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자, 당신은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국가의 소멸, 무엇보다도 지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멸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해, 여기저기서 들은 바가 있더라도 무엇을 근거로 소멸을 이야기하는지 깊이 찾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었다. 압축 소멸이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의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이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가.
이것은 물리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관념적 현상입니다. 물리적으로는 기존에 있던 어떤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개념으로서의 소멸은 그런 현상적 수준을 넘어섭니다. (8)
작가인 이관후는 정치학자로, 서강대 학·석사와 런던대학교 박사를 거쳐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제16,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으며 2024년 11월 역대 최연소로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책은 《한겨레 21》에 연재되었던 글을 기반으로 수정하고 보완하여 세상에 나왔다.
『압축 소멸 사회』의 초판 1쇄 인쇄는 24년 11월 22일이다. 최근에 출간된 책인 만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미국 대선과 같은 이야기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그저 탄식만 하고 지나갔던 수치를, 뉴스 기사나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한 번 스쳐 지나간 소식을 해석하여 소멸의 근거로 삼는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국제 정세나, 정치 이야기도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작가의 생생한 설명을 통해 접해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가 타락한 이유는 시민의 주권을 양도받은 세력들이 정치적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결국 시민들입니다. 혐오와 갈등의 한국 사회, 압축 소멸 사회, 과도 불안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마중물이 될 시민들의 조직적·실천적 행동을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희망 없는 사회를 물려줄지, 아니면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지를 시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234)
책을 받고, 읽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단 세글자로 축약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급박하게 흐른 시간이었다.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1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이제까지 보거나 읽었던 뉴스보다 많은 수의 뉴스를 보고 들었고, 일어나면 간밤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갔으며, 끝없이 정치 이야기를 했고, 내가 자는 동안 속보 링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소멸의 위기임은 분명하지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당신들이 걷고 있는 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며, 대한민국을 소멸의 위기에서 끌어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며.
한강을 기억하는 법은 책을 한 권 더 사고, 우리가 읽고, 아이들에게 읽히고, 그것에 대해 사색하며 산책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내 삶에 대해 말하고, 그 언어들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일, 또 살아 내는 일입니다. 슬픔과 기쁨에 눈물 흘리고,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고,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고, 언젠가 모두 사라져야 함을 인정하고, 그리고 또 함께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245-246)
* 본 게시물은 서평단 하니포터 활동의 일환으로 한겨레출판(@hanibook)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압축 소멸 사회』의 저자는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 이관후 교수로 제16,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했고, 2024년 11월에는 역대 최연소로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압축 성장했지만 이 성장이 지금은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 소멸의 원인이 되었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공동체의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특히 소멸의 ‘속도’를 강조한다. 인간 사회에 변화란 항상 존재한다. 전쟁, 자연재해, 산업/경제/인구/기술의 변화 등으로 사회는 늘 변화했다. 어느 사회는 버텼고 어느 사회는 무너졌다.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때는 보통 변화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격변’의 시기가 닥쳤을 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를 소멸로 몰아넣고 있는 국내의 상황의 급속한 변화를 다각도로 살핀다.
책의 1부 <대한민국은 왜 소멸을 선택했나>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복합 위기’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국제 환경 변화와 에너지 전환이라 말한다.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장벽을 이용해서 수출 기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독특한 국제 환경은 비용이 많이 드는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했고 경제적 자생에 필요한 원조 자금을 적극적으로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냉전이 종식되고 탈냉전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한국은 수출 의존 경제의 내실을 다지기도 샴페인을 터뜨렸고 준비되지 않은 채 세계화를 맞이했다. 그 결과는 결국 익히 알고 있듯이 국가의 부도로 이어졌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시작을 외환 위기에서 찾는다. 그 후 정부는 부도난 국가를 빠르게 수습했고 수출 주력 사업을 다시금 일으켰다.
