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성범죄와 여성혐오를 양산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2019년의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2024년까지의 기간 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더욱 교묘하고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디지털 성범죄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적 폭력과 착취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이다. 이는 딥페이크와 같은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 사이버 스토킹,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 피해는 물리적 폭력과 다름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지털 페미니즘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 페미니즘은 기술과 미디어를 통해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는 온라인에서의 행동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진다. 페미니스트들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고발과 행동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법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에 이러한 디지털 페미니즘의 활동과 연구에 대한 주제를 종합한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이었다. 현 시점에서의 디지털 성범죄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디지털 페미니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분석한 결과인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가져오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과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디지털 페미니즘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노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분석과 노력을 통해서 디지털 성범죄의 실태와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디지털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사이버 공간에서의 현재의 문제를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문: 페미니스트답게 질문하기 (허윤)
1부. 온라인 여성혐오, 기술과 함께 진화하다
1장 디지털 시대, 고어 남성성의 등장 (손희정)
2장 메갈 밥줄 끊기의 역사 (이민주)
3장 딥페이크 이미지는 어떻게 실제와 연결되는가 (김애라)
4장 온라인 공간을 횡단하는 여성들 (김수아)
2부. 디지털 사회 속 여성주의 지식을 생산하다
1장 '위치지어진' 개발자들과 페미니스트 인공지능 (이지은,임소연)
2장 성차별, 있는데 없습니다 (권현지?황세원·노가빈?고민지,장인하)
3장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스트-연구자 되기 (김미현)
4장 지역 여성주의 네트워킹을 되짚다 (김혜경)
3부, 차별과 맞물리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보다
1장 능력주의는 어떻게 구조적 성차별과 공모하는가 (엄혜진)
2장 젠더 이후의 젠더 정치학 (김보명)
3장 돈 되지 않는 몸을 가진 남성-피해자들 (김주희)
4장 성평등한 일-돌봄 사회로 (신경아)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쳤지만,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들은 사이버 레커, 딥페이크 성폭력, 그리고 온라인 여성혐오 현상 등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페미니즘의 대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각 장에서 다루는 다양한 문제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맥락을 통해 우리는 현재의 디지털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어 자본 주의' 개념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고어 남성성'을 조명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상의 유희가 아니라, 실제로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는 현실로 이어진다. 사이버 레커와 웹하드 카르텔은 여성의 신체와 이미지를 착취하여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어떻게 자본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서브컬처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발생하는' 메갈 색출' 현상을 다룬다. 온라인 집단행동이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어떻게 낙인찍고 사회경제적 기반을 박탈하는지를 분석하며, 이는 소비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폭력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 고, 페미니즘 운동의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최근 그 파장이 크게 이슈되었던 딥페이크 성범죄와 사이버 스토킹 등 '기술매개 성폭력'의 정의와 실질적 피해를 상세 분석해 준다. 디지털 피해는 물리적 폭력과 연결될 때에야'진짜 피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기술매개 성폭력은 온라인뿐 아니라 대면 현실에서도 피해를 발생시킨다. 현재의 성폭력 판단 기준이 기술매개 성폭력의 실질적 피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다.
사회적 편견과 갈등 속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왔다. 정부와 사회가 반복되는 젠더 폭력을 방관하는 가운데에서도, 페미니즘적 고민은 현실 문제에 개입하며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의 모임과 행동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페미니즘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여성혐오와 차별이 더욱 교묘해진 상황에서도, 온라인 페미니즘은 사회가 목도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행동과 고발은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성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접근법과 실천적 방안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의 개선, 기술적 대응,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모든 구성 원이 참여해야 할 문제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변화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총리뷰
4차 산업혁명의 생성형 인공지능 AI 디지털 시대에 여성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기술 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통해 여성혐오가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페미니즘이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사회적 구조를 동 시에 고려해야 하며, 지속적인 논의와 행동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은 한국여성학회 40주년을 맞아 기획된 책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양상의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한다. 흥미롭게 읽은 꼭지는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다룬 김수아의 〈온라인 공간을 횡단하는 여성들〉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나타난 페미니스트들 사이 젠더 인식을 다룬 김보명의 〈젠더 이후의 젠더 정치학〉, 능력주의 개념의 성차별적 성격과 이것이 페미니즘에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주의로 나타나는 양상을 다룬 엄혜진의 〈능력주의는 어떻게 구조적 성차별과 공모하는가〉이다. 머리말의 제안대로 김수아와 김보명의 글을 함께 읽으며 페미니즘 대중화가 남긴 딜레마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엄혜진의 능력주의를 다룬 글 역시 최근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와 현재
〈온라인 공간을 횡단하는 여성들〉의 저자는 안전한 공간을 찾으려 한 여성들의 역사와 여성들이 안전하게 모이면서도 포용적인 연대를 만드는 방법을 논한다. 그는 ‘여성시대’나 ‘메갈리아’를 비롯한 여러 온라인 여성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를 1999년 헌법재판소의 군 가산점제 평등권 침해 판단 이후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공격에서 찾는다. 당시 여성을 위협하는 온라인 공간의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우리 사회가 해당 현상을 여성혐오로 개념화하지 못하면서 여성들은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이를 계기로 안전한 온라인 공간을 찾으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메갈리아’ 이전에도 여러 유료 웹사이트나 ‘여성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포털 사이트 카페 등 폐쇄적인 여성 공간이 만들어졌으며,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더 공개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자발적인 연결이 이루어졌다.
