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좋아하는 작가와 좋아하는 미술 작품과의 만남. 미술 작품과 스릴러는 어떤 형식으로 전개 될까?
‘피아노 레슨’(정해연)은 프로파일러 지혁이 친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고등학생 윤철의 사건을 맡으면서 시작한다. 윤철은 자신의 범죄를 부인한다. 자신이 죽이기는 했지만, 살인을 지시한 목소리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 지혁은 윤철이 말한 지시한 목소리를 찾기 시작하는데. ‘유서’(조영주)는 문학상 수상 작가 윤해환의 이야기다. 해환은 문학상 수상 후 두 번째 작품이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어떻게든 영감을 얻어 글을 쓰고 싶은 해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좀비 여인의 초상’(정명섭)은 북한이 발사한 핵미사일이 서울에서 폭발, 이후 사망자들 일부가 살아나 좀비가 된다. 좀비들을 막기 위해 서울은 봉쇄된다. 들어가지 못하니 그곳에 남은 물건들은 때론 노다지가 된다. 잘 나가는 트레저헌터 팀이 그림을 찾으러 이곳 폐쇄구역에 침투하게 되는데. ‘사냥의 밤’(박산호)는 56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기준의 이야기다. 픽업 아티스트 김기준은 사채업자에게 빚 독촉에 시달리고 어느 날 급하게 결혼해야 하는 상속녀 서아리를 소개받게 되는데. ‘체크메이트’(박상민)은 비바람 치는 밤. 거실에는 여자 둘, 남자 다섯 그리고 소년 둘이 있다.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 누가 범인지 알 수 없는 곳, 고립된 섬에서 경찰을 기다리며 그들은 살인범에 대한 추리를 시작하는데.
마티스 그림 속 어둠과 욕망의 이야기. 마티스 그림을 보며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즐겁다. 모두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피아노 레슨’ 이다. 살인을 지시하는 목소리. 지혁은 그래서 그림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직장 상사는(지혁의 아들과 같은 학교이자 전교 1등/지혁의 아들은 만년 2등이다) 사건을 빨리 매듭지으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림을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비극을 발견한다. 그 사건도 누군가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것. 직장 상사는 아들이 전교 1등을 했다며 자신의 집으로 와 밥을 먹고 가라고 한다. 지혁은 그런 상사의 집으로 마티스의 그림을 선물로 가지고 간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자랑할 수 있지만, 뭐 그렇게까지 할 건가 싶다. 너무 얄밉고 재수 없다는 것. 그렇게 아버지가 행동하니 아들도 똑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주가 깃든 선물은 좀. 물론 이후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 반백을 살면서 느끼는 건 가능하다면 착하게 살자는 것. 착하기만 하게 살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지 말라는 거다. 그게 가장 어려운 주문 같지만.
마티스 그림은 좀 무섭기도 괴기스럽기도 그러면서도 강하고 그 안에 어떤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 것 같다. 마티스의 그림 풍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마티스와 스릴러가 만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은, 재미있는 책이다.
또 집어들고 말았다. 역시나 도서관 반납선반에서다. 무심코 지나치다 낯익은 표지를 봤다. 최근에 많이 봤다는 소리다. 마티스의 작품을 소재로 해서 다섯 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의 앤솔러지다. 반납선반에서 집어 들게 되는 책은 유난히 이런 앤솔러지가 많다. 지난 번에도 그랬었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고 집어 들었으나 없어진 책 한권을 찾느라 온 도서관을 다 뒤지는 통에 봉사시간이 끝난 후에나 제일 첫장을 펼 수 있었다.
피아노 치는 아이가 있다. 아이의 표정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저 멀리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이 아이를 감시하는 걸까 아니면 가르치는 걸까. 레슨을 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거리가 있다. 작가는 이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역시 정해연 작가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하는 그런 거 말이다.
엄마를 죽인 십대가 있다. 하지만 포커스는 거기가 아니다. 그가 왜 엄마를 죽였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지는 행동은 어쩌면 누군가는 너무 뻔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뻔함 조차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걸 보니 나는 역시나 정해연 작가의 팬 일수밖에 없나보다. 결정적인 스포는 저주받은 그림이다.
작가도 다섯 이야기도 다섯 마티스의 작품도 다섯이다. 아니 더 나오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편집된 것은 그러하다. 그 다섯 점의 그림들 중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조영주 작가가 선택한 이카로스가 아닐까 하다. 인터넷 서점의 박스에 그 그림이 사용되어서 책을 좀 산다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보암직한 가지고 있음직한 그런 그림이기 때문이다. 나도 가지고 있고. 그 그림을 바탕으로 정말 조영주스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런 앤솔러지를 읽을 때면 작가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그저 한 작가의 한 작품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정명섭 작가는 좀비를 좋아하는지 몰라도 나는 좀비를 막막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소소. 다섯명의 작가들 중 가장 낯선 작가는 박선호였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꽤 여러권 읽어본 적이 있지만 박산호 작가의 작품은 읽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단편이 더 궁금했었다. 주어져 있는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그림과 관련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그림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짧은 단편으로는 작가에 대해서 무언가 다 알지는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박상민 작가의 글은 혹시나 의학적 요소가 부각되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런 건 없이 연극적인 느낌을 주는 요소가 더 들어가 있는 듯 했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그러한 책이랄까. 만약 내가 같은 그림을 본다면 나는 어떤 느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정해연ㆍ조영주ㆍ정명섭ㆍ박산호ㆍ박상민/ 마티스블루
스릴러, 추리물, 범죄소설 읽는 이유는 대체로 '살인의 동기'가 궁금해서. 도대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평론가는 일상에서 벗어난 색다른 재미를 위해서라고 쓰시는데, 소설을 재미로 읽지는 않는 내게 장르물만큼 우리 일상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다고 생각한다. 《십자가의 괴이》에서 주원규 작가가 말했던가? 호기심을 가지고 비정상을 바라보는 마음 ㅠㅠ
SF는 미래를 말하고 예언해 보여주지만 스릴러, 추리물은 우리 사회의 '오늘'을 말해준다. 뉴스 속 사건 사고에서 본듯한 이야기, 인간이 어쩜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학적 고찰이다. 추리, 공포 등의 장르물은 사회가 안정화되었을 때 더 많이 창작된다고 한다. 장르물 전성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가 지금 안정화되어있는가? (아무튼 먹고 사느라 소설 따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그분! 소설을 펼쳐든 내게 그 와중에 소설 따위 눈에 들어오냐는 나의 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리뷰 핑계 삼아 써본다.)
