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몇 해 전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전 에세이를 읽고 깊은 감동과 여운이 남아있었고 그녀가 공연한 동명의 작품이기도 해서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푸시킨의 이 소설에서 소재를 얻어 차이콥스키는 같은 이름의 3막 가극을 작곡하였으며 1879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하듯이 문학작품의 영감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또 예술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발레 공연 영상이나 오페라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다.
이 작품은 7년여 동안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푸시킨 문학적 역량이 응축되었다는 작품이다. 시와 소설을 탈피하여 시의 리듬과 소설의 전개를 곁들인 독창적인 운문 소설이다. 모두 8장으로 구성으로 각 장은 40~60개의 연으로 이루어져있다. 서구의 소네트와 같은 형식으로 한 개의 연은 14개의 행으로 되어있다. 낯선 장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재밌지는 않았다. 좀 더 진행이 될수록 흥미로웠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나는 먼저 발레 공연의 작품으로 알게 된 것이 더욱 뇌뢰에 남아서 읽으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었다. 화자는 오네긴을 알고 있는 친구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때는 작가인 푸시킨이 되고 연인 따찌야나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중간 중간 연을 생략한 기법으로 독자의 상상의 여지를 준다. 화자는 독자를 소설로 끌어들여 참여를 유도하는 참신한 구성도 흥미를 유발한다. 한마디로 일반 소설은 독자 참여의 여지가 없이 관망하는 것과 달리 자유분방을 추구한 푸시킨의 의도가 깔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은 오네긴이 시인인 친구 렌스키와 이웃 마을의 영지에 갔다가 그에게 사랑의 포로가 된 따찌야나의 사랑의 고백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다른 사람……! 아니, 이 세상에 제 마음을
바칠 사람은 그대밖에 없어요!
높으신 분의 섭리…… 하늘의 뜻으로
결정된 일, 저는 그대의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 인생은
그대와 어김없이 만나기 위한 저당이었어요.
알고 있어요, 신께서 그대를 보내 주셨다는 걸.
죽는 날까지 그대는 제 수호자라는 걸……
그대는 저의 꿈에 나타나셨어요.
보이지도 않는 그대께 제 마음 끌렸어요.
(P101 따찌야나가 오네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임.)
‘미인을 보아도 사랑의 느낌이 없어
그냥 꽁무니만 좇을 뿐.
거절당해도 금세 안정을 찾고
배신을 당해도 오히려 잘됐다 기뻐하고
미녀들의 사랑과 증오에 무감각.
사랑의 환희도 없이 그들을 탐했다가
미련의 아픔도 없이 차버렸다.
마치 무관심한 손님이
저녁때 휘스트* 게임을 하러 찾아와
앉아 있다가 게임이 끝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제 집에서 편히 잠들고
아침이 되면 깨어나
오늘 저녁엔 어디로 갈까 망설이듯.
주석) *휘스트-트럼프 놀이의 일종.(P113~114)
젊은 상속자 오네긴에게 아무런 삶의 의욕이나 충만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국외자,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던 당시 지성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지만 그는 자신과 그가 처한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당시 지성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아울러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다.
자유분방함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던 오네긴은 은둔생활을 마치고 사교계의 야회에서 따찌야나를 마주하게 되는데...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오네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상사병에 몸살을 앓으며 자신에게 사랑을 구걸하던 나약한 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당당하고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차가운 모습의 따찌야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하여 공작의 부인이 되었는데...
‘오네긴 님, 저에게 이 화려함.
허위에 찬 이 역겨운 삶.
사교계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제가 거둔 성공.
저의 멋진 저택과 야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에 이 모든 가면 무도회의 누더기와
모든 광휘와 소음과 악취를 버리고
책장과 황량한 정원이 있는
제 초라한 고향집으로,
당신을 제가 처음 뵈었던
그곳으로,
제 가엾은 유모가 묻힌 무덤 위에
십자가와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는
소박한 교회 묘지로 가고 싶어요…….
아, 행복은 손에 잡힐 듯
그토록 가까이 있었건만……! 그러나 제 운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경박하게 처신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거듭거듭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따냐에겐 어떤 운명이 주어지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발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가슴속에 자존심과
순수한 명예심이 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P265~266)
뒤늦게 따찌야나에게 사랑에 빠진 오네긴의 정열적인 편지를 받았지만, 묵묵부답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도 도도했던 그녀, 수수한 옷차림에 창백한 모습으로 편지를 읽으며 말없이 눈물을 철철 흘리는 따찌야나를 발견한다. 화려하고 당당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오네긴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한 따찌야나의 직언에 오네긴은 벼락을 맞은 듯 참담한 상황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아름다운 것일까.
