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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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리뷰 총점 8.6 (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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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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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뉴욕 3부작』가장 미국적인 포스트모던 소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 2014.11.24 리뷰제목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중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 『뉴욕 3부작』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 만큼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의 제목처럼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이기 보다는 뉴욕 생활을 담은 소설을 다르게 펴낸 작품인줄만 알았다. 막상 그의 책을 검색할때 이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 어쩐지 썩 다가드는 제목은 아니었다. 한
리뷰제목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중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 『뉴욕 3부작』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 만큼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의 제목처럼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이기 보다는 뉴욕 생활을 담은 소설을 다르게 펴낸 작품인줄만 알았다. 막상 그의 책을 검색할때 이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 어쩐지 썩 다가드는 제목은 아니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 제목이랄까.

 

  도서정가제때문에 폴 오스터의 책을 구입하면서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얼른 빼들었지만, 읽는 시간은 꽤 오래걸렸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읽었다고 해야겠다. 일단 열린책들 판본인, 줄 간격이 짧은 편집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읽어야했기때문일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의 장면을 위해 거의 한 페이지를 할애하는 설명때문일 수도 있었다. 설명에 집중하느라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또 읽다가 다시 읽는 것이 반복되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은 아니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었지만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었고, 세 개의 작품이 전혀 아닌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의 작품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폴 오스터는 자신의 분신을 하나 설정해놓고, 자신과 이름이 같은 인물을 작가의 또하나의 모습으로 등장시켰다. 작가인듯 보였던 인물과 작가의 이름을 가진 인물 중 누가 진짜 작가의 본모습일까 고민하며 읽었다.

 

  소설은 총 세편의 중편이다.  작가인 대니얼 퀸에게 어느 날 폴 오스터라는 탐정을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순전히 호기심과 재미때문에 폴 오스터라는 탐정 역할을 해내는 이야기 「유리의 도시」가 그 첫 번째 이야기고, 두 번째는 화이트에게 블랙이라는 작가를 감시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탐정 블루의 이야기인 「유령들」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잠겨있는 방」이란 제목으로 친구이자 작가인 팬쇼가 사라지고 팬쇼의 아내인 소피로 부터 부탁받아 그의 문학작품을 관리하게 되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시내에서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까지도. 산보를 나갈때마다 그는 마치 자신을 뒤에 남겨 두는 듯한 느낌이었고, 거리에서의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신을 하나의 눈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른 것은 몰라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어 편안하게 마음을 비울수 있었다. (10페이지)  

 

  위에서 말하는 글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뉴욕에 대해 시작하는 3부작중의 첫 작품에서 이 책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위 문장에서 말하는 주인공의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이었던 것. 세 편의  『뉴욕 3부작』을 말하는 심층적인 주제였던 것이다. 중편의 세 작품 모두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냈다. 누군가를 미행하고, 누군가의 흔적을 뒤쫓으며 점차 자신도 잊어버리고 싶은, 결국에는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지고 싶은 이의 마음을 담았던 것이다.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것도 문제인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것이 타인일 수도 있는데, 글을 쓰는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투영시켜서 일까. 작가가 주인공들인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모습을 지켜보며 점차 자신의 깊은 곳을 파악해내는 사람들이었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글만 쓰는 이를 지켜보며 점차 자신의 본 모습을 잃고,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것도 그러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타인들에게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이 본모습이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의도하에 자신을 드러내고, 드러낸 모습으로 보아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지도 모를 일이다.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해를 달리 해 쓴 글을 읽으며 내가 폴 오스터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를 했나,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어려웠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마음을 먹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책장 한켠으로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던 소설이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오랫동안 소설의 여운이 남는 걸 보며 그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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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4-2 :다시 블루에게 평점10점 | a*********9 | 2015.03.03 리뷰제목
두 번째 이야기 : 유령들     블루에게    우리가 다시 만날 줄 알았던 거지? 물리적 거리가 아니더라도, 혹은 표면적으로 별로 상관이 없더라도 어떻게라도 우리는 만나게 돼 있었다는 거, 인정해. 당신 말처럼 처음엔 아주 간단해 보였어. 실은 만사가 그렇지. 인간은 말이야, 간단한 걸 얽히고설켜놓지 않으면 굉장히 우울해하고 불안 증세를 보이곤 해. 당신 소설을 보면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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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이야기 : 유령들 