그러다가 신냉전 패권주의 시대가 열렸다. 신냉전 시기는 패권 국가들이 군사적/경제적으로는 패권을 두고 격렬하게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협력이 필수적인 분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문제는 한국처럼 낀 나라들이다. 신냉전 패권주의 시대에 한국은 안전한 보호망이 없어졌다. 트럼프의 천문학적 군사 분담금, 바이든의 한국 미국 투자 종용 등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더 이상 안보나 경제에서 일방적으로 한국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도 한국 사회의 복합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이다. 기후 위기는 비단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과 경제, 일자리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미국과 유럽은 친환경 에너지를 새로운 무역 규제와 공급망 전환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정치’에 있다고 말한다. 이를 돌려 말하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압축 소멸 문제에 정치가 큰 책임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의 정치는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편 정치 소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저자가 말하는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학자인 저자는 ‘정치’의 수많은 정의 중 대표적으로 1)통치 기술로서의 정치, 2)공적 업무로서의 정치, 3)권력으로서의 정치 4)타협과 합의로서의 정치를 간략히 설명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에 기대하는 국정 운영 능력을 함께 고려한 뒤 ‘정치는 국가의 통치가 작동하는 것이고, 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되, 권력관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경쟁과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저자는 정치학자로서 정부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 편을 편들지 않고 한국의 정치 문제를 냉정하고 분석해 나간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가 소멸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 양당은 압축 소멸하는 한국 사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상대방은 심판하는 프레임에 매달려 왔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소멸을 막을 책임과 소멸 속도를 조정할 책임은 전적으로 정치에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사라졌고 정치가 사라진 빈 공간은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가 차지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저자는 책에서 국회와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노동, 인구, 지방, 복지, 교육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국내외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문제점을 진단한다. 저자는 <나가는 글>에서 ‘한 사람의 학자로서 완전히 새로운 미지의 대안을 찾기보다는 기존의 제도에서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잘 고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포퓰리즘이라는 정치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도 있다고 희망을 제시하는데 이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 개개인이 정치인이 아닌 정치꾼들을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지 못한다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 년 만 지나면 다 잊는다는 여당의 어느 의원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할 몫은 우리에게 있다.
통탄스러운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시국을 적확하게 꿰뚫어 본 이관후 저자의 <압축 소멸 사회>를 읽었다. 통찰력 넘치는 저자의 주장처럼 '정치 소멸'은 끝끝내 참극을 빚었다.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령 선포에서 계엄 해제까지 숨 가쁘게 흘러간 6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소멸되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얕은 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 답답한 정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한강의 기적'
놀라운 성장으로 강인한 회복력을 보여준 우리나라이다. 유례없는 서사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넘어져도 온 국민이 나서서 다시 일으켜 세우고 K 컬처로 세계 문화를 선도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관후 저자는 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희망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압축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이 압축 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저출산, 지역 불균형, 높은 자살률 등 청년들에게 희망은 없어지고 있다. 각자도생, 무한 경쟁의 시대. 저자는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인 사회에서 90%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질문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라면,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고도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내달렸던 과거의 경쟁 모델이 현대 사회에서 더 나아가 미래 사회에서 통할 거라는 믿음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 통감한다. 이미 너무 많은 고통과 상처를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개인의 소멸이 국가의 소멸로 끝맺음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마주할 시간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치의 소멸'이라는 저자의 진단에 동의한다. '사법 관료 포퓰리즘'과 '검사 만능주의'에 빠진 윤석열 정부와 '친O'로 분열하여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국회는 사라진 정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에 무심한 청년층을 향한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사라진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권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변질된 정치판이 아니라, 국민을, 국가를 위한 정치를 하도록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정치인들의 자정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는 저자의 통렬한 문장에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 세대들을 위해 어른이라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의무라 본다.
우리나라의 앞날을 내다보고 분석하고 예측하고 대응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 희망을, 의지를 품어보고 싶다. 아니, 우리 자랑스러운 국민 모두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길 바라본다. 본디 바로 세운 민주주의로 압축 소멸의 길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오늘날에 적당한 해법을 찾아 합심하여 나아가길 바라본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직시하고 더 나은 내일, 더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읽고 그 뜻을 나누기를 바라며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