★ 발레리나 강수진의 <오네긴> 유투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i2Mb3SDNqqM
객기어린 행동으로 렌스키의 약혼녀인 올가(따찌야나의 동생)와 춤을 추며 렌스키를 분노에 떨게 하고 그에게 복수했다는 만족감도 잠시 렌스키가 결투를 신청해 온다. 결투... 이 결투로 렌스키는 주검으로 사라지는데... 이 장면 또한 푸시킨의 드라마틱한 짧은 삶의 투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미모의 아내 때문에 연적 단테스와의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어쩌면 예언과도 같은 이 작품에 섬뜩해진다.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푸시킨은 지금까지도 후대의 작가의 작품들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결핍에서 꽃이 핀다고 했던가. 유배 생활, 정치적인 괴롭힘 등 황제의 시종으로 살아야했던 굴욕 속에서도 그의 문학은 꽃을 피웠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부모 아래서도 산더미 같은 책과 가정교사, 할머니의 이야기가 푸시킨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백 여 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오늘의 삶에서도 작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그려졌다. 어렸을 때 아무 뜻도 모르고 읽었던『대위의 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대위의 딸>을 읽고 뿌쉬낀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예브게니 오네긴>을 구입했다. 혁명가라는데... 나는 연애소설의 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위의 딸>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비극적인 <예브게니 오긴>도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살인을 하게 되고 그것도 결투 때문이긴 하지만, 친구를 죽이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돼있는 비극이지만, 읽는 내내 희극적으로 느끼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세상 여자를 겪을 만큼 겪은, 바람둥이 남자가 멋진 여자의 순수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받게 되지만 사랑은 어긋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운문 소설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작가 뿌쉬낀이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화자가 묘사하는 예브게니 오네긴은 건달이라 칭해지는 바람둥이지만, 모두에게 사랑 받는 존재이다. 여자 뿐 아니라 여자의 남자들도 예브게니 오네긴은 미워하지 못하고 좋아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그럴만한 매력이 있음일 것이다. 그런 청춘의 예브게니 오네긴이 점점 사교계에, 세상에, 염증을 느끼게 될 때 시골의 영지를 상속받는다. 시골에 내려와 찾아오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은둔하던 예브게니 오네긴은 그보다는 젊은(소년티를 벗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아 예브게니 오네긴 보다 훨씬 어린 친구) 친구 블라지미르 렌스끼를 사귀고 우정을 나눈다. 렌스끼는 올가 라린이라는 또래의 여인을 사랑한다. 올가는 아름답고 여성스럽지만 단순한 여인이다. 그에 반해 올가의 언니 따찌야나 라린은 올가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지성미를 갖춘 이야기와 소설책을 좋아하는 여인이다. 렌스끼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라린씨 댁에 데려간다. 따찌야나는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반하게 되고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편지로 고백을 한다.
그러나 따냐의 편지를 받고서/오네긴은 생생한 감동을 받았다./처녀의 꿈을 그린 그녀의 글에/상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어여쁜 따찌야나의 모습/그 창백한 안색과 우울한 자태가 생각났다./달콤하고 순수한 꿈속으로/그의 영혼은 젖어 들었다./어쩌면 그 옛날의 불같은 정념이/한순간 그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는 순진한 처녀의 신뢰를/기만하고 싶지 않아다./그럼 이제부터 따찌야나와 그가 마주친/저 정원으로 가볼까.(114쪽)
예브게니 오네긴은 따냐의 고백에 다시 정념이 일었고 그녀를 어쩌면 그 순간, 아니 처음 보았을 때 그도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불쌍한 아내가 부도덕한 남편 때문에/밤이고 낮이고/홀로 눈물짓는 가정일 거요./권태로운 남편은 아내의 가치를 알면서도/(그러나 어쨌든 운명을 저주하며)/언제나 오만상을 찌푸린 채 말이 없고/냉혹한 질투심에 수시로 화만 낼 거요./그게 바로 나요. 당신이 그토록/순수하고 정열적인 영혼으로,/그토록 순박하고 지혜로운 편지를 썼을 때/과연 나 같은 인간을 염두에 두었고?/당신에게 점지된 운명이/정말 그토록 가혹한 것이오?(116쪽~117쪽)
