망을 좇을때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까.
토비아스에게 관심을 갖고, 과거 두건의 살인사건을 캐들어가던 아멜리, 그녀는 이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실종이 되자, 마을사람들을 다시 한번 토비아스에게 의심을 눈길을 주지만, 피아는 토비아스의 과거 범죄는 누명이었다는 사실에 점점 근접해갔다.
사건 전모가 점점 밝혀지게 되면서 위선과 지위에 가려져있던 치정과 물욕,질투, 지배욕, 독점욕, 이기주의, 등 마을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이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재물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자식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타인을 공격하고, 누명을 씌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각자 개별적인 범행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거미줄처럼 치정과 자식에 대한 사랑, 위선으로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어떻게 보면 공범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순수함이 빛났던 인물은 도시에서 살다 이 마을로 온 아멜리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명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인자로 유죄판결받은 토비아스를 시종일관 사랑하는 나디야에게 순수함을 느꼈지만, 조금 읽다보니 그녀에게는 석연치 않은 점이 여러가지 느껴졌다.
반면에 아멜리는 거침없기는 하지만, 선입견을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토비아스에게 애정을 느끼고, 또 테를린덴의 자폐아 아들인 티스의 유일한 친구가 돼주었다. 겉보기에는 불량스러워 보였던 그녀가 오히려 가장 탐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를 끝까지 지켜주려한 티스 또한 그러했다.
명성과 지위, 재산으로 인간의 올바름과 양심과 영혼이 지켜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타락할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재물과 지위, 명예에 눈이 멀어 그것으로 쉽게 한 인간의 전부를 판단해버리는 현대인의 얄팍함에 뜨끔하게 된다. 그것 역시나 현대인의 내면이 부박하기에 비롯된 것이고, 작가는 인간의 내면은 돈과 명성, 지위로 결코 채워질 수 없다고, 현대인들 향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리라.
결국 토비아스의 누명을 벗겨지고, 두건의 살인을 저질렀던 진범, 그리고 아멜리와 티스를 죽이려했던 범인이 모두 체포된다. 그렇다고 해서 토비아스에게 행복이 찾아온 것만은 아니었다. 사건해결과정에서 그는 몇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자신을 믿어주고 지켜줬던 아버지가 죽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됐던 것이다.
토비아스의 청춘.. 교도소에서 헛되이 보낸 20대 그 빛나는 청춘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부자가 됐다고 한들..의사가 되려고 했던 꿈과 스테파니와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그 빛나는 미래에 대한 보상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토비아스는 꿋꿋하게 불사신처럼 살아 남았다.
그가 아멜리와 함께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산산조각난 삶을 회복해나가기를 희망한다. 이제 갓 서른, 희망을 품고 그가 살아가야 할 날은 마냥 창창하기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