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다시 한번 반복해 말씀드립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근본적으로 잘 생각해 보시란 말씀입니다.
자기 아내와 바람이 났던 남자에게 복수를 위해 접근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도스토예프스끼 소설 답게 배배꼬이고 성격 급한 인간들이 급발진을 거듭하고, 때로는 코메디스러운 때로운 공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다가 결국 인간의 사악한 음모들의 밝혀지고, 실패하며, 세상은 원래 있었고, 있어야만 했던 것으로 돌아간다.
역시 도스토예프스끼는 각 등장인물들의 과거사들이 충분히 중첩되어 감정이 고조되고 흑막이 드러나다가 결국 돌아가면서 한번씩 폭발할 수 있는 공간적인 여유가 있는 장편이 제격이다. 표제작은 유독 인간들의 이름이 헷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는데, 같이 수록된 단편들은 아이디어 스케치이거나 진행방식의 실험에 불과할 뿐 영 읽을 게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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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남편이랑
우스운 사람의 꿈 - 환상적인 이야기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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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스운 사람이다. 사람들은 요즈음 나를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전처럼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면, 내 지위가 높아진 거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나는 이제 거기에 화를 내지 않을 뿐더러 그들 모두가 다정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들이 나를 비웃을 때도 왠지 더 다정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싶은 심정이다. 스스로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다지 우울하지만 않다면, 그들을 사랑하고 마주보며 함께 웃고 싶은 것이다. 내가 우울한 이유는 나 홀로 그들이 모르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혼자만 진리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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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도선생은 도선생이다.
딱 이정도 경계에서만 미쳐있었어도 그간 내 마음이 그렇게 괴롭진 않았을텐데.
아무리 고약하게 굴어도 그걸 동정의 다름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작가들의 선한 마음이 좋다.
정말 좋은 노래를 몇 번 씩 돌려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시간에 떠밀려 읽으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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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맨 마지막에 놓인 우스운 사람의 꿈을 읽는데
어쩐지 내 마음을 여기 다 옮겨다 놓은 것 같아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재독을 잘 하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재독하고 싶었던 작가는 도스토옙스키다. 그러기로 다짐해서인지 그의 전집을 양장, 무선본으로 두 질이나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디게 작품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전집은 18권인데 십 년이 넘도록 완독을 하지 못했다. 야심차게 마지막 책인『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꺼냈지만 초반을 읽고 중단한 상태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실제로 읽어보면 훨씬 재밌다. 이름이 많이 헷갈리긴 하지만 책장도 잘 넘어가고 왜 이제야 읽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더뎌 지는 건 속도 조절이 되지 않는 빨려듬이다. 나의 의지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끌어당기는 기분을 느끼며 읽다 보면 저자가 만들어 놓은 인물들의 사변에 휩쓸리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대화들 사이에서 헤매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책을 덮었을 때 의미를 찾는 것조차 무의미할 때가 많다. 겨우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이 소설이 갖는 의미며, 내게 준 메시지까지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 권씩 읽어 나갈 때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곤란해서 휴식기를 오래 두다 보니 완독이 더뎌질 수밖에 없는것이다.
순서대로 읽다 보니『죄와 벌』『백치』『악령』뒤에 읽는 이 작품이 약간의 긴장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했다. 장편만 연달아 읽었으니 비교적 여러 작품이 있는 이 책이 긴장감을 풀고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는 볼 수 없었다. 저자의 작품을 읽어본 이라면, 장편이든 단편이든 대화 속에 혹은 저자의 의도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길이만 조금 짧을 뿐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분명 저마다의 색깔이 다르고 연관이 없는 소설들임에도 이상하게 끊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긴 호흡의 소설을 여러 사람을 통해 들려주는 느낌도 들었고, 반대로 새로운 사건이나 이야기를 옮겨올 때마다 아주 많은 단편을 읽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나는 세계가 존재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거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는 처음부터 많은 것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으나 나중에 가서 나는 전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왠지 그렇게 여겨졌다. 점차로 나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우스운 사람의 꿈」중
저자의 소설을 읽다 보면 꼭 이런 기분일 때가 있다. 재밌게 읽다가도,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사고 속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난감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듯이 혹은 자신의 소설이 마치 그런 양상인양 태연하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나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분명 의아함을 느끼는 곳이 많은데 반발 할 수 없다. 한바탕 꿈을 꾼 듯,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홀린 듯이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인지, 당시의 러시아 사람들의 의식을 은밀히 비유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그 모든 것들을 정교하게 짜놓은 것인지 얄팍한 시선을 가진 나로서는 구별할 길이 없다.
그러니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고 나면 다시『가난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재독을 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 읽고 나서 개정판이 나오면 그 핑계로 또 책을 들여 읽을지도 모르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좋아하고, 계속 알고 싶고, 읽고 싶은 작가이기에 같은 책이 모양만 바꿔서 나와도 또 읽고 싶은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