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16년이고, 스위스 제네바에서였다. 남편 퍼시 셸리, 이복동생 클레어, 이미 유명한 시인이며 난봉꾼이었던 바이런, 의사 존 폴리돌리와 함께 한 여행 중이었고, 괴담 경합을 벌이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1816년은 전 해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의 폭발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지구를 뒤덮어 이른바 ‘여름이 없는 해’라고 불릴 정도로 춥고 음산한 해였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최종 원고를 1817년 완성하고 1818년 발표했다. 스물 한 살의 나이였다. 몇 년 전 유부남이었던 퍼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그때의 이름은, 그러니까 메리 고드윈이었다) 발견했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성을 소설의 제목에, 괴물을 만든 인물의 이름으로 썼다. 그러나 익명이었다.
그녀가 《프랑켄슈타인》을 익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잘 드러낸다. 더군다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시인이자 진보주의자 퍼시 셸리와의 추문(물론 그들에겐 로맨스였지만, 퍼시 셸리의 아내가 자살한 것은 메리와 퍼시의 관계가 어떤 충격을 가져왔는지를 보여준다)과 같은 꼬리표가 붙은 메리 셸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취할 수밖에 없는 조치로도 여겨진다. 물론 나중에는 내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요!라고 나섰다.
메리 셸리는 유명하다. 그녀의 유명세는 현대로 오면서 더해지는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이 현대 문명의 아이러니한 야만성을 예견케 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다. 그러면서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도 재조명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당대에는 그녀보다 더 유명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바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어머니와 딸의 이름은 같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메리와 메리’다.
그런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가 같은 하늘에서 숨을 쉰 것은 겨우 며칠이 되지 않는다. 엄마 메리는 딸 메리를 낳고 산욕열로 죽고 만 것이다. 그래서 엄마 메리가 메리의 삶에는 큰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사상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동안의 시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메리와 메리》에서 샬럿 고든은 두 명의 메리의 삶을 한 챕터씩 엇갈려 가며 두 메리의 삶과 사상이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의 최초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기존에는 어머니 메리의 사상에 배신자처럼 여겨졌던 딸 메리가 실은 시대에 저항하기도 하면서 열정을 불태웠고, 그것을 통해서 어머니의 사상을 체화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을 안 것은 불과 1주일 전이다. 크리스타 토마슨의 《악마와 함께 춤을》에서였다. 이미 《메리와 메리》를 내 책상 한 켠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고, 메리 셸리의 엄마 이름이 메리라는 것은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성이 울스턴크래프트라는 것을 몰랐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무지를 자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인물이 현대에 받는 대접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통해서 점점 명성이 높아지는 데 반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오랫동안 잊힌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보면 그것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남편이었던, 역시 정치철학가였던 윌리엄 고드윈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죽은 후 회고록(《여성의 권리 옹호 저자의 회고록》)을 썼는데, 거기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을 왜곡하고 만다. 그녀의 삶을 미화하는 과정에서 당당했던 삶의 행보, 그녀의 (당시에는 과격했지만, 나중에는 당연해진) 주장들이 생략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은 초라해지고 오랫동안 잊힌 인물, 메리 셸리를 낳고 바로 죽은 엄마 정도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의 권리 옹호》, 《여성의 권리 옹호》와 같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 여성의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한 선구자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굉장히 분량이 많은 책이다. 어머니 메리와 딸 메리의 이야기가 한 챕터씩 엇갈려 제시되고 있는데, 이름이 같다보니 헷갈릴 때도 적지 않았다(물론 금방 되돌아 왔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의 생애가 길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책이 두꺼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삶이 불꽃같았다는 것을 증언한다.
<곁가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죽음을 맞닥뜨린다. 18세기, 19세기가 그랬다. 그런데도 결핵, 발진티푸스, 산욕열, 말라리라 등등의 감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대목에 이르면 잠깐씩 숨을 고르게 되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메리는 야심만만하고 불만이 많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 것을 이해했다. 바로 교육이 자신의 미래를 좌우하리라는 것이었다. 자기 가족을 특징짓는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은 학교 교육을 받는 것이다. (…) 책을 한 권씩 읽어 가면서 메리는 자신과 부모의 거리를 더 벌릴 수 있었다. p.39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내 삶의 자라이고 기쁨이었어. 내가 누린 행복의 대부분은 … 어머니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흠모에서 비롯되었지. 어머니의 위대한 영혼은 나를 낳아준 분들로부터 내가 가급적 퇴보하지 않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지. p.697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인도를 따르며 온 생애를 보냈다. 어린아이였을 때 묘비에 적힌 "메리 올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라는 구절을 바라보며 그녀는 바로 여기, 어머니 곁에서, 가장 자기다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결국 메리 셸리가 가장 원했던 것이었고, 어머니와 딸이 공유한 욕망이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장애물이나 비판가들, 적대자들, 모욕, 추방, 배신, 무시, 심지어 마음을 찢어놓은 비통한 일들 그 어는 것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p.707~708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보다 앞서 나아가고, 세상의 이성이 발전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부정할 편견을 정신의 힘으로 대담하게 버리는 사람들은 용감하게 비난을 직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느라 너무 노심초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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