예브게니 오네긴이 세상에 염증을 내고 있는 상태로서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따냐에게 오빠처럼 오만한 설교를 한다. 그리고는 라린씨 댁에 발길을 끊었는데 렌스끼가 따냐의 영명축일을 알린다. 따냐는 영명축일 전날 비극적인 예지몽을 꾼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따냐가 보는 앞에서 동생 올가와 춤을 춘다. 렌스끼는 이에 분노를 하고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 결과는 블라지미르 렌스끼의 죽음이다. 그 후 예브게니 오네긴은 사라져버리고 올가는 슬픔도 잠시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난다. 나이를 먹어가는 따냐를 치우기 위해 라린 부인은 모스끄바의 사교계에 따찌야나를 데려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돌연 사람들이 웅성대더니/홀 안에 속삭이는 소리가 퍼졌다....../어느 귀부인이 여주인에게 다가가고/그 뒤에는 풍채 당당한 장군이 따라왔다./그녀는 서두르지도 않고/냉담하지도 않고 수다스럽지도 않았다./좌중을 경멸하는 눈빛도,/성공을 자랑하는 기색도,/거드름 피는 몸짓도,/어설픈 기교도 없었다....../그녀의 모든 것이 조용하고 단순했다./그녀는 소위 고상한 취미의/(용서하시오, 쉬쉬꼬프 선생,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모르겠소) 충실한 복사판처럼 보였다......///부인들이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노부인들은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고/남자들은 더욱 낮게 허리를 굽혀/그녀의 시선을 붙잡았다./홀을 지나가는 처녀들도/그녀 앞에서는 발소리를 죽였고/그녀를 대동하고 들어온 장군은/코와 어깨를 누구보다도 높이 치켜올렸다./누구도 그녀를 미인이라/부를 순 없었겠지만 머리끝부터/발끝까지 뜯어보아도/런런의 품위 있는 사교계에서/유행이라는 독재자가/저속한이라 부르는 특성 또한/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으리라,(어쩐다지....../(242쪽~243쪽)
따지야나에 대한 묘사이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모두 그녀의 겸허하고 품위를 갖춘 우아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런 따냐 앞에 예브게니 오네긴이 돌아온다. 따냐를 알아보고 그녀의 성숙한 자태에 빠져든 예브게니 오네긴은 따냐의 집에 출석도장을 찍는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따냐는 흔들림이 없다. 허나 어느날 따냐는 인정한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또한 남편에게 앞으로도 성실할 것임을 말해준다.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사람이 죽고 사랑은 어긋나고 주인공은 안티 히어로이다. 그런데 읽는 내내 흥미롭고 유쾌하다. 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기대가 된다. 물론 따냐와 장군의 등장은 서운한 마음이 일게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잠시,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똑똑히 전하는 그녀의 진심은 감탄을 자아낸다. 남녀주인공 둘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슬프게 이야기가 끝맺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그 이야기 나름의 매력을 느끼며 아! 역시 사랑이란 타이밍이야! 하며, 즐거운 마음이 드는 아이러니한 감정이 생긴다.
그건 뿌쉬낀이 이야기 내내 개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을 그리면서 비극이기를 의도하지 않은 작가의 개입이 유쾌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것같다. 즐겁게 읽은 이 어긋난 사랑이야기는 인생은 어떤 역경 속에도 웃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상속받은 유산을 관리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오네긴은 친구이자 시인인 렌스키에 이끌리어 이웃에 사는 두 자매 타찌야나와 올가를 방문하게 된다. 아름다운 올가와 결혼을 꿈꾸는 렌스키와 달리 오네긴은 권태와 우울에 지쳐 인생의 행복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타찌야나는 오네긴을 보자마자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그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보내지만 그는 그녀의 연정을 냉혹하게 거절하고 순정을 잔인하게 놀리려고 그녀의 동생 올가에게 접근한다. 낭만주의자인 렌스키는 모욕을 되갚고자 신청한 결투에서 오히려 오네긴의 총에 맞아 숨지고 친구를 죽게한 오네긴은 더욱더 인생의 무력감에 깊이 빠져든다. 올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혼자 남겨진 타찌야나는 독서로 새로운 사상의 세례를 받으면서 아름답고 고상한 여인으로 성장하고 모스크바의 친척들의 도움으로 장군과 결혼하여 공작 부인이 된다. 오네긴은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기품있는 여인이 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자 사랑의 열기에 휩싸이지만 이제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젊은 시절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아 소녀의 구애를 거절했던 그는 세월이 흘러 시골 소녀의 초라한 겉모습을 벗고 고귀한 내면이 드러나는 그녀를 보자 후회하며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를 붙잡으려 하지만 그 사랑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 자는 언제나 약한 자이고 상처받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다 냉정한 상대에게 더 매혹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운명의 잔인함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삶이 그대를 속인 것이 아니라 그대가 삶을 속였으니 그 댓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리라.