최근 SNS에서 일어나는 페미니즘 운동은 기존 사회 운동과 달리 시민단체와 같은 하나의 구심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지난 8월 말부터 딥페이크 범죄 사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X(옛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딥페이크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고, 해당 해시태그로 전 세계 트렌드 2위에 오르는 성과를 만들었다. 2018년에 벌어진 미투운동도 비슷한 예시로 볼 수 있다. 다만 디지털 행동주의는 기존 사회 운동과 비교해 지속성이 떨어지며, 단지 SNS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결국 사회 전환을 위해서는 기성 언론의 보도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디지털 행동이 여러 소수자 개인의 주체적인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이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구조적 차별의 존재를 일깨우며, 오히려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의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이 SNS 여론을 기사 작성에 활용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개인들이 디지털 행동을 통해 입법 청원을 독려하는 등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으로 볼 때 디지털 행동이 정치적 효능감을 높임으로써 사회 참여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온라인상 페미니즘 운동에서 보이는 젠더 배제적인 움직임이나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주의는 비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젠더 이후의 젠더 정치학〉은 젠더 개념이 보수 개신교 반동성애 운동 흐름과 신자유주의적 안티페미니즘, 트랜스 배제적 급진페미니즘(‘랟펨’ *) 사이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오늘날 한국에서 보수 개신교 집단은 이성애중심적 가족 질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젠더 개념을 공격하고 안티페미니즘을 내세운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마주한 이 백래시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을 짚는다. 19세기 후반 여성 참정권 운동에 반발한 남성과 중산층 백인 여성들, 1990년대 종교계가 내세운 안티페미니즘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랟펨’ 사이에서 젠더는 해체 대상으로 규정된다. 이들은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젠더를 해체하며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를 ‘진정한 여성’의 기준으로 삼는다. 결국 ‘랟펨’의 젠더 정치학은 보수 개신교와 유사하게 본질주의를 강조하고, 트랜스젠더를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이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는 존재임을 간과한다. 여전히 SNS에서 ‘진정한 여성’ 범주를 주장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기혼 여성과 좌파 운동권 여성을 거부하거나 페미니스트 행동 규범을 정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주된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셀 남성이나 보수 우파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적 안티페미니즘은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노동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등장했다. 이들은 성평등 정책이 사회 구조적 차별을 시정하는 것임을 무시하며 여성이 ‘태어난 성’을 기준으로 혜택을 받는다고 항의한다. ‘젠더’를 ‘섹스’로 오독한 것이다. 〈능력주의는 어떻게 구조적 성차별과 공모하는가〉는 특히 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페미니즘을 집중적으로 다뤄 능력주의가 성차별을 은폐해 왔으며 페미니스트들의 자기계발주의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밝힌다. 실제로 일부 여성들은 상위 계층 이동을 곧 성평등 실현으로 여기며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경제적 삶의 질 향상을 꾀한다. 그러나 앞서 다뤘듯, 애초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여성의 성적 차이를 결핍으로 보는 문화를 비판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여성들을 오히려 공정 경쟁 질서의 위협으로 여겼다. 여성들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편견을 깨면서도 여성 일반에게 부과된 성역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이중 구속에 시달리기도 했다. 저자는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여성들이 능력주의를 내면화해 욕망을 추구하거나 피해자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경향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페미니즘이 능력주의 사회 자체를 비판할 가능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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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야망을 품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자는 분위기를 좇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후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과 자기를 경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꼈거나 지쳤던 경험을 공유하며 이것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리천장 문제로 여전히 고위직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높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때 각 여성은 계층, 장애, 인종, 연령 면에서 차이를 지니는 존재이며 엄혜진이 언급했듯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는 사회적 우연성과 운의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에게는 그것이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페미니즘 운동은 자기계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하는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 사회를 여성의 관점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때 성차별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차별을 묵인하는 사회 현실을 폭로하고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사회 구조를 전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