 

 블루에게

 

 우리가 다시 만날 줄 알았던 거지? 물리적 거리가 아니더라도, 혹은 표면적으로 별로 상관이 없더라도 어떻게라도 우리는 만나게 돼 있었다는 거, 인정해. 당신 말처럼 처음엔 아주 간단해 보였어. 실은 만사가 그렇지. 인간은 말이야, 간단한 걸 얽히고설켜놓지 않으면 굉장히 우울해하고 불안 증세를 보이곤 해. 당신 소설을 보면서 난 여지없이 그걸 느꼈단 말이지.

 

 자, 당신은 화이트라는 남자의 의뢰를 받고 블랙이라는 사내를 감시하게 됐지. 하지만 역으로 블랙이라는 남자에게서 당신이 감시당하고 말았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던 거야. 마치 '제발 나 좀 바라봐줘'라는 듯이. 가끔 조연이나 대역의 가면을 쓰고서라도 서로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기질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권일 걸. 어찌 보면 인간은 모든 연극의 배후가 아닐까 생각해. 삶? 그건 무대인 거고. 까짓 거, 좀 쉽게 가자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부터 월트 휘트먼, 호손까지 들먹거리다니. 「월든」을 읽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하는군. 하여튼 뇌와 창자이야기, 어떻게 그걸 그렇게 연결시키나? 골상학에 관심 있다던 휘트먼의 뇌를 바닥에 떨어트려 박살이 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는 그 황당 사건 말인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골 빈 허수아비에 빗댄 건 좀 너무했잖아? 근데, 흥미진진하긴 했어. 인간들이 대충은 이렇단 말이야.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에 반응하는 뇌를 가졌지. 요강은 또 뭐야? 그렇게 도출된 게 뇌와 창자라니. 뇌와 창자, 즉 인간의 내면 사이에는요. 우리는 늘 어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요. 하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거기엔 별 게 없어요. 적어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다른 것은 많지 않다는 거죠. (198쪽) 아! 이어지는 호손 작품의 그 이야기란... 독자는 궁금해 미치라고 그 얘기만은 좀 아껴두기로 하자고.

 

 다른 얘길 좀 해볼까. 인간은 말이지. 지들은 타인과 어딘가 좀 다르고 특별한 줄 착각하는 못된 버릇이 있어. 벌써 나만해도 당신과의 교집합을 찾으려는 노력, 이를테면 모든 사건엔 우연이란 없으며 모두 필연적 관계에 놓여 있다거나, 그런 사건들은 나에게 뭔가 상징적 메시지를 주고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의무감에 빠진다는 점 정도. 뭐 찾아보면 더 많겠지만. 인간의 간사함을 폭로하는 중이야. 혼자 죽긴 싫어 당신까지 끌어들이는 중이고. 눈치 챘겠지만, 죄 거짓투성인 거지. 우리는 지금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곳에 있다. 기질의 약점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상황을 상정해서 우리 자신을 그 안에 놓고, 그에 따라서 동시에 두 가지 상황에 놓이므로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배로 어렵다. (191쪽) 그러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야.

 