아, 운명은 너무도,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갔다! 포도주 가득 찬 술잔을 다 비우지도 않고 인생의 향연을 일찌감치 떠나 버린자, 마치 내가 오네긴과 헤어진 것처럼 인생의 소설을 다 읽지도 않고 별안간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도다. |
269쪽. <예브게니 오네긴>의 마지막 연의 끝부분 |
푸쉬킨은 15세에 등단한 천재시인답게 시의 형식으로 소설을 쓰는 '운문소설'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창조했고 그런 형식의 제한안에서 자유로운 시어로 그의 이야기를 마음껏 써나갔다. 통속드라마의 줄거리같은 상투적인 플롯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맑은 정서, 조국 러시아에 대한 사랑과 현실비판을 잃지 않는다. 푸쉬킨 본인도 냉정하고 사치스러운 아내 나딸리야의 추문에 휘말려 38세의 젊은 나이에 결투로 인생의 책장을 갑자기 덮게 되었을때, 러시아는 다 씌여지지 못한 소설과 수많은 시를 잃게 되었지만 푸쉬킨 본인은 그래도 평생 갈구하던 자유를 찾아 진정 행복했기를...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은 러시아의 시인이자 러시아 국민문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한 무렵 그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 한계를 의식하게 된다. 그의 고민의 깊이만큼 이 작품은 7년여에 걸친 오랜 집필과정 끝에 탄생하였고 시와 소설의 장르적 한계를 탈피하여, 반복적인 시의 리듬과 순차적인 소설의 전개가 공존하는 <운문소설>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선보임으로써 문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창시절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대위의 딸』이다. 읽을 당시에는 그저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봤었는데, 세부 분류가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역사 소설인 것을 보니 그 속에 러시아 역사가 총망라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최초의 운문 소설이라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으면서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우리의 문학 중에 판소리와 같은 유사한 장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치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판소리 여러 마당을 함께 한 느낌이랄까. 시인이라는 칭호답게도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같기도 하다.
아! 사람들은 인생의 밭고랑에서
비밀스런 신의 섭리에 따리
순간적인 추곡처럼
싹트고 여물고 시들어 가고
그 뒤를 또 다른 이들이 좇아간다…. (76쪽)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음의 전개가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시어들이 가득해서 참 아름다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겨울은 찾아와 산산이 흩어졌다.
눈은 몽글몽글 참나무 가지에 걸리고
들판에, 언덕 주위에
파도치는 양탄자 되어 누워 있다.
강에 덮인 눈 이불은
얼지 않는 제방에까지 닿아 있다.
서리가 반짝였다. 어머니 겨울의
장난이 우릴 즐겁게 한다. (216쪽)
이야기는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과 따찌야나의 엇갈린 안타까운 사랑이 주축을 이루지만 그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과 귀족들의 허식이 가득한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오네긴의 사소한 행동에 대해 친구 렌스끼의 질투를 불러 일으키고 결국 결투 끝에 렌스끼를 죽이게 되는 불행을 낳는다.
이러한 내용은 마치 뿌쉬킨의 삶을 예견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는 실제로 아름다운 나탈리야에게 반하고 여러 차례의 구애를 통해 결혼하게 되지만 그녀의 미모는 그의 삶에 비극의 시초가 된다. 이 책에서 오네긴이 아닌 렌스끼의 운명처럼, 뿌쉬킨은 자신의 아내와 염문을 일으킨 프랑스인 단테스와의 결투 도중에 치명상을 입고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사망한다. 그가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고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주옥 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었을텐데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
어떤 위대한 가치를 지녔는지 잘 모르겠다.
잡담만 무성하고 플롯도 단조롭다.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이라면 아마 나와 비슷하리라.
*
그는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쓰러진다. 흐릿한 시선이
말해 주는 것은 고통이 아닌 죽음이었다.
마치 눈덩어리가
햇살 아래 반짝이며
경사진 언덕길을 천천히 굴러 떨어지듯이.
순간적으로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어
오네긴은 젊은이에게 달려가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불러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는이미 저 세상 사람. 젊은 시인은
때 이른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폭풍우가 휘몰아치자 아리따운 꽃송이가
새벽의 여명 아래 시들어 버렸다.
제단의 불이 꺼져 버렸다-!
*
입방정 떨다간 그냥 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