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
나무여, 이렇게 잘려 나간 모습이라니,
이렇게 기이하고 낯설게 서 있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네 속에 반항과 의지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너와 같다. 고통스럽게 베어지는
삶을 끝내지 못했고
날마다 야만의 고통을 견뎌 내며
또다시 저 빛 속으로 얼굴을 내민다.
내 안의 연약하고 부드러웠던 것을
세상은 죽도록 조롱했지만,
내 본질은 파괴될 수 없는 것.
나는 만족하고 화해하며,
가지를 수백 번 찢어 참을성 있게
새로운 잎을 틔워 내고,
그 모든 아픔에도 나는 여전히
이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있다.
- 1919년 7월
온 몸 곳곳이 잘려 나갔음에도 새로운 잎을 틔우는 나무, 남들의 비난, 냉소를 뒤로 하고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며 올곧게 살며 저항하라고 한다.
헤세의 [싯다르타] 를 읽었다.
'싯다르타' 는 지혜와 새로운 경험을 얻기 위해 평생의 안락함이 보장된 현실을 떠나 스스로 고행의 삶을 선택한다. 고정된 목표와 고정된 삶이 아닌, 무수히 바뀌는 현실을 사는 인간의 자아 찾기 여정.
철학, 종교에 맹목적으로 의지한 고정된 목표로는 자아를 찾을 수가 없다. 인간은 살아 있기에 변화한다. 헤세는 적응을 요구하는 사회에 저항하라 한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깨닫되 스스로에 대해 판단하거나 스스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마음에 미리 담고 있던 삶의 모습으로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라고 한다.
우리가 자연의 그 소름 끼치는 무의미함을 온전히 인정할 때에 그 거친 무의미함에 맞설 수 있고, 거기서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자 유일한 일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동물이 더 잘합니다.
슬픔을 견디고 절망을 음미하되 이해할 수 없음과 고통, 무의미함을 인간이기에 가치 있는 모든 일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십시오.
젊은이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삶의 무의미함이 지렁이에게 결코 고통이 아니듯 대다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통에 사로잡혀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인간이라는 의미에 부합합니다.
- 1931년의 한 편지에서
이 책은 헤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시, 에세이와 소설 중의 일부, 편지를 엮어 만들었다.
헤세는 1912년 군국주의적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전쟁 포로 구호소 설립했고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반전운동을 하며 독일 정치에 비판적인 글을 다수 집필했다. 헤세가 평화주의자였던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토록 저항 정신을 담은 시인이었는지 몰랐다.
파편 산과 폐허 더미가
세상이 되었고 내 삶이 되었다.
나는 울면서 항복하고 싶었다.
이 저항만 없었다면.
나를 버티게 하고 나를 지켜 주는
영혼 저 깊은 곳의 저항만 없었다면,
나를 괴롭히는 것이 결국
찬란한 빛으로 향하리라는 믿음만 없었다면.
여러 시인들의 이 천진한 믿음,
모든 지옥 저 높은 곳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이 있으리라는
이 비이성적이고 끈질긴 어린아이의 믿음만 없었다면
인도학자였던 어머니와 외조부의 영향으로 인도 사상에 매우 박식했다.
동 서양의 사상과 종교를 넘나들며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냈던 헤르만 헤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삶의 의미, 인간 탐구 그리고 청춘의 고뇌를 이야기했다.
관료주의에 물든 사회에 저항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산
헤세를 알고 싶다면.
선량하며 타인에 대한 연민이 넘치며 자기 발견의 정수가 담긴
헤세의 글을 읽고 싶다면.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헤세의 철학과 세계관이 그대로 녹아있는
헤세의 명문장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