「과거로부터」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당신을 어떡하면 좋을지... 줄거리를 그대로 옮겨놨잖아. 시놉시스, 끝장이더군. 굉장했어. 블루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라든가 영화에 나오는 미녀들 때문만이 아니라 극장 안의 어둠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영상이 왠지 눈을 감을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182쪽) 색에 대한 집착과 고찰, 어둠에 대한 명상에서 실존에 대해 첨예하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 내가 딱 그래. 진작부터 우린 통했던 거야. 당신의 편지를 읽는 건 이번으로 일곱 통째. 이제 정리 좀 할게. 슬슬 지루해질 때가 됐으니까. 그는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들에서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193쪽) 이거면 됐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다른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될 거야. (208쪽) 당신 말대로 일거야. 그러려고 당신 편질 읽은 게 아니겠어? 두고 보라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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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세 개 또는 하나 평점10점 | g******1 | 2014.12.19 리뷰제목
책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어쩌면 그것이 홀로 선 인간의 원 모습일지도 모를만큼 고적하다. 어떤 상처 어떤 시간의 흔적들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게 만들었을까. 우리가 그의 원래 모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퀸 이라는 그의 이름. 그리고 한 때 그가 가정을 가졌었고 아들이 있었고 그들이 죽어 지금은 혼자라는 사실 뿐. 그 속에 어떤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지 죄책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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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어쩌면 그것이 홀로 선 인간의 원 모습일지도 모를만큼 고적하다. 어떤 상처 어떤 시간의 흔적들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게 만들었을까. 우리가 그의 원래 모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퀸 이라는 그의 이름. 그리고 한 때 그가 가정을 가졌었고 아들이 있었고 그들이 죽어 지금은 혼자라는 사실 뿐. 그 속에 어떤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지 죄책감이 있는지 그리움이 있는지 상처가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한 인간의 내면이 거주하는 세계. 세상과 차단된 채 자신마저도 버리고 다른 필명 다른 정체성으로  퀸이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 소설 이전의 문제다.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은 퀸과는 다른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윌슨은 꾸며 낸 인물인 만큼, 비록 퀸 자신에게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제는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퀸은 그를 존중하고 때로는 칭찬도 했지만, 자신과 윌리엄 윌슨이 동일인이라고 믿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p11

그런데 윌리엄 윌슨이 쓰는 추리 소설 속에는 또다른 정체성, 사설 탐정이자 화자인 맥스 위크가 있다. 그리고 윌슨은 차츰 거기에서 제 역활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퀸과 위크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까. 윌리엄 윌슨이 그에게 여전히 추상적인 인물로 남아있는 반면, 위크는 점점 더 생명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 갔다. 퀸이 빠져들게 된 자아의 삼각관계 속에서 윌슨은 복화술사였고 퀸 자신은 꼭두각시 인형, 그리고 위크는 그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 활기찬 목소리였다. 설령 윌슨이 허구였다 해도 그는 다른 두 사람의 삶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퀸의 삶에서 위크는 차츰차츰 현존하는 인물, 그의 내면적인 형제이자 고독의 동반자가 되어갔다. p12

이 세 사람 사이에 또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작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 폴 오스터라는 사람이다. 어느날 탐정 폴 오스터냐고 묻는 잘못된 전화가 걸려온다. 퀸은 자신이 폴 오스터가 아니면서 자신이 폴 오스터라고 대답함으로써, 자신이 창조한 두 정체성과 결별하고 이제 폴 오스터가 된다. 처음에 그는 윌슨이 만들어낸 위크의 입장이 되어, 위크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잘못된 전화로부터 의뢰받은 사건을 위크의 입장에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폴 오스터가 되어간다. 


작가 폴오스터 -> 퀸(주인공의 과거) -> 또다른 자아 윌슨(필명이자 현실속에서 불리는 이름) -> 위크 윌슨이 소설 속에서 창조해낸 탐정 -> 폴오스터


