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민, news1116@naver.com
순례자들의 여정
내가 알고 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번역이 되었다. 늘 어려워서 만화책에만 눈이 갔었다. 열린책들에서 기독교고전을 출판하다니 의아했다. 그러나 나의 지루함을 달래줄 것 같아 기대했다. 지은이 존 버니언, 아마도 열린책들의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을 따라 표기했으리라 예상한다.
새로운 번역에 신선함이 있었지만 아쉬운 점은 인용된 성경 구절이나 인물의 이름들이 개역개정 성경이 아닌, 공동번역 성서에 근거했다. 때론 알아볼 수 없는 이름들이 등장해 헷갈리게 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하느님’으로, ‘바울’이 ‘바울로’라고 되어 있는 것은 물론, ‘에서’는 ‘에사오’라고 되어 있어서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읽는 성경이 아니라서 아쉬움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 존 버니언은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가 아닌, 청교도 목회자였다. 현재 가톨릭과 더불어 성공회의 성경은 공동번역을 따르기 때문에 최소한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인용된 성경은 공동번역 성서를 따르면 안 될 것 같다. 존 버니언이 한국인이었다면 ‘하느님’으로 불렀을 리 만무하다. 그는 ‘하나님’으로 부르기 위해 감옥에 갇혔다. <역자 해설>에서 당시의 기독교역사를 충분히 언급했지만, 역시 성경인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기독교고전은 기독교 출판사가 출판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수많은 비유들로 인해 내용이 모호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한 이름들은 내용의 분명함을 더해준다. 존 버니언은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믿음’과 ‘소망’이라는 인물과 함께 천국을 향해 ‘왕의 대로’를 걷는다. 그에게 닥치는 숱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천국에 들어간다. 모험 가득한 크리스천의 여행이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인물을 마지막에 등장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했으니까 말이다.
존 버니언이 진짜 꿈을 꾸며 보았던 내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글을 읽는 내내 ‘내 꿈에도 크리스천이 나왔으면’ 하고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 역시 그리스도인(크리스천)으로서 인생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천국을 향해 ‘왕의 대로’를 걷고 있는가.
열린책들의 『천로역정』에는 또 다른 2부가 있다. 1부가 주인공 크리스천의 이야기였다면, 2부는 그가 1부에서 놓고 온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애너’ 이야기이다. 1부에는 꿈만 꾸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존 버니언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크리스티애너는 크리스찬이 걸었던 그 ‘왕의 대로’를 그대로 따라 걷는다.
이 책은 두 주인공, 크리스천과 크리스티애나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려고 생각하거나,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하거나, 심지어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힘과 위로가 될 것 같다. 크리스티애나가 먼저 앞서 간 크리스천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도 우리가 걸어갔던 순례의 길을 따라올 때, 크리스천과 크리스티애나와 같은 모범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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