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CMXLVII / 열린책들 15번째 리뷰] 셰에라자드의 여동생 '디나르자드'의 역할은 감초 역할일까? '약방의 감초'란 말은 여러 한약처방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감초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지랖'이란 말뜻과 비슷하게 쓰이곤 한다. 그래서 감초 역할이라고 하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쓰디쓴 한약재를 그나마 마시기 좋게, 마시기 편하게 '해주는 역할'이라는 긍정적인 뜻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디나르자드의 역할이 딱 그런 역할 아니겠는가.
언니 셰에라자드의 부탁으로 '왕비의 침실'에 함께 머물게 된 디나르자드는 '아침 해가 뜨기 한 시간 전'에 언니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야만 한다. 어찌 보면 매일밤, 언니가 '페르시아 대제국 술탄의 명령'에 따라서 처형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모면하게 만들어주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만약 이렇게 졸라대는 듯한 말투가 '술탄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면, 재미난 이야기고 뭐고 간에 술탄은 셰에라자드를 처형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작두를 탄다'는 느낌으로 간절한 호소를 해야하는 역할인 셈이다. 또다시 만약 '디나르자드'가 없이 셰에라자드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간청을 한다면, 이는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고자 하는 뻔한 수작이라며 도리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언니가 처형되고 나면 이렇게나 재밌는 이야기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라는 느낌을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않게 딱 적당히 간절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디나르자드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매일밤 '똑같거나 비슷한 멘트'를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어서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디나르자드야 하나뿐인 언니를 구명하기 위한 최선일 수 있겠지만, 똑같은 멘트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디나르자드의 호소는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딴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앙투안 갈랑이 <천일야화>를 출간하면서 독자들의 불만을 적극 수용한 결과 (이 책 기준으로) 4권부터는 '며칠째 밤'이라는 구분도 삭제하고, '디나르자드의 등장'도 최소한으로 축약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전체 6권 분량 가운데 딱 절반부터는 '그런 구분'이 사라지고, 독자들은 훨씬 더 편하게 <천일야화> 이야기에 심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긴 했는데, 나는 '읽는 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셰에라자드와 샤리아 사이에 디나르자드까지 함께 어우려져서 '셋이서' 쑥떡대는 무언가, 그것만의 '매력'이 있었는데, 그게 실종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나는 '매일밤'마다 구분하며 들려주는 토막이야기를 통해서 '낮동안에 일어난 샤리아 술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식으로 디나르자드의 감초 역할을 쏙 빼버리고나니 '두 배로 즐기던 재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온통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만 읽어나가야 했다. 이래선 '보통의 소설(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게 된 셈이다. 아직 '버튼의 <천일야화>'도 이런 식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예전에 10권 분량의 '버튼 <천일야화>'를 읽을 때에는 초반만 읽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확인을 해봐야겠다.
더구나 '디나르자드'의 분량을 빼버리니 '샤리아'의 분량마저 함께 토막나고 말았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판소리'에 비유하자면, 소리꾼에 비유할 수 있겠고, 디나르자드는 '고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소리꾼이 아무리 명창이라도 고수의 '추임새'가 없으면 고무줄 없는 팬티 신세가 아닐까 싶다. 아무런 '약효'를 갖지 못한 감초일지라도 한약재에서 감초를 덜어내면 너무 써서 좋은 약도 먹지 못해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감초 역할이라 할지라도 무시하거나 귀찮아해선 안 될 것이다.
"칼리프는 그에게 재상을 고를 때에는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크게 주의를 주고는 그냥 그의 왕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1098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새삼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생각났다.(신간으로 나왔을 때 챙겨 봐야지 하고 깜박 했었는데..꼭 읽어야 겠다^^) 연일 총리문제로 시끄러운 우리나라를 보고 있으려니,'천일야화'의 4편 도 필히 권하고 싶어진다.한 나라의 군주라 하면 모름지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명예'라는 것은 정치인들에게는 특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이 아니던가? 천일야화가 재미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단순히 환타지 혹은 권선징악 해피앤딩의 형식이 아닌,이야기 속에 묵직한 뼈가 담겨 있기 때문이란 것을 새록새록 느끼며 읽는다.속도를 멈출가 없다.
"자유의 상실은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겐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우리의 몸은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주인의 권위 아래 복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망 그 무엇도 우리의 의지만큼은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의지는 우리의 것이니까요.(...)일국의 왕이라 한들 그 어떤 노예의 의지도 굴복시킬 수 없답니다. 물론 어떤 미천한 태생의 여자 노예가 군주의 마음에 들어 그의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녀는 불행한 처지에도 스스로를 행복하다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그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1114
1권에서 부터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노예'문제 였다.당시 문화가,종교가 그럴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라고 생각하던 찰라,4권에서 당당히 노예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치가로서 지켜야 할 명예가 있듯, 노예 역시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며,저들에게도 명예라는 것이 있음을 풍자적으로 이야기 해 주는 대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 된 '눈 뜬 채 꿈꾼 남자 이야기' 를 통해 권력의 맛,그 씁쓸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에피소드 자체는 충분히 동화될 수 없는 코드였지만'권력'에 대한 풍자 만큼은 백미 그 자체였다.
"인생이란 참 묘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 애쓰지만 결국에는 그것으로 돌아오게 되니 말예요." /1124
3권을 너무 고통스럽게 읽어서 재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4권에서는 흥미를 느꼈다. 사실 3권까지는 역자(앙투안 갈랑)가 원본에 의거, 셰에라자드와 칼리프, 디나르자드의 이야기를 계속 삽입하고(n번째 밤) 있었는데 가독률이 떨어지므로 4권부터는 삭제해 다시 엮는다. 그 덕분인지 가독률이 상당히 올라갔었다. 분명히 그런 식으로 호흡을 끊는 연출은 그리 좋지 않다.
여전히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갈수록 하나의 이야기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또한 왠지 그 이야기들 중 일부는 실화에 기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이야기 자체가 사실성이 넘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의 기이함이야말로 기록되어질만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건 6권까지는 묵묵히 읽어야겠다.
4권의 특징은 지금까지 이야기가 자주 중단되도록 했던 방식(처음에는 셰에라자드의 동생 디나르자드를 통해서, 나중에는 술탄과 셰에라자드를 통해서)과 각 밤을 구분하려고 했던 것까지 버리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형적인 구전처럼) 읽게 해주고 있다. 말 그대로 옛이야기를 접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또한, 3권과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사랑이 주를 이루면서 알지도 못하는 곳을 떠도는 (괴물을 만나기도 하고) 다양한 모험보다는(점점 바다와는 멀어지는 내용이 많아진다) 특정 주인공을 내세워 도시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경험(개인적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적 변화 때문에 이야기 또한 변화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혹은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고.
각각의 이야기는 여전히 변화무쌍하다. 위기에 빠졌다가 벗어나고 다시 전혀 다른 상황에 뛰어드는 등 예측이 어려운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 읽는 재미를 잃지 않고 있다.
이제 5권을 읽을 차례다. 드디어 알라딘과 알리바바의 모험을 읽을 수 있게 됐다.