이런 정체성의 사이클 속에서 퀸은 자신이 폴 오스터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이 의뢰한 사건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뉴욕3부작은 세 개의 연작소설로 되어 있다. 세 개의 소설은 서로 다른 내용이고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결국은 하나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읽다보면 묘하게 첫번째 스토리의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다른 스토리의 또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 스토리가 연결되기도 하며 같은 스토리를 다르게 쓴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의 리뷰를 늦게 쓰는 이유는, 다시 읽고 그걸 죄 꾀어 맞춰보려고 미루어와서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미스터리들을 꿰어맞추기는 커녕 읽은 내용까지 잊어가고 있다. 리뷰가 두 번 올라갈 수 있으므로 일단 1차로 올리고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차분히 다시 더 쓰면 된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을 아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판형도 작고 360쪽짜리지만, 일단 펴보면 그게 아니란 걸 금방 알게된다. 글씨는 작고, 자간도 작아서 일반 판형의 500쪽 분량 정도의 텍스트를 가진 것 같다. 아마도 열린책들 전집을 쪼로록 보기좋게 사이즈와 두께 맞춰 꽂아놓으라고 텍스트를 조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파블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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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돈 키호테와 폴 오스터와 나 평점8점 | s*******r | 2014.09.21 리뷰제목
나는 <돈 키호테의 모험>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돈 키호테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누군가로 부터 그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건 <뉴욕 3부작>이라는 책의 1부, '유령의 도시'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폴 오스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돈 키호테의 모험>은 이상을 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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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키호테의 모험>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돈 키호테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누군가로 부터 그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준 건 <뉴욕 3부작>이라는 책의 1부, '유령의 도시'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폴 오스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돈 키호테의 모험>은 이상을 쫓는 숭고한 기사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해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 키호테의 모험>에서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사건, 이를테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 키호테의 이야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곁들인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돈 키호테의 모험>을 오해하는 이유는 그들도 나처럼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건 더 큰 오해가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어 본 사람들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 키호테의 모험>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숭고한 기사 로맨스라고 믿는다. 


그들이 읽는 건 <돈 키호테의 모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믿음이다.


세르반테스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돈 키호테의 모험>의 저자가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돈 키호테의 모험>은 '시드 아메테 베넨겔리'라는 사람이 아랍어로 쓴 것이며, 세르반테스가 할 일이라곤 그 원고를 우연히 시장에서 발견한 뒤 어떤 기사를 고용해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세르반테스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


<돈 키호테의 모험>이 실제 사건의 목격담이라면 목격자는 그 책의 원저자인 '시르 아메테 베넨겔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책 속에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건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원저자를 제외한다면 가장 유력한 목격자는 역시 산초 판사다. 그는 돈 키호테와 모든 모험을 함께한 유일한 동반자니까. 문제는 산초 판사가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저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돈 키호테의 친구들인 이발사나 사제에게. 그들은 산초의 이야기를 적절한 문학 형식으로 다듬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발사와 사제는 산초 판사의 구술을 소설로 옮긴 원고를 수습 기사 삼손 카라스코에게 넘겨 아랍어로 번역 한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어느날 우연히 톨레도 시장에서 그 원고를 발견한 뒤 스페인어로 재번역해 <돈키호테의 모험>을 출간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돈키호테의 모험>의 원저자 '세르 아메테 베넨겔리'는 산초 판사, 이발사, 사제, 세 사람이 혼합된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산초와 돈 키호테의 친구들은 왜 이런 수고를 한 걸까? 그것은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돈 키호테가 미쳐버린 이유는 그가 기사 로맨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처음에 기사와 관련된 모든 책을 불태운다. 물론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생각한 최후의 전략은 돈 키호테의 광기에 거울을 들이미는 것이었다. 그의 터무니 없고 익살스러운 망상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때 잘못을 알아채도록 말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돈 키호테는 정말로 미친 게 아니었다. 그저 미친척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가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었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돈 키호테는 작품 전체에 걸쳐 후세의 문제에 집착했다. 몇 번 씩 거듭해서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자신의 모험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할지 궁금해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것은 돈 키호테가 바로 자기 옆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돈 키호테가 직접 기획한 일이며 돈 키호테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뭉쳤다고 믿은 네 사람, 즉 산초 판사와 이발사와 사제와 심지어 삼손 카라코스는 그저 돈 키호테가 정해준 역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 뿐이다. 뿐만아니라 아랍어 원고를 다시 스페인어로 옮긴 것도 아마 돈 키호테 자신이었을 것이다. 돈 키호테처럼 변장에 능한 사람이라면 얼굴을 검게 칠한 무어인(아랍인) 기사로 변해 아랍어 원고의 번역을 부탁하러 온 세르반테스를 맞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이 가정이 맞다면,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번역할 사람으로 바로 본인인 돈 키호테를 고용한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돈 키호테가 도대체 왜 이같은 일을 벌였냐는 것이다. 돈 키호테는 일종의 실험을 했었던 것 같다. 자기 친구들이 얼마나 잘 속는지. 아마도 그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확신에 찬 거짓말과 허튼 소리를 늘어 놓는 일이 가능할까? 