다섯 편의 단편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마티스 그림에서 소설가들은 무엇을 본 걸까?!!!! 소설을 덮으며 다섯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각자 그들이 저마다 마티스 그림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독자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 이런 관점은 문학평론다 박인성 선생님의 #이것은유해한장르다 에서 배웠다 )
서사 문법? 이니, 후더닛?이니, 장르적 클리셰? 이런 문법을 전혀 모르는 독자로서 최근 소설을 읽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 '앗, 고작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이다. 납득할 수 없는 살인의 동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의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분석을 보면 범죄의 동기가 대부분 그렇다. 굳이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나 싶은 순간에 범죄는 일어나고 만다.
그러니까 최근의 소설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뜻이 된다.
두 소년이 체스를 두는 《화가의 가족》에서 영감을 얻은 후,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창가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작품을 추가했다는 박상민의 『체크메이트』
초대를 받고 섬에 온 사람들, 노신사의 죽음과 지진, 그리고 사라진 시체, 의심스러운 일행들. 이 모든 일이 '고립된 섬'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름 유추하며 읽었지만 도무지 범인이나 범행 동기를 알 수 없었던 소설은 반태오의 추리를 통해 그 비밀이 밝혀진다. 읽다가 문득 내가 자주 하는 짓 ( 옆 길로 새기)인데 이전에 여섯 작가가 쓴 미제 사건 소재를 다룬 스릴러 《십자가의 괴이》를 다시 펼쳐 읽었다. #그날밤나는 에서 박상민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 무능한 공권력에 대해 자살로 판결 난 유족들이 연대 서사를 수려한 문장으로 다루었다. 장르물 작가가 수려한 문장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니 이런 반전이!! 개인적으로 이 분 문장은 다크하고 고통스러운 서사에 더 잘 어울리시는 듯, 나의 전건우 작가님처럼!!^^
사회적 관계에서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는 유해점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책의 1부 《미스터리라는 사회적 장르》에서 박인성 평론가가 하신 말씀 언젠가 조만간 이 책 정독하고 리뷰로 남길 예정인데...
미술 문외한이라 그림을 잘 모르지만 마티스 그림의 색감이 스릴러, 장르소설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의 밤》 박산호.. (크 제목 좋다 )
유명 유튜버 김기준,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빚으로 인해 신체 포기 각서까지 쓰게 된 자, 인플루언서들 인간관계 전문가, 연애 전문 유튜브, 한 방으로 인생 바꿔보려는 심리, 쉽게 돈 벌려는 요즘 사람들의 씁쓸한 인생관이 잘 반영된 작품이었다. 최근에서야 이 분이 여성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게 이 사실 소설의 반전보다 더 충격이었다.
정명섭 《좀비 여인의 초상》, 개인적으로 수많은 귀신?의 유형, 공포의 대상 중에 나는 좀비를 가장 싫어 아니 무서워한다. 생각도 하기 싫은데 좀비물 다 피해 가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 정면으로 마주하게 됨 ㅋㅋㅋ 작가는 좀비를 정말 사랑하신다고 한다ㅎㅎ
핵미사일로 인해 폐허가 된 서울, 죽어서 좀비가 된 사람들 이 소설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29년 4월 4일 혹은 그 이후에도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죽는 게 무서우면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결정을 한 거야? 죽더라도 신념을 안고 죽어 봐. 그러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P173
소설에서 종종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을 무자하게 되는 《유서》 조영주.
#스포모어증후군 글이 안 써지는 고통,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작가의 말에 읽는 독자도 공감하게 된다. 꿈에 그리던 사람과 연인이 된 해환,
열일곱 살 나이에 반신 불 수가 된 김인우 그가 쥐여준 하얀 종이 인형, 저주인가 우연인가!! 결국 유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이야기.
부속물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쓰고 싶네요. 쓸 수만 있다면 검은 인간, 아니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고 싶군요 P77
고등학교 1학년 고작 만 16세에 엄마를 살해하고 엄마의 시체를 숨겨온 김윤철, 소설 앞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실제 있던 사건 전교 1등 아들의 모친 살해 사건이 떠올랐다. ( 얼마 전 만기 형을 채우고 출소한 상태 )
그림이 죽이라고 했다니 무슨 일? 그림에 담긴 비밀은....?
입시제도와 성적 중심주의! 우리 사회 가장 깊은 어둠, 교육 정책에 대해 정말 대안은 없을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앙리 마티스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작품이 스릴러의 소재가 되어 다시 재탄생하리란걸. 지난 2주간 공부하듯 읽은 마티스 × 스릴러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