풍차들은 기사들이고, 이발사의 대야는 투구고, 인형은 진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에 동의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재미 있어 한다면 그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디까지 참아낼까? 그 대답은 '얼마든지 참아 낸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 많은 독자들이 아직까지도 <돈 키호테의 모험>을 읽는다는 게 그 증거다. 


여기까지가 <뉴욕 3부작>의 1부, '유령의 도시들'에 등장하는 '폴 오스터'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 내가 한 일이라곤 문장의 순서나 약간의 단어 혹은 조사 정도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옮겨 적은 이야기를 쭉 읽고나자 나는 이 리뷰를 여기서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 '돈 키호테'를 '폴 오스터'로 바꾸면 <뉴욕 3부작>에 대한 내 감상이 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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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뉴욕 3부작] 힘들었던 한 달 간의 뉴욕판 추격전 평점8점 | l******e | 2013.01.24 리뷰제목
누굴 믿고 시작한 폴 오스터인지. 결국은 이렇게 한 달의 부진한 독서를 반성하며 힘겨웠던 레이스라고 탓하게만 될 것을, 왜 그렇게 기대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내게 추천한 적도 없고, 끌릴 만한 리뷰를 본 적도 없고, 표지가 예뻤던 것도 아니고, 기타 등등의 어떤 특별한 계기로 끌린 적도 없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그냥 한 번 읽고 싶었던 작가가 폴 오스터였다.
리뷰제목

누굴 믿고 시작한 폴 오스터인지. 결국은 이렇게 한 달의 부진한 독서를 반성하며 힘겨웠던 레이스라고 탓하게만 될 것을, 왜 그렇게 기대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내게 추천한 적도 없고, 끌릴 만한 리뷰를 본 적도 없고, 표지가 예뻤던 것도 아니고, 기타 등등의 어떤 특별한 계기로 끌린 적도 없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그냥 한 번 읽고 싶었던 작가가 폴 오스터였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권은 읽는 것이 보통의 독서 패턴이었는데 몇 년 만에 한 달씩이나 걸려가며 읽은 책이라니. 시간에 쫓겨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서도 내게 폴 오스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간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다.

 

 

교묘하게 연결되는 세 가지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어 곰곰히 생각하지 않으면 이름과 처지가 비슷한 주인공이 출연하는 세 개의 별개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연결 고리를 찾기가 어렵다. 따져보면 그리 희미한 연결은 아니지만 이야기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에는 한 번의 통독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띄엄띄엄 읽어서 점선에 가까운 연결선들을 겨우 찾았을 뿐이다. 또 세 개의 이야기들은 모두 쫓고 쫓기는 수색과 관련되어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느껴진다. 제목 때문인지 당분간은 뉴욕을 생각하면 불안해질 것 같다.

 

 

취향의 문제 이전에, 책을 성실히 읽지 못한 탓에 폴 오스터의 매력을 찾기 어려웠기에, 무어라 그의 소설을 말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촌스럽거나 진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가히 압도적이지도 못하니, 마찬가지로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던 보르헤스를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호감을 갖기는 어려운 듯하지만, 곳곳에 적혀 글 전체에 스며 있는 철학적 단상들이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이 꽤 있었다. 다시 폴 오스터를 읽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면 좀 더 논리적인 체계와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본 것이 설마 전부일 리는 없겠지.

 

 

 

만일 인간의 타락이 언어의 타락을 수반하기도 한다면, 언어의 타락을 원상 복구함으로써, 타락을 원상 복구하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만일 인간이 그 최초의 순결한 언어를 말할 줄 알게 된다면, 그럼으로써 내면의 순결 상태를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78쪽)

 

 

전에 어디선가 눈은 얼굴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였다.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는 사진에 나와 있는 소년의 눈을 보고 노인이 된 뒤의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88쪽)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듣기 원하고 그래서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말 속에 진짜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상상하면서 우리 자신을 이야기 속의 인물로 대체시킨다. 마치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때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알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삶이 계속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불확실해져서 우리 자신의 모슨을 점